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저항의 한 방식, 페멘
페멘 지음, 갈리아 아케르망 엮음, 김수진 옮김 / 디오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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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여성학 수업을 들었을 때, 여성들의 위치를 가정이라고 외치던 사회가 여성에게 일을 하라고 이야기 하게 된 계기가 바로 전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참전을 위해 떠난 남성들의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은 여성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면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진출과 자아실현 그리고 독립적인 삶을 꿈꾸던 여성들은 그런 사람들의 기대를 따르지 않았다. 물론 유리천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는 있기는 하지만, 일단 여성의 사회진출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현대사회에서 페멘이라는 급진적 성향의 여성인권단체가 등장했다는 것이 내심 놀랍기도 했다.

극도의 제약이 있던 시대의 여성들은 여성성을 제거한 남성의 모습을 차용하면서 자신을 증명하고자 했다면, ‘페멘은 꽃다발을 머리에 쓰고 가슴을 드러내고 자신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보여준다. 상당히 정치적인 행보을 보이기도 하고, 가부장제를 묵인해온 때로는 그것을 은연중에 장려해온 보수적인 종교나 여성의 인권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이슬람 사회에 대한 저항운동도 진행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멘을 이끄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4명의 여성의 인터뷰로 시작되는 이 책은 그들이 어떻게 저항운동을 펼쳐왔는지를 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냈다.

사실 페멘운동이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푸틴이 한번 우크라이나를 방문할때마다 우크라이나가 흔들린다는 등의 이유로 푸틴에게 항의를 하는 사진을 보자, 전에 기사를 통해 그 장면을 봤던 기억이 난다. 동영상으로 봤던 푸틴의 대응은 상당히 조롱조였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그 사건 이후에 푸틴이 기자회견을 통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멍청한 행동”, “정치적 문제에 대해 의논하길 원한다면 옷을 입는 게 나을 것이다라는 식의 평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득 이것이 페멘이 갖고 있는 딜레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서는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퍼포먼스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자칫하면 그들의 목소리가 아닌 퍼포먼스만이 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여성임을 부정하듯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슴을 동여매고 신사복을 입었던 여성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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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시크릿 - 힉스입자에서 빅뱅 우주론까지
아오노 유리 지음, 김경원 옮김 / 북뱅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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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라고 하는 힉스 입자의 존재를 처음 예측한 공로로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피터 힉스와 프랑수와 앙글레르에 대한 신문기사를 접했을 때, 내 머릿속에는 힉스입자가 뭐야?’라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질량의 근원과 우주 생성의 비밀을 설명해줄 입자라고 하는데, 대충이라도 어떤 것이라는 가늠이 전혀 되지 않았다. 언젠가 읽은 칼럼에서 자신의 지적 수준은 고등학교 때 멈춰서 꾸준히 감퇴하는 중이라는 한탄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과학잡지 뉴턴에 열광하던 어린 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신문기사조차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수준이다. ‘일본 최고의 과학전문기자아오노 유리가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주의 비밀을 풀어서 설명해준다는 <코스모스 시크릿>을 만나고, 뒤쳐진 지식을 채워놓고자 책을 읽었지만 생각만큼 만만하지가 않다. 아무래도 현대 물리학 특히 소립자론과 우주론에 대한 나의 배경지식은 중학생 수준도 안되는가보다.

재미있는 것은 힉스 입자라고 생각해도 모순이 없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라는 발표내용이었다. 상당히 애매한 내용이 아닌가? 그래서 힉스입자의 발견을 기존의 물리학의 체계였던 표준이론의 마지막 퍼즐조각이 아닌 그 것을 뛰어넘어 우주의 진리로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21세기는 새로운 물리학의 태동의 시기로 바라보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지금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자연은 인간이 발견한 사실을 기뻐하기도 전에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엑스파일이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늘 나왔던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에 있다는 말처럼 말이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한의 단위라고 생각한 원자에서 이제는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입자를 소립자라고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최소한의 단위가 존재한다고 예측했던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이 증명되기까지 정말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소립자는 쿼크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그 이름을 명명한 겔만은 쿼크를 제임스 조이스 소설 피네간의 경야에서 따왔다고 한다. ‘무의식의 흐름이라는 독특한 기법과 주해를 읽어도 이해가 안간다는 평을 받는 작품에서 따온 것이 참 타당하게 느껴질 정도로 물리학은 상당히 예견적인 면이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물리학의 예측이 찰나적인 발상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이론가’ ‘실험가관측가로 분류하는데, 노벨상을 수상한 힉스박사나 최소한의 단위가 있음을 예견했던 데모크리토스 같은 사람들을 이론가라고 한다. 힉스입자는 만물에 질량을 부여하는 소립자이다. 그 이전에 대칭성의 자발적 깨짐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는 학자들이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파티나 빨래 너는 과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감이 오기는 했다. 그리고 힉스입자가 어떻게 질량을 부여하는지 역시 파티회장을 통한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힉스입자가 무엇인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그러한 예측과 발견이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해왔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맛이기도 했다. 확실히 주골격을 이루는 내용이 조금 난해해서인지, 사족처럼 따라오는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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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파이트 - 애플과 구글, 전쟁의 내막과 혁명의 청사진
프레드 보겔스타인 지음, 김고명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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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때로는 막장드라마 같은 내용에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드라마는 가정법원에 접수된 사건을 재구성해서 만든다고 한다. 때로는 도리어 완화시켜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이야기에 당황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때로는 사람들이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보다 더 심할 때가 있기는 한가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기술과 미디어 산업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기자 프레드 보겔스타인이 20여 년간의 취재를 거쳐 집필한 <도그파이트>때문이다. 애플과 구글의 전쟁, 우리나라에서는 애플과 삼성간의 특허논쟁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싸움은 말 그대로 도그파이트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프로젝트의 초창기부터 지금의 벌이고 있는 전쟁의 내막을 재구성하기 위해 수많은 관계자들과의 인터뷰가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세상을 바꿀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역시 현장감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제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은 제대로 작동하는 것처럼보이는 황금경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아이폰 프로젝트를 달탐사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직도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많은 사람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그 것이다. 프레젠테이션 강의를 듣다 보면 당당하게 뻔뻔해져라 라는 식의 말을 듣는데, 딱 스티브 잡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어쨌든 우리의 손안에 아이폰이라는 것을 쥐어준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 언제 어디서나 손안에 컴퓨터를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을 만들어준 아이폰은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이 전에 세상을 바꾸었다고 평가되는 컴퓨터 그리고 휴대폰에 대한 인식마저 새롭게 정립하게 만든 것 또한 아이폰과 아이패드이다. 그래서일까? 한때는 마이크로 소프트를 상대로 협력관계에 있었던 애플과 구글은 이제는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맞대결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이것을 단순히 어떠한 기계가 시장을 점유하느냐의 수준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기업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기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온라인 상점, 커뮤니티, 클라우드 같은 것의 지배권을 누가 갖느냐가 달려 있다.

마치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로 독점적인 위치를 점유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플랫폼을 선점할 수 있느냐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어느 쪽이 승리자가 될 것인가 점쳐보고, 미래사회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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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 지친 영혼을 위한 여유로운 삶
피에르 쌍소 지음, 강주헌 옮김 / 공명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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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만난 것은 법정스님의 책에서였다. 10년도 더 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어렵다고 할까? 현학적이라고 할까? 그런 인상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번역되어 읽게 되니 조금 다른 기분이 든다.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라는 제목의 변화처럼 번역의 차이도 있겠지만, 거기에 내가 그때보다는 조금 성장하고 생각의 깊이가 조금 더 생겨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니 나름 뿌듯하기도 하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나이 들어서 읽다 보면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그 궤적이 어렴풋이 그려질 때가 있다. 이 책도 나에게 그런 경험을 선사해주었다.

한국 문화를 빨리빨리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서구 따라잡기에 열중한 한국은 빠르게 근대화를 이루었고, 그 속도는 아직도 한국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문화권보다도 더욱 느리다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자가 찾아본 외국어 사전에서도 느림이라는 것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식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프랑스의 수필가이자 철학교수인 피에르 쌍소는 왜 느림의 의미를 찾아보자고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법정스님이나 이해인수녀님은 왜 그의 책에 찬사를 보내는 것일까?

그는 느림을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정해진 시간을 앞당기지 말고, 시간에 쫓겨 허둥대지도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마치 노래의 한 구절처럼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순간을 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막상 살다 보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시간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표지에 나온 시계가 다시 한번 떠오르고, 문득 꽃을 수놔서 시계로 만들어 엄마께 드렸던 기억도 났다. 엄마는 딸 덕분에 향기로운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며 기뻐하셨는데, 나에게도 그런 시계가 생긴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느림은 또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온다. 느림의 어원을 따져보면 탄력적이고 유연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lentuer’이라고 한다. 이 말을 읽었을 때, 문득 책에서 묘사된 지중해의 손이 거친 남자가 포도주를 한 잔 마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주변 사람들과 주변 환경과 화목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만족하며 그 어떤 말도 필요 없다고 느낀다. 어쩌면 느림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것, 그렇게 변화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고 나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느림과 익숙하지 않다. 빠르게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습관을 만들기 위한 전략을 세우니 말이다. 이 책은 나에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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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에 베이다 - 당신과 내가 책을 꺼내드는 순간
이로 지음, 박진영 사진 / 이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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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애하는 목록을 나열하는 서교동 책방 주인 이로 <책 등에 베이다>는 책장도 아니고 책 등에 베일 수 있나? 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어서인지 처음부터 서먹서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서문 몇 페이지를 읽자마자 나 역시 그랬었다는 기억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책 등에 베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 쓰고 어른이 엮어 어른이 읽는 책이 꼽힌 아버지의 책장, 삼촌의 책장의 책 등을 보며 그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이나 외설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제목들을 보던 이로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할아버지와 아빠의 서재의 책들을 보며 뜻을 모르면서도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자부심에 휩싸이곤 했었다. 열어보지 말라고 하시던 유리창이 있는 서재에 있는 책들도 어렴풋이 생각나기도 한다. 좀 더 커서는 슬쩍 꺼내보기도 했지만……

내 느낌대로 말하자면, 그 후로도 수없이 책 등에 베였던 거 같다. 마치 숨겨진 보물 같은 책도 있었지만, 때로는 나를 화나게 했던 책도 많다. 수많은 지명 속에서 동글동글한 이미지가 떠올라 선택했다는 필명 이로처럼 어떻게 보면 두서 없어 보이지만 독특한 자유로움이 느껴져서 마음에 들었다. 그가 소개하는 책들은 어쩔 때는 단순히 말을 꺼내기 위한 구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자신의 시선으로 책에게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주는 듯 한 느낌도 들었다.

아직도 생각나는 책은 바로 <조선 기술>이다. 처음에 목록에서 보았을 때 조선시대의 기술을 다룬 책인가 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다. ‘대한조선학회 편이라는 말도 내 예상에 근거가 되어주는 듯 했지만, 배를 설계하고 만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는 척 하듯 배에 대해서 말을 꺼내면서도 실제로는 열심히 읽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휴가 중일 뿐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책을 읽을 때 그런 여유로움이 없었던 거 같다. 아주 속물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지식이나 가치를 줄 것인가에 집중했다고 할까?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으며 나는 왜 이런 부분들을 깨닫지 못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이런 내 자세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로라는 사람이 책을 읽어가는 과정을 보며 나는 마치 공부를 하듯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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