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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하버드 옌칭 도서관에서 정민교수와 1년여의 시간을 함께 했던
옛 책 속의 책벌레와 메모 광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 책을 가까이하고 좋아해온
사람들끼리 시공간을 초월하여 만날 수 있는 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책을 다 읽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문득 이 책의 제목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정민교수도 딱 그런 분이라, 내가 정민교수의 책이 나올 때마다 망설임 없이 구매를 하는
거 같다.
장서인,藏書印을 하는 방법에 대한 한국, 중국, 일본의 차이에 대한 글로 책이 시작된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 따로 마련해놓은 ‘책도장’을 찍어놓고는 했다. 심지어 라벨링을 하기도 해서, 학창시절에 보던 책을 보면 견출지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기도 하다. 아마
내 책이라는 소유욕을 그렇게 드러냈던 거 같은데, 그래서 연암 박지원이 “그대가 만약 어짊을 구한다면 100개의 상자 속에 담긴 책을 벗들과
함께 닳아 없어지게 함이 옳을 것이오. 이제 높은 다락에다 묶어두고 구구하게 후세를 위한 계책이라 여긴단
말이오?” 라며 쓴 소리를 한 것에 나름 뜨끔하기도 했다. 잘
돌려받기 힘들다는 이유로 책을 빌려주는 것도 꺼려하는 성격이라 더욱 그러했다. 어찌되었든 장서인을 꾹꾹
찍어놓은 책이지만, 결국 책은 천하가 공유하는 물건이라 세상에 돌게 마련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새롭게 책을 소유한 사람들은 전주인의 장서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고민하곤 했나 보다. 여기에서부터 한중일의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또한 열여덟 살의 나이에 자신의 거처에 책과 관련된 아홉 가지 활동이 이루어지는 집이라는 뜻으로 ‘구서재,九書齋’라는 이름을
붙였던 이덕무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책을 가지고 그저 읽고 글을 쓰는 수준에
멈춰 있는 나를 돌아보며, 도장을 찍으며 내 것임 주장할 줄이나 알았지 진정으로 책을 소장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이덕무가 세상을 뜨자 문상을 온 친구가 그가 보내온 편지를
이덕무의 아들에게 전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런 글들이 남아있었기에 우리가 이덕무의 다양한 모습들을
기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는 세초,洗草해버린
다산선생의 메모가 생각난다. 시력이 안 좋아져서 읽을 수 없다는 이유로 사라져버린 그 메모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지, 그 글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 지에 대한 아쉬움이 커진다. 얼마 전에 제인 오스틴에 대한 글을 읽다, 그녀의 언니가 동생이
보내온 편지를 오롯이 간직하고자 불태워버렸다는 이야기를 안타깝게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고서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남겨진 것들의 소중함도 깨닫게 되지만,
사라져간 것들의 아쉬움도 커져가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