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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간의 평화수업 - 소년원에서 명문대학 로스쿨까지, 감동적인 교실 이야기
콜먼 맥카시 지음, 이철우 옮김 / 책으로여는세상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콜먼 맥카시 선생님의 평화 수업을 읽으면서 평화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저 신앙적인 의미의 평화만을 알고 있던 나에게는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힘, 평화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어릴 적부터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선생님만을 만났던 나에게 선생님이란 존재는 독재자와 같은 의미였다. 비단 나만 불행한 학창 시절을 보낸 것은 아닐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해진 규율에 따르지 않으면 처벌 받는 학교 – 머리 길이는 어디까지, 옷은 어떤 식으로, 가방이나 신발 기타 외적인 것도 자기의 개성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말씀이 법이고 감히 아니라고 말하는 학생은 기본 예의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교육 받았으니 편안하게 사는 방법은 체제에 순응하는 것, 독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이런 교육의 부작용일까.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보면서도 당당하게 항변하질 못하고 아예 눈을 감아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책에서는 두 종류의 교사를 설명한다. 학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교사와 학생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힘을 찾아주기 위해 애쓰는 교사. 문득 예전에 보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선생님이 떠올랐다. 내게는 영화 속 인물이었다. 감동은 받았지만 내 인생에 영향을 주기에는 미미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깨달았다. 어린 시절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책을 통해 훌륭한 콜먼 맥카시 선생님을 만난 것처럼 평화를 배우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평화는 배워야 한다. 저자가 소개한 간디, 저넷 랭킨, 도로시 데이, 조디 윌리엄스 등등을 통해서, 우리 나라의 평화주의자는 알아봐야겠다.
그만큼 평화라는 주제가 낯설고 무심했었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소리를 내기가 힘들고 어른들의 토론은 아이들의 몸싸움보다 유치하고 수준이 낮다.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느긋하게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상대방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식으로 말을 자르고 자기 의견만을 주장한다. 이것은 TV토론이나 국회 회의를 얘기하는 것이다. 진짜 칼만 안들었지 언어 폭력, 전쟁과 같은 토론장을 보게 된다. 사회 엘리트라는 사람들이나 평범한 나, 모두가 평화에 대해 무지하기는 마찬가지다. 평화에 대해 배운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모른다고 그만인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살 만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나, 어른들의 책임이다.
가정 안에서 아이들에게 평화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새겨진 평화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나 먼저 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평화 수업 중에 동물에 대한 비폭력은 갈등이 되는 주제였다. 사형제도의 부당성, 폭력성에 대한 부분, 전쟁이나 다른 폭력적인 사회 이슈들은 내 견해를 바꾸기만 하면 되지만 동물의 권리를 지지하는 것은 구체적인 실천,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육식을 포기하고 환경 보호, 동물 보호에 앞장설 수 있을까. 어쩌면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려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평화는 작은 생명의 권리라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인 것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지 당장은 자신이 없다. 익숙했던 나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앞으로 평화를 배우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