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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 지구인이 알아야 할 인류 문화 이야기 ㅣ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이경덕 지음 / 사계절 / 2013년 9월
평점 :
저 머나먼 우주에 아름다운 고리라는 행성이 있다. 발전된 과학문명을 갖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행성의 자원을 다 소모해버리고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그 오랜 전쟁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갈 행성을 찾게 된다. 그 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여기까지는 보통의 SF영화와 참 비슷하다. 하지만 지구를 정복하려고 하는 다른 외계인들과 다르게 그들은 평화를 원하고 지구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을 파견하여 지구인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가 담겨져 있는 책 [어느 외계인의 인류학 보고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르요론트 부족은 19세기까지도 석기시대의 문화를 유지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그들에게 다가가고 예배에 참여하는 여성들에게 쇠도끼를 선물하면서 부족의 질서와 문화 그리고 풍습이 무너지게 되고, 평화마저 붕괴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고리의 외계인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 역시 지구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어쩌면 서구중심 문화의 영향으로, 우리는 문화를 발전이나 진화와 같은 원리로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전의 기준은 다양하고.. 문화는 서로 교류하고 주고받으며 변화해온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런 문화상대주의를 위트있게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문화상대주의는 그 자체가 절대주의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단순히 종교가 혹은 그들의 문화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구조주의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회를 관찰해보면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자연환경이 척박하여 인구의 극격한 증가를 막아야 했던 지역에서는 일처다부제, 전쟁이 자주 벌어져 남자들이 많이 죽던 지역은 공동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일부다처제가 유지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나 이슬람의 돼지혐오를 단순히 교리의 차이로 바라보지 않고.. 그들의 자연환경과 공동체유지를 위한 측면으로 보니 상당히 합리적이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종교적 장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 인류학을 이토록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 있을까?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 문명 뿐 아니라 언어의 상징성, 젠더, 성인식, 놀이, 종교, 정치, 경제.. 정말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면서도 지식과 재미를 놓치지 않고 있다. 거기다 어떻게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지구의 미래가 아름다운 고리의 그것과 같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