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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 1
모옌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맵고 아리다.
두 권의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그만 덮을 수도 없었다.
이 책은 <화수분>이나 <운수 좋은 날>을 연상케 한다.
벌써 제목부터 티엔탕은 ‘천당마을’이다. 바로 그 곳에서 끔찍하고 처참한 일들이 벌어졌다. 사건의 발단은 티엔탕 (天堂村) 현의 부패한 관료들 때문이다. 티엔탕 현장(顯長)의 이름은 종웨이민(仲爲民) – 국민을 위한다 –인데 자신의 사리사욕만 챙겼다.
척박한 땅에 오로지 마늘이 농가 소득인 이들에게 현 정부는 일괄 수매를 약속했다가 저장 창고가 찼다는 이유로 수매를 거부했다. 또 가는 곳마다 각종 세금을 강탈했다. 돈이 없는 농민들은 금쪽 같은 마늘을 빼앗기고 말았다.
시기적으로 문화대혁명 이후의 혼란기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작가 모옌은 지방 신문에 실린 마늘종 사건을 보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줄거리보다는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돋보였다. 어쩌면 인간의 고뇌가 처절하게 묘사되어 읽는 이를 괴롭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실한 가장이자 농민인 까오양은 억울하게 마늘종 사건과 연루되어 감옥살이를 한다.
젊은 청년 까오마와 넷째 숙부의 딸 진쥐는 이루어질 수 없는 불행한 사랑의 주인공들이다.
넷째 숙부네 가족들은 그 시절 중국 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다.
첫째 아들은 마흔 다 된 총각으로 절름발이고, 둘째 아들은 부모를 우습게 여기고 제 살 궁리만 하는 파렴치다. 넷째 숙부와 숙모는 아들들에게 버림받는다.
농민을 가장 잘 보호하고 이끌어야 할 정부 나리들은 그들을 배신하고 개 취급했으며 마지막까지 짓밟았다.
막내딸 진쥐는 큰 오빠의 혼인을 위해 사돈집에 시집을 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녀는 까오마를 사랑했고 자신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솔직히 뭔가 희망적인 결말을 기대했던 내게는 심한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결국 마늘종 사건은 농민에게는 고통스런 상처만을 남겼다. 후에 부패한 관료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미 티엔탕 마을 사람들의 삶과 희망은 송두리째 뽑혔다. 그만큼 개혁, 개방의 격변기 속에 힘없는 농민들이 겪은 고통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 그 당시만 해도 저는 굳은 믿음과 희망을 지니고 있었어요. 모든 희망을 마늘종에 걸고 있었죠. 심지어 목숨마저 마늘종에 걸고 있었지요. 지금은 모든 것이 끝나버렸어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니까요. 내 저울은 계량소의 그 개 같은 자식이 걷어가 버렸어요. 그 계량소 직원이 하는 말이 제 저울이 불합격이라는 겁니다. 제가 두어 마디 항의를 하자 그놈은 제 저울대를 발로 밟아 분질러버렸어요. 거기다 그놈은 저에게 십 위안의 벌금까지 물렸죠….저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수레 위로 뛰어올라가 정부를 비방하는 구호를 외치게 된 것이죠. 첫 번째 구호는 ‘탐관오리를 쫓아내자’였고, 두 번째 구호는 ‘관료주의를 몰아내자’였습니다. 당신들이 저한테 어떤 죄명을 뒤집어씌우고 싶다면 당신들 마음대로 하십시오. 나는 개의치 않겠습니다……나는 당신들처럼 백성들을 해치는 염치없는 관리들은 증오할 뿐입니다! 나는 당신들을 증오하오!”
마늘종 사건은 중국에서 이십 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세월을 뛰어넘는 고통이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근래 우리 나라의 한미 FTA 협상으로 인한 농민들의 거센 항의가 떠올랐다. 사실 많은 국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것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힘없는 나라의 힘없는 농민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죽는 순간까지 풍자적인 노래로 저항했던 맹인 장코우는 티엔탕 마을의 마늘종 노래를 남기고 떠났다. 눈 먼 장코우가 중국 사회의 부조리를 가장 잘 봤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기울어진 비탈길에서 얼어 죽었다.
살아 남은 까오양과 그의 가족들, 딸은 장님이고 아들은 발가락이 12개였다.
현실은 너무나도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