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들의 수프 - 셰프의 독서일기
정상원 지음 / 사계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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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들의 수프

수프의 사전적 정의는 '육수, 혹은 스톡 따위를 넣고 끓인 국물에 건더기와 양념을 더한 요리. 유럽 요리의 국이라 볼 수 있다.'입니다.

"글자들"을 넣고 끓인 국물에 어떤 것이 더해졌을지 궁금하죠?
먼저 제목 위에 있는 소제목을 읽어봅니다. <셰프의 독서일기>. "글자들"이란 저자가 읽고 사색한 책들에서 발췌한 문장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건더기와 양념 추가. 책에 얽힌 고장이나 작가의 에피소드. 한 챕터의 시작과 끝은 대부분 발췌한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가끔은 단어로 끝을 맺기도 하는데, 읽어보면 수긍이 갈만한 단어입니다.
특히 로맹 가리 챕터는 무척이나 감동적이니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려요.

후각이나 미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휘발성이 높은 감각이라 전달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노래 가사나 책의 문장을 떠올리면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지만 냄새나 맛을 다루는 묘사는 자주 쓰지 않아 익숙하지 않고 먹어본 음식에 대한 기억이 다양하지 않아 묘사하고 떠올리는 것이 어려울 것 같더라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솜씨 좋게 주방으로 독자를 인도합니다.

저자는 어떻게 묘사했을까요? 책의 일부분을 소개해봅니다.

"달궈진 웍 위로 불길이 치솟는다. 기름에 녹아야 할 향이 모두 빠져나오면 오랫동안 우린 채수를 부어 한소끔 끓인다. 면은 끊는 국물로 토렴해 사발에 담는다. 공평하게 건더기를 나누고 그 위로 바시랑바시랑 끓는 국물을 붓는다. 매움하다.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는다."
셰프가 만들고 있는 음식이 뭔지 가늠이 되시나요? 정답입니다. 그거 맞아요. 짬뽕. 음식을 알고나니 이번에는 흔하게 접하지 못했던 단어나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토렴', '바시랑바시랑', '매움하다'. 예상치 못했던 글자들의 향연. 읽는 기쁨이 배가 됩니다. 국어사전을 옆에 둬야 할 것 같은 익숙하고도 낯선 이 감각. 수험생일 때로 소환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공감했던 부분은 새로운 메뉴 발표를 앞두고 있거나 가게를 오픈할 때의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설레임과 더불어 예정된 시행착오를 대하는 자세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실수를 할 것인데 감내해야 할 통과의례로 보는 것. 역시 여러 번 겪지 않고는 쓸 수 없는 문장들이었어요.

셰프가 쓰는 글. 매력 있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요리가 더 궁금해졌어요. 서사가 있는 요리. 셰프의 독서일기 <글자들의 수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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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 10주년 개정증보판
오프라 윈프리 지음, 송연수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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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확실히아는것들 #오프라윈프리 #북하우스 #지금읽는책 #에세이 #서평단

10년.
개정판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

예순이었던 그녀는
이제 일흔이 되었다.

여전히 고양된 삶을 살고 있는 그녀.
여전히 눈물이 많고, 여전히 감사한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은 세월을 겪어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친구. 열정. 고백. 감사.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고 자주 회자되는 언어들.

가끔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보다 우직하게 버티고 있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는 것.

한장 한장 읽다보면 알게 된다.
평범한 하루가 쌓여 지금의 내가 된다는 것을.

☆ 인상깊은 구절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건만 결코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무엇을 해야 하나?
내 모든 것을 다 주었건만 여전히 너무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대답은 노래의 간결한 후렴구에 있다.
그저 서 있으면 돼. 강인함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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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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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운 경험을 할 때가 있어요.

기억에 남는 작가와 책을 꼽으라면 아니 에르노여자아이 기억을 떠올렸었죠. 작가의 내밀한 경험담을 내내 뒤에서 따라다니면서 보는 듯한 적나라한 묘사 때문이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의 의미를 인지하게 되고 끊임없이 그날의 기억을 복기하면서 30년 동안이나 품고 있다가 풀어낸 글. 독자로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했던 때가 있었어요. 너무 솔직해서 탈이었던 아니 에르노’.

 

최근에 다른 의미에서 당혹감을 느끼게 하는 작가와 책이 생겼어요.

마치 커튼을 쳐놓은 것을 인식하지 못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지나가다 우연히 젖혀졌는데,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는 것 같은. 현실 속에 감춰진 다른 비일상적인 광경을 보고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지요. 누군가와 마주 본 눈이 살짝 감긴 사이에 도망치려고 틈을 보는 아이가 된 그런 느낌.

클레어 키건작가가 쓴 맡겨진 소녀가 그랬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그랬어요. 아니 일상 속에 감춰진 의미들이 그렇게 많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그것도 등장하는 인물들 태반은 인지하면서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하는 상황인데 제3자인 나도 알아버린 상황.

한마디로 말하자면 불편하다였어요.

 

<푸른 들판을 걷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어쩌면 편안한 내용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 시작했어요. 그러다 곧 깨달았죠. 작가가 다른 누구도 아닌 클레어 키건인 것을.

등장하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 아님에도 전사가 궁금해지고, 예정된 안타까움에 책장을 덮은 후임에도 한숨이 새어 나왔어요. 분명 짧은데, 하나 하나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짧지가 않더군요.

 

아마도 읽을수록 눈에 들어오는 인물들이 생겨나겠죠. 지금 눈에 들어오는 인물들과 이야기를 적어보았어요.

 

그토록 떠나고 싶어했고 마침내 벗어난 순간에 흘리는 눈물이 알려주네요. 끝내는 집으로 돌아올 것만 같은 누이동생(작별 선물),


반기지 않는 옛 연인의 결혼식에 참석해 수모를 당하고 기도를 통해서가 아닌 자연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찾는 사제, 뭐든지 고칠 수 있다는데 정작 자신이 할 말만 하는 중국인 치료사. 그들의 불통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푸른 들판에서),


() 때문에 그녀가 떠났다고 하지만 결국 본인이 그녀에게 한 말 때문임을 알고 있는 남자. 그가 본 여자는 다시 돌아온 것일까요. 꿈이 깨지 않기를 바라봅니다(검은 말),


아내의 비밀을 알면서도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남자와 결혼 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남자를 원망하면서도 떠나지 않는 여자, 그의 핏줄이 아닐거라 생각했던 그가 아끼는 딸. 그리고 집을 떠나고 싶어하는 큰 아들과 늘 어딘가 모자르다 여긴 둘째 아들. 아이러니하게도 남자가 갖고 있던 가장 큰 것이라 믿었던 집이 사라지자 다시 피어나는 가족간의 유대(삼림 관리인의 딸),


강가에서는 그렇게 수영을 잘 하더니 정작 바다에는 한 발자욱도 들어가지 않았던 할머니와의 대화. 그 의미를 깨닫게 된 청년의 독백. 그는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물가 가까이).


아마도 제목을 읽지 않았다면 부하를 괴롭히는 괴팍한 상사 이야기로만 생각했을,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과 적절치 못한 순간에 경험하는 결별이 어떻게 인간을 무너지게 하는가를 생각해 본 <굴복>(때로는 인물보다 이야기가 선명하게 남기도 합니다. 아마도 주인공은 평생 자신감 없는 삶을 살게 되겠죠.).


나무꾼이 선녀 옷을 버리기도 전에 속세로 내려온 천사 혹은 마녀와 옆집에 사는 염소를 키우는 남자가 만나 한 아이를 낳고 몇 년이 지나 자연스럽게 떠나는 모녀와 남자의 동화 같은 이야기(퀴큰 나무 숲의 밤).

 

적고 보니 개성 강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제가 써놓은 글에 동의하는 사람도, 같은 이야기를 읽은 것이 맞아?하고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암요. 그래야죠.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각자 다른 해석에 있으니까요. 저마다의 주석이 쌓이면 이 책도 누군가 한 말처럼 우리시대의 고전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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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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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라는 평을 자주 접했습니다. 사실은 사놓은지 오래였는데,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읽게 되었어요.
여운이 남는 책입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떠올려보면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없었던, 개인적으로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경험이었습니다.
전작 <맡겨진 소녀>를 읽을 때도 그랬거든요. 그래도 전작보다는 주인공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지점이 많았습니다.

'선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선의'는 무엇일까요? 받아 본 사람은 알 수 있습니다. 대가 없이 받은 '선의'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남아있지요. 그리고 언젠가는 베풀고 싶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제목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지만 주인공의 눈에 비친 장면과 기억들은 사소한 것들로 치부되지 않습니다.

주인공 펄롱은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미시즈 윌슨의 호의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갈 곳 없는 처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요. 펄롱은 어머니 역시 잃었지만 장성해서 자신의 가정을 꾸립니다. 아내와 다섯 딸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 펄롱은 일을 마치면 몸을 뉘일 공간이 있고, 가족이 있습니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펄롱의 집은 분주합니다.

다섯 아이들은 저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느라 바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펄롱은 과거를 떠올립니다. 자신이 받았던 선물을. 당시 친구들이 흔하게 받았던 지그소 퍼즐조차 받지 못했던 날들을.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면서 펄롱은 아버지의 부재를 깨달았지요. 그는 그때 미시즈 윌슨으로부터 낡은 책을 받았었어요. 낡고 헤진 책을 보면서 실망을 했지만 그는 다음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그 책을 다 읽었고, 사전을 찾아가면서 모르는 단어들을 찾아 본 덕분에 어휘력이 늘었죠. 같이 살던 네드 삼촌으로부터 받은 작은 난로 덕분에 겨울이 따스했던 기억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을 납품하러 갔다가 창고 안에 갇힌 소녀를 발견합니다. 떨고 있던 아이는 펄롱에게 강가로 데려가달라고 애원합니다. 죽게 해달라고. 그것도 못 들어주냐고. 아이는 펄롱을 타박합니다. 수녀원의 문을 두드립니다. 수녀가 나오고 마치 아이를 찾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합니다. 펄롱은 잠시 고민합니다. 이 반응을 믿어야 할지 말지를. 수녀원장이 그를 부릅니다. 차를 한 잔 하고 가라면서 붙들었었요. 수녀원장은 펄롱에게 봉투를 건냅니다.

수녀원장이 있던 곳을 나오면서 펄롱은 아이에게 이름을 묻습니다. 아이는 처음엔 '앤다'라고 불린다고 답했지만, 펄롱이 그건 남자 이름 아니냐고 반문하자, '세라'라는 이름을 알려줍니다. 이제 알아버렸어요. 펄롱은 어떻게든 이 아이와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세라'는 자신이 낳은 아이를 말합니다. 원래 살고 있던 곳은 이 곳과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요. 펄롱은 생각합니다. 미시즈 윌슨이 세라의 부모처럼 자신을 대했다면 어땠을까?라고. 펄롱의 아내 아일린은 펄롱의 말에 반응합니다. 미시즈 윌슨은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창문 수리를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라는 것이었겠지요. 다섯 명이나 되는 딸을 생각하라는 것이었겠지요. 아일린은 현실을 말합니다.

펄롱의 지인은 말합니다. 수녀원과 척을 지지 말라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나온 소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아내 아일린은 말합니다. 그곳처럼 대금을 밀리지 않고 주는 거래처가 또 있느냐고. 펄롱이 아일린에게 건내 준 봉투에는 돈과 급히 쓴 듯한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집을 나온 펄롱은 구두를 사러 갑니다. '세라'에게 맞을 듯한 구두. 맨발이 걸렸겠지요. 수녀원으로 찾아간 그는 '세라'를 데리고 집으로 향합니다. 몸을 감싸는 기운을 느끼면서요. 그는 알고 있습니다. 그의 행동이 가져 올 후폭풍을.

펄롱의 입과 행동을 빌어 작가는 묻습니다. 나와 내 가족만 잘 건사하면 되는 것이냐고. 홀로 창고에 갇혀 있는 소녀를 보고도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것. 이게 정말 사소한 문제인 것이 맞느냐고.

이 소설은 전적으로 허구라고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겠지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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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 제1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텍스트T 7
김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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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킷 #김선미 #위즈덤하우스 #청소년문학 #도입부

존재감.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 반에 섞어놓으면 도무지 눈에 뜨지 않는 사람.
그런 나한테도 자존심은 있었다.

자존심.
묘한 부분에 걸쳐있는 그것. 선만 넘어라. 괜시리 날을 세우던 때가 있었다. 혼자만 아는 그것이 있었다. 알고보면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존감.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어도 좋다. 스스로 아껴줄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는 힘. 자존심을 세우는 것보다 자존감을 기르는 것이 답이었다.

이 책에는 존재감을 잃어가는 ‘비스킷‘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무시받는 것처럼 상처받는 악순환. 그러나 걱정마시라. 알아보는 이가 있으니.

이 책은 말한다.
누구나 ‘비스킷‘이 될 수 있고,
누구든 ‘비스킷‘을 도울 수 있다고.

잊혀진 존재가 되는 것이 무서운 당신이 한번쯤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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