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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
이아코포 멜리오 지음, 최보민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5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어라 아주 예쁜 돌이 된단다~ "
요즘 자주 듣는 악뮤의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이라는 노래 가사예요.
이제껏 기쁨과 슬픔은 별개의 감정이라고 구분지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감정에 휩싸인 순간에는 그 미묘한 마음을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뭉클해서 코끝이 시큰해지고, 서러워서 눈물이 울컥하고, 기쁨에 벅차서 눈물이 흐르기도 하니까요. 예전에는 출렁출렁, 마음에서 물결이 일렁이는 순간들이 싫었어요. 왠지 약해진 것 같아서, 그 감정들을 외면했던 것 같아요. 근데 감정을 빼버린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마음속 감정들을 하나하나 보듬어주는 일, 그게 참 중요하네요.
이탈리아 작가 이아코포 멜리오의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은 어른들을 위한 책이네요.
이 책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마음들, 이 마음을 표현할 단어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네요. 오랫동안 비어 있던, 막연한 감정의 공간에 소리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자는 우리가 마음속으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온 어떠한 느낌이나 생각, 기분 혹은 감정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을 모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어요. 자신이 속해 있는 언어권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마음의 단어를, 다른 여러 언어권에서 발견하는 뜻밖의 즐거움이 있네요. 영어, 일본어 같은 익숙한 언어부터 아칸어, 반투어, 발리어, 아랍어 등 낯선 언어에 숨겨진 아름다운 감정의 표현들을 만날 수 있네요.
'사전'이라는 제목답게, 각 장마다 단어의 품사, 의미 그리고 어느 나라의 말인지가 정리되어 있어요. 한국어 단어로는 '안심', '혼족', '눈치'가 수록되어 있어서 반가웠고, 존 케닉의 『슬픔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에 나오는 신조어 '손더 Sonder'가 있어서 신기했네요. 새로 만들어진 단어를 통해 표현되지 못했던 감정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에요. '손더 Sonder'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만의 복잡한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라는 뜻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주네요.
"이 신조어는 큰 도시를 둘러보거나 낯선 장소에 처음 가봤을 때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서로 통하는 듯한 느낌을 나타낸다. 자신의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멀리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과 가까운 느낌을 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 이야기도 우리와 같이 여러 꿈과 걱정, 우정과 사랑, 희노애락 등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느끼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간단히 말해, 이 감정은 우리의 자아 인식을 넓히거나 좁힐 수 있으며,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줄 수 있는 깨달음의 순간을 뜻하기도 한다. 각자의 존재와 삶은 독립적으로 흘러가지만, 때로는 모두 똑같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118p)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속 감정들마다 하나씩 이름을 붙이다 보면 나 자신을 좀 더 잘 다독이고 보살필 수 있네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는 '나나이 Nanai' 예요.
"[케추아어] [명사] 아픔을 달래주는 부드러운 어루만짐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지 토착민인 케추아족은 고통과 상처는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 다시 말해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사랑의 몸짓으로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이 단어는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기쁨이나 부드러운 마음을 일으키는 무언가를 가리키기도 한다." (174p)
서로가 '나나이' 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잘 버텨내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듯 새롭게 알아가는 마음의 단어들 덕분에 뭔가 풍요로워진 느낌이 드네요. 작지만 커다란 책을 만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