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남긴 증오
앤지 토머스 지음, 공민희 옮김 / 걷는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인종의 도가니탕이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책 <당신이 남긴 증오, The Hate U Give’ 책의 원제인 ‘The Hate U Give’는 전설적인 래퍼 투팍이 ‘THUG LIFE’라는 노래에서 THUG, 즉 폭력배가 되는 사람들은 사회가 그들을 처음부터 그렇게 대우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던 것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해요. 사회가 사람들에게 심어놓은 증오는 사람을 망친다는 것이죠.  

앤지 토머스는 자신의 삶과 2009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오스카 그랜트에 대한 이야기를 녹여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해요. 전에 이 사건을 다룬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맞닥트려야 그들이 맞닥트려야 했던 순간들이 참 안타깝게 느껴지기만 했습니다. 저 역시 유색인종이고, 여행을 하다 보면 잘 갈무리된 인종차별을 당한 것 같을 때, 내가 예민한건가? 아니면 내가 소심한건가? 스스로를 돌아볼 때도 있죠. 하지만 이렇게 공권력에 의한 폭력에 노출되는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기분일지 미루어 짐작하기도 어렵네요. 거기다 그 사건의 가해자였던 경관은 실수로 인정받기도 했었잖아요.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오스카가 될 수 있죠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스타, 스타의 부모님은 총과 마약이 넘실대는 동네에서 그들의 방식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어요. 자신의 딸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며 근처에 있는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내죠. 그 곳에서 스타는 자신답게 살기보다는 친근한 흑인 여자아이로 인식되기 위해 노력하죠.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칼릴과 파티에 참석했던 스타는 싸움을 피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칼릴의 차를 세웠고, 검문을 받기 위해 움직이던 칼릴이 스타를 안심시키려고 한 몸짓에 경찰은 총을 쏘고, 그렇게 칼릴은 1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경찰서에서 나온 스타는 칼릴과 자신이 받아야 했던 부당한 대우에 분노하지만, 그녀의 아빠는 딸이 안전하기를 바라며 침묵하기를 원하죠.

글쎄요. 16살이라는 나이, ‘sweet sixteen’이라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로 참 아름다운 시기인데, 그렇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칼릴과 친구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스타의 이야기는 제 마음을 참 아프게 하더군요. 거기다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다는 점도 놀라웠고요. 다행히 스타는 머물지 않고 나아갑니다. 칼릴을 위하여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칼릴의 부모님이 칼릴에게 경찰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을 시키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왜냐하면 제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총 든 사람이 접근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친척 어른에게 배운 것과 아주 유사했기 때문이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경찰이 그러한 존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라운 것 같아요. 물론 동화처럼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요.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삶은 서툴다 -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주는 세계 최고 지성들의 명 에세이 컬렉션
미셸 에켐 드 몽테뉴 외 지음, 이문필 엮음 / 베이직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무래도 누구에게나 삶이라는 것은 처음이니까, 서툴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던 책 제목이네요. <모든 삶은 서툴다> 서툴 수 밖에 없는 삶 속에서,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지성인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의 말을 모아놓으면 책인데요. 뉴턴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도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섰기에 멀리 볼 수 있었다고 말하듯이, 서툴기만 한 저도 위대한 지성인의 어깨를 잠시 빌려보고 싶어지네요.

이렇게 학자들이 많이 등장할 때는 사조별로 혹은 시대별로 구분하는 것을 많이 봤는데요. 이 책에서는 나라별로 구분을 해놓았는데, 제가 볼 때는 나름대로 그 특색이 있었던 거 같아요. 이 것이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워낙 칼릴 지브란을 좋아해서, 제일 먼저 그쪽부터 찾아보기는 했어요. “슬픔에 가면을 씌운다고 해서 그 것이 기쁨으로 둔갑하지 않는다그렇죠. 저도 우울할 때면 애써 기분을 전환하려고 애쓰고, 아니 척 가면을 쓰고 있지만, 도리어 더 상처가 될 때가 많지요. 그냥 자신의 기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이왕이면 기뻤을 때의 감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나 싶어지네요.

몇 일 전에 읽은 책에서, 조금 묘한 상황에서 프랜시스 베이컨을 떠올리는 것을 보았어요. 처음에는 그 연결점을 잘 이해를 못했는데, 그가 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읽다 보니 이해가 되더군요. 적을 쏘기 위해 생명을 송두리째 바치는 꿀벌이 되지는 말자는 것, 현명하게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서도, 무엇보다도 격해진 상황을 잘 빠져 나오기 위해서도 필요한 조언이네요. 또한 사람들은 사랑의 기쁨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막상 사랑의 필요성은 망각하곤 한다는 파스칼의 말은 지금의 저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 아닌가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트 읽는 남자 - 삐딱한 사회학자, 은밀하게 마트를 누비다
외른 회프너 지음, 염정용 옮김 / 파우제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저도 카트를 가지고 이동하게 되는 무빙워크에서 이미 물건을 사가지고 올라오는 사람들의 물건을 흘깃 보곤 하는데요. 무엇을 살지 대충 적어가면서도, 뭐 재미있는 물건이 있나 본능적으로 살펴보게 되는 거 같아요. 독일의 사회학자 외른 회프너는 그 정도를 넘어서, 슈퍼마켓을 사회의 배양접시로 생각하며, 쇼핑을 하는 사람들을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관찰하는데요. 그가 슈퍼마켓을 선택한 이유는 그 곳이 열린 공간이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쇼핑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백화점과 달리 사람들은 슈퍼마켓은 자신의 주거지와 가까운 곳으로 가기 때문에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서열이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를 통해 사회적 계층수준에 그들의 취하고 있는 성향을 더하여 열 가지의 인간형으로 구별할 수 있는 시누스 환경에 자신만의 관점을 더해가는 책이 바로 <카트 읽는 남자>입니다.

책을 소개하는 문구에 삐딱한 사회학자, 은밀하게 마트를 누비다는 정말 딱 맞는 문구였어요. 하지만 당신이 산 것을 말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줄게요.”라는 문구는 좀 애매모호했는데요. 사실 저는 후자에 끌려서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상당히 난해하다는 느낌도 받았네요. 하지만 본인 소개를 잘 잘 한 것처럼 상당히 삐딱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어서 나중에는 웃으면서 읽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고급마켓의 직원 카를이 자신의 고급스러운 입맛에 맞는 사과를 찾기 위해 20여분을 고민하는 품위 있는 차림의 노인을 보며 그에게 말을 걸죠. “저 구제 불능의 부르주아 녀석이 프롤레타리아의 열악한 환경에 갇혀 쩔쩔매고 있지 뭔가.” 카를이 보여주는 시각도 흥미롭지만, 거기에 대한 그의 접근도 상당히 명쾌했죠. 우리는 비교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스티그마에 대한 우려를 표하곤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못지 않게 보수적-기득권층의 사람들이 받는 시선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다르게 보는 것은 인류의 고질적인 문제인지 고민하게 되네요.

사회학자와 연쇄살인범의 공통점이라는 질문에 그들이 때때로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라고 답하는 외른 회프너. 그가 이러한 답을 내놓게 만든 공간은 다름아닌 할인매장이었습니다. 불안정한 환경에서 태어나 살아가며 배제와 불이익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공간이었는데요. 그 곳에서 그의 행동은 카를 못지 않게 독특했는데요. 생각해보면 저는 그가 관찰자를 넘어서서 행동으로 나서는 순간의 이야기들이 다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학이라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주변환경과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되는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 독신 아니에요, 지금은 강아지랑 살고 있어요 - 견생전반전 하나와 인생후반전 도도 씨의 괜찮은 일상
도도 시즈코 지음, 김수현 옮김 / 빌리버튼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도 꽤 오랫동안 반려견과 함께 생활해왔고, 언젠가는 다시 함께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책 제목부터 참 끌렸어요. <저 독신 아니에요, 지금은 강아지랑 살고 있어요.> 원제는 女日記 이지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소설가로 에세이스트로 사랑받아온 도도 시즈코의 비로서 홀가분해진 삶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서요. “예순한 살이에요. 남편 없는데요. 아이도 없어요. 저 독신 아니에요, 지금은 강아지랑 살고 있어요.”

지금 함께하는 하나를 만나기 전, 15년간 함께 해온 요크셔테리어 리키는 그녀와 정말 닮은 성격이었다고 해요. 제가 처음 키운 시츄의 이름도 리키였는데요. 처음 왔을 때부터 병원에 거의 출석부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게 많이 아파서, 건강하라고 가수 리키 마틴의 이름을 따서 지어줬던 기억이 나네요. 그녀의 리키 역시 입도 짧고 소심한 성격이었다니 왠지 더 기억에 남습니다. 리키가 떠나고 자신과 똑 같은 성격을 가진 하나와 함께 하게 되었지만, 무슨 사연인지 하나는 산책을 싫어해서 전전긍긍하는 이야기도요. 그녀가 개와 함께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가 이십 대 후반의 가을날 애견 구로스케와 한없이 산책을 하던 시절이라니 왠지 인생은 희극과 비극의 끝없는 교차점으로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에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설득하기도 하고, 가끔 산책에 적극적으로 변한 하나를 보며 드디어 산책의 맛을 알았구나 설레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 하나하나가 참 행복하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제가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겠죠. 막상 놓쳐보면 알겠더라고요. 산책을 나가기 귀찮아서 아이들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던 순간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말이죠.

물론 하나와 함께하는 시간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노년에 더 없이 충실하게 살아가는, 그리고 노년의 변화를 예민하지만 지혜롭게 받아들이는 작가의 삶이 책 속에 그대로 녹아있어요. 사실 저에게는 아직도 나이 드는 것은 죽음보다 더 강렬한 공포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 공포를 내려놓지 못하네요. 그래서 요즘 더욱 이런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챙겨보려고 해요. 한 사람의 인간으로 또 여성으로 타인의 시선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꾸려나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왠지 닮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누구인가 - 현대인과 기독교의 만남을 위하여
손봉호 지음 / 샘터사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서, 사역자이며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저자 손봉호가 현대인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 들었어요. 종교인에게 종교라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섭리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죠. 책 제목인 <나는 누구인가>처럼 이 책은 근원적인 질문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계시는가, 그리고 현대인에게 성경, 예수, 교회가 필요한가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성경에서 답을 찾는다는 것, 처음에는 약간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인 답정너같은 느낌이었죠. 하지만 절대적인 믿음의 차원이 아니라, 그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가질법한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면이 많더라고요.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라는 도입부가 더욱 그런 용기를 전해주기도 하고요. 물론 과학적 세계관을 폐쇄적 세계관으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느낌이 들었어요. 또한 현대인들이 비슷한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갖게 되는 원인을 해석하는 것도 그러했고요. 저는 종교적 세계관을 폐쇄적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왔고, 또한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문화의 차이도 뛰어 넘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여겼거든요. 제 생각과 전혀 결이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역시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책 제목이기도 한, 세가지 질문이 등장합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인데요. 이런 질문에 과학이 답을 내줄 수는 없다는 것은 공감할 수 밖에 없네요. 여기에는 딱히 정답이 없고, 딱히 이론이 필요하지 않고, 저자의 표현대로 실존적인 문제이고, 실존적인 결단의 차원이니까요. 그렇다면 기독교를 통해서는 이 답을 찾아나갈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저는 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여전히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익숙해서, 아니면 답을 찾는 것에 집착하는 성향이 여전하다는 것이죠.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을 찾는 과정에 나만의 답을 찾고자 하기보다는 책에서 말하고 싶은 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것, 어쩌면 저야말로 진정한 답정너인 것 같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