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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손글씨, 시를 쓰다 - 따라쓰기로 연습하는 캘리 라이팅북
허수연 지음 / 보랏빛소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전에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직접 고른 시를 필사해보는 라이팅북을 만나고 정말 좋아했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해주고 마음을 위로해준다는 컬러링북은 나의 감각부족으로 잘 맞지 않았었다. 하지만 라이팅북은 그냥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써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시를 더욱 깊이 있게 감상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캘리그라피와 라이팅북이 합쳐진 ‘캘리 라이팅북’에 도전해보았다. 바로 보라빛소에서 나온 허수연의 <치유의 손 글씨 시를 쓰다> 굳이 출판사까지 밝힌 이유는
캘리그라피 도구소개를 보고 구입한 캘리그라피펜이 보라색이었다는 작은 우연 때문이다. 처음에 캘리그라피펜을
들고 나도 이제 글씨를 잘 쓰게 될 거라고 의기양양 했었다. 물론 나의 악필을 익히 알고 있는 친구들은
들은 체도 안 했지만 말이다.
일단 ‘캘리그라피 라이팅북 가이드’부터
차분히 읽어나갔다. 느끼기, 쓰기, 즐기기의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캘리그라피는 내 예상과 달리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보다는 글의 의미를 글씨에 담아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제대로 시를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도 작가가 직접 고른 명시 48편의
좋은 구절을 캘리그라피한 작품과 자신이 담아내고자 하는 느낌을 메모해놔서 도움이 되었다. 이준관의 <구부러진 길>에서는 반듯한 길과 울퉁불퉁 구부러진 길을
어찌나 감각적으로 담아냈는지, 절로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학창시절 정말 좋아했던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서는 작가가 담아낸 담백하고 초연한 느낌보다는 자꾸만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아서, 내가 쓴 캘리그라피에는 밝은 웃음기가 잔뜩 배어 있는 거 같기도 했다.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 나이여서 그랬던 것인지, 이 시를 배울 때 교실 가득 웃음꽃이 피어났던 기억이
참 강렬한 거 같다.
캘리그라피중 몇 개는 겹쳐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는데, 큰 맘 먹고
하고 보니 뒷면에 꽤 많이 번져서 다음장 글씨가 보기 좋지 않았다. 따라 쓸 수 있는 지면도 참 예쁘게
구성되어 있는데 이 점은 아쉽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종이를 꺼내서 따라 써보았다.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흘림체보다는 마치 레고조각 같은 반듯반듯한 글씨체가 쉬워 보였지만 막상 해보니 내 맘 같지는
않았지만, 몇 번을 고쳐 쓰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게 나오면 참 행복했다. 덕분에 좋은 시 구절들을 여러 번 쓰고 여러 번 생각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