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이펙트 -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냉철하고 뜨거운 분석 10 그레이트 이펙트 9
프랜시스 윈 지음, 김민웅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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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활동에 인간의 노동이 아닌 기계의 힘이 더해지고 제조업의 생산과정이 자동화되기 시작했을때, ‘여가의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책이 출판되었다고 한다. 아마 지금의 사람들이 그 책을 본다면 이게 무슨 꿈 같은 소리냐며 웃었을 것이다. 자동화시대가 열렸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에게 여가의 시대는 주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한 정치인은 저녁이 있는 삶을 가진 나라가 자신의 꿈이라며 출사표를 던지는 세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절대 잊혀질 수 없게 된 인물.. 카를 마르크스이다. 그는 자본주의 생산의 목표는 노동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현대사회 노동시장의 부조리를 이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마르크스는 부루주아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은 폭로가 될 6권의 책을 발표하려고 했다고 한다.  20여년 동안 준비해왔던 그는 단 한권의 책을 자신의 손으로 발표했을 뿐이고 나머지는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한권의 책만으로도 엄청난 반향과 논란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자본론 이펙트>자본론에 대한 해설서라기보다는 차라리 자본론이 있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고 할까? 아니면 카를 마르크스의 일대기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더 강한 책이긴 하다. 엥겔스는 자본론이 완성되지 못할 구실로 마르크스 내세운 수많은 변명들에 대해 한탄의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 과정을 보면 도리어 엥겔스의 무한한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수준이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미지의 걸작이라는 작품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현실에 대한 완벽한 재현을 위해 노력했던 예술가의 이야기였는데, 이 작품의 딜레마는 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줬던 가장 예술적인 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자본론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1권 외에는 원본텍스트가 존재하지 않고 논쟁의 여지가 충분한 책이긴 하지만,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것은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자본론이 어떻게 집필되어 왔는지, 자본론의 저자인 마르크스가 아닌 마르크스의 역작인 자본론을 바라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사실 약간은 말장난처럼 느껴졌던 주체와 객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대한 것을 ‘(이전의 군주체제에서는) 왕이 법을 만들고, (새로운 군주체제에서는) 법이 왕을 만든다.’라는 마르크스의 메모를 통해 배우게 되었는데, 이런 관점의 차이가 생각보다 더 큰 사고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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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경제학 - 경제학은 어떻게 인간과 예술을 움직이는가?
문소영 지음 / 이다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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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화로 경제사를 읽어나가는 책 <그림 속 경제학> 꽤 어려운 접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고, 멋진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그림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읽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뭐랄까? ‘경제학하면 좀 어렵게 느껴지지만, 세상의 변화를 화폭에 담아낸 미술가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으로 접근하면 쉽게 다가오는 책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아르마다 초상화는 꽤 유명한 그림 중에 하나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세계사 교과서에도 실려있었던 거 같다. 이 그림에는 화려한 진주로 장식한 당당한 자태의 엘리자베 1세의 모습뿐 아니라 배경이 되는 창 2개와 여왕의 손이 올려진 지구본을 다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무적함대를 물리친 장면들이 묘사된 창밖 풍경과 신대륙을 덮고 있는 손은 영국의 위상이 어느정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또한, 산업혁명과 시민혁명 그리고 그로 인해 구현된 19세기 소비의 민주화 같은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그림으로 잘 설명되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바로 귀스타브 쿠르베와 장 프랑수아 밀레이다. 사실 나도 그림을 볼때면 좀 이상화된 모습을 선호했었다. ‘퐁파두르 후작부인같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 시대의 여성의 모습이라던지, 책을 읽으며 보니 도저히 양치기 소녀라고 할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하는 낮잠 훼방 놓기처럼 아름답고 화사한 그리고 귀족적인 그림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밀레의 이삭줍는 사람들양치기 소녀같은 작품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어쩌면 나의 그런 선호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딪치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그림으로까지 만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 아닐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귀스타브 쿠르베는 내게 천사를 보여줘. 그래야 천사를 그리지라는 말을 던졌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과연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쿠르베의 그림은 정말 사실적이다. ‘돌깨는 사람들은 힘든 노동의 강도와 어린 아이까지 일을 거들어야 생계가 유지되는 그 시대가 그대로 녹아있었다. 지극히 사실적인 시서을 유지했던 쿠르베와 달리 밀레의 그림에는 비참한 현실과 함께 서정성인 감성들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을 보다보면 문득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떠오른다. 그는 4,5세의 어린이들이 작은 몸집을 이용하여 굴뚝청소부를 해야 하는 영국의 현실을 시로 그려냈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시속에 담겨있는 불편한 현실이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사실 밀레의 그림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조금은 지루하게 느끼기도 했는데, 그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는 밀레의 작품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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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들
교황 프란치스코 지음, 성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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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프란치스코가 추기경으로 재직당시에 언론인들과 2년에 걸쳐 나눈 대담을 담은 책 <교황 프라니스코>를 읽은 적이 있다. 이번에는 그가 교황직을 시작한 2013년 3월부터의 연설과 설교를 만날 수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 가슴속에서 우러나온 말들>을 읽게 되었다. 두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라면, 참 일관된 분이라는 것이다. 추기경 시절에도 교황이 되어서도 그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목자이고 인간적이고 소탈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만약 나에게 교황 프란치스코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낱말을 꼽으라면 ‘상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는 것이 어려워진 세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 깊은 의미에서 '집'이라는 낱말은 그야말로 가족적인 냄새를 풍깁니다. 가정에서 겪어볼 수 있는 따스함, 정, 사랑을 일깨우는 낱말입니다. 그래서 집은 가장 소중한 인간적 부를 대표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나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역사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만남,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관계를 표현합니다. 그렇게 다르면서도 함께 살고, 서로 성장하도록 함께 돕는 사람들의 만남입니다. 31p

 

이 글을 보면서 과연 나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집을 정말 아주 협소하게 생각한다. 나 아니면 나와 남편. 하지만 남편은 나보다는 더 넓은 집을 갖고 있다. 이기적인 내가 문제라고도 생각했지만, 결혼을 했음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시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을 다 챙기려고 하는 남편이 불만스러울 때도 있었다. 때로는 그런 문제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나는 집이 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행복마저도 내 마음대로 재단하려고 노력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가 편한 것, 내가 좋은 것만 생각했지, 이제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된 많은 사람들과의 어울림과 그 속에서의 성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일상의 본분에, 공부에, 일에, 친구관계에,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몰두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는 생애의 이 소중한 한 해,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아는 데 달렸습니다. 투신을 무서워하지 말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미래를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희망을 생생하게 간직하십시오! 지평선에는 늘 빛이 있습니다. 60p

 

사실 청년들에게 전하는 말이긴 했지만, 뭐 나도 아직 청년아닌가? 라는 자아도취를 가슴에 안고 마음에 담고 싶은 글이다. 학창시절에는 조안리의 책을 읽고 ‘삶에는 더 넓은 지평이 있다’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은 ‘지평선에는 늘 빛이 있습니다’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어렸을때는 뭐든지 할 수 있을줄 알았고, 내가 꿈꾸는 것은 다 현실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어느정도 나이를 먹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나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면 그 끝에 빛이 있기를 믿고 싶은 것 같다.

 

무엇보다 여러분이 전수하는 바를 여러분의 삶으로 입증하는 증인이 되십시오. 112p

 

교육자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글의 일부인데, 이 구절을 읽자 LA다저스의 커쇼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은 신앙을 대놓고 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신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것을 안다며 기독교인이 어떻게 사는가를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로도 많은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다른 사람 집의 초인종을 눌러 선교를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스스로가 증인이 되는 방법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나 역시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곤 한다. 내 나름으로는 상대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상대가 들을때는 주제넘은 간섭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잔소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도리어 내가 내 삶으로 입증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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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법정에 서다 - 신화와 환상에 가려진 석굴암의 맨얼굴을 찾아서
성낙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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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석굴암에 대한 환상적인 이야기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동해에 해가 떠오르면 그 햇살이 토함산에 자리잡은 석굴암 본존불의 이마에 있는 보석에 비친다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심지어 그 보석은 일본인들이 훔쳐갔다는 이야기로 곁다리로 따라오곤 했다. 그래서 지금의 석굴암은 신라인들이 설계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고, 복원과정에서 신라시대의 기술과 절묘한 구조를 재현하지 못해 습기가 차서 유리벽안으로 갇히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도 줄줄이 나오곤 했다.

그런데 석굴암과 동해의 햇살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를 만나게 되었다. 석굴암을 소재로 한 소설을 기획하다 석굴암은 원래 개방식 구조였다던지 햇빛이 들어오는 광창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기존 학계의 인식의 의문을 품고 석굴암에 대해서 20여 년간 연구를 해온 성낙주이다. 그는 <석굴암, 법정에 서다>를 통해서 우리가 석굴암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동해의 햇살에 대한 것이 얼마나 왜곡된 시선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고 인공석굴사원으로서 석굴암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예루살렘에 간 예수가 물건을 파고 사는 사람들로 엉망이 된 성전의 앞에서 "이것들을 치우시오. 내 아버지의 집을 저잣거리로 만들지 마시오."라고 말했었다. 석굴암이 원래 개방식 구조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불교성전인 석굴암을 저잣거리로 만들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는 것이다. 종교성전은 동서를 막론하고 세속적인 공간에서 분리된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런데 석실을 노출시켜버리면 유일한 인공의 조립식 석굴사원인 석굴암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일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문제는 바로 파손되어 석실자체가 노출되었던 석굴암을 복원하는데 조선총독부가 앞장서면서 시작되었다. 거대한 암벽을 파고 들어가 불상을 봉인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신라시대의 예술과 기술이 집약된 석굴암을 본 일본인들은 ‘일본해’에서 떠오르는 ‘야마토의 태양’이 석굴암에 비치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들은 자신의 고유 종교인 신도의 최고신이자 천황의 조상신은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가미가 석굴암에 깃드는 광경을 보는 듯한 감동을 받았고, 그런 이야기들을 기행문이나 감상문에 남겨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도리어 우리 선조들이 남긴 지리지나 문집을 보면 석굴암을 태양과 연결시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과 신라시대 문헌을 보면 태양이 아닌 별과 친근한 정서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다 우주 삼라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본 것은 태양이 아니라 샛별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해볼 때 석굴암과 태양을 연결시키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사람들이 마치 잊혀져 가는 옛날 이야기처럼 알고 있는 그 이야기가 도리어 근대에 만들어진 신화일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조선총독부는 그때 당시를 기준으로 해도 엄청난 거금을 들여 석굴암을 복원하면서 보호시설조차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석굴암의 본존불과 그를 둘러싼 조각들은 동해의 소금안개에 휘감기고 눈비가 들이치는 환경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당시에 찍힌 본존불의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하다 못해 마음이 아리다는 느낌이 든다. 석굴암을 지켜줄 기와 한 장 얹을 수 없었던 시대의 아픔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1960년대에 석굴암 복원공사를 하면서 문화재 관리국은 석실 법당의 안전을 지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하지만 우리 학회는 아직도 일본이 만들어낸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이처럼 조금은 전문적인 이야기를 다 제외하고도, 그냥 상식 선에서의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밀폐구조인가? 개방구조인가? 라는 것이다. 예부터 집이라는 공간은 ‘안전한 은신처’로서 역할 해왔다.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창문을 닫기 바쁘고 제습기를 틀어대면서 본존불을 봉안한 석굴암을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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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 그래픽 평전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3
넬슨 만델라 재단 글, 피노 옮김, 움란도 웨지톰비 그림 / 푸른지식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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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가 세상을 떠난 날, 애도의 글을 남기며 내가 좋아하는 그의 말을 첨부한 기억이 난다.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 싸웠고 또한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반대해 싸웠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두 권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나 자신과의 대화> 타임지 편집장이 그를 취재하며 쓴 <만델라스 웨이>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넬슨 만델라 어록>까지 그에 대한 여러권의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와 기사를 접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의 신념과 삶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넬슨 만델라의 자서전을 만화로 재 탄생시킨 <넬슨 만델라 그래픽 평전> 그는 이 책에 대해서 재미있는 글을 남겨놓았다. 자칭 만화전문가라는 그의 비서실장이 어느 날 만화의 주인공이 되었다면 그것은 아주 유명해졌다는 뜻이라고 설명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만화를 즐겨 읽는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이 만화를 기점으로 좋은 책을 읽는 기쁨으로 발전하길 바란다는 당부였다. 혁명가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도 독서와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부족함을 끊임없이 채워나갔고, 27년 동안 감옥에서 생활하면서도 자신을 잡아들인 사람들의 모든 것을 배우겠다는 의지로 책을 읽고 주위사람들에게 배워나갔던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의 마음가짐은 나의 정신은 이 담을 넘어서 있고, 나의 생각도 이 감방 안에만 머무르지 않을 거야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출소를 한 후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앞장섰던 넬슨만델라는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어떻게 잘 따라잡았냐는 질문에도 독서라는 답을 돌려준다.

그가 성장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악명 높은 흑백 인종분리 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있던 곳이다. 백인의 황금을 캐면서 평생을 살지 말라며 제대로 그를 교육시켜주었던 부족의 배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넬슨 만델라는 한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백인과 컵조차 같은 선반에 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흑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갈 수 있는 지역과 통행시간조차 제한적이었고, 넬슨 만델라는 아프리카 민족회의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재판을 받고 보석으로 풀려날 때조차 아프리카인은 25파운드, 인도인은 100파운드, 백인은 250파운드를 선고받았다.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아닌 피부색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민주주의의 새싹을 틔우기까지 그의 여정을 밀도있게 풀어낸 <넬슨 만델라 그래픽 평전>은 다시 한 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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