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힘든 말
마스다 미리 지음, 이영미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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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공부에 한참 열중할 때, 원어민 선생님께서 KY라는 표현을 알려주시면서, 空気をめない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이 말이 계속 유행할지 모르기 때문에 혹여 나중에 일본을 가면 눈치껏 알아듣고 사용하지는 말라는 식의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그렇게 말이 빠르게 변하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에세이와 만화로 이루어진 <하기 힘든 말>은 그런 부분들을 잘 포착해내고 있는 거 같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책의 저자와 친구가 되면 참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마스다 미리 역시 그런 작가중의 하나이다. 왜 그렇게 공감 가는 이야기도 많은지 말이다. 말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신중함을 지닌 지인을 바라보는 그 느낌은 정말 나랑 닮았다. 성격이 급해서인지 일단 말을 해놓고 후회를 하는 경우도 많고, 주위에서 말하는 법을 보면서 배워야겠다고 할 때가 많아서 더욱 그런 거 같다.

또한 감정을 퍼올리다’, ‘말허리를 꺾다’. ‘흘리는 얘기같은 말을 들으며 이미지를 떠올리는 모습도 그러하다. 예전에 생각의 심지를 잡아 끌어내다라는 말을 듣고 나도 그랬다. 가끔 머릿속에서 생각이 울렁울렁거린다고 할까? 아무리 고민해도 말로 혹은 글로 나오질 않아서 답답해하곤 하는데, 저 말을 들으니 왜인지 모르게 이로 그 심지를 꽉 물고 끄집어 내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래서 그 후로 그렇게 답답할 때 그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곤 한다.

일본어에서 가장 어려움을 준 것은 바로 줄임말, 특히나 외래어의 줄임말이다. 일본 사람들이 4박을 좋아해서 그렇다는 언어학자의 말도 있더니만, 마스다 미리도 그런 것을 잊기 전에 메모하는 것을 보면서, 남일 같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도 말을 많이 줄여 해서, 처음에 사촌동생이 베라’, ‘파바라는 말을 사용할 때 순간 멍청해졌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블로그의 글을 보다 잇님이라는 표현을 보며 잇걸에서 나온 것인가 했더니 이웃님의 줄임말이라 해 웃었던 기억도 난다. 이제는 하기 힘든 말을 넘어서 알아듣기 힘든 말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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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유배지 답사기 - 조선의 귀양터를 찾아서
박진욱 지음 / 알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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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단절되는 유배라는 형벌은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전에 정약용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유배생활 동안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그였지만, 그의 삶은 곤궁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남해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쓴 구운몽을 통해 유배 문학을 꽃피웠다는 평을 받는 서포 김만중도 그러했듯이 유배길을 떠나야 했지만, 그 곳에서 자신들의 흔적을 충실히 남겼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 남해로 귀양한 류의양의 <남해문견록>을 만나게 이 책의 저자 박진욱은 그들의 이야기를 <남해 유배지 답사기>로 담아냈다.

참 독특한 답사기가 아닐까 싶다. 재판을 하면서 새로운 사진을 넣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사진에 크게 의지하지 않게 되는 그런 책이다. 그의 글로 스케치되는 남해의 옛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도리어 독특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현재 남해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고, 더불어 역사를 여행하는 느낌도 좋다. 기사환국의 상세한 내용을 읽는 것도 좋지만, 난곡사 창건기에 기록된 글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보는 역사이야기와 대국산성에 내려오는 전설을 함께 만나는 것도 흥미롭다. 이렇게 다채로운 답사기는 정말 오래간만에 만나는 기분이 들어서, 남해뿐 아니라 다른 곳의 유배지 답사기도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긴다.

충무공 이순신의 이야기가 함께하는 관음포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관음포는 그 지형에 따라 지어진 이름에서 바뀐 것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부를수록 힘을 갖는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 곳에서 왜구를 소탕할 힘을 갖게 된 것일까? 하지만 말이다. 일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한 일 중에 하나가 바로 관음포를 메워 땅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난 아니, 조선에서 난 쌀의 대부분을 자신의 나라로 가져가버렸었다. 왜 그 사실이 이렇게까지 씁쓸한지 말이다.

예전에는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이 귀양지였겠지만, 지금은 도리어 그런 곳이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예전에도 귀양이라는 것은 물러나고 돌아가고 멈출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주었다니,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참 여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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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미주의 선언 - 좋은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문광훈 지음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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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훈의 <심미주의 선언>을 읽고 문득 미학자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예전에 읽은 소설이 서울대 미학 과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 미학과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고등학교 때 이과였다는 사실을 핑계로 삼고 싶지만 말이다. 유명한 논객 덕분에 미학자는 낯선 직업 군은 아니었지만,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지는 감이 잘 안 왔다고 할까? 그런데 그 뜻이 미학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미학자는 미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니, 느낌적인 느낌과 비슷한 순환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을 대신해보고 싶어진다. 미학자란 자신과 자신의 삶을 심미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학자라고 말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여러화가들의 자화상, 푸코의 담론분석과 푸코가 의지한 플라톤의 저작,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까지 이렇게 나열하면 상당히 거창한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유려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 마음을 두드린 것은 바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조금 더 확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그의 말이다. ‘너는 너 자신에게 주의해야 하고, 너 자신을 잊지 말고, 너 자신을 돌봐야 한다어쩌면 자신에 대한 지나친 침착(沈着)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오롯이 하나뿐인 존재인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연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갖게 된다. 그래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속의 그의 자화상이 다시 한번 그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상허 이태준 선생의 빛 바랜 가족사진이다. 나에게도 그런 사진이 있다. 마치 그 순간의 행복을 박제해놓은 듯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서 바라보니 그것이 얼마나 거짓된 기록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꺼내놓지도 못하는 그런 사진이다. 심지어 얼마나 꼭꼭 숨겨놓고 싶었는지, 인생을 조금 더 서정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이 글을 읽으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그 사진을 떠올릴 정도였다. 문광훈은 그 사진에 담긴 각각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한국의 모파상이라 불릴 정도로 단편소설을 잘 썼던 이태준은 월북을 한 후, 그 끝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막노동으로 생을 이어가던 그에게서, 자신의 수필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을 농익은 능금으로 비유하며, ‘인생으로 한번 흠뻑 익어보고 싶은 것이라며 쓰고 싶어했던 글을 기대하기는 힘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각자 찾아낸 최선의 삶의 형태가 아닐까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진 속의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제각각 이듯이 말이다. 행복이란 어떤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삶을 수용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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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연애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1
김선희 외 지음 / 바이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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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관심을 담아낼 시리즈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첫 번째 편으로 <철학자의 연애>가 나왔다. 예전에 난독증환자에게 글씨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영상을 본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한참 몸이 안 좋아서 정말 그 경험을 실제로 하게 되었는데 멀미가 날 거 같은 기분이랄까? 물론 몸이 좋아지고 나서 읽어도 꽤 난해한 책이긴 했지만, 첫인상 때문인지 꽤나 어려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역시 비범한 사람들은 사랑조차 평범하지 않은 것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뒤에 나올 종교인, 정치가, 과학자, 뮤지션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면 또 다르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역시 철학자들은 사랑조차 철학적으로 하는 것인가? 라고……  

어쩌면 첫 번째가 바로 소설가 보부아르와 철학자 사르트르의 사랑을 다루고 있어서 일수도 있다. 예전에 이 커플에 대한 칼럼을 읽으면서, 아 정말 사랑은 100100색이라고 하지만 그 범주가 참 무한대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사랑을 트리오의 실존사랑이라는 틀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내가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인물, 마외가 갖고 있는 존재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들의 첫만남부터 함께한 마외는 비록 실제로 그들의 관계에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존재로서 혹은 일반명사로서 그들의 사랑에 영원한 낙인이 된 것이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너무나 난해했던 그들의 사랑, 그리고 그들의 사랑에 대한 글을 그저 각인효과에 기대어 이해하는 것이 실례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적절한 접근이 아닐까 한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바라보면 또 트리오의 실존사랑이 다르게 다가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독일 민족주의자 하이데거와 영원한 이방인이었던 유대인 아렌트의 사랑은 나에게는 조금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보고서를 인상깊게 읽었고, 특히 그녀가 말했던 사유의 부재에 대해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녀가 나치활동전력이 있는 하이데거를 변호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웠던 거 같다. 그녀의 감정을 배제하더라도, 하이데거의 학문적 성취가 그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니,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아직은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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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의 역설 - 슈퍼 달러를 유지하는 세계 최대 적자국의 비밀
정필모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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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이 KBS 경제뉴스 관련 부서에서 일한 경제전문기자 정필모의 <달러의 역설>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이후로 그 문제를 다룬 몇권의 책들을 읽은 적이 있지만 <달러의 역설>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았다. 경제와 금융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국의 전래동화에서 유래된 이상적인 경제상황을 이야기하는 골디락스의 시대를 넘어, 예측불가능한 위기를 이야기하는 블랙스완의 시대를 넘어선 지금은 바로 화이트스완의 시대라고 한다. 우리는 블랙스완의 시대에 마땅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그러한 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역사적으로 되풀이되는 금융위기를 말하는 화이트스완의 세계로 넘어온 것이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그레이스완에 대한 언급을 본 기억이 있다. 그레이스완은 어느정도 예측은 가능하지만 발생하면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리스크 를 이야기하는데, 이제는 그것이 반복될 수 있다니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는 세계경제의 흐름과 국제금융의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달러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최초로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까지 이루어지면서 팍스아메리카나의 몰락의 신호탄이 울린 것이 아닌가 했던 것도 잠시, 미국은 양적완화와 초저금리를 통해 미국 경제를 개선시키고자 했고, 양적완화 종료선언을 통해 경제회복의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경제회복의 신호탄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고 있다. 도리어 그렇게 풀린 돈이 실물경제가 아닌 자산시장에 집중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미국의 정책은 근립 궁핍화정책이라고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선진국과 주변국의 격차가 심각해졌다. 또한 그의 파급효과는 신흥국의 국내계층간의 격차로도 이어지게 되었고, 미국 역시 그러한 격차사회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서 미국의 양적완화는 자산시장의 거품과 실물경기의 더딘회복이라는 딜레마를 갖게 되었다.  신용본위제도라고 할 수 있는 달러본위제도의 킹스턴체제는 전적으로 미국달러의 상대적 안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딜레마는 곧 달러의 딜레마로 이어진다. 하지만 미국발 경제위기를 경험해본 세계는 그 여파가 얼마나 강한지 알기 때문에 도리어 미국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달러의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에필로그로 제시된 브레튼 우즈 정신으로 돌아가자 뿐 아니라 다양한 대안제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흥미롭지만, 일단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부터가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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