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주택 디자인 도감 - 삶을 생각하는 집짓기
이시이 히데키 외 지음, 나지윤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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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집을 지어서 살아본 적도 아니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부모님의 집이 아닌 나의 집을 갖게 되면서, 인테리어를 할때마다 나만의 집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필요에 따라 구성된 공간들이 얼마나 편안하고 또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 조금씩 경험을 하면서 인 것 같다. 특히나 얼마전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면서 을 중심으로 건축을 한 집을 만나게 되었다. 그 집이 니혼tv <슷키리!>지식으로 꽉 찬 집으로 소개되었다고 하여 찾아서 보았는데, 책으로 둘러싸야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이라는 말이 정말 딱 어울린다는 생각과 함께 저런 집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 <새로운 주택 디자인>을 읽으면서, 내내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건축가들은 입지조건과 건축주의 요구를 반영하여 집을 짓고 있었는데, 정말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는 조건들 때문에 탄생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단 하나 뿐인 특별한 집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언젠가는 나도 나의 책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집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상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에서는 다다미방에 둥근 창호를 달고 싶어하는 건축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둥근창호는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창호는 동양적인 느낌이 나는 사각형의 형태로 하되 벽을 둥글게 뚫어서 동그란 햇살이 가득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잘 반영하면서도 풍부한 건축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아름다운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경사가 있는 대지와 인접 도로의 특징을 잘 살려서 주차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독특했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가족들의 시선까지 고려해 외관을 꾸미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흥미로웠다. 특히나 내가 관심있게 본 것은 바로 빛과 바람을 집안으로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지와 집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고민하는 건축가의 노력이었다. 다양한 각도로 햇빛을 끌어들여서 집이라는 공간에 율동감을 만들어내는 것도 재미있었고, 또한 계단을 오르내릴때도 사람들의 시점을 어떻게 다양하게 만들어줄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놀라웠다. 같은 풍경이라 해도 창문의 높이를 달리해서 다양한 전망을 만들어 내는 시도나 마치 한국의 대청마루를 떠올리게 하는 외관을 갖고 있던 전원주택도 기억에 남는다. 이 책의 부제가 바로 삶을 생각하는 집짓기인데, 책을 읽으면서 정말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건축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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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뒤집는 세계사
박홍순 지음 / 르네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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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신화혹은 전설에 대한 담론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가보다 하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믿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시간이 흐르다보면 어느새 객관적 지식처럼 인식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역사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술로 뒤집는 세계사>를 읽으며 우리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정보들 속에도 그런 신화전설같은 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을 읽어서인지, 더욱 이런 의식이 강하게 다가왔는데,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에도 끝없는 업데이트와 함께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면에서 <미술로 뒤집는 세계사>는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술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삶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을 미술작품이라는 프레임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가끔 클래식 음악이 재미있다고 느낄때가 있다. 보통 우리가 듣는 대중음악은 가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노래가 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대체적으로는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클래식은 가사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데, 대신 악기들이 마치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때도 있고, 작곡가가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하는 스토리나 심리상태를 곡의 흐름에 그대로 녹아있음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 이 책에 수록된 미술작품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사실 그림이라는 것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저자인 박홍순의 미술은 가장 진실된 시대의 기록이다라는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이 말의 핵심은 바로 진실이다. 우리는 사실 서구 특히 유럽 중심의 세계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갖고 있는 시선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 안에 숨어있는 편견이나 왜곡을 그대로 수용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갖고 있는 다양한 면모를 부각시키는 장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민주주의는 현대사회에 부적합한가', '왕권 강화는 언제나 선한가', '십자군 전쟁은 과연 종교전쟁인가',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같은 저자가 던지는 여러가지 질문들을 잘 잡고 있다보면 좀 더 풍부하게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또한 역사적 사건들의 숨겨진 면들, 또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들의 실체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현재사회를 좀 더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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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황순종 지음 / 만권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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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지금도 큰 차이는 없겠지만, 우리는 주어진 답 중에 단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에 익숙한 세대이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는 암기를 해야 하고, 거기에는 본질을 탐구하는 라는 질문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역시 한사군의 이름을 기계식으로 암기했었는데, 사료를 바탕으로 검토를 해봐도 한사군의 존재는 상당한 모순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만약 식민사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더라도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짧은 기간 유지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역사공부를 하게 되면 한사군의 명칭을 외우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을 읽다 보니 한사군이라는 것이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장치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과 몇 십 년 유지된 한사군의 지배로 우리가 철기문화를 수용하는 혜택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한민족의 오랜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에 의해 억압하면서 그들의 선진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이었다는 의식을 내재화하게 하는 첫 단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하다. 일본의 역사를 배우다 보면 5세기부터 도래인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로 한반도나 중국대륙에서 넘어간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인데, 그들은 선진문화를 함께 갖고 넘어와 일본사회에 큰 반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거의 300년에 이르는 시기동안 이루어진 일도 그들이 일본 속으로 어떻게 동화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우리의 교육은 확실히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 이유를 바로 식민사관에서 찾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조선시대 역사왜곡을 전담한 조선사 편수회의 일본 사학자와 거기에 동조한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해방 후에도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 주류를 차지하게 되면서, 우리의 역사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집필한 작가의 이력이 상당히 독특하고, 독학으로 역사공부를 해왔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주류에서 비껴나가 있지 않으면,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된 프레임으로 바라보기 힘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식민사관의 계보와 쟁점 별 식민사관 비판이라는 두 줄기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역사시간에 암기했고 지금도 역사적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들 중 상당수를 다시 한번 재검토해봐야 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내년부터 바뀌는 초등학교 5학년 사회가 교과서의 실험본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문제가 되는 것들은 바로 일본 관점에서 서술하는 문항들이었는데, ‘의병의 활약에 놀란 일본은 군대를 늘려 전국의 의병들을 소탕하고자 하였다그리고 일본은 쌀을 수출하는 항구, 교통의 중심지중심으로 도시를 개발하였다라는 식이었다. 만약 이 교과서가 그대로 학생들의 손에 쥐어진다면 아이들은 의병을 소통의 대상으로, 그리고 일본의 쌀 수탈을 수출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아이들도 걱정이지만, 일단 내 역사지식에 대한 점검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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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 본성 대 양육 논쟁의 전환점이 된 일란성쌍둥이에 관한 기록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알마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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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1970년대에 동성애 성향을 바꾸기 위한 실험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실험을 주관한 박사는 성공적인 사례라고 이야기 했었지만, 실제로 실험에 참여해야 했던 남자는 자신의 성정체성과 교육으로 주입된 동성애에 대한 의식 사이에 괴리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읽게 된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브루스와 그의 쌍둥이 동생 브라이언, 그들은 생후 6개월 즈음에 포경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하지만 형 브루스가 수술도중 사고로 성기를 잃게 된다. 그때, 심리적인 성과 유전적인 성은 다를 수 있고, 양육에 의해 남성 혹은 여성적인 기질을 습득하게 된다는 행동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던 머니 박사의 인터뷰를 본 그들의 부모가 연락을 취하게 된다. 머니 박사는 특히나, 성 정체성이 굳어지는 시기를 30개월에서 36개월 사이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쌍둥이 남동생이라는 대조군까지 갖고 있던 브루스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줄 수 있는 완벽한 사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거세수술을 받고 성전환 수술과 함께 여성으로 성장하게 된 브루스, 아니 브렌다는 머니 박사가 집필한 책이나 논문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전무후무한 성공담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브렌다의 부모는 머니 박사의 조언에 따라 남자와 여자를 구분지으며 교육을 했고, 브렌다에게 여자라는 생각을 주입하고 여자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론과는달리 브렌다에게 여성으로서의 기질이나 정체성이 습득되지는 않았다. 심지어 매년 머시 박사가 있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이루어졌던 상담은 그에게 더욱 큰 반발감을 가져왔다. 머시 박사의 상담방식은 솔직히 제 3자의 입장에서 읽기만 해도 상당히 거부감을 일으키는 수준이었는데, 실제로 그 상담을 받아야 했던 어린 브렌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담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모님이 알고 있을거라는 브렌다의 생각과 다르게 실제로 부모님들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브렌다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반감도 상당 수준에 이르렀고, 가정은 가정으로서 기능할 수 없었다.

엇나가는 브렌다를 상담한 사람들의 말이 기억에 난다. 그렇게나 성공적인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케이스이기에 일종의 의무감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솔직히말하면서도, 브렌다는 그저 머리를 기르고 여자 옷을 입은 남자라고 기술할 수 밖에 없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어린이가 크면서 겪을 수 있는 정신적인 문제를 상담해주겠다고 말했던 머시 박사의 기록마저도 거의 그런 수준이었기에, 브렌다의 내적 갈등은 점점 더 깊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열 네 살 때 자신이 타고난 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결정을 내리는 브렌다는 자신의 이름을 브루스가 아닌 데이비드로 결정한다. 천하무적 거인을 골리앗을 이겨낸 다윗을 딴 이름인데, 어쩌면 그에게는 자신의 본성을 일방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세상이 골리앗보다 더욱 거대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한다.

이 책이 나온 후 오프라 윈프리 쇼 같은 것에 출연을 한 데이비드는 자기연민의 화신이 아닌 당당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의 후기를 읽어보면 그 역시 자살을 선택했다고 해서 안타깝기만 했다. 자신이 타고난 성과 세뇌식으로 주입받은 의식사이에서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지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말대로 그의 부모는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의 성정체성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 혹은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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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는 당쟁사 이야기
이성무 지음 / 아름다운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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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사로 읽어나가는 조선시대의 역사는 정통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재미있는 것은 중앙 집권적 문치주의를 지향하던 조선에서는 실제론 신료들간에 붕당을 조성하여 당쟁을 하는 것을 금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종때 조광조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목 역시 붕당이었을 정도였지만, 왕의 권력이 급격히 힘을 잃으면서부터 신료들간의 정책대결이 정권교체로 나아가 국왕을 신료들이 선택하는 수준까지 된 것이다.

또한, 어떠한 방식으로든 정권을 잡은 신료들 역시 자신들의 집권의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했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문적 정통성을 내세워야 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동인과 서인간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애쓴 이이가 도리어 서인의 종장(宗長)으로 추대되기 이르는데, 나 역시 율곡 이이하면 기호학파의 스승으로 생각해왔기에 오해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흐트러진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국왕은 대통과 종통을 일치시키며 왕권강화에 초석을 놓고자 했고, 신료들의 힘으로 왕이 되었을 경우에는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통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왕실의 상복문제였다. 그렇기에 지금의 우리의 눈에는 소모적으로 보이는 일들이 실제 그 당시에는 당파간에 심각한 논쟁이 될 수 있었고, 왕도 이 문제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숙종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환국과 탕평책으로 붕당을 다스리려고 했던 것, 즉 균형을 잃은 권력의 축을 지나치게 왕쪽으로 끌어온 것이 결국은 붕당의 붕괴뿐 아니라 인재들의 씨를 마르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집중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하기에는 후에 이어진 왕들이 지나치게 어렸고, 결국 수렴청정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를 견제할 신료들의 힘이 사라져버려서 왕권이 세도가문에 매몰되게 된 것이다. 붕당정치가 조선 멸망에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정부분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모습들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지연과 학연이 끈끈하게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당쟁의 구습을 찾아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와는 다르게 자유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한국은 시민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런면에서 당쟁사는 반면교사로 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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