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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화를 내봤자 -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의 나답게 사는 즐거움
엔도 슈사쿠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물론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라는 있지만, 엔도 슈사쿠하면 범신론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 성장하여, 전후에 일본인 최초로 가톨릭계에서 파견한 유학생이라는 이력이 떠오른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한 사람의 내면에서
일본의 문화와 유럽의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 때문이다. 상반된
가치관이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각자의 의미를 탐구하고 이해하고 수용하면서 그 속에서 조화를 꾀하려는 작가의 시선이 참 진지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어려운 작품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을 해왔다.
물론 <침묵>이라는
작품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정말 오랜시간동안 읽어야 했던
<사해 부근>이라는 작품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인생에 화를 내봤자>를 읽으면서,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즐거워하게 되었다. ‘여우와 너구리가 사는 집이라는 뜻의 ‘고리안狐狸庵’이라는
그의 필명이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문학에서 느껴지는 진중한 구도자 같은 느낌에서부터 직접 작사한
여보와 아내 그리고 딸에게 전하는 ‘중년 남자를 위한 노래’속의
유쾌한 아저씨까지의 변화무쌍함을 갖춘 여우와 그의 일상속에서 느껴지는 낙천적이고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너구리 같은 풍모가 잘 살아있는 에세이집이기도
하다.
물론 책 전반에 흐르는 유쾌함과 얼핏 쪼잔하게 보일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이 정말 재미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노년의 부부에 대한 것이었다.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다시는 이승에서 배우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다음 생에도 당신과 함께’라는 말은 ‘엄청난 종교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그의 말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외할아버지가 눈을 감으시는 순간까지도 두고가는 반려자를 부탁한다고 입으로 눈으로
부탁하신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탐구했던 일본의 종교와 서양의
종교의 존재방식에 대한 답도 이외로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