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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쿠데타 - 글로벌 기업 제국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클레어 프로보스트 외 지음, 윤종은 옮김 / 소소의책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밝혀낸 문제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아니라는 점이다.
엘리트 계층은 이미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투쟁의 최전선에 선 평범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기업에 맞서 싸우는 동안 이 이야기의 전문가가 되었지만, 언론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20p)
《소리 없는 쿠데타》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거대 기업 권력의 실상을 밝혀낸 탐사 보고서라고 하네요.
우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 구조가 어떤 식으로 작동되고 있는지 알지 못했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거죠. 근데 놀랍게도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전혀 낯설지 않을뿐더러 기시감을 느끼게 만드는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았네요. 저자들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두 사람이 만났던 개빈 맥페이든에 대해 소개하고 있어요. 그는 미국의 탐사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였고,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캠퍼스의 탐사보도센터(Centre for Investigative Journalism, CIJ ) 설립자이며, 탐사보도에 대해 "불의와 무능, 잔혹한 행위와 비참한 현실을 향한 기자의 도덕적 분노가 필요하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권력자의 애완견 노릇을 하며 연줄을 만들고 저녁 만찬을 즐기는 데 관심이 있다. 힘없는 사람들에게 열렬히 목소리를 주고 싶어 하며 위선과 착취에 맞서 싸우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 대중이 권력층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빼앗기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우려된다." (15p) 라면서 동료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고, 내부 고발자와 권력의 횡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기자들의 든든한 친구였다고 하네요. 저자 두 사람은 원하는 주제로 공익을 위한 탐사보도를 할 수 있도록 2년간 급여를 제공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지원한 CIJ 회원 면접 자리에서 개빈을 만났고 회원으로 선발되어 함께 일하게 되었대요. 2014년 당시 클레어 프로보스트는 영국의 유력 신문 <가디언>에서 데이터 저널리스트로서 국제 원조와 개발자금 등을 다루면서 대기업이 어떻게 관련 예산으로 이윤을 챙기는지 조사하고 있었고, 매트 켄나드는 <파이낸셜 타임스> 전속 기자로서 국제개발기구를 둘러싼 논쟁을 추적하며 민간기업에 투자하는 세계은행의 하부기관을 다음 목표로 정했던 터라 의기투합, 수년간 여러 대륙을 넘나드는 협업을 했던 거죠.
솔직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책 제목이 주는 타격감이 컸는데, 왜 쿠데타라고 표현했는지를 알고 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네요. 거대 기업들의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게 판을 깔아준 것은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ICSI 라는 것, 세계은행이 만든 법원인 ICSID는 엘리트 계층이 만든 산업이 ISDS(투자협정의 당사국 간에 발생하는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가 통제를 벗어나도록 이끄는 역할을 했고, 이제는 민주주의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기업 사법, 기업 복지, 기업 영토, 기업 군대로 나누어 자세히 알려주고 있어요.
"세계은행은 오래전부터 바호 아구안에서 사엽을 벌였으며, 1990년대에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자을 만들기 위해 지역의 소농들을 몰아낸다고 비판받는 토지개발계획을 지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2015년, IFC(국제금융공사, 세계은행의 산하기관)는 인도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지원해 지역주민들의 생계를 파괴했다는 혐의로 소송을 당했다. 당시 IFC는 1945년에 제정된 국제기구면책법에 따라 '절대적 면책특권'을 주장했다.
... 이 소송은 '의도적으로 살인에 자금을 지원하며 이득을 챙긴' 세계은행의 기관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목격한 것을 증언한 농민과 주민들의 용기, 그리고 이들을 지원한 변호사들의 끈기와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들의 투쟁은 몇 년이 지난 뒤에도 끝나지 않았다. 어스라이츠가 콜롬비아와 온두라스의 지역민들을 도와 치키타와 IFC에 제기한 소송은 2021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후 팔레스타인과 이탈리아 등지에서 안보의 민영화를 조사하면서 폭력의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문제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297-300p) 어딘지 현재 국내 상황과 닮지 않았나요. 최근 헌재 결정문에서 국회의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가결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는데, 가해자는 여전히 법의 특혜를 받으며 버젓이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 용감하게 맞서 싸운 시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네요. 저자들은 에필로그에서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조사할수록 또 다른 분야에 실망했다. 바로 우리가 몸담은 언론계였다. 민주주의는 대중이 자신의 운명을 직접 결정하며, 세상을 이해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언론이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까? ... 개빈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저널리즘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부족함을 모르는 사람들을 괴롭혀야 한다고 믿었다. ... 개빈은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진실을 말할 책임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추악한 진실'에 매달렸다. 이 책은 추악한 진실을 다루지만, 미래는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모든 것은 우리 손에 달렸다." (351-356p) 저자들은 거대 기업들의 그림자 권력이 얼마나 추악한 일들을 벌여왔는지 언론인으로서 고발하고 있어요.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어요. 쿠데타를 무력화시킨 것은 실시간으로 모든 상황을 보도했던 사람들과 현장에서 저항하며 싸웠던 사람들, 그리고 광장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자 모였던 사람들이라는 것, 이제 희망의 불씨를 키워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이 되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