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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ㅣ 박노해 사진에세이 1
박노해 지음,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느린걸음 / 2019년 10월
평점 :
박노해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나서 기존에 출간된 책들을 찾아보게 됐어요.
《하루》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에세이 시리즈 첫 번째 책이에요.
패브릭으로 된 표지의 까슬까쓸함이 손끝에 닿으면서 작은 감각이 깨어남을 느꼈네요.
서문에서 시인은, "긴 하루였다. 나의 어린 시절은. (···) 그토로 풍요로운 가난과 그토록 빛나던 긴 하루가 우리에겐 살아있었다. 아 그러나 좋았던 시절만이 긴 하루가 아니었다. 상처와 고통의 시절도 긴 하루였다. 분단과 독재로 내 조국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슬픔과 분노로 고뇌하고 노동하고 독서하고 조직하고 투쟁하던 나의 청년 시절 또한 긴 하루였다. 전쟁 같은 철야 노동의 시간, 서럽고 억울한 천대와 차별의 시간, 무력한 사랑의 패배와 좌절의 뼈저린 시간, 사로잡힌 짐승처럼 피 흘리던 고문장의 시간, 감옥 독방 속 시퍼런 수에 갇힌 무기수의 시간,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되어서도 긴장과 공포 어린 분쟁 현장을 누빈 시간, 사막과 광야와 만년설산 고원 길의 막막한 시간. 나의 생은 참으로 긴 하루 또 하루의 날들이었다.
(···) 내가 나 자신의 하루를 살지 않는다면 무언가 내 하루를 앗아가고 만다.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나를 연구해 자원으로 써먹어간다. 모든 악의 세력이 지배하려는 최후의 목적지, 세계화된 자본권력이 점령하고자 하는 최후의 영토는 나 개인들의 내면과 하루 일과가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의 내면과 일상은 소리 없는 전쟁터다. 여기가 이 시대의 최전선이다. 나의 내면과 일상에서는 지금 '악의 신비'와 '선의 도약'이 투쟁하고 있다. (···) 거듭 실패하고 좌절할지라도 다시 시작하고 꾸준히 밀어 가는 것, 그것이 날마다 내게 주어지는 평범한 하루하루의 위대함이다." (9-12p) 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읽는 내내 가슴이 콕콕 찔렸고, 마치 물주머니가 터지듯이 감정이 쏟아져서 할 말을 잃고 말았네요. 그리하여 시인이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노트에 꼭꼭 눌러쓰게 되었네요. 지금은 시인의 말을 가슴에 담는 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