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평점 :
13계단과 제노사이드를 통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다카노 가즈아키.. 이번에 읽은 [K.N의 비극]은 2006년 즈음에 발표된 작품이니 내가 읽었던 두 작품의 중간즈음에 서있는 듯 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변화해오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 했다. 이 책의 장르를 이야기하자면 정말 여러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들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그런 느낌. 하지만 공통적인 것이 있다. 바로 첫장을 넘기면.. 책을 덮을때까지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
[쾌적하게 사는 법]이라는 책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에 올라선 슈헤이는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내 가나미와 호화로운 맨션에서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정점에 이르렀던 그의 책은 금새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고, 프리랜서 기자인 그의 수입으로 그 맨션을 유지하는 것은 힘든일이였다. 계약직인 아내의 고정 수입에 의지하여 다음 작품을 기획하려 계획을 세웠지만, 가나미마저 임신을 하게 된다. 잠깐의 쾌락으로 집까지 유지할 수 없게 될 지경인 그는 아내에게 낙태를 요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책 제목대로 [쾌적하게 사는 법]을 따르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보다 맨션이 중요한 속물로 볼수도 있지만, 아무런 경제적 준비 없이 아이를 키울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여 그의 선택에 무조건적인 비판만을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 역시 이 사건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슈헤이는 그토록 바라던 차기작인 [쾌적하게 연해하는 법]에 대한 기획을 과감히 거절한다. 쾌적한 삶, 쾌적한 연애.. 누구나 원하는 것일지 몰라도, 현실은 절대 그럴수 없음을 그 역시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
어쨋든 남편에게 낙태를 요구받고 겉으로는 태연한척 하지만 절망에 빠져버린 나쓰키 가나미, 그토록 아이를 원하지만 임신이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도다 마이코, 그리고 자신이 끝내 지킬수 없었던 어린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가나미에게 깃드는 K.N. 이 세명의 여인뿐 아니라 이소가이가 정신과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속의 여인까지.. 4명의 여인의 이야기가 좀 더 길었으면 좋았을텐데.. 나의 아쉬움과는 달리, 다카노 가즈아키는 중절이라는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우리에게 질문을 한다. 21주가 되기 전에 태아는 과연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편의에 따라 중절을 해도 무방한 것인가?
하나의 몸에 두개의 영혼이 깃든.. 슈헤이의 눈에는 빙의이고, 정신과 의사인 이소가이의 판단에는 해리성 장애인 그 모습은 과연 무엇이였을까?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귀신이다!! 귀신!! 귀신!!'하다 꼬르륵 기절하겠지만.. ㅎ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내내 '과연 이 것은 무엇인가?' 라고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한 여인을 바라보는 두 남자의 시선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감각을 잡고 있는 작가의 필력때문이 아니였을까? 이런 책은 역시 여름에 제격이다. 정말이지 한 여름 더위를 잠시나마 잊고 책속에 빠져있었던 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