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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학 기행 - 방민호 교수와 함께 걷는 문학 도시 서울, 개정증보판
방민호 지음 / 북다 / 2024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짚어 보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암울했던 비극들이 먼저 떠올라서, 미처 눈여겨보지 못했던 분야가 있어요. 그건 문학의 세계, 칼보다 강한 펜이 존재하기에 고통과 슬픔을 녹여내어 희망을 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시대를 담아낸 작품을 통해 우리는 배우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 근현대 문학에 대해서는 수업에서 배운 것이 전부인지라 작가와 작품을 아는 정도였는데, 서울이라는 공간을 문학인들이 살았던 역사의 현장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네요.
《서울 문학 기행》은 우리 문학의 사연이 깃든 서울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작가 12인과 이들 작품과 관련된 서울 곳곳에 숨겨진 문학의 흔적을 소개하고 있어요. '서울 문학 기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작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서 문학뿐 아니라 역사를 배우게 되네요. 이상의 경성모더니즘을 대표하는 미쓰코시백화점 터(신세계백화점)와 이상의 집, 윤동주의 누상동 하숙집, 현진건의 집터와 창의문(자하문) 너머 부암동, 박태원의 소설 구보씨가 거닐던 종로, 광화문, 서울역, 청계천, 박인환의 동방살롱, 김수영의 구수영 옛 집터, 이광수의 홍지동 별장, 나도향의 생가 터, 임화의 종로 네거리(종로1가 사거리)와 종로6가, 손창섭의 흑석동, 이호철의 종로3가, 박완서의 소설 나목의 주인공이 거닐던 명동, 을지로입구까지 문학 속에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서울을 거닐며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의 심정으로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이미 알고 있는 작가들이지만 다시금 진면모를 발견한 분은 작가 빙허 현진건이에요. 일장기 말살 사건은 진정한 언론인 기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는 다음의 글을 통해 또렷이 드러나네요. "무영탑, 이 소설은 시대를 신라에 잡았으니 소위 역사소설이라 하겠으나, 만일 독자 여러분이 이 소설에서 역사적 사실을 찾으신다면 실망하시리라. 이 소설의 골자는 몇 줄의 전설에서 출발하였을 뿐이요, 역사적 사실이란 도모지 없다 하여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기록적 설화적 역사상 사실의 나열만이 역사소설이라 할진대 이 소설은 물론 그 부류에 속하지 않을 줄 안다. 어떤 한 시대, 그 시대의 색채와 정조를 작자로서 어떻게 재현시키느냐, 작자의 의도하는 주제를 그 시대를 통하여 어떻게 살리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줄 믿는다." (113-114p) 한때 민족주의 지도자를 자처했던 최남선과 이광수가 변절하여 친일파로서 호위호식할 때, 현진건은 그들의 배신과 변절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끝까지 옳은 길을 선택했어요. 이 귀한 작가를 기리는 문학관은 아직 없고, 동대문구에 세워진 제기동감초마을 현진건기념도서관이 그를 기리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하네요. 친일파 청산의 실패로 여전히 묻혀 있는 역사적 의인들을 발굴하고 널리 알리며, 기리는 작업이 필요하네요. 이광수의 변절과 친일 협력 행위를 대표하는 홍지도 별장, 그가 아무리 근대 한국 문학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는 없어요. 사죄하지 않는 자를 강력하게 단죄하지 않으면 청산할 수 없고, 뼈아픈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역사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반복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 기억해야만 반성하고 바꿔나갈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