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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하구나?
와타야 리사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불쌍하구나?> 원제목 역시 かわいそうだね?. 처음 책 제목을 봤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정말이지 ‘?’가 포인트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종조사 ‘ね’에서 오는 어감까지 느껴진다고 할까? 일본소설들을 보다 보면 정말이지 제목을 너무 절묘하게 잘 짓는다는 느낌을 받곤 하는데 이 책이 가장 그러하다.
열아홉 나이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해 천재작가라는 평을 받았던 와타야 리사가 10년만의 귀환을 알리는 <불쌍하구나?>와 <아미는 미인>을 갖고 돌아왔다. 여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묘한 심리를 잘 그려낸 <아미는 미인>도 재미있었지만 아무래도 한때의 나를 보는 듯한 <불쌍하구나?>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남자친구 류다이가 전 애인 아키요와 함께 사는 것을 이해하려고 미국에서 왔으니까 라는 핑계까지 찾아 냈던 쥬리에처럼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앞에서, 신기루 같기만 한 미래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수없이 양보하고,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아무리 힘들고 내 마음이 아무리 다쳐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러하다.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항상 그 이상을 당연하게 요구하며 내가 부족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글로벌한 감각을 익혀 그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되기 위해 미국의 문화에 대해 조사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쥬리에 역시 그런 함정에 빠지고 만다. 그런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 어떤 문화권이라도 사랑은 둘이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서양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그리스 신화 속의 헤라가 질투가 심한 가정의 여신이 되었겠는가?
정말 수없이 ‘불쌍하구나?’를 되내이며 그녀에게 공감하게 하던 쥬리에였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바뀌면서 신나게 응원을 하며 읽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용기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실을 받아들이는게 참 힘들었다. 너무나 추한 진실을 어떻게든 달콤하게 포장하려고 노력하기만 했기에 그 상처를 이겨내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쥬리에에게 정말 잘 하고 있다고.. 정말 잘했다고.. 그렇게 칭찬해주고 싶었다.
[굿바이, 착한 여자]에 참여하게 되어 책과 함께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초콜릿 그리고 강렬한 버건디 색상의 매니큐어를 받게 되었다. 사실 나는 진한색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왠지 이 책을 읽고나니 그 색상에 끌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번에 샵에 갈때는 이 매니큐어를 들고 가봐야 겠다. 그러면 “아키요가 불쌍하지도 않아”라고 큰 소리를 치던 류다이에게 “사랑을 할라 카면 좀 지대로 해라. 니가 쬐매만 더 정신 차렸어도 이렇게 힘들 일은 없어다 아이가? 결국 가시나 둘만 울고 자빠지게 됐네.”라고 일갈하던 쥬리에를 조금은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