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줘
이치조 미사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세상에 쉬운 이별은 없는 것 같아요.

더군다나 마음은 여전히 간절한데 다시 볼 수 없다면 참기 힘든 고통일 거예요. 어떻게 해야 그 아픔과 슬픔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이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줘》는 이치조 미사키 작가님의 소설이에요.

주인공 히구치 유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에요. 월요일 아침, 주말을 끼고 나흘 만에 등교했더니 창가 맨 뒷자리, 히구치 옆자리에 모르는 여학생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근데 뭔가 이상한 것은 반 아이들이 그 여학생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히구치가 볼 때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밝아 보여서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반 아이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사람 대하듯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있어요. 여학생의 이름은 아리마 호노카, 지난 주에 전학왔다는데 히구치에게만 말을 걸더니 선뜻 친구가 되자는 부탁을 하는 거예요. 평소 외톨이였던 히구치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아리마의 정체는 뭘까요. 의심이 앞서지만 좋은 마음은 감출 수 없네요. 한편 히구치의 어릴 적 친구인 미나세 린의 시선에서 숨겨진 속마음을 들려주네요. 과연 누구와의 이별 때문에 힘들어 하는 걸까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진짜 이별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약간의 의심과 추리를 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흥미를 더해주네요. '설마... 아니겠지?'라고 상상했는데, 반전의 결말을 선사해주네요. 고등학교 2학년, 열일곱 내지 열여덟 살의 마음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예전에 어떤 시에서 살아가는 건 상처받는 일이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살아 있는 한 상처받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은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나는 아마도 상처받는 데 저항하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상처받고 싶지 않을뿐더러 고통에서는 눈을 돌리고 싶다. 그건 어쩌면 진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연히 상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 나는 거기서 도망쳤다. 살아간다는 건 슬픈 일이다. 상처와 상실을 피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살아 있는 한, 살아가고자 마음먹었다. 

잃고 상처받는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얻을 수 있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287-28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질이의 안데스 일기 -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며 쓰다
오주섭 지음 / 소소의책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간 비현실적인 장소들이 있어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세계 불가사의와 관련된 곳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페루에 있는 잉카 문명의 고대 요새 도시 마추 픽추예요.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는데, 과감하게 직접 여행길에 나선 이가 있었네요.

《모질이의 안데스 일기》는 스스로 모질이라며 겸손을 떠는 오주섭님의 여행 에세이예요. 저자는 밥벌이의 굴레어서 벗어난 후로 정신적 모자람, 마음의 어딘가가 비어 있는 부분을 철학, 문학, 역사, 과학에 관한 책을 읽으며 채우다가 책과 작가들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서 세계 각지로 떠나게 되었대요. 그래서인지 이 책은 남미 여행기인 동시에 고전 문학과 함께 하는 이야기였어요. 여행 일정은 첫 장에 지도로 표시되어 있는데, 페루 리마에서 출발하여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리우까지 남미 대륙을 거의 밟아보는 굉장한 여정이네요.

많은 이들이 꿈꾸는 마추픽추에서 저자는 네루다의 시를 떠올렸다고 해요. "너는 미완의 인간이 만든 부서진 조각, 빈 독수리의 부서진 조각. 오늘은 이 거리 저 거리로, 흔적을 좇아, 죽은 가을의 이파리를 찾아 영혼을 짓이기며 무덤까지 가는 것인가? 가여운 손, 발, 그리고 가여운 삶이여······." _ 네루다의 시 「마추픽추 산정에서」 중에서 (91p)

잉카인들은 티티카카 호 근처에 돌무덤을 쌓고, 그 돌무덤에 경배를 드렸는데 지금도 시장에서 파차마마에게 제물로 바칠 동물의 사체를 판다고 해요. 파차마마는 하늘과 땅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스스로 관장하는 신 중의 신이라고 해요. 해발고도 3,810미터에 있는 티티카카 호는 볼리비아와 페루의 국경에 위치하는데, 사진을 보니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의 해군 군함이 정박해 있고, 관광객을 위한 모터보트를 탔더니 갈대가 무성한 섬에 내려주더래요. 태양의 신을 모시는 섬, 파차마마의 흔적과는 거리가 멀지만 파란 호수와 맞닿은 하늘이 시릴 만큼 파란 것이 인상적이에요. 저자는 라파스의 밤을 비몽사몽 보내다가 엄니의 얼굴이 보았다고 해요. 멀리 저 세상으로 떠난 엄니를 만났으니 파차마마의 힘이었을까요. 어디를 가든, 중요한 건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인 것 같아요. 한 번 스쳐가도 깊이 기억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오래 머물러도 감흥 없는 곳이 있으니 말이에요. 세상 짐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배낭을 꾸려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세상의 모든 물은 악마의 목구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이구아수 강은 사진으로 봐도 압도적인 풍경이네요. 자연 앞에선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네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풍경을 품고 있는 남미,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야 하는 그곳으로 떠나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타인의 수명
루하서 지음 / 델피노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원불멸의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쉽게 상상할 수 있지만 인간이 죽지 않는다는 설정은 아예 상상하기가 어려워요.  어쩐지 '죽지 않는 인간'은 '인간'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현대 과학 기술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인간을 꿈꾸며 발전하고 있네요. '만약 ... 라면' 이라는 가정이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됐네요.

《타인의 수명》은 루하서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소설은 미래의 어느 날, 수명측정기를 전 국민에게 배부하여 누구나 자신의 수명이 언제까지인지 쉽게 알 수 있고, 자신의 수명을 단 한 사람에게만 나눠줄 수 있는 시대를 그리고 있어요. 갑자기 거짓말처럼 수명측정기로 본인의 수명을 확인하고, 타인에게 수명을 나눠줄 수 있다면 좋을까요, 아니면 나쁠까요. 사실 이 소설을 읽기 전부터 마음은 정해져 있었고, 다 읽고 나니 변함은 없어요. 하지만 수명 나눔의 시대가 온다면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이야기로 만나니 흥미로웠어요.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나약하고 간사하더라." (22p) 라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 같아요. 단순히 오래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전부였다면 애초에 이 소설은 완성되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건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요. 사랑한다면 기꺼이 내 수명을 나눠줄 것 같지만, 수명을 준다고 해서 늘 아름다운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네요. 문득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네요. 수명은 우리가 살아있는 시간의 '양'인데 그걸 안다고 해서 삶을 더 값지게 살고, 반대로 모른다고 해서 엉망이 되는 건 아닐 거예요. 삶을 대하는 태도는 각자에게 달린 문제인데, 여기에 수명 측정이라는 변수로 인해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을 엿볼 수 있어요.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것이 만약 나였다고 해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예기치 않은 변수가 아니라 진심이 아닐까 싶어요. 보이지 않는 그 마음,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겨진 세계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들의 비밀스러운 삶
조지 맥개빈 지음, 이한음 옮김 / 알레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존재는 무엇일까요.

심적으로는 인간일 것 같지만 곤충이라고 해요. 과학자들이 꽤 오랫동안 지구에서 이 여섯 개 다리를 가진 곤충들을 연구해왔는데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했고, 어림잡아도 엄청난 개체수라는 걸 밝혀냈거든요. 그러니 곤충을 모르고는 자연 생태계를 안다고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이 작은 동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알려주는 책이 나왔어요.

《숨겨진 세계》는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곤충학자, 탐험가인 조지 맥개빈의 책이에요.

저자는 생물학자이며 특히 곤충에 푹 빠져 있는데, 지금이 우리 모두가 곤충의 운명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점임을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지구의 생태적 균형 전체는 다수의 곤충에 철저히 의존해왔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이렇게 유지되어 왔는데 점점 너무나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어요. 곤충이 아주 희귀해지거나 멸정 위기에 처한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을 만들어온 곤충들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우리도 사라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에요. 곤충 없는 세계에서는 우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곤충을 좋아하지 않는 건 자유지만 곤충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은 자멸이라는 걸 알아야 해요. 그래서 이 책에서는 곤충의 놀라운 다양성과 적응력이 어떻게 지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는지, 곤충이 조성하고 유지시켜온 지구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곤충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유용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활용하는 분야가 과학이며, 유전학과 생리학, 행동학, 생태학,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상당량이 곤충의 삶을 연구하여 밝혀낸 거예요. 생명의학의 혁신이라 할 만한 DNA 구조는 초파리 덕분에 알아낼 수 있었고, 사람의 질병 연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네요. 현 시점에서 위기는 지구의 모든 생물과 그 유전자 전체를 가리키는 생물 다양성이 줄어들고 있고, 이 순간에도 우려할 속도로 계속 줄고 있는데, 비교적 적응력이 뛰어난 곤충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에요. 급감 요인은 자연 서식지의 상실과 파괴인데 그 주범이 바로 우리들인 거예요.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연 세계를 잘 이해하고 돌보는 거예요. 그러려면 곤충에 관해서도 깊은 이해가 필요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곤충들의 삶을 통해 위대한 자연의 세계를 배우는 시간이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정우철의 다시 만난 미술 나의 두 번째 교과서
EBS 제작팀 기획, 정우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예술 세계의 문턱이 높다고만 여겼는데 최근 유능한 도슨트들 덕분에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법을 배웠네요.  《나의 두 번째 교과서 X 정우철의 다시 만난 미술》은 특별한 미술 수업 같은 책이에요. 저자는 우리에게 스물한 명의 화가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인생과 작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미술을 공부하고 화가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삶과 작품을 통해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위로와 감동을 받기 위해서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해요. 그것이 그림이라는 예술이 지닌 힘이라고 생각해요. 이 책에서는 이론적인 설명 대신 화가의 인생 이야기 속에 작품 해설이 더해져서, 아주 특별한 인생 수업을 받는 느낌이 드네요.

"이중섭과 모딜리아니. 그들에게 사랑은 단순한 감정 그 이상이었다. 온갖 역경과 가난 속에서도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뮤즈와의 소통이었으며, 삶을 견디게 해준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예술적 성과를 남겼다. 예술과 사랑은 분리될 수 없고, 고통과 창조는 다른 것이 아니다. 과연 우리도 그들처럼 고통을 견디면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해낼 수 있을까? 혹은 우리도 그들처럼 가볍지 않은, 어쩌면 전 인생을 건 특별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49p)

예술적인 재능을 타고나지 않아도,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랑해봤고, 사랑하고 있다면 마음 깊숙히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 테니 말이에요. 그 사랑의 대상이 화가처럼 뮤즈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도 있는데 근본적으로 예술가들은 이 세상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위대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건 뜨거운 심장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안타까운 인생은 있어요. 예술가의 삶이 늘 불행한 건 아니지만 특유의 섬세함이 그들을 더 고통스럽게 만든 것 같아서, 때로는 작품이 아름다울수록 더 슬프고 아프게 느껴지네요. 과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절규>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뭉크는 여든 살 나이에 사망하기 전에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해요. "나는 예술로 삶과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내 그림들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36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