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마음들의 마을 - 우리는 각자의 지옥을 품고, 서로의 구원을 꿈꾼다
도널 라이언 지음, 정소하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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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마음들을 따뜻하게 녹이는 이야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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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마음들의 마을 - 우리는 각자의 지옥을 품고, 서로의 구원을 꿈꾼다
도널 라이언 지음, 정소하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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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말 한마디로 터져버린 감정,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모두의 탓이기도 해요.

가족 간에 소소한 갈등은 흔한 일이지만 가끔은 너무 힘들 때가 있어요. 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음을 사정없이 때리네요. 그럴 땐 가만히, 가라앉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네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도널 라이언의 장편소설 《부서진 마음들의 마을》은 무려 스물한 명의 화자가 등장하네요.

목차를 보면 스물한 명의 이름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각 이름마다 선으로 이어져 있네요. 아일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 각자의 이야기가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가 이야기에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진실이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맞춰지고 있네요.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결점과 상처로 각자의 지옥을 품고 살아가고 있네요. 드러낼 수 없는 비밀들, 그래서 잔잔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주네요. 누가 누구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가족과 이웃으로 연결된 그들의 관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지켜보게 되네요.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지만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네요. 평범한 이웃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밀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지, 균열과 갈등으로 깊어진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게 하네요. '부서진 마음들'에 초점을 둔 줄 알았는데, 실은 그 갈라진 틈새를 서로가 채워주고 연대하며 버텨왔던 거예요. 이 소설의 원제는 "Heart, Be at Peace", 마음아, 평온해져라! 였다는 걸 다 읽고 난 다음에 알았어요. 가족조차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고 따뜻하게 위로해줄 수 있다는 걸, 진정한 구원이란 위대한 영웅의 몫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 함께 나누는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배웠네요.


"선함은 정의하기 어렵다. 그 본성상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다. 

그렇게 말하는 맞을 거다.

선함은 누군가의 행동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고,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느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간혹, 종종, 어떤 사람의 행동과 그 사람의 본성 사이에서 

어떤 유사성이나 연결고리도 찾지 못하기도 한다.

사람의 성격을 판단할 때는 먼저 행동의 동기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게 

언제나 가장 좋은 방법이다.

··· 그 누구도 이 긴 세월 동안 젊은 OO이 자신을 뽐내면서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으리라.

자신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줬는지. 

어떻게 자기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로 배를 몰고 들어가서

순전히 자신의 의지와 자비로운 가슴과 

지칠 줄 모르는 기백으로 배가 침몰하지 않게 했는지." (284p)


"만일 그가 실컷 울도록 내버려뒀다면, 모든 일이 그렇게 끔찍하게 잘못되진 않았을 텐데!

나는 언제나 햄릿에게 보비의 얼굴을 덧씌워왔지만, 이젠 나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부서져라, 내 심장이여, 내 혀는 침묵해야 하니.'

··· 그는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내가 그를 소년으로, 남자로 사랑해 온 시간들 후에도,

내가 그의 가장 깊은 내면을 전부 알고, 그 자신보다도 그를 더 잘 안다는 사실을 여전히 모른다.

때로는 그가 자기 자신을 알기나 하는 걸까 궁금하다." (321-3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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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으로 철학하기 - 재미, 예술성, 장르 등 비디오 게임을 둘러싼 수많은 질문들
주자안 지음, 정세경 옮김 / 현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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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덕후는 아니지만, 덕후의 세계를 사랑하네요.

세상의 잣대로 보자면 쓸데없는 일로 보일 수 있지만 팍팍한 세상의 틈새를 비집고 피어난 들꽃 같은 생명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누가 뭐래도, 진심은 말릴 수 없으니까요. 온전히 좋아하는 대상에 몰입할 수 있는 열정과 힘, 에너지가 멋지다고 생각해요. 덕질의 본질은 사랑이니까,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좋아하는 거예요. 다만 이런 제게도 편견은 있었더라고요. 프로게이머는 인정하지만 일부 게이머들이 특정 커뮤니티에서 차별이나 혐오적인 발언으로 갈등을 조장하는 행태 때문에 게임의 세계와는 벽을 쌓고 지냈네요.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라고 여겼는데 이 책을 통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네요. 아참, 이렇게 말하면 너무 진지하고 딱딱한 내용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네요.

대만의 젊은 철학자 주자안의 책 《게임으로 철학하기》는 비디오 게임과 철학이라는 흥미로운 조합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네요.

이 책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토론의 장을 만들어가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어요. 게임은 즐기지만 철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과 철학은 알지만 게임은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둘 다 관심 없었지만 새롭게 흥미를 느끼는 뉴페이스들까지 환영하네요.

저자는 <블러드본>이라는 대표적인 소울라이크 게임을 소개하면서, 이 게임을 해본 사람 중에 절반이 넘는 수가 첫 번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지 못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지만, 게임 속 강력한 상대인 개스코인 신부와 마주치는 순간의 메타적 체험은 '내 게이머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10p)이며 다른 예술 장르에선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이 책에서 언급하는 게임은 '비디오 게임'이며, 다른 게임과의 차이점은 승패를 강조하지 않고, 실제 규칙과 가상의 세계를 빌려 스토리텔링을 하고 시뮬레이션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비디오 게임의 재미는 플레어이가 경험을 통해 점차 발전해 나간다는 거예요. 플레이어가 흥미로운 결정을 내리면 게임은 플레이어의 적극적인 자유를 강화할 수 있고,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 게임의 균형성을 분석하고, 비디오 게임을 둘러싼 재미, 예술성, 장르 등 수많은 질문들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거죠.

이를 테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예요.

비디오 게임은 현실이 아닌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게임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까, 비디오 게임도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게임 속 죽음에서는 어째서 위화감이 느껴질까, 비디오 게임에는 어째서 그렇게 많은 폭력이 등장하는지, 과연 그 폭력은 괜찮은가, 게이머들은 왜 PC(정치적 올바름)를 싫어할까 등등.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도, 이 책을 쓰는 것도 모두 재미를 위해서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런 문제들을 가볍게 접근해야 우리와 다른 요구를 가진 게이머들이 존재를 인정하고 마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철학자와 함께 게임 세상 속으로,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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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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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모자무싸> 이전에 카뮈의 <이방인>이 있었네요.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을 최신 완역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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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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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태양의 열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나는 앞쪽으로 움직였다.

그것이 바보짓이라는 걸, 한 발자국 움직인다고 해서

태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 발짝, 딱 한 발짝 앞으로 움직였다."

(96p)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네요.

주인공 뫼르소는 자신의 행동이 바보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솔직히 이전에 읽었을 때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그를 둘러싼 법조인들과 사람들의 태도에서 '부조리'의 고약한 얼굴을 마주했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네요. 다만 죽은 아랍인에게 '네 발의 총'을 더 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가 《이방인》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극찬하는 작품이라서,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일단 읽어봐야 가치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남들이 말하는 이유 말고 자신만의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네요.

이 소설은 1942년 프랑스 파리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당시 카뮈는 변방에서 온 스물아홉 살의 무명작가에 지나지 않았지만 롤랑 바르트, 가에탕 피콩 등 유명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아무런 환상도 부여하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며,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 (194p)이라고 언급했다고 해요. 훗날 카뮈는 마흔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그로부터 삼 년 뒤 마흔일곱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네요.

《이방인》은 20세기 실존주의 문학 최고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카뮈 자신은 "나의 문학은 실존주의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한다" (194p)고 말해 자신의 문학을 실존주의라는 틀 안에 가두는 것을 거부했다는데, 《이방인》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하네요.


"죽음이 코앞에 다가오자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무도, 어느 누구도 엄마에 대해 눈물 흘릴 권리는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마치 그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씻어내고 희망을 비워 내기라도 한 것처럼, 

징조의 별들이 가득한 이 밤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한 무관심에 나 자신을 열었다."

(190-191p)


어떤 상황이든지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던 뫼르소, 그는 정말 냉혈한일까요, 아니면 사회적 관습이나 위선에 타협하지 않는 솔직한 인간인 걸까요.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 이단인의 전형을 보여주네요. 뫼르소라는 인물을 억지로 이해하기 보다는, 그를 제멋대로 판단하는 주변인들을 주목했네요.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네 발의 총성!

최근 방영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면, 주인공 황동만이 마을 동산에 올라 자기 이름을 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처음엔 그렇게 꼴보기 싫더니 점점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뫼르소의 바보짓은 공감할 수 없지만, 황동만의 헛발질은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따뜻한 마음과 극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유머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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