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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함께 사는 법 - 오늘을 살리는 과거 청산의 현대사
김지방 지음 / 이야기나무 / 2013년 10월
평점 :
역사와 정치가 강요한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적과 함께 사는 법> 현대사 속에서 시도된 여러 나라의 과거 청산 작업을 담고 있는 이 책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갈등 청산, 캄보디아의 좌파 독재 청산, 아르헨티나의 우파 군사정권 청산, 프랑스의 제2차세계대전 나치 부역자 청산, 미국의 흑인 차별 역사 청산, 한국의 여수 순천사건에 관하여, 한국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하여로 이루어져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이러한 일들이 현대사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했고, 또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 마음 아프기도 했다. 문제는 과거 청산이라는 것이 그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단순한 이분법인 접근으로만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오늘을 살리는 과거청산의 현대사’로 이러한 사례들을 정리한 김지방님은 과거청산을 기억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을 기억해야 할지? 누구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해야 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과거 청산의 토론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그저 과거청산이라는 기념물을 세우는 것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킬링필드로 더 유명한 캄보디아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을 보면 악명 높은 고문이 자행된 구금시설인 S-21의 관리자인 두크에게 모든 화살이 쏟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역시 그저 일상처럼 이루어지던 S-21에서의 작업을 관리한 감독관중에 하나 일뿐이다. 캄보디아에서 대량학살이 이루어지게 한 그런 명령을 내린 수뇌부들은 국제정세에 흐름 속에서 흩어져버렸다. 나에게 두크는 그저 과거청산의 기념물 중에 하나 일뿐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의 과거청산 속에서 카뮈와 모리아크의 논쟁을 접하다 보면 과거청산이라는 게 과연 어떠한 기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어린 아기들마저 이념의 희생양처럼 그 누구도 모르게 다른 집으로 입양시키는 모습은 인간의 잔혹함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라푼젤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사람들은 뒤늦게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진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희생자중에 한 명은 동화 속 라푼젤은 자신의 부모를 만나고 기뻐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미 그들의 부모들은 실종된 지 오래되었고 그들의 유해만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종자의 할머니들이 진상규명과 처벌을 요구하며 아르헨티나에서 벌인 시위는 아르헨티나의 내부의 움직임과 세계의 관심뿐 아니라 과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부모 유전자 검증’이라는 기술을 개발하여 수많은 라푼젤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받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나갈지 걱정이기도 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광주 트라우마 센터’를 설립한 강용주님은 이제는 인간의 고통에 중심을 두는 피해자의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과거 청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생각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아픔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그들에게 사죄 없는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참 부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