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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
강창래 지음 / 알마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막연히 책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한 <책의 정신> 하지만 이 책은 좀 달랐다는 느낌이 든다. 보통 책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읽고 싶은 책에 대한 목록이 잔뜩 생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내가 그 동안 읽었던 책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나의 지식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정말이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책이란 무엇인가,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책에 담긴 내용인 '생각'의 정체는 무엇인가”를 담고 있는 메타북인 <책의 정신>은 다섯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있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포르노소설과 프랑스대혁명,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라는 질문으로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를 전개한다. 그리고 책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포포르노그래피하면 아무래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전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던 책이 무엇인가를 고찰해보면 또 다른 생각이 든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사회계약론>으로 프랑스 혁명의 예언자로까지 추앙 받던 장 자크 루소의 당시 대표작은 <신 엘로이즈>라는 연애소설이라는 것이다. 1761년 출간되어 40년 동안 115쇄를 찍은 반면 <사회계약론>은 출간된 후 딱 한번 더 찍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어떤 책이 사람들에게 읽혀왔는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거기다 루소가 “한 손으로 읽는 소설”이라고 말한 <계몽사상가 테레즈>는 철학적 포르노그래피의 전형으로 프랑스 대 혁명 이전의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뭐 엉뚱한 생각일지 몰라도, 문득 숙종시절 서포 김만중이 지은 고대소설 ‘사씨남정기’가 떠올랐다. 인현왕후를 폐위시키고 장희빈을 중전으로 삼은 숙종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조선 사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하고 결국 두 여인의 운명을 바꾸었는데, 이는 두 여인으로 대변되던 그 당시의 정국을 바꿔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포르노그래피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통속적인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권력에 대한 은유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흥미롭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역사상 가장 덜 팔린 책으로 꼽히는 책은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고 한다. 정말 극단적으로 어려운 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금서로 지정되기 전까지 교황청에서는 대단히 훌륭한 책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조차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참고해왔기에 그런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또한 고전중의 고전이라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명>, <논어>, <성경>역시 비슷한 문제가 있다. 이 책들은 제자들이 스승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인데, 역시나 자신의 필요에 따라 혹은 사회의 흐름에 따라 그 해석과 평가가 달라지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아이작 뉴턴은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어떤 거인의 어깨를 빌리고 있는지 좀 더 알게 되었고, 알아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해주었다. 다음 권은 좀 더 한국적인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고 하니 더욱더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