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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 - 조던 메크너의 게임 개발일지 1985~1993
조던 메크너 지음, 장희재 옮김, 조기현 감수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처음 컴퓨터를 접한 게 1980년대 중반이었다. 대우전자 개발팀에 계시던 막내 이모부의 영향으로 IQ1000이라는 컴퓨터를 갖게 되고, 그때 대우전자에서 해주던 컴퓨터 수업도 받았었다. 요즘과는 참 다르게 베이직이나 도스 같은 컴퓨터 언어를 배웠었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게임에 열광했었다. 뭐랄까.. 신세계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여러 가지 게임을 즐겨 했지만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심시티도와 워크래프트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자이다. 이국적인 풍경과 음악 그리고 캐릭터의 부드러운 움직임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운 트릭과 그림자의 등장이 놀라웠고, 거기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게임이었다.
이번에 읽게 된 <페르시아의 왕자>는 내가 그렇게 열광했던 게임 개발일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게임 개발일지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페르시아의 왕자를 개발한 조던 메크너의 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뭐 “차를 샀다”, “아파트를 빌렸다” 처럼 정말 짤막한 글과 함께 지나가는 하루도 있었지만, 자신의 꿈인 시나리오 작가의 길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는 젊은 시절의 그를 만날 수도 있었다. 예일대 재학시절에 만들어낸 ‘카라테카’가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는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던 조던 메크너는 졸업 후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게임’이라는 조금은 막연한 아이디어를 갖고 게임업계에 뛰어들게 된다.
혼자서 게임개발의 거의 전 과정을 담당했기에, 이 책에는 작업물 스케치, 그 속에 담겨 있는 메모들, 부드러운 액션을 위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아낸 사진 등 정말 다양한 자료들이 눈길을 끈다. 어쩌면 요즘 세상에는 너무 구식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에 페르시아의 왕자가 불러온 센세이션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중간에 잠시 각본작업 때문에 6개월 정도 손을 놓을 때도 있었지만, 긴 시간 동안 그가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그의 재능은 정말 놀라웠다.
특히, 게임을 개발하며 그가 신경 썼던 포인트가 기억에 남는다. 게임을 시작할 때는 스토리가 전부이지만 막바지에 다르면 게임 경험이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실 그런 면은 요즘의 게임에서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때 내가 즐겨 하던 방대한 콘텐트와 세계관을 자랑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만 봐도 사람들의 소비속도가 놀랍게 빠르게 때문에 단순히 컨텐츠의 질과 양으로만 승부를 볼 수 가 없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진행해야 하는 레이드 던전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그러한 면을 정확하게 공략하고 있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