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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평점 :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왠지 아날로그 세대 감성이 느껴졌어요.
역시나 에쿠니 가오리 작가님의 소설은 촉촉하게 감성을 적시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굉장한 사건 없이도 충분히 몰입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평범했던 일상이 특별한 무대 위로 올라와 숨겨져 있던 것들을 발견하게 만드네요. 과연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기대해도 좋아요.
《셔닐 손수건과 속살 노란 멜론》는 에쿠리 가오리 작가님의 신작 장편소설이에요. 표지부터 은은하게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어요. 속살 노란 멜론은 뭔지 알겠는데 셔닐 손수건은 뭘까라는 궁금증! 원단은 순면과 폴리에스테르, 린넨, 실크 정도는 들어봤지만 셔닐 원단은 처음이거든요. 특히나 손수건은 면 소재 외에는 사용한 적이 없어서 아예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소설의 주인공은 쓰리 걸스, 대학 동창생인 리에, 다미코, 사키예요. 대학 졸업 후 줄곧 해외에서 살았던 리에가 모든 걸 정리하고 귀국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네요. 활달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리에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다미코 집에 임시로 머물게 되면서, 간간이 연락만 주고받던 세 친구가 드디어 모이게 됐어요.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으로 돌싱녀가 된 리에, 한 번의 연애 후 쭉 독신으로 지내는 다미코, 두 아들을 둔 유부녀 사키까지 성격도 다르고, 30년간 살아온 궤적도 다르지만 여전히 똑같은 점이 있네요. 그게 뭐냐면, 추억을 공유한다는 거예요.
친구 사이, 친구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다양한 인간 관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좋은 듯 나쁜, 편한 듯 불편한, 가까운 듯 먼... 뭔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느꼈고, 그들의 상황을 공감할 수 있었네요. 아마 다들 쓰리 걸스와 비슷한 절친들이 있을 텐데,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지?"라고 물으면 "몰라."라고 답할 걸요. 서로 인정하는 절친 사이,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행운이에요. 아주 가끔 연락하고, 오랜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봤던 것처럼 편안하고 좋은 친구들은 처음 만났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따스한 우정에 관한 이야기냐고요? 글쎄요, 단순히 우정 이야기였다면 너무 싱거워서 실망했을 거예요. 쓰리 걸스가 '셔닐'의 정체를 몰라서 상상과 동경을 부추기는 특별한 단어로 사용했듯이, 우리 모두에게 인간 관계란 셔닐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삶과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네요. 인생은 멜론처럼, 직접 만져보고 쪼개어 맛을 봐야 알 수 있는 법이죠.
"···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기억하리만큼 인상적이었던 거잖아." (188p)
"나, 캔털루프 멜론은 똑똑히 기억하는데, 참외처럼 표면이 매끈할 거라고 우리 셋의 의견이 일치했어. 참외처럼 표면이 매끈할 거라고 우리 셋의 의견이 일치했어. 단순하게 생겼고, 기품 있는 맛일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사키와 다미코는 과육은 초록색일 것 같다고 했고, 나는 노란색일 거라고 했어. 왜 살이 노란 수박도 있잖아? 그래서, 속살이 노란 멜론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지. 초록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고. 내가 왜 좀 비범한 데가 있잖아. (···) 그런데 그건 속살이 빨간 머스크 멜론이었어. 사서 먹어 봤는데, 맛이 짙더라고. 띵했지. 매끈한 표면도 아니고, 속살의 색깔도 그렇고, 기품 있는 맛과도 정반대였어."
"캔털루프 멜론도 그렇고 셔닐도 그렇고. 우리, 참 오해가 많았던 인생이네." (203-20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