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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 서른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
김진하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안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잊을 만하면 다시 찾아 읽게 되는 책들이 있어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그 중 하나인데요. 아직 다 들여다보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일 거예요.
조종사가 어린 시절에 그렸던 그림을 아무런 설명 없이 봤더라면 분명 '모자'라고 답했을 텐데,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킨 뱃속의 모습을 그린 그림까지 보았으니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네요. 실제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 : 서른에 다시 읽는 어린 왕자》는 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 김진하 교수의 책이네요.
저자는 우연히 어느 독서 모임에서 『어린 왕자』에 관한 설명을 부탁 받고 웃음으로 사양했지만 다시 원서를 펼쳐드는 계기가 되었고, 프랑스어 원문의 글귀 하나, 문장 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새로운 울림을 느꼈다고 하네요. 이 책은 『어린 왕자』을 이미 읽어봤던 독자들을 위한 진정한 어른의 의미와 삶의 본질적 가치를 성찰하게 하는 깊이 있는 해설서라고 할 수 있어요. 어린 시절 읽었던 『어린 왕자』와 어른이 된 뒤에 읽는 『어린 왕자』는 어떻게 다를까요. 『어린 왕자』를 읽는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저자의 설명대로 책 속 모든 문장을 꼼꼼하게, 헌사부터 천천히 읽어 가다 보면 인생의 문제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네요. 특히 『어린 왕자』의 헌사는 매우 중요하네요. 작가 생텍쥐페리의 이름을 간단히 생텍스라 쓰고 있는데, 작가의 성은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프랑스인에게도 발음이 어려웠던지, 작가 생전에 이렇게 친근하게 줄여 썼대요. 생텍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망명 시절에 어린이 책의 집필 의뢰를 받고, 나치 독일에 점령된 프랑스에 남겨진 절친한 벗 레옹 베르트를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고 하네요. 그 친구가 프랑스에서 굶주림과 추위로 고생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으로, 어른 레옹 베르트에게, 그리고 어린 레온 베르트에게, 결국 모든 어른과 어린이에게 바치는 책이 된 거예요.
"레옹 베르트에게
내가 이 책을 한 어른에게 헌정한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나에게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어른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친구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 어른은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 무엇이든 다 이해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가 있다. 그 어른은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는데, 배고픔과 추위로 고생하고 있다. 그에게는 정말로 위로가 필요하다. 이 모든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면, 나는 한때는 어린이였던 그 어른에게 이 책을 헌정하고자 한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나의 헌사를 이렇게 고친다. _ 한때 소년이었던 레옹 베르트에게" (18p)
저자는 『어린 왕자』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고 음미할 수있도록 헌사부터 본문 내용의 문장들을,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하고 해설해주고 있네요. 어른이 된다는 것, 마음을 준다는 것, 나만의 가치를 찾는다는 것, 고독을 마주한다는 것,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 만남과 이별이 가르쳐주는 것까지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네요. 저자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슬픔과 위로라는 두 가지 감정이 서로 이어져 있다고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네요.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한 늙은 어린이들의 불장난 같은 전쟁과 증오 대신 순수한 동심과 성숙한 사랑이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네요. 원래 『어린 왕자』 속 삽화를 좋아하지만 저자의 해설을 듣고 나니 보지 못했던 풍경이 보이네요.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마음으로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네요. 익숙하지만 아직 다 보지 못한 그림,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 쓸모도 없는 가시를 만드느라 꽃들이 왜 그토록 애쓰는지
이해해 보려 하는게 진지한 일 아니야?
양들과 꽃들의 전쟁이 중요하지 않아?"
··· 양과 꽃 사이의 관계는 흡사 전쟁과도 같다. 한쪽은 무기를 들고 방어하고 다른 한쪽은 여지없이 먹어 치운다. 어린 왕자는 묻는다. 그럼에도 연약한 꽃이 애써 가시를 만드는 이유를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더 중대한 일이 과연 있을까?
작은 존재들의 고통에 눈길을 주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매우 진지하고 중요한 일이다.
『어린 왕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란지 미국에서 쓰였고, 생텍스가 공군에 다시 복귀하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북아프리카 비행대대로 떠났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전쟁이라는 단어에 유독 눈길이 간다. 꽃과 양 사이의 갈등은 단지 어느 한쪽의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가 아니다. 적어도 여기서는 양들과 꽃들이라는 집단 간의 갈등으로 그려진다. 이는 곧 꽃의 생사가 걸린 전쟁이다. 그러고 보면 양의 의미도 조금 애매해진다. 어린 왕자가 조종사에게 그려 달라고 했던 어린 양이 아니라면, 다시 말해 어른 양이라면, 숫양이라면, 큰 양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모든 큰 존재가 지닌 난폭한 성질을 생각해 보면, 작은 바오밥나무가 커져서 골칫덩어리가 되는 걸 생각해 보면, 전쟁은 큰 것들 사이에서,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거대한 전쟁의 시기에 동화를 쓰면서 작가는 전쟁과 평화에 관한 교훈적 이야기를 담지는 않았다. 다만 인간 집단 사이의 전쟁과, 그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에 대해 짧게 암시했을 뿐이다.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를 살필 것.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에 하나라도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마음은 행복해진다. (99-10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