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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 ㅣ 열다
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
평점 :
미치광이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나 미치광이 예술가라면... 우리는 이미 그의 삶과 예술 작품에 빠져 있네요.
"미치거나 병들어도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화가다." _ 1889년 5월 9일 (168p)
《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는 고흐의 편지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이에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절망적인 순간에도 굴하지 않는 희망이 담겨 있어요. 가난한 화가로 사느라 늘 쪼들렸던 고흐에게 금전적인 도움과 정서적인 안정을 줬던 동생 테오가 없었더라면,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고흐의 편지와 그림을 볼 수 없었을 거예요.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불안해하는 청춘들의 마음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다만 흔들리고 방황하면서도 예술을 향한 열정이 그를 굳세게 붙잡고 있기에, 그 마음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범접할 수 없는 천재, 위대한 인물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으로서 영혼의 그림을 그렸기에 특별한 거예요. 고흐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숨쉬며 살아내는 일이었던 거죠. 어떻게 하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원하는 색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지... 그에게 있어서 그림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자 살아가는 이유였던 거예요. 고흐는 자신의 마음속에 꺼뜨리지 말고 되살려야 하는 불길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불길이 누군가에겐 열정이고 희망이며 사랑인 거예요. 또한 그 불길은 살아있는 모두의 가슴속에 자리한 씨앗과 같아요. 싹을 틔우려면 땅에 뿌려져 양분을 흡수하고 단단한 땅을 뚫고 나와야 해요. 한 알의 씨앗이 자라나 싱싱한 밀 이삭이 되듯이 우리 인생도 고난과 역경을 거쳐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어요. "사는 것, 일하는 것, 사랑하는 것은 사실은 하나이고 같은 것" (222p) 이라는 고흐의 말이 제게는 삶을 사랑하라는 얘기로 들렸어요. 우리에겐 사랑하며 살아야 할 '오늘'이 있으니까요.
"내가 자신감과 평온함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잘 그리는 것이라고 스스로 되새긴다.
화가는 색뿐만 아니라, 희생과 극기와 비애로 그림을 그린다."
_ 1888년 7월 29일 (137p)
"불평하지 않고 고통을 견디는 법과 원망하지 않고 아픔을 바라보는 법을 익히려 하면,
어지럼증이 생길 위험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
저세상에서는 아픔이 생기는 진정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는 아픔이 천지를 가득 채워 엄청난 대홍수가 닥친 듯 보이는 때가 이따금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아픔이 얼마나 엄청난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러니 밀밭을 바라보는 것이 낫다. 밀밭 그림이라도 괜찮다."
_ 1889년 7월 2일 (23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