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많은 구절은 명상에 특히 적합하다. 책을 읽는 자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수행 과정이
될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새로운 정보의 수집 차원에 머물지 않고 좀더 높은 차원의 의식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같은
구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어도 좋다.
깨달음이란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인적인 성취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깨달음이란 그저 존재와 하나 됨을 느끼는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이다. 또한 깨달음이란 자신의 이름과 모습 저 너머에 존재하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존재와의 연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마음을 자신의 본성과 동일시하는 태도이다. 이
때문에 생각의 지배를 받게 된다.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만 대부분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겪고 있는 일이라
이를 오히려 당연히 여기고 있다.
존재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내면의 고요한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그칠 줄 모르는 생각인데도 말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행렬은 또한 생각이 꾸며낸 거짓 자아를 만들어내 두려움과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음은 올바르게 사용하면 훌륭한 도구가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아주 위험하다. 엄밀히 말해,
마음을 잘못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의 지배를 받는 상태가 되고 만다. 마음을 부리지 못하고 부림을 당하는 것은 곧 병이다.
깨달음을 향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마음을 자신의 본성과 동일시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음의 흐름 속에서 문득 무심의 순간을 경험할때마다, 깨달음의 경지로 성큼 다가설 것이다.
마음은 생각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생각은 물론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정신적, 정서적,
무의식적인 반작용까지 포함한다. 감정은 마음과 몸이 만나는 곳에서 일어난다. 감정이란 마음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고자 한다면, 몸 안에서 생기는 감정을 관찰하고 느껴야 한다. 몸은
언제나 충실하게 마음을 반영한다. 마음과 감정 사이에 모순이 존재한다면, 마음이 거짓이고 감정이 진실이다.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상황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위험과는 다르다. 두려움은 불안이나 근심,
초조, 긴장, 두려움, 공포 등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심리적 두려움은 대개 현재의 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어날지도 모를 미래의
일에 대한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항상 미래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바심도 그래서 생기는 것이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을 부정하려 든다. 한사코 지금 여기에서 달아나려 한다.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할수록 괴로움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유일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고, 지금 여기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와 미래에 얽매여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고 존중하지 않으며, 존재를 허용하지도 않게
된다. 과거가 정체성을 확인시켜주고, 미래는 어떤 식으로든 구원과 성취를 약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황상일 뿐이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 집착할수록 가장 소중한 시간인 지금 이 순간은 잃어버리고 만다.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이 아닌 삶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마음의 지배를 받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과거를 필요로 하고, 성취를 위해
미래를 필요로 하는 심리적 욕구가 있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이처럼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힌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이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부질없는 것들이다. 마음이 삶을 지배하는 한 고통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이렇게 고통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있는 그대로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저항은 생각의 차원에서 보면 판단의 형태로 나타나며, 감정의 차원에서는 부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고통의 강도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저항의 정도에 달려 있으며, 자신을 마음과 얼마나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을 부정하고 여기서 벗어나려 한다.
의식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모든 인간 관계,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져서 마침내 허물어지고 만다.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은 그 관계가 완벽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름다운 외모가 손상되면서 점점 말다툼이 잦아지고, 갈등과 불만만 쌓여간다. 심지어는 감정적, 신체적
폭력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래서 수많은 연인들이 애증 관계로 변질되고 만다. 사랑은 격렬한 공격과 적대감으로 변하고 한 순간 애정이 식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이 순간의 의식 수준이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내맡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자신의 행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맡김이 없는 의식 상태에서는 진정한 긍정적 행동이 나올 수 없다.
내맡김이라고 하면, 패배나 포기, 즉 삶의 도전 앞에서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내맡김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내맡김이란 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지혜이다. 삶의 흐름을 경험하는 곳은 바로 지금 여기뿐이므로,
내맡긴다는 건 지금 이 순간을 기꺼이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의미이다.
매일의 삶 속에서 고통과 슬픔을 겪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을 내맡길 줄 알아야 한다. 내맡김은 순수한 내적 현상이다. 그렇다고 외부적으로
행동을 취하거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맡긴다고 해서 모든 상황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단지 지금이라는
아주 작은 조각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있는 그대로에 자신을 내맡기고, 온전히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과거는 힘을 잃는다. 더 이상 과거가 필요치 않게 된다. 열쇠는
현존이다. 지금이 바로 열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