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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표, 그리고 마침표
권인옥 지음 / 나남출판 / 2013년 1월
평점 :
" 퇴고할 수도 없고 다시 지우고 쓸 수도 없는 나의 삶이란 문장에서 문장부호만은 내가 정하고 맞게 쓰고 싶다. "
이 말이 참 인상적이였다. 과연 내 인생에 문장부호는 어떠한가? 라며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대부분 아마.. 말줄임표가 아닐까? 무엇인가를 제대로 마무리해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그래서 지금의 나로서는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는 감탄의 느낌표와 잘 마무리하고 잠시 찍어두는 쉼표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영화에서의 느낌표, 책에서의 물음표, 삶의 길목에서의 쉼표..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2편의 영화중 내가 본 영화는 1/3이 채 되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느낀 것들이 솔직하고 담백하게 담겨져 있어.. 보고 싶은 영화목록이 꽤 늘었다. 사실 2부의 책을 가장 기대했지만.. 약간 기대에 못미치는 느낌도 들었다. 21편의 책에서.. 한작가의 작품이 1/4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점 또한 조금은 아쉬웠다. 3부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 에세이였는데.. 그녀가 찍고 싶은 쉼표가 어떤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였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들을 스케치한 다큐멘터리 영화[멘탈]에 대한 이야기속에서 환자들은 자신을 '상대방에게 커튼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다. 요즘처럼 소통의 부재가 화두가 되는 세상에서.. 어쩌면 누구나 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저 자신이 갖고 있는 커튼이 남들보다 조금 더 두껍고 어두워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대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그림자를 수시로 달래가며 살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날 살뜰히 보살피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해줄수 없기에..
[세상의 모든 계절]이라는 영화는.. 아마 내가 직접 봤다면 꽤 지루해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통해 먼저 만날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랄까.. "겨울의 끝은 봄이니까요" 같은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겨울이 지나면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또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같은 영화라고 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애써 망각하려는 이야기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만큼 진정으로 공평하고 일관된것은 없다는.. 어쩔때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홀로 흐르는 시간이 미울때도 있었다. 힘들때면.. 어른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라며 위로해주시지만.. 나는 멈춰있는데.. 세상은 쉼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것도 시간이다.
나 역시 인상깊게 봤던 [다우트]는 한사람의 의심이 만들어내는 파멸을 보여준다. 자기자신이 제일 먼저 그 속에 빠져들고.. 그리고 그 늪으로 상대까지 끌어들이는 느낌이였다고 할까? "회의가 드는 믿음이라도 근거없는 의심보다는 나은 것이니까" 라는 작가님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은 때로는 근거없는 믿음에 더 집착하게 마련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믿고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될때가 있다. 그 믿음이 잘 못된것을 알아도 쉽게 놓지 못할때가 있지 않은가?
종교에 대한 접근이.. 나에게는 큰 울림이 되어주었다. 사실 종교가 없음에도 이런저런 종교서적에 빠져드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의 자신감이 부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다.. 라고 말하는.. 이어령 박사의 딸 이민아님의 책을 소개하며.. "can과 must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절대적인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그 분이 있기에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말할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람들은 "모든 일은 자신이 지은 행위의 결과라고 보는 부처님의 제자는 수억겁을 거치면서 자기의 지은 바의 결과이므로 '자신이 수행하여 정회하며 닦아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가 없는 나의 입장에서도 can보다는 must의 입장이라.. 부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의무보다는 능력이나 가능이 더 쉬워보이니까.. 3부로 넘어가면 또다시 이민아님이 등장한다. 그분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던지는 종교적 의문 역시 인상적이였다.
에세이에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나 역시 그렇게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의 흔적으로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오면서 고통의 강을 함께 건너온 발자취이기에." 개인적으로는 결혼은 나에게는 늘 딜레마이다. 그래서일까? 차라리 시간이 확 흘러서 그런 발자취가 우리 부부사이에 굳게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