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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
채한수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평점 :
난세영웅 [亂世英雄]이라 했던가, 하지만 기존의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난세에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출현하기 마련이다.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BC 8세기에서 BC 3세기에 이르는 중국 고대의 변혁시대에 나타난 수많은 학파를 지칭하는 제자백가. 그들이 남긴 교훈적인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해설한 <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는 <장자>, <열자>, <한비자>, <전국책>, <여씨춘추>, <논어>, <묵자>, <맹자>, <회남자>, <안자춘추>를 담고 있다.
항상 장자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는 하지만, 막상 장자에 대한 책을
읽으면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노자와 장자로 이야기되는 도가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간교한 술책을 쓰는 사람이나 그에 어리석게 속아넘어가는 사람을
희화화 하는데 사용되는 조삼모사 [朝三暮四]를 장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또 다른 면이 보였다. 생각해보면 원숭이나 원숭이를 키운 저공은
서로 조금의 손해를 보는 것이 없었다. 어차피 제공되는 도토리는 7개이고
원숭이들이 취하는 도토리 역시 7개인 것은 변함없다. 도리어
처음 제안에 비해 두 번째 제안에 원숭이들이 기꺼워했으니 올바른 선택이지 않겠는가? 장자는 이를 통해
시시비비의 절대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물론 해설에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균형 잡힌 세계라는 '천균(天均)'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여기까지 이해하기에는
나의 인문학적 소양이 얕은 듯 하다. 그 시절에는 자신의 사상을 내세우기 위해 반대학파를 공격하곤 했다고
한다. 장자는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우의적인 비판을 하곤 했는데, 공자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들도 상당히 재미있었는데,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노자와 공자의 이야기는 노장사상의 중요개념이라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것이 인간이 타고나고 그리고 돌아가야 할 이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사실 맹자 하면 맹모 삼천지교 라던지 왕도정치 같은 단편적인 지식들이 떠오른다.
이 책을 읽으며 맹자가 성인으로 추앙 받는 공자에 버금간다 하여 아성[亞聖]이라 불리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일화를 접하면서
그려지는 맹자의 이미지는 매우 현실적이고 적극적이고 상당히 독설가다운 면모를 보인 사상가라는 것이었다. 백성들의
생산력을 착취하여 자신의 영토를 늘리기 위해 전쟁을 일삼던 군주가 흉년에 잠시 선정을 베풀며 자화자찬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과감하게 오십보백보를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속담으로 치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의 수준의 지적이었는데, 맹자에게서 마키아벨리의
행보가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시간으로 따지면 역으로 가야 하는 게 맞겠지만 말이다. 사실 마키아벨리는 서양의 한비자로 이야기되고는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도리어 맹자와의 접점이 많아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