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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박사의 둔하게 삽시다
이시형 지음, 이영미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이코노미스트 기자는 한국을 떠나며 ‘기적을 만든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참 슬픈 말인 거 같다. 기쁨을 잃었다니, 그 말에 반박을 하기 앞서, 왜 우리는 기쁨을 잃은 것처럼 보였나
생각해봐야 할 거 같다. 점점 더 경쟁이 심화되고, 사회적
갈등이 심해지는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만족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쁨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이루고 어울려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은 ‘과민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물론 정신과적 진단명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사회적 정신병리 증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상황을 분석하고, 어떻게 예방하고 치유해야 하는지를 <둔하게 삽시다>로 풀어냈다.
‘과민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화가 난 뇌’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정보를 통합적으로 수집하여 분석, 정리, 해석, 판단을 하는 전두연합야에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일 조차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자극을 받으면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감정보다 앞서 있는
‘감정기억’이 부정적인 사고를 이끌어내면서 사람들은 쉽게
그리고 크게 화를 내게 된다. 가끔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 역시 여기에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일본의 의사이자 작가인 와타나베 준이치가 말한 ‘둔감력’에 주목할 필요가 생긴다. 너무나 예민한 피부를 갖고 있으면 알레르기나
피부염에 쉽게 걸리는 것처럼, 너무나 예민하면 쉽게 화를 내고 부정적인 사고에 지배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둔감력을 키우면 교감신경 대신 부교감신경이 우위를 점유하게 되어, 긴장이
풀리고 이완작용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게 지나치면 게을러진다고 하지만, 과민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이런 작용이 도리어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해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80점이면 성공이다’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데, 내가 갖고 있는 기준은 상식선을 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막상 80점이 되면
파르르 할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이해를 못하면 암기를 하라고 하지 않던가? 조금은 기대수준을 낮추는 것도 삶을 여유롭게 만드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둔하게
삽시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안타까울 정도이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