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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제겐 생소한 작가지만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을 휩쓸면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라고 하네요. 특히 이번 작품은 2023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작이라는 점, 소설의 배경이 파시즘이 득세하던 이탈리아라는 점에서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시기가 절묘했던 것 같아요. 왠지 지금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닌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녀를 지키다》는 이탈리아의 사크라 수도원 지하에 감금된 그녀에 관한 이야기예요.
처음에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대리석의 어둠에 갇혀 기다리고 있는 그녀, 40년 전부터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그녀" (9p)라는 표현이 호기심을 자극했어요. 그녀의 정체가 피에타 석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면 안 된다는 사람들의 설이 뭔가 더 은밀하게 느껴졌네요. 소설 속 주인공은 그 아름다운 조각상이 아니라 천재적인 조각가와 그가 사랑한 여인이에요. 먼 나라에서 벌어진 낯선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음을 일렁이게 만드는지, 서서히 조금씩 베일을 벗겨가는 과정이 신기하고 놀라웠네요.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만약 전부 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다르게 선택할 수도 있겠지.
네가 단 한 번도 틀리는 법 없이 처음부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넌 신인 거야." (422p)
똑같은 말이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귀한 약이 될 수도, 끔찍한 독이 될 수도 있네요. 인간이기에 실수는 피할 수 없는 법이지만 때로는 한 번의 실수가 남은 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태풍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삶의 비극이네요.
"그 누구도 나에 대해 아무 짓도 할 수 없어. 난 모든 걸 겪었어.
누가 나를 가장 아프게 한 줄 알아? 나야." (595p)
괴롭힌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 때문이라고 탓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인 것 같아요. 스스로 고통을 줬다면 치유할 사람도 자신인 것을...
"잘 들어라. 조각한다는 건 아주 간단한 거야. 우리 모두, 너와 나 그리고 이 도시 그리고 나라 전체와 관련된 이야기, 훼손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축소할 수 없는 그 이야기에 가닿을 때까지 켜켜이 덮인 사소한 이야기나 일화들을,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 내는 거란다. 그 이야기에 가닿은 바로 그 순간 돌을 쪼는 일을 멈춰야만 해. 이해하겠니?" (613p)
인간에게 자유와 사랑이란, 존재의 이유이자 권리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 제목에서 '그녀'는 누구이며, 왜 '지켜야'하는지, 과연 이 문장에 숨겨진 깊은 뜻은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사랑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로 즐길 수도 있지만 비극적인 운명과 투쟁에 초점을 둔다면 의외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