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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도시 전주를 탐하다 - 전주화첩기행
정태균 지음 / 이화문화출판사 / 2015년 1월
평점 :
독특한 책을 만났다. 바로 천 년 전 후백제 견휜의 수도였고, 이성계의 본향인 <왕의 도시 전주를 탐하다>. 이 책은 ‘기행화첩’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수묵화와 펜 일러스트로 그려낸 전주의 풍경이 고요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흑백의 대비를 이루는 그림들도 멋있고, 채색화도 다채로운 멋을 더해주었지만, 기억에 나는 그림이 있다. 한옥마을 중심도로인 태조로에서 매일 2번 벌어진다는 ‘기접놀이’를
그린 그림을 보면, 깃발을 높이 고추세우고 휘두르는 기운이 책장 밖으로까지 뿜어져 나오는 기분마저 들어서, 놀랍기도 했다. 문득 전에 외국인 친구와 함께 경복궁에 갔을 때, ‘수문장 교대식’을 보며 감탄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전주에 가면 역시나 좋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전통문화관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한식당 ‘한벽루’, 후백제로 떠날 수 있는 ‘동고산성’, 조선시대 외국사신이나 출장나온 관원들을 위해 만든 전주객사, 그리고
단아한 한옥마을까지 정말 전주의 아름다움과 멋과 맛을 골고루 즐길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전주에 가서
어떤 의무감에 비빔밥을 먹고, 관광객들을 스케치한 그림 중에 거의 처음에 등장한 모습 그대로 풍년제과
수제 초코파이 쇼핑백을 들고는 빠르게 빠져나온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전주를 다녀왔다라는 나름의 기억을 전주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 갔다로 바꿔버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도대체 전주에 가서 무엇을 보고 온 것일까?
책을 읽고 내가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은 두 군데였다. 책에서는 약간의
오타가 있었지만, 정몽주가 ‘석벽제영(石壁題詠)’을 있게 한, 오목대의 이야기이다.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기 12년전 자신의 뿌리가 있던 전주의 오목대에
친지들을 모아놓고 한고조의 대풍가를 읊었다고 한다. 그에 비분강개한 정몽주가 ‘天涯日沒浮雲合 (천애일몰부운합) 먼 하늘
해 저물어 뜬 구름 마주치는 곳, 矯首無由望玉京 (교수무유망옥경) 고개 돌려 속절없이 임 계신 곳 우러르네’로 끝나는 이 시를 읊었다고
한다. 왜일까? 오목대에 가서 ‘대풍가’가 아닌 ‘석벽제영’을 되뇌어 보고 싶은 이유는?
그리고 기억에 남는 곳은 바로 600년 은행나무가 있다는 동학운동기념관
맞은편이다. 이 은행나무에는 너무나 가난해 담벼락에 숨어 양반이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했던
소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양반은 은근히 책을 담 넘어 버려 아이의 공부를 돕고, 후에 장원급제를 한 아이를 기억하며 아이가 공부를 하던 자리에 이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심호흡 5번을 하면 나무의 정기를 받게 된다고 하던가? 요즘 따라 내가 하는 공부에 자신이 없고 그냥 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일 때,
그런 좋은 기운을 얻어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