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안 작성한 리뷰입니다. ]
거짓말 같아요,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니!
스무 살을 앞두고 있던 딸은 어느덧 서른 중반을 넘어가고 있겠네요.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편지, 공지영 작가의 신작 에세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두 번째 책이 나왔네요.
"왜 네게 불현듯 편지를 쓰고 싶어졌을까?" (15p)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네요. 저자는 딸을 떠올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서도 데면데면해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너무 솔직해서 놀랐고, 오히려 그때문에 더 진심으로 와닿는 부분이 많았네요.
"어느 순간 나는 알게 되었어. 우리는 이제 다시는 예전의 그 엄마와 그 딸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고.
동시에 나의 머릿속에서 이 질문은 지난날의 내가 생의 어떤 결정적 순간, 말하자면 나의 생이 급격하게 모퉁이를 돌 때 했었던 결정적 질문들 중 하였다는 것도 떠올랐지. 아주아주 오래 전 어린 너를 두고 내가 네 아빠와 헤어져야 했을 때, 나도 같은 걸 물었다. 그때 나는 지금의 너보다도 더 어렸다. < 당신이 내게 했던 짓을 알기나 해? > 네가 내게 그 말을 했을 때 내가 지었을 표정을 네 아빠도 그때 내게 지어 보였다. 그도 다시 물었어. 그때 내 대답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당신이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게 바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야.> 그 후에도 나는 여러 번 그 표정을 보았다. 그다음, 또 다음 결혼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전 나의 엄마에게 말이야. 그때는 눈물로 악을 써댔던 것 같아. 돌아보니 그건 어쩌면 피지배자가 권력자에게, 약자가 강자에게 긴 인내 끝에 내지르는 외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건 안다고 나는 말할 수 있어. 부모가 된 이후로 나는 가끔씩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단다. ··· 일반적인 권력자보다 부모나 가족의 가해가 더 끔찍한 것은 거기에 사랑이라는 이름표가 붙기 때문이야." (18-20p)
부모와 자녀 사이, 엄마와 딸의 관계가 늘 화목하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잖아요. 서툴고 부족한 부모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진심이라면 그나마 다행인 것이고, 그 사랑마저도 부족하다면 최악인 거죠. 우리는 그 누구도 현재의 삶을 원한 적이 없지만 각자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서로를 더 아껴주고 다정하게 대해줘야 해요. 저자는 사랑하는 딸 위녕에게 자신이 읽은 책과 경험을 이야기하며 나름의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있네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한때는 너무 싫었는데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내야 기쁨을 주더라고요. 밤이 지나야 아침이 오듯이.
"위녕, 엄마가 그때 그랬던 거 기억나니? 살면서 엄청나게 힘들었던 때가 많았지만 30대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고. 20대는 그럭저럭 여러 가지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30대에는 모든 아는 것들이 모르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이미 나이는 먹어 나 혼자 끝없이 뒤로 가는 물살에 밀려나는 듯 두려웠던 거 기억나거든. 그때 비로소 테라피를 신청하고 심리학 서적들을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묻기 시작했던 것도.
··· 위녕, 힘들지? 넌 아직 30대니까. 길게 말하지 않아도 ㅡ 길게 말하지 않아도 돼 ㅡ 엄마는 안다. 엄마라는 사람은 네가 짧은 문자에 '응'이라고 대답하는 것과 '어'라고 대답하는 것, '싫어'라고 말하는 것과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서도 너의 상태를 며칠어치씩 짐작할 수 있는 종족이란다. 하지만 엄마가 늘 말했듯이 인생은 생각보다 길어. 그렇게 길기에 나는 감사할 게 하나도 없다는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아낼 시간을 얻었던 거였고, 내 젊은 날 가졌던 사상과 방식이 21세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내가 믿고 지지했던 사람이 그렇지 않았다다는 것도 알아냈고, 내가 싫어했던 사람이 나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나는, 언제든 '이건 백 퍼라니까'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힘겹게 틈을 내어 3퍼센트의 공간을 열어놓는단다. ··· 신기하게도 이 3퍼센트의 빈 공간이 노년의 나를 숨 쉬게 한다. 그러고 나니 얼마나 편안한지 몰라." (74-75p)
재미삼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을 할 때가 있어요. 누군가는 냉큼 언제라고 답하던데, 제 경우는 지금이 가장 좋아서, 굳이 과거로 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네요. 만약 지금까지 경험했던 모든 기억을 지닌 채로 돌아간다면 모를까, 다시 그때로 가도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아요. 20대는 20대라서, 30대는 30대라서 힘들고, 40대, 50대 역시 힘든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겪어 본 사람만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이네요. 행복도 불행도 지나가는 거라고, 영원히 지속되는 건 없으니까요. 다만 멈추거나 주저앉지 말고 용감히 걸어가야 해요. 저자가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는 응원은 우리 모두에게도 진심으로 전해지네요. 세상에 나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잘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네요. 이번에 새로운 리커버 개정판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1권과 함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세상을 '오늘도 맑음'으로 활기차게 살아갈 모두를 위한 편지가 도착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