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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최종학력은 50이 넘어서 ‘전문대 졸卒’이 되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땄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 정년이 보장된 정교수도 베스트셀러 작가도 일류강사의
자리도 내려놓고, 남은 반백년동안 행복하게 할 일을 찾아 떠난 그는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비로서 삶의 정상속도를 되찾은 그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비로서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생각의 깊이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선택 자체가 참 부러웠다. 아마도 나라는 사람이
움켜쥐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고,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함께하려고 했던 거 같다. 거기다 김정운의 책을 몇 권정도 읽으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관을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그가 들려주는 교토에서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반갑다. 물론 쓰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질 거 같아서, 정리해서 리뷰를 쓰기에는 어렵지만 말이다.
연말이라 그런지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집단기억의 부재를 설명하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마움의 기억을
찾는 새해를 만들어가자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새해가 되면 이런저런 결심을 하며 목록까지 짜곤 하는데, 막상 그 속에는 내 마음에 대한 것은 별로 없었던 거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에 대한 것들만을 챙기며 살아왔는데, 어쩌면 그것이 미국의 문화사학자 스티븐 컨이 설명한
현상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그래도
예측할 수 있을 거라고 믿게 해주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인과론적인 믿음이 종교적 위안과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 스티븐 컨의 생각이다. 딱히 종교가 없어서 그런 것 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노력-성공의 인과론’에 더 빠져들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이제는 내 마음을 더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화장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날이면 전문가의
손을 빌려서 화장을 하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느낌을 만들어내려고 옷을 고르고 거기에 걸맞은 화장을
하려고 노력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화장을 하면서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생각해보고, 또 그것을 지워내면서 다양한 역할을 성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갖기 힘든 남자의 어려움에도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남자에게도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김정운이 가장 좋아한다는 개념인 ‘정서조율’,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마주보기와 함께 보기의 힘이라던지, 여러 성부를
가진 다성음악 ‘폴리포니’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했는데, 공감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서 내 마음에도 와 닿는 개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