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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속도 - 사유하는 건축학자, 여행과 인생을 생각하다
리칭즈 글.사진, 강은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11월
평점 :
나도 어느새 여행의 속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거 같다. 나는 늘
내가 보고 싶은 곳, 내가 가야 할 곳, 내가 쉬어야 할
곳에 대해서만 생각했고, 그 곳에 좀 더 빠르게, 그리고
좀 더 편안하게 가는 것에만 집중했다. 처음 친구와 유럽여행을 갔을 때도 그것 때문에 꽤 다투기도 했었다. 유명 관광지라고 하나? 그런 것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나와
그냥 쉬며 걸으며 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만나고 싶어하는 친구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내가 했던 여행을 되돌아보면 늘 그 나라에 점을 툭툭 찍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여행의 속도>에서
“걸으면 자연스럽게 사고가 시작된다”라는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책의 저자인 리칭즈 역시 새로운 것, 이상한
것, 특이한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건축학자이기도
하니 그의 말대로 ‘운전해 도시의 각종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찾아 다니는 여행’이 얼마나 이상적으로 느껴졌겠는가? 하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내가
그 나라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점점 더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다양한 속도의 여행을 즐기게 된
그의 여행이 부럽기도 했고, 또 사진으로나마 이렇게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건축가의 시선으로 소개해주는 독특한 건축물들, 망원경을 땅에 박아놓은
듯한 광고회사나 고양이 전차가 있는 타마역, 은하철도999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히미코, 스페인의 메트로폴 파라솔, 캘리포니아의
팝 건축양식 등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말이다. 더 이상 기차가 전진하지
않는 종착역에 있는 ‘갈매기 카페’와 아키타 현립 미술관에
있는 2층 커피숍 그리고 소형 건축박람회장 같은 파리의 공동묘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그 건물들은 경계성을 강조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갈 수 있는 곳, 그리고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곳, 두
세계의 경계를 떠올리게 한다고 할까?
특히나 공동묘지는 그 도시의 환경을 잘 반영해주는 축소판이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파리의 공동묘지는 옥외미술관 같은 풍경을 보여주지만, 뉴욕 맨해튼은
초고층 빌딩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일본의 공동묘지는 또 일본스럽다는 느낌을 주었다. 우리의 공동묘지는 어떠한가? 공동묘지는 아니지만, 외할아버지가 쉬고 있는 공간이 떠오른다. 올라가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선산이지만, 탁 트인 전망과 숲으로 둘러싸인 그 곳이 우리 조상들의 공동묘지와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의 공동묘지는 군대의 그 것처럼,
우리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아파트의 그 것처럼 변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