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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평점 :
큰 맘 먹고 읽게 된 《돈키호테》라고 말하면 거짓말.
사실 첫 장을 펼치기가 어려운 것이지,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눈과 손이 이끄는대로~
따지고 보면 이 방대한 소설을 구상하고 써내려간 작가도 있는데, 그 소설을 읽는 게 뭐 그리 어렵겠어요.
《돈키호테》 2권은 세르반테스가 1권을 출간한 지 10년이 지난 1615년 속편으로 발표한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 의 완역본이에요.
1권인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 (1605년)에서 돈키호테는 이달고였으나 기사의 삶을 살았고, 기사가 되었기 때문에 2권 속편에서는 기사라는 호칭이 붙은 거예요. 독자에게 드리는 서문을 보면, 세르반테스의 재치가 느껴지네요.
"이거야 참! 고명하시거나 평범하신 독자여, 이 서문 속에 『돈키호테 제2편』, 그러니까 토르데시야스에서 잉태되어 타라고나에서 태어났다고들 하는 그 작품의 작가에 대한 복수나 싸움이나 비난을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지금 이 서문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저는 그런 만족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 가난한 자도 명예를 가질 수 있습니다만, 부도덕한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가난이 고귀함을 흐리게 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어둡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불편함이 있고 궁핍하더라도 덕은 그 틈바구니로 얼마간 스스로의 빛을 내는 법이니, 고귀한 정신을 갖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따라서 보호를 받게 되지요. 이 작품은 확장된 돈키호테, 그리고 마침내 죽어 무덤에 묻히는 돈키호테를 당신께 드리고 있다는 겁니다. 무덤에 묻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에 대한 새로운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것으로 충분합니다. 또한 이 기발한 미친 짓거리들에 대해 소식을 알리는 것은 정직한 한 사람만으로 충분하지요. 새로운 이 미친 짓들에 개입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너무 많으면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 법이고, 아무리 나쁜 것이라도 부족하면 약간은 소중하게 여겨지는 법이니까요. 잊고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페르실레스』가 이제 끝나 가고 있으니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라 갈라테아』 후편도 곧 나올 겁니다." (33-39p) 1권이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사기꾼들이 속편을 멋대로 출간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에 세르반테스는 정식으로 속편을 내면서 종지부를 찍은 거예요. 재미있는 건 레모스 백작에게 드리는 헌사에서 돈키호테 속편을 간절히 기다리는 독자들 중에 중국 황제가 있다면서, 사신을 통해 중국 황제가 스페인어를 가르칠 학교를 세워 거기서 읽을 책은 돈키호테 이야기이고, 총장은 세르반테스가 맡아 달라고 했다는 거예요. 겸손과 오만을 동시에 부릴 수 있는 것도 능력인 것 같아요. 그의 삶이 조금 더 길었더라면 어땠을까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난』 서문에서, "내 목숨이 끝나 가고 있다. 내 맥박이 달려온 기록을 보면 아무리 늦어도 이번 일요일이면 끝날 것이고, 나는 나의 삶의 여정을 마치게 될 것이다." 라면서, 독자들에게 "안녕 은혜여, 안녕 우아함이여, 안녕 나의 즐거운 친구들이여! 나는 죽어 가니 곧 다른 세상에서 다시 기쁘게 만나기를 바라오!" (908p)라는 글을 남겼는데, 일요일보다 이른 금요일(1616년 4월 22일)에 세상을 떠났네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던 것 같아요.. "세상만사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고 그 시작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늘 쇠락해 가니, 특히나 인간의 목숨이 그러하다." (878p) 라면서 돈키호테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는 속편, 2권의 마지막은 '안녕'이라는 뜻의 라틴어 'Vale'로 끝맺고 있어요. 착한 돈키호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돈키호테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삶을 산다면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기꺼이 안녕, 작별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건 축복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