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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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사흘 뒤면 열여덟 살이 되지만 그 생일을 맞이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면 어떨까요?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고 하지만,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 이 삶의 끝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오죽하면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라고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죠. 하지만 <푸른 세계>에 등장하는 나는 너무나 명확하게 그 끝이 보이는 상황에 놓이고 말죠. 그는 통증완화장치에 의지한 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것을 거부하죠. 그리고 세상과 연결된 끈이 희박하고,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위한 그랜드 호텔로 향하게 됩니다.

 작가 소개를 잠깐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그를 잊지 못하게 될 거 같아요. 열네 살에 암선고를 받고, 10여년의 투병생활을 거치며 한 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병원을 떠나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암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간 친구들의 몫까지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요.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갖고 잇는 삶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느껴져서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라는 메시지처럼 말이죠. 저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고, 그렇지 못하는 저를 늘 탓하곤 했어요. 그런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의 혼돈도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하지만 그것도 삶의 일부이고, 그런 혼돈 속에서도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저는 소년이 그랜드호텔에서 만난 체스소녀와 비슷했던 것아 아닌가 합니다. ‘네 똥을 우리에게 가져오지마. 우리 것만으로 충분하니까라고 말하던 소녀 말이죠.

 그랜드 호텔에서는 나름의 규칙이 있고, 그들 사이에서도 세대의 구분이 있어요. 한 세대가 끝나고 곧 소년의 세대가 다가오지만 소년은 다른 결정을 하죠. 자신의 여행을 떠나는 소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응원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 세상에 정답은 없고, 자신의 삶의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소년이 비로서 자신의 혼돈까지 사랑하게 된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다시 그가 돌아오기까지, 짧지만 축제 같았던 시간이 너무나 기억에 남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에서 무엇을 배우기 이전에, 자신을 찾아가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그저 정해진 대로 따라가고, 주어진 일들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일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요. 말 그대로 삶을 깨우치는 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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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문적 글쓰기 아우름 37
박민영 지음 / 샘터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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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터에서 다음 세대와 함께 하는 인문학으로 출간되고 있는 아우름 시리즈의 37번째 이야기는 박민영의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입니다.

책을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욕심에 서평을 작성하고는 하는데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할까요? 그래서 정말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기분에 서평을 그만 작성할까 고민할 때도 많았어요.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게 되네요. 글쓰기를 통해 정돈된 사유가 가능하다, 이 말이 솔직히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카오스 상태에서 질서를 만드는 것이 바로 글쓰기라고 하는데요. 생각이 글로 형상화가 되지 않는 거 같아 답답하지만, 만약 제 머릿속에 생각을 그대로 글로 풀어낼 수 있다면, 정말 책의 표현 그대로 카오스 상태겠지요. 그나마 글쓰기를 통해 고민하고 사유하면서 이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글은 항상 독자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그 것을 의식하고 써야 한다는 이야기에서는 그 동안 저는 지나치게 무모하게 쓰고 싶은대로만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말이죠.

 인터넷에 의존하여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 역시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적당히 짜집기하여 필요한 자료를 만들곤 하는데요. 확실히 그렇게 계획서 같은 것을 작성해서 제출하면 기억에 그렇게 남지 않아요. 아무래도 사유와 연구라는 지적 과정이 무시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더 큰 문제는 바로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들이 과연 가치중립적이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완전히 가치중립적인 자료는 존재할 수 없지만, 그 편향성을 의심하지 않으면 저 역시 그 정보에 되먹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우려를 드러내며 소개한 책이 캐시 오닐의 <대량살상 수학무기>인데요. 저 역시 이 책을 통해 빅데이터라는 단어에 너무나 쉽게 신뢰를 보낼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심을 해야 한다고 서평을 썼던 것이 기억나요. 덕분에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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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 에디션)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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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에세이를 즐겨 읽게 되는 것은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에 읽은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도 책상 가까이 있는 책장에 꼽아 두고, 자주 꺼내보고 싶은 그런 책이랍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해주거든요. 100쇄기념 에디션으로 나왔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는데요. 왜 그 동안 몰랐을까 절로 아쉬울 정도거든요. 하지만 100쇄를 자축하기 위해서인지 예쁜 옷을 입고 나온 책이라 더욱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요. 책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심하던 이야기가 프롤로그로 나오는데요. ‘, 비가 되고 싶다라는 제목도 좋은 것 같아요. 이 책의 표지처럼 온 세상에 행복을 뿌려주는 꽃비라고 할까요?  

 암 투병을 하면서 문학가 그리고 인간 장영희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던 그녀는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기사에 붙은 제목은 신체장애로 천형 같은 삶을 극복하고 일어선 이 시대의 희망의 상징 장영희 교수였는데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목발을 짚고 살아왔지만, 자신에게 괜찮다며 엿을 준 엿장수 아저씨의 말에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선택을 하거든요. 그가 한 말은 낯선 사람이 준 엿을 보고 망설이는 소녀에게 괜찮다고 한 것이라고 말이죠. 결국 인생은 자신이 선택한 대로 흘러가게 되니까 말이죠. 그런 그녀의 삶에 타인이 맘대로 천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 책을 읽는 저 역시 불쾌할 정도였습니다. 책을 읽으며, 얼마나 그녀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가꾸어왔는지를 알았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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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는 게 죽기보다 싫을 때 읽는 책 - 내 마음을 괴롭히는 관계습관 처방전
이시하라 가즈코 지음, 김한결 옮김 / 샘터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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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제가 저 자신에게 놀랐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요. 제가 친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알게 된 것이죠. 혼자 있으면 저도 모르게 사람들과 있었던 시간들을 복기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말했어야 했고, 이렇게 행동했어야 했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저도 의식적으로라도 하고 싶지 않은데도 말이죠. 애써 억누르다 보면, 심지어 꿈에서까지 그 상황을 재생하면서 계속 반성하고 후회하고 심지어 화를 내고 있는 걸 보면서 절로 지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자신이 고안한 자기중심 심리학으로 심리상담을 하고 있는 이시하라 가즈코의 <참는 게 죽기보다 싫을 때 읽는 책>을 읽으면서, 그러한 판단들이 얼마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아무래도 자신의 감정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타인을 살피는 것에 급급하다 보니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거 같아요. 심지어 모두와 잘 지내보고 싶고, 좀 호감 가는 인물이고 싶고 그런 욕심이 더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일은 책의 표현 그대로 인류 화합과 세계 평화를 원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겠죠. 그런 거창한 바람은 어벤져스에게 맡겨두고 저는 좀 편해져야 할 것 같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소중히 여기면, 결국 타인의 것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내 마음이 불편하면, 그 것이 느껴지지 않잖아요. 상대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살피는 기색은 상대도 눈치채기 쉽다는 것이죠. 그럼 그 사람도 저와 있는 것이 불편해질 것이고, 저는 그 불편함에 더욱 예민해지는 것이 당연지사겠지요. 차라리 내 기분이 즐겁고, 편안하다면 그러한 행복이 상대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어요.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보다 집중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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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시 -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정진아 엮음, 임상희 그림 / 나무생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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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은 추억이라는 말을 저도 참 자주 쓰는데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직접 해주신 간단한 음식들조차 똑 같은 재료와 레시피를 사용해서 만들어도 그 때의 맛이 나지 않을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거든요. 음식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시를 소개하는 이 책이 더욱 맛깔스럽게 느껴지는지도 모르죠. 그래서인지 EBS FM [詩 콘서트] 정진아 작가가 시를 모으고 단상을 더하고, 임상희의 그림이 더해진 <맛있는 시>는 읽을수록 더욱 정겨워지는 거 같아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지나가버리고 있다고”,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이 시를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위로를 밥 한 공기에 담아 전해준다는 글이 참 기억에 남아요. 밥상에 앉아도 무심히 지나가기 쉬운 밥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김을 유심히 바라보게 될 것 같네요. 그런 면에서 생각나는 시가 바로 백석의 선우사이네요. 시가 정말 맑다고 할까요? 흰밥과 가재미가 올라온 밥상을 보고 지은 시인데, 그는 그 밥상을 보면서 정답고 미더운 친구처럼 말을 걸더군요. 왜인지 몰라도, 자꾸만 다시 보게 되는 시이기도 했네요. 읽을 때마다 흰밥처럼 따듯하고 선한 마음이 번져 나오는 듯 해서요.

 "그러지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황인숙의 칼로 사과를 먹다를 읽으며, 처음으로 알았네요. 엄마가 칼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시기는 했었지만, 왜인지는 몰랐거든요. 시를 읽다보면, 예전에 즐겨 듣던 조관우의 모래성이라는 노래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느낌이 들더군요. ‘괜찮아요 나도 예전엔 누구의 마음 아프게 한 적 많았죠하던 그 노랫말이 말이죠. 그리고 나희덕의 허락된 과식’, 장마끝에 쨍하게 뜬 햇빛을 노래했는데요. 요즘 같으면 뭐처럼 맑은 공기가 될까요?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던 자연의 혜택이 이제는 너무나 귀하게만 느껴지는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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