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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ㅣ 소담 고전 명작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김희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오늘날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모른다.
인간을 안다면, 각 개인이 자연의 소중한 창작인 인간, 유일무이해서 더없이 귀중한 인간을
총으로 쏘아서, 그것도 무더기로 쏘아서 죽일 수야 없지 않을까." (5p)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서문을 읽으면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네요.
전쟁으로 파괴되는 문명, 비극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절규하는 작가의 심정이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아서...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안다면 이럴 수 없다고, 헤세는 자신도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본질을 찾아 해매는 구도자라고 언급하면서 이제 더는 별을 우러르며, 책 안에서 찾지 않고, 내면에서 속삭이는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시작했고, 자신의 이야기는 달콤한 허구와 거짓말을 거둬내어 부조리함과 혼란과 광기가 뒤섞인 쓴맛을 머금었다고 설명하네요.
미국 대통령은 미군 사망자의 희생을 강조함으로써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 참사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어요. 학교라는 민간인 보호 시설을 공습하여 어린 학생들을 대량 살상한 것은 국제법상 인도주의적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인데 이란의 소행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네요. 종전 협상 중에도 이스라엘의 집중 공습이 이어지며 민간인 피해가 지속되고 있어요. 명분을 잃은 전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불신은 증폭되고, 중동 지역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되었네요. 왜 인간은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헤세는 우리 인간은 누구나 탄생의 흔적, 태초의 점액과 알껍데기를 죽을 때까지 품고 살아가는데, 더러 인간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 도마뱀, 개미로 남는 이들이 있다면서 본디 인간이 되기 위한 존재임을 일깨우고 있어요. 데미안은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아브락사스의 개념을 통해 기존의 낡은 도덕관을 깨뜨렸고, 그저 세상이 금지한다고 해서 거기에 얽매일 게 아니라 스스로 무엇을 자신에게 허락할 수 있는지, 금지되었다고 그걸 진짜 금기로 여길 것인지를 알아내야 한다고, 세상은 금지된 일을 전혀 하지 않아도 흉악한 악당이 될 수 있고, 금지된 일을 해도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고 했어요. 기존의 가치관이 붕괴하는 혼란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로 나아가야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거예요.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자신 안에 온 세계를 단순히 담고 있다는 것과 그걸 안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가지지! ··· 그걸 모르는 한, 사람은 나무나 돌, 고작해야 동물일 뿐이야. 깨달음의 첫 불꽃이 어슴푸레 피어날 때야 비로소 사람은 인간이 되지." (170p) 그의 가르침은 싱클레어의 성장에 도움이 됐지만 정작 자신은 한계에 갇혀 있네요.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기자신임을 잊고 있었네요. 헤세는 데미안의 목소리를 빌려, "너는 내가 이미 네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269p)라고 전해주네요. 영혼을 짓누르는 진짜 아픔이 무엇인지, 영혼을 마비시키고 거짓으로 더럽혀 온 것이 무엇인지 직면할 때 우리는 이를 바로잡을 수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