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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오쿠다 히데오, 그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대부분의 한국독자가
그러하듯 ‘공중그네’라는 작품이었다. 특유의 블랙유머가 마음에 쏙 들었고, 그 후 그의 작품이 나오면
챙겨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점점 그의 작품이 미스터리 쪽으로 방향을 잡는 기분이랄까? 물론 ‘최고의 이야기꾼’이라는
찬사를 받는 그답게, 여전히 매력적인 소설을 내놓고 있다. 이번에
읽은 <나오미와 가나코> 역시 인터넷이나 게임에서
많이 쓰는 ‘순삭’,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500여 페이지로 상당히 두께감이 있는 책인데, 책장도
시간도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오미 이야기’, ‘가나코
이야기’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분명
사건의 전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인데,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두 가지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플롯을 완전범죄의 시나리오라고 끝없이 세뇌를 거는 작가와 그래도 그대로
이루어져라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일부 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전반부라면 말이다. 후반부는 그 반대의
흐름으로 흘러간다. 굳이 천재적인 탐정 같은 캐릭터를 등장시킬 필요도 없다. 우연이 겹쳐지고 마치 권선징악이 이루어지는 듯한 하늘이 도운 작전은 자연스럽게 그 밑천을 다 드러내 보인다.
물론 가정폭력을 끝없이 저지르는 핫토리 다쓰로와 그의 폭력에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버린 가나코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오죽하면 마시는 물마저 쓴 맛이 나서 맛있는 물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될까? 특히나 무기력하게 보일 정도로 나오미의 작전에 끌려가던 가나코의 모습은 폭력이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친구의 비밀을 알고 나서, 어린
시절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떠올리는 나오미는 어쩌면 이를 통해서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오래된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해자를 살해할 권리가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쿠다식 ‘여자들의 하드보일드’라고
했던가? 정말 빠르게 전개되면서도 밀도있게 펼쳐지는 이 소설은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떠올리게 한다. 전에
이즈미 교카의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에서 모티브를
따와 일본 전통의 이미지를 풍요롭게 차용한 작품을 보고 감탄한 기억이 있다. 이 작품 역시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고 비교하는 동양적인 사고, 현대 일본사회와 중국사회의 가치관을 촘촘하게 엮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감하게 결말을 이끌어내면서 작품의 매력을 다채롭게 만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