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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평점 :
"분노하라" 고 누군가 내게 말했다면 무책임한 충고라고 도리어 말한 상대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화가 나고 기분 나쁘다고 그 감정을 대놓고 표현한다면 세상은 매일 싸울 일 천지다. 신문과 뉴스만 보더라도 몇 번이고 혈압이 올라갈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남의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겪는 부당하거나 불쾌한 일들을 떠올리면 분노하기는 너무도 쉽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를 가라앉히며 살아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화내봤자 손해라고 위안을 하면서 참는 법을 먼저 배운다.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NO"라고 말했다가는 사는 게 피곤해진다고 배웠으니까. 그래서 내가 억울해도 참고, 다른 사람이 억울하다고 해도 외면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불편한 진실은 덮고 모르는 척, 눈 감아버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분노하라"고 93세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일단 연륜있는 할아버지의 말씀이니까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예사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갇혔다가 극적으로 탈출했고, 외교관,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였으며 퇴직 후에는 인권과 환경 등 사회 문제에 앞장서는 열혈청년이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그리 와닿지 않았었는데 이 할아버지를 보니 이해가 된다. 93세의 나이에 제대로 분노할 줄 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대체로 나이가 들수록 세상과 타협하고 적당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는 것이 기성세대의 특징이라면 이 분은 뼛속까지 레지스탕스다.
이 책은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글이다. 그런데 이 책이 프랑스에서는 출간되자마자 이슈가 되었고 드디어 우리나라까지 상륙하여 내 손에 있는 이유는 뭘까? 어떤 이유에서든 이 책을 읽고 나면 분노하지 않는 자신을 몹시 부끄러워 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분노라고 하면 부정적인 감정의 표출로써 드러내기보다는 가라앉혀야 할 감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분노는 이 사회가 지닌 불합리하고 불의한 모든 문제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강력한 시민 행동을 하게 만드는 동기인 것이다.
어제는 굉장히 분노할 사건을 들었다. '지하철 막말남'이라고, 젊은 남자가 자리를 놓고 나이든 할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가 막말까지 하는 것을 누군가 동영상으로 촬영한 것이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막말남을 처벌해야 한다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지하철에 함께 있던 사람들을 지적하면서 왜 그들은 침묵하고 바라만 봤냐고 되묻는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피해가 갈까봐서다. 그렇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제대로 분노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눈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가 안전지대에서 분노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아무도 불의에 맞서지 않으려고 하지 않으니 세상은 점점 분노할 일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약자는 무시당하고 짓밟혀도 괜찮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 길은 분노하고 나서는 것이다.
스테판 에셀, 93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 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한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 를.
21세기를 만들어갈 당신들에게 우리는 애정을 다해 말한다. (39p)
원래의 책은 39p로 끝맺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이 책에는 편집자 후기와 저자와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저자가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 '분노할 일에 분노하는 것'과 '기쁨'이라고 말한 것이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지 않는 것'이 세상을 편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여겼던 것은 정말이지, 비겁했다. 이 시대의 희망은 불의에 맞설 줄 아는 젊은이들의 분노와 저항에 있다.
청년으로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다면 분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