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들
최유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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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 같은데 모르겠고, 모를 것 같은데 아는 것들 있어요.

알쏭달쏭, 그게 삶인 것 같아요. 사는 모습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저마다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각양각색이네요.

《환상들》은 최유수 작가님의 감성 에세이집이네요.

"피아노를 치듯이 지붕 위를 두드리는 몸집이 작은 것의 발걸음 소리.

침대에 누워 그것을 듣는다. 꽤 한참동안.

나는 원래 일단 한 번 침대에 누우면 잘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세상을 듣기만 한다." (15p)

첫 문장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봤어요. 침대에 누워 가만히 세상의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은, 너무 흔한 일상의 모습이라서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어요. 처음엔 누군가를 바라보는 입장이었다면 조금씩 타인에서 나 자신으로 옮겨가고 있어요. 마치 대화를 나누듯이.

"지금 여기 내가 있지만, 내가 없는 세계.

사라질 세계.

'연결'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 진정한 연결이란 서로 간의 긴밀한 무엇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둘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선명해지는 시간과 공간들인지도 모른다." (29p)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없는 세계'와 '연결'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떠오르게 만드네요.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사실 사춘기 이후로 쭉 해왔던 생각이라서 너무 익숙하네요. 어릴 때는 나중에 더 크면 알게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도 풀리지가 않네요. "나라는 환상, 허상인 경계를 꿰뚫어 전체를 인식하고 마음을 깨끗이 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직시할 수 있다." (47p) 라는 저자의 말처럼 본인이 인식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환상이라면 그걸 깨뜨려야만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거예요. 세상 모든 것들이 변화하듯이 우리 자신도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어요. 그러니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사람들이 흘러간다. 사람들은 흘러간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우리는 서로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밀물과 썰물처럼, 일식과 월식처럼,

만나고 헤어지고 떠올리고 잊어버리고, 굽이치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180p)

유독 연말이 되면 잊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고, 안부 전화나 문자를 하게 되네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흘러간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도 지나가고 흘러가고 있었네요. 어느 날 아침에 들려오는 새소리처럼 익숙한 듯 신선하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함께 나의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네요.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이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을 따라 마음을 놓아두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법을 배워야겠어요.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인 것을, 늘 마음에 되새기며 다짐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인센스 스틱이 다 타버릴 때까지, 그 향기가 머무르는 시간 동안만이라도, 조금씩 나아가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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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머더 클럽
로버트 소로굿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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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아줌마 무시하지 말라고요!

집에서 요리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바쁘게 살고 있구만, 개념 없는 사람들은 '집에서 논다'라고 표현하대요.

그러니 나이 든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죽할까요. 왠지 슬슬 불만이 터져나올 거라고 짐작했다면 틀렸네요. '오히려 좋아!'라며 반전의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을 소개할 참이거든요. 일흔일곱 살의 주디스 포츠도 한때는 바쁜 일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템스강 근처 대저택에 혼자 살고 있어요. 외롭겠다고요? 아니죠, 저녁 식사 메뉴가 뭔지, 어디를 나가는지, 돈을 얼마나 쓰는지 묻고 참견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누가 뭐랄 것도 없으니, 자유롭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에요. 남들이 전혀 주목하지 않는,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할머니라는 점을 제대로 잘 활용하고 있어요. 이건 비밀인데, 주디스는 매일 밤, 비가 오든 화창하든 옷을 다 벗고 망토로 몸을 감싼 후 밖으로 나가 템스강으로 풍덩, 신나게 수영을 즐기고 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총성을 듣게 됐고, 지체없이 집으로 달려와 신고를 했어요. 주디스는 창을 통해 스테펀의 집으로 경찰관이 출동한 모습을 봤어요. 경찰이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었는데, 대충 수색하더니 그냥 가버린 거예요. 너무 이상하죠? 분명히 이웃집에 나는 총소리를 들었는데 경찰은 왜 스테펀이 무사한가를 확인하지 않는 걸까요. 답답한 마음에 스테펀의 집 주변과 템스강 부근을 서성이게 되었고 연못 물이 강으로 흘러가는 지점에서 물속에 잠겨 있는 스테펀 던우디를 발견했어요. 그의 이마 한가운데에 작고 검은 구멍이 나 있었어요. 어쩌다 히어로, 아니 그녀는 자신만 몰랐을 뿐 탐정 DNA를 타고난 슈퍼히어로였네요.

《말로 머더 클럽》는 로버트 소로굿의 장편소설이에요. 평화로운 마을 말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그 중심에 주디스가 있어요. 주디스는 이웃에 살고 있는 벡스 부인과 수지를 설득해서 살인범을 추적하게 되는데, 각자 숨겨둔 능력들을 멋지게 발휘하면서 끈끈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무시무시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의외의 인물들 덕분에 유쾌하고 따뜻한 재미를 느꼈어요. 말로 사람들은 절대 짐작도 못할, 슈퍼히어로 삼총사의 활약상이 펼쳐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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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머더 클럽
로버트 소로굿 지음, 김마림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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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멋져요~ 세 여성의 추적,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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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 농경사회의 사냥꾼 - 장애에서 진화적 적응으로 패러다임을 바꾼 현대의 고전 제3판
톰 하트만 지음, 백지선 옮김 / 또다른우주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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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자주 언급되면서 성인 ADHD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네요. 그동안 ADHD는 과잉행동, 충동성, 부주의 증상을 보이는 아동에게 국한된 문제라고 여겼는데 뜬금없이 성인 ADHD 라니, 좀 놀랐어요. 성인 ADHD 인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잦은 지각, 낮은 업무 성취도, 시간 관리의 어려움, 대인관계 및 사회생활에서의 다양한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잦은 실패의 경험들 때문에 자존감 저하로 이어지고 우울증 등 추가적인 정신과적 문제를 겪는데, 우울증 치료를 하다가 뒤늦게 ADHD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실수를 반복하고, 일을 미루거나 마무리를 잘 하지 못하는 등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겪을 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혹은 의지가 약해서라고 여기면 자책하는 건 옳지 않아요. 온라인 상에서 떠도는 ADHD에 관한 정보들 중에도 잘못된 것들이 너무 많은데, 단적으로 ADHD를 '질병' 또는 '결함'으로 보는 것은 부적절한 견해예요. 잘못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 훨씬 나쁜 것 같아요.

《ADHD 농경사회의 사냥꾼》은 40년 이상 ADHD 아동과 성인의 잠재력을 펼칠 방안을 모색해 온 톰 하트만의 책이에요.

원래 이 책은 1993년 처음 세상에 나왔고, 2019년 새로운 장을 추가하여 전면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왔는데 여전히 초판의 가설이 유효하다는 것이과학적 연구 결과들로 확고해지고 있어요. 톰 하트만이 발견한 가설은 한마디로, "ADHD인 사람들은 사냥꾼들의 후손이야! (30p) 라는 거예요. 인류 역사에서 농업 혁명이 끼친 변화를 주목한 거죠.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에는 사냥감을 쫓거나 자신들이 쫓길 때 즉각 판단하고 행동하는 충동성이 생존능력이었다면 농부의 세계에서는 그런 특징이 흠으로 보였을 거예요. 인류의 문화적 특징을 '사냥꾼과 농부'로 비유한 점은 매우 탁월한 것 같아요.

이 책은 타고난 사냥꾼 기질(ADHD)을 '질병'이나 '비정상'으로 분류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어요. 타고난 대로 행동한다는 이유로 처벌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상처를 입고, 자신을 부적합하고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이는 멀쩡한 특성을 잘못된 것으로 오인하는 사회인식의 문제라고 봐야 해요. 부모, 교사, 상담사, 의사가 ADHD 아동에게 어떤 말을 하느냐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네 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거야."라는 말 대신에 "네 뇌는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거야." (95p)라고 말해주면 아이들은 매우 다르게 반응한다고 하네요. 교실에서 ADHD 아동을 문제아 취급해왔던 것은 우리가 ADHD 특징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에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핵심은 ADHD는 결함도 장애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사냥꾼 ADHD 성인을 위한 생존 지침이 있다는 거예요. 사냥꾼들에게 걸림돌이 된 충동성과 갈망이라는 특징을 이해하고, 적절히 조절한다면 얼마든지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어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병이 많아진 원인은, 어쩌면 '다름'을 인정해주지 않는, 경직된 문화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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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 - 최영미 시인이 엮은 명시들
최영미 지음 / 해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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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최영미 시인이 엮은 명시들"이라는 문구가 마치 나를 위해 쓴 편지처럼 느껴졌어요.

어쩐지 아주 오랫동안 그 편지를 기다렸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반가움이 앞서더라고요.

왜 그럴까... 그건 아마도 약해진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주고, 숭숭 뚫린 틈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주는 손, 뭔가 그런 보이지 않는 손이 따스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이 들어요. 어릴 때는 몰랐던 시의 진면목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라서 최영미 시인이 이끌어주는 손이 고맙고 감사하네요. 최영미 시인은, "위대한 자연을 보면 우리의 근심 걱정이 사라지듯이, 좋은 시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인생의 슬픔을 잠시 내려두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6p) 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아끼던 명시들을 골라 책으로 엮고, 친절한 해설을 덧붙여 주었네요.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는 최영미 시인이 엮은 명시 모음집이에요.

이 책은 지난 2년간 <최영미의 어떤 시>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매주 연재하던 글들이 있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네요.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는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으로 있었는데, 첫 장을 펼친 뒤로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어요. 좋은 시는 사람을 가리지 않더라고요. 이해의 깊이는 다를지언정 감동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거든요. 제목이 된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라는 문장은 미국의 시인 사라 티즈데일의 <선물 Gifts> 라는 시의 일부분이에요. "나는 내 첫 사랑에게 웃음을 주었고, 두 번째 사랑에게 눈물을 주었고, 세번째 사랑에게는 그 오랜 세월 침묵을 주었지. 내 첫사랑은 내게 노래를 주었지, 두 번째 사랑은 내 눈을 뜨게 했고, 아, 그런데 나에게 영혼을 준 건 세 번째 사랑이었지." (34p) 사랑을 노래한 시를 읽으면서 각자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게 될 거예요. 시인은 '내 사랑에게 무엇을 준다'라는 문구를 반복함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건네주고 있어요. 진짜로 멋진 '선물'인 거죠. 우리는 사랑을 통해 성장하고, 사랑 덕분에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짧은 가을을 보내다 보니, 허영자 시인의 <감>이라는 시가 마음에 와닿았네요.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 누구도 어쩔 수 없다 /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 젊은 날 / 떫고 비리던 내 피도 /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64p) 요즘 단단한 감을 박스에 넣어 며칠 숙성시켰다가 말랑말랑 잘 익은 홍시를 꺼내 먹고 있는데, 잘 익은 감이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입으로 먹느라 바빴는데, 이제는 홍시마냥 잘 익어가는 노력을 해야겠어요. 좋은 시가 주는 감동과 최영미 시인이 들려주는 생각들이 함께 한 가을이라 풍성한 기쁨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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