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대 책 - 코스모스에서 뉴런 네트워크까지 13편의 사이언스 북 토크
고중숙 외 22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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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대 책> 이렇게 책내용을 정직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제목은 오래간만이다. ‘코스모스에서 뉴런 네트워크까지 13편의 사이언스 북토크라는 부제처럼 서평 두편과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개 대담회 내용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13편의 사이언스 북토크이니,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책은 총 26권이다. ‘과학 대 상상’, ‘인물 대 인물’, ‘이론 대 이론이라는 세가지 테마로 분류되어 있는데, 여러 분야의 과학자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MBC프로듀서, 철학가, SF작가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서평을 만나볼 수 있다.

과학 대 상상은 영화 <콘택트>라던지, 분권이 되어 나오기 전까지는 목침으로 나름 유명했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상대적으로 흥미를 돋는 컨텐츠들이 이어진다. 시간여행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다룬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시간여행이라는 문제를 유전학자에게 찾아가 문의를 하면서, 물리학자가 지적할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 우주론의 시간 여행>을 읽다보면, 공간을 이동하듯 시간상에서 이동할 수 없는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시간여행은 그저 상상속의 무엇이 아닌, 물리학의 첨단 연구 대상임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을 교묘하게 빗겨나가지만, 과학자들은 이 분야를 직시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을 떠올리다보니 과학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상상력,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론 대 이론은 확실히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이해를 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인물 대 인물이었는데, 물리학계의 두 천재 파인만과 겔만의 이야기를 <파인만!>, <스트레인지 뷰티>를 통해 다루고 있었다. 마치 게임하듯 살아간 파인만과 까다롭고 변덕스러웠던 겔만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는데, 겔만이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 이론이 잘못된 것으로 판정되면 다 뛰어내려 버리자"라고 말했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이 이야기는 대담에서 과학이 비인간적인 학문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다시 한번 언급되었다. 물론 자료를 조작하거나 비윤리적인 방법이나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렸다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 외의 경우의 수까지 너무나 흑과 백으로 나누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성공과 실패로 양분되고 그 결과도 개인이 다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데, 과학계 역시 거기에서 자유롭지는 못한가보다.

한동안 과학은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요지의 책을 읽어서인지, 원자폭탄의 아버지에서 국가 안보의 위험요소로 전락한 오펜하이머의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20세기 물리학자의 모든 것을 만든 인물인 막스 프랑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사회적 격동기를 살아간 과학자로서 역사의 아이러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나 역시 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으로 번져나가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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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영어책 - 욕으로 배우는 영어회화
Matthew D. Kim 지음, 박신연 그림 / 휴먼카인드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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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은행강도가 들어와 총으로 위협을 하며 ‘Hit the floor! (바닥에)엎드려!’라고 외쳤는데, 한 사람이 머뭇머뭇 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을 겨냥하며 다시 한번 ‘Hit the floor! (바닥에)엎드려!’라고 말했더니, 망설이던 그 사람이 바닥을 손으로 마구 내려쳐서 은행강도를 당황하게 했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Hit the floor!’‘(바닥에)엎드려!’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다 보니, 문맥 그대로 해석해서 실행에 옮겼다는 것인데, ‘욕으로 배우는 영어회화라는 <싸가지 없는 영어책>을 읽다 보니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가 꼭 이 책에 나온 대로 욕을 할 필요는 없지만, 알아듣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도 조금 격한 표현으로 강조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을 알아두는 것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필요한 부분이다.

자주 사용되는 ‘Fuck’, ‘Shit’, ‘Damn’, ‘Hell’ 이렇게 4가지로 분류되어 다양한 표현을 배울 수 있는 책인데, MP3로 정확한 발음과 함께 그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뉘앙스까지 배울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격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보니 좀 격한 느낌의 음원을 기대했다. 그런데 성우느낌의 여성분이 참 맑은 목소리로 녹음을 해놓은 것은 솔직히 처음에는 아쉬웠다. 하지만, 계속 듣다보니 이런 표현들이 굳이 거친 상황이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이러한 뉘앙스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어서 좋았다. 영어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위에 4가지 말들이 욕인 것은 다 알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이 표현들에도 나름의 위계가 있는 듯 해 보였다. WWE를 보다 보면 많이 나오는 ‘Hell yeah’보다 더 강한 표현이 ‘Shit Yeah’가 되고 보다 강한 동의를 표현하고 싶을 때는 ‘Fuck yeah’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표현을 통해서 욕이 아닌 다른 의미를 가져오는 부분들을 잘 체크해놓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못 알아들으면 저 사람이 나한테 욕을 하나하며 기분 나빠할 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Fuck about'빈둥거리다, 노닥거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Don't fuck about.’이라는 것은 빈둥거리지 마라라는 말하는 것이다. 또한, ‘fuck all’은 부정어 'nothing'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으로 아무것도 아닌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래서 ‘I didn't do fuck all day.’라고 말은 나 오늘 아무것도 안 했어라는 표현이 된다. ‘Fucking A’짱이다, 멋지다, 쩐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Full of shit’거짓말쟁이’, ‘Same shit different day’반복되는 나날들이라는 뜻으로 텍스트상으로 'SSDD"로 줄여 쓰기도 한다. 줄여 쓰는 표현들도 상당수 나왔는데,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LOL’의 좀더 강한 표현으로 ‘LMFAO’ 웃겨 죽겠다라는 뜻의 약어가 된다. 이는 물론 'Laugh My Fucking Ass Off'를 줄여서 쓴 말이다.

한참 CSI에 빠져있을 때, 온갖 범죄에 관련된 말이나 경찰이나 검시관이 사용하는 말들을 꽤 익히게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말이 실제로 사용할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미드를 봐야 하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뉴스를 보다 보면 강력범죄에 대한 부분을 꽤나 잘 알아듣게 되는 것을 보며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난 절 때 비속어나 욕을 사용하지는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 역시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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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미애의 집 그리고 살림 - 요리 집 고치고, 밥 짓는 여자
홍미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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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서 분가를 하며 자신의 집을 갖게 된 평범한 전업주부 홍미애. 그녀는 손수 집을 뜯어고치고 단장하면서, 인테리어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그녀가 직접 꾸민 여러 공간들과 수납 살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책 <홍미애의 집 그리고 살림> 한국의 마샤 스튜어트라고 불린다고 하는데, 인테리어를 할 때면 마샤 스튜어트의 잡지를 즐겨 챙겨보는 편이라 우리나라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인테리어쪽으로 유명한 연예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녀의 집은 여행 중에 구한 가구, 조명, 그릇 같은 것들이 참 많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한 여행의 추억들을 온 집안에 수놓은 듯한 인상을 주었다. 책을 보면서 물기 없는 호텔식 욕실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런 공간을 갖고 싶기는 하지만, 쉽지 않아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프랑스에서 사온 유리박스에 보관한 목욕용품들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렇게 보관을 하니 깔끔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면이 마음에 들었다. 욕실에서 사용하는 것들은 피부에 바로 닿는 것이기 쉽기 때문에 청결하게 관리할 수 있는 팁을 얻게 되어서 좋았다. 보통 욕실에 좋은 향을 채우기 위해 초를 자주 사용하곤 한다. 초를 켜놓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 비해, 남편은 사람이 없는 곳에 초를 켜놓는 것을 걱정스러워하기 때문에, 비누를 활용한 방법도 눈길을 끌었다. 사실 나도 그런 의도를 갖고 향 좋은 비누들을 가져다 놓기도 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저렇게 유리상자에 담아놓고 종종 뚜껑을 열어놓으면 훨씬 효과가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접 고친 집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침실과 서재를 연결해서 중문을 유리로 한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다음에 인테리어를 새로 하게 되면 꼭 활용하고 싶은 아이디어이다. 책을 읽거나 업무를 보거나 공부를 하는 일이 서로 많아서 가끔 일이 바빠지면 둘 중에 하나는 서재에 콕 박혀있을 때가 많다. 그런데 공간을 연결하면 서로가 한 공간에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서 기대가 된다. 100*이집트 원사로 제작한 린넨 소재의 패브릭을 활용한다던 지, 티슈가 아닌 아사면 냅킨을 사용하는 것도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이다. 천식이 있어서인지 더욱 관심이 가는 방법들이었다. 또한 플라워 스타일링도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는데, 샵에서 해주는 그대로 가져와 꽃병에 꼽는 성격이지만, 케이크 스탠드를 활용한 스타일링은 꼭 한번 따라 하고 싶어지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맞춤 제작한 유리케이스에 원두를 깔고 초를 넣어두는 아이디어나 이모가 자주 해주시던 호두강정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생각보다 간단한 홍미애표 레시피도 기억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이모한테 호두강정을 해달라고 하면 이모가 생각보다 안 어려우니 직접 해보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마다 이모가 해준 게 제일 맛있다며 투정만 부렸던 것이 살짝 후회가 되기도 한다.

집과 여자는 가꾸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 홍미애답게 하나하나 정성과 아이디어를 더해 만들어낸 공간들이 참 단아했다. 덕분에 잘 관리된 집도 훔쳐볼 수 있었다고, 활용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많이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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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런, 이란 - 테헤란 기숙사 카펫 위 수다에서 페르시아 문명까지
최승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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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테헤란 나이트라는 책을 통해 이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었는데, 올해는 <! 이런, 이란>이라는 책을 통해 이란을 다시 만나볼 수 있었다. 이란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나고 온 최승아의 책을 읽으며 이란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대학에서 이란어를 전공한 그녀는 2년동안 이란에서 일하며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여행을 하며 보내야겠다는 부푼 꿈을 갖고 이란에 첫발을 딛게 된다. 하지만 어느새 이란이 아닌 회사라는 한정된 공간에 자신이 묶인 것을 알고 어학원으로 옮기게 되는데, 거기에서조차 한국선교사의 전도활동때문에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가 이란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녀가 테헤란 북부에 머물때는, 현대적인 풍경으로 가득차 있어서 사진을 SNS에 올려도 거기가 이란이 맞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구도심인 테헤란 북부로 결국 이란 맨 왼쪽 위의 뾰족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쿠르드족에까지 나아가는 것처럼, 이 책의 이야기는 참 다채롭게 흘러간다.  

이란의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이란 특유의 문화인 터로프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내가 여자라 그런가 이란 여성들의 옷차림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란 역시 이슬람 국가이기에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차도르를 착용하고 투박한 트렌치 코트 같은 느낌의 멍토를 일상복으로 입는다. 하지만 이란은 우리가 잘 아는 페르시아의 문화를 이은 나라이다. 영화 페르시아 왕자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가 그런 옷을 입고 있지 않았던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이란 전통 여성의 의상은 정말 화려함의 극치였다고 하는데, 이슬람 혁명은 삶을 똑같은 무늬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그 뿐인가? 포도주를 사랑하는 날 감탄하게 한 "포도주는 최고의 연금술사, 잠깐 사이 납덩이 인생을 황금으로 바꾸누나."라는 시를 남긴 페르시아 시인 오마르 하이얌이라던지, 재미있는 포도주의 탄생설화가 있는 이란이지만, 지금은 술을 금지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술의 주 성분인 에틸 알코올을 처음 발견한 사람 역시 페르시아 화학자 알 라지라고 하던데, 조금은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 안에서도 정말 다채로운 빛으로 교차하고 있는 이란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제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페르시아 카펫을 전시하는 곳을 다녀온적이 있다. 그 화려한 문양과 다채로운 색감에 반하기도 했지만, 엄청난 크기의 카펫들을 사람의 손으로 한땀한땀 짜내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그래서일까? 이란에서 나이든 여인을 칭송할 때 당신은 마치 케르만 카펫 같아요.”라고 말한다는 것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한올 한올 카펫을 짜듯이 우리도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는 작가의 말도 참 좋았다. 그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뒤돌아봤을 때 아름다운 페르시아 카펫의 색감과 문양들처럼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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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시력 매드 픽션 클럽
카린 포숨 지음, 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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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복지강국으로 손꼽히며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라로 느껴지는 곳이다. <스노우맨>으로 처음 만나 만나게 된 해리 홀레 시리즈를 쓴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책도 그러했고, 그가 거장으로 대우하는 카린 포숨이 그려내는 그 곳의 일상은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몇권의 책을 읽고 노르웨이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 어디나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복지천국이라고 말해지는 노르웨이의 환한 빛 뒤로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 몰랐다는 생각도 든다.

카린 포숨의 <야간시력>사랑을 갈망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사이코패스의 고백이라는 부제에서 너무도라는 단어를 조금은으로 바꾸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다. 노르웨이 작은 마을에 있는 뢰카 노인 요양원에서 11년간 간호사로 근무하는 중년의 남자 릭토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무섭고 섬뜩하기보다는 차갑다. 그는 메르테르 호수를 둘러싼 공원을 산책하면서 그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실 그 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그저 지극히 부정적이고 지극히 잔혹한 인물인가보다 할 수 있다. 상상속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처벌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요양병원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고, 죽음을 기다리는 일만이 남은 환자들에게 은밀하게 가혹한 학대를 가한다. 그런데 그의 그런 생각과 행동들은 악의 근원처럼 느껴지기보다는 지독하게 차갑게 느껴진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심리학자라면그의 어린시절이나 가정환경 혹은 학창시절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최면을 걸어서라도 그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규명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극히 평범하다. 그래서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지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처음부터 없었던 인물이 아닐까 한다. 그는 밤에 세상을 더 잘 보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문득 사람의 마음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외적인 능력이 강화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려지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문득 릭토르에게 빠져들게 된다.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그의 습관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들을 그의 시선으로 때로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평가할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순간 누군가 등뒤로 얼음을 하나 집어 넣을때의 감각처럼 소스라치게 그에게서 빠져나오게 된다.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또 그 후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이 아닌 다른 살인으로 함정에 빠지게 되면서 이야기는 좀 더 빠르고 촘촘하게 그려지면서 몰입도가 높아지기 전까지는 몰입과 소름의 반복이었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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