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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미술관 - 예술의 규범과 질서를 파괴한 70점의 작품 ㅣ 시그마북스 미술관 시리즈
엘레아 보슈롱 외 지음, 박선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미국에서 유학중인 친구의 집에서 반년 정도 머물던 시절, 옆집에 동성
커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상당히 무덤덤하게 행동하던 동양에서 온 여자아이를 도리어 신기하게
여길 정도였는데, 그때뿐 아니라 여행 중이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동성 커플을 만났을 때 나는 거부감이나
호기심으로 무장한 채 그들을 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스캔들
미술관>의 표지를 보자마자 꽤 충격을 받아 도대체 어떠한 차이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스캔들 미술관>은
격렬한 논쟁의 역사를 지닌 70점의 예술작품을 골라 설명해주는데, 여기에는
잘 알려진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프란시스코
고아의 <옷을 입은 마하> <옷을 벗은 마하>,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같은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삭 줍는 여인들>을 볼 때면 늘 무거운 평화로움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곤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작품이 그려지던 시기의
시대상을 이해하면서 그 고요함 속에 감춰진 혁명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의 작품 블루 노지즈의 <키스하는 경찰관>은 내가 갖고 있는 어른스러움 혹은 가식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주었다.
어쩌면 나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고 사랑을 할 뿐이라는 판단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그들이 내 앞에서 성적인 행동을 대놓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성적인 표현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작품을 보니 마치 아닌 척 누르고 있었던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몰랐던 나의 금기들을 알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에도시대의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어부 아내의 꿈>을 보게 되었다. <후지산>이나 <가나가와의 파도>같은
그의 힘있는 화폭을 좋아해서인지, 동물성애적 연작 그림중에 하나를 보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경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울레크 쿨리크의 <마지막 금기>를 봤을 때는 눈살을 찌푸리는 수준이 아니라 역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어쩌면
같은 분류에 속할 수 있는 작품을 보면서도 다른 반응을 하는 나를 또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자꾸만 내가 익히 알고 있다고 믿는 내가 아닌 다른 가치판단을 하는 나를 만나게 해준다.
생각해보면 사진이나 실제 작가가 동물로 변신한 공연, 아니면 살아있는
돼지에게 명품 로고를 문신해 박제한 델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싶지도 않은 기형 생물체를
만들어낸 샤오위의 작품에 대부분 심한 거부감을 갖곤 했다. 18세기 말 스페인의 궁정화가였지만 스페인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80장의 판화를 만든 고야의 작품은 어쩌면 더 인간성이 상실된 모습을 그려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이 판화를 봤을 때는 이 안에 담겨 있는 은유에 빠져들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를 갖기는 힘든 것이 아닐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