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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질이의 안데스 일기 - 보고 듣고 읽고, 생각하며 쓰다
오주섭 지음 / 소소의책 / 2024년 12월
평점 :
약간 비현실적인 장소들이 있어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세계 불가사의와 관련된 곳들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페루에 있는 잉카 문명의 고대 요새 도시 마추 픽추예요. 언젠가 가보고 싶다는 마음만 품고 있었는데, 과감하게 직접 여행길에 나선 이가 있었네요.
《모질이의 안데스 일기》는 스스로 모질이라며 겸손을 떠는 오주섭님의 여행 에세이예요. 저자는 밥벌이의 굴레어서 벗어난 후로 정신적 모자람, 마음의 어딘가가 비어 있는 부분을 철학, 문학, 역사, 과학에 관한 책을 읽으며 채우다가 책과 작가들의 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서 세계 각지로 떠나게 되었대요. 그래서인지 이 책은 남미 여행기인 동시에 고전 문학과 함께 하는 이야기였어요. 여행 일정은 첫 장에 지도로 표시되어 있는데, 페루 리마에서 출발하여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리우까지 남미 대륙을 거의 밟아보는 굉장한 여정이네요.
많은 이들이 꿈꾸는 마추픽추에서 저자는 네루다의 시를 떠올렸다고 해요. "너는 미완의 인간이 만든 부서진 조각, 빈 독수리의 부서진 조각. 오늘은 이 거리 저 거리로, 흔적을 좇아, 죽은 가을의 이파리를 찾아 영혼을 짓이기며 무덤까지 가는 것인가? 가여운 손, 발, 그리고 가여운 삶이여······." _ 네루다의 시 「마추픽추 산정에서」 중에서 (91p)
잉카인들은 티티카카 호 근처에 돌무덤을 쌓고, 그 돌무덤에 경배를 드렸는데 지금도 시장에서 파차마마에게 제물로 바칠 동물의 사체를 판다고 해요. 파차마마는 하늘과 땅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스스로 관장하는 신 중의 신이라고 해요. 해발고도 3,810미터에 있는 티티카카 호는 볼리비아와 페루의 국경에 위치하는데, 사진을 보니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의 해군 군함이 정박해 있고, 관광객을 위한 모터보트를 탔더니 갈대가 무성한 섬에 내려주더래요. 태양의 신을 모시는 섬, 파차마마의 흔적과는 거리가 멀지만 파란 호수와 맞닿은 하늘이 시릴 만큼 파란 것이 인상적이에요. 저자는 라파스의 밤을 비몽사몽 보내다가 엄니의 얼굴이 보았다고 해요. 멀리 저 세상으로 떠난 엄니를 만났으니 파차마마의 힘이었을까요. 어디를 가든, 중요한 건 무엇을 보고 느끼느냐인 것 같아요. 한 번 스쳐가도 깊이 기억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오래 머물러도 감흥 없는 곳이 있으니 말이에요. 세상 짐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배낭을 꾸려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세상의 모든 물은 악마의 목구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이구아수 강은 사진으로 봐도 압도적인 풍경이네요. 자연 앞에선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네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풍경을 품고 있는 남미,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야 하는 그곳으로 떠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