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지하철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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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안이 어디인지 궁금해 읽던 책을 멈추고 검색창을 켰다. '장안'이라는 단어를 넣으니 가장 먼저 '당나라의 서울이 장안(현재의 서안)이다'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현재의 서안이라는 글귀를 읽으니 왠지 <용과 지하철>의 이야기가 묘하게 납득되는 것 같았다. 분명 <용과 지하철>은 판타지이지만 고대 중국 장안이라는 도시에 일어난 일이라는 배경은 단지 판타지가 아니라 고대에 실제로 있었을 것만 같았다. 병마용갱이 발굴된 곳이자 여전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진시황제의 유물이 잠들어 있는 곳인 서안. 마보융 작가가 말하는 장안은 이름만 빌려 쓴 허구의 도시일 것이다. 하지만 신비함을 간직한 도시인 서안의 옛 이름을 배경으로 쓰인 <용과 지하철>은 이미 내게 단순한 판타지 소설 이상이 되었다.

 

중국판 미드 24시를 보는 듯 박진감 넘치는 <장안 24시>를 통해 마보융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1권을 읽고 난 후 단숨에 2권까지 읽게 만들고 중국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깨어버린 마보융 작가가 이번에는 장안을 배경으로 <장안 24시>와 전혀 다른 판타지 소설 <용과 지하철>을 들고 나타났다.

 

​<용과 지하철>은 소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표지의 독특함부터 말하고 싶다. 개성 있고 멋진 책 표지들이 많지만 한눈에 쏙 들어오는 디자인은 없었다. 하지만 <용과 지하철>은 책을 펼치기 전에 먼저 손으로 표지 그림은 한참이나 만져봤다. 금방이라도 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용과 수염을 잡고 있는 소년이 톡 떨어질 것만 같았다. 페이터 아트로 만든 <용과 지하철>은 최근에 접해 본 표지 중에 최고 점수를 주고 싶을 만큼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용과 지하철>은 입체감 있고 몽환적인 느낌의 페이터 아트 표지와 무척 잘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장안 24시>은 두 권에 걸친 장편 소설이지만 <용과 지하철>은 중단편 소설로 책 안에는 <용과 지하철>외에 '고북구 출입금지 구역', '고고물리학', '대접근대이동' 이라는 3편의 단편 소설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전의 책이 휘몰아치는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정신없이 빠져나왔다면 이번 <용과 지하철>은 '용과 지하철'과 그 속에 수록된 단편 소설을 통해 마보융이라는 작가의 다양한 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게 된 기회였다.

 

​<용과 지하철>은 신화와 과학이 함께 어우러진 판타지 소설이다. 고대 중국 도시 장안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닌다. 지하도에는 현대의 지하철 개념으로 용이 사람들을 수송하고 있다. 이런 용들을 책에서는 지하룡이라고 부른다. 전설의 동물인 용이 지하철처럼 사람들의 교통수단이 된다는 배경이 무척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장안시의 지하도를 다니는 지하룡들은 용문절에 잉어에서 용이 되는 순간 잡아 지하룡으로 이용된다. 용들은 사람들에게 잡히는 순간 역린이 제거되고, 오랫동안 쌓인 분노의 역린 속에서 태어난 얼룡들로 인해 장안시는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이런 혼란을 없앨 사람은 장안시 장군의 어린 아들 나타와 나타와 우정을 쌓은 황금룡 막대사탕이다. 과연 용과 소년은 초대형 얼룡으로 부터 장안시를 지켜낼 수 있을까?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연기로 만들어진 얼룡들을 잡기 위해 부적이 사용된다. 매년 물길을 거슬러 용문을 뛰어넘는 황하의 잉어들이 용이 되는 순간, 사람들에게 잡혀 평생을 장안시 지하에서 지하룡으로 살다가 죽어가는 용. <용과 지하철>은 하늘에서부터 지하까지 독특한 설정의 판타지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판타지 사이에는 용들을 잡아 지하에 가둬둔 인간들의 욕심, 백성들의 목숨보다 권력 놀이에 바쁜 지배층, 순수함으로 용과 친구가 되는 소년 그리고 4% 정도의 로맨스가 들어있다.

 

​<장안 24시>가 빠른 호흡과 반전의 매력을 가졌다면 <용과 지하철>은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장안 24시>를 읽고 <용과 지하철>을 읽으니 금방 이야기가 끝나 버린 것 같아 아쉽기도 했지만 <용과 지하철>만큼이나 개성 있는 마보융의 판타지 단편 3편이 남아 있으니 느긋하게 마보융의 판타지 세계를 즐겨보길 바란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지하철을 보는 순간, 진짜 용이 지하도에서 긴 수염을 날리며 들어와 플랫폼에 정차하고 사람들이 용의 비늘 사이로 올라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일상의 한순간을 판타지로 만들어 주는 <용과 지하철> 덕분에 한동안 지하철 타는 게 무척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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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츠드렁크 - 행복 지수 1위 핀란드 사람들이 행복한 진짜 이유
미스카 란타넨 지음, 김경영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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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왔으면 가장 먼저 답답한 옷을 벗고 가장 편한 옷을 입자. 냉장고 안에 넣어둔 시원한 맥주 한 캔과 단짠단짠 과자 한 봉지를 꺼낸 후 털썩 소파에 앉은 후 TV나 좋아하는 영화 한 편을 틀자.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웃고 즐기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순간, 그때가 바로 팬츠드렁크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에서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술을 즐기는 것, 그것이 팬츠드렁크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각자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해야 하루가 제대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땀 흘리며 신나게 운동을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집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는 전형적인 집순이이다. 팬츠드렁크라는 단어는 다산북스에서 출간된 <팬츠드렁크>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책에서 들려주는 것들은 집순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 싶다.


라곰이나 휘게처럼 여유로운 삶, 현재를 즐기자는 북유럽의 라이프 스타일 중 핀란드인에게는 팬츠드렁크가 있다. 팬츠드렁크의 장점은 누구나 자기답게 쉴 수 있는 완전한 휴식이라는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도 없고,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것도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휴식을 취한다.


<팬츠드렁크>는 핀란드인들의 휴식 방법인 팬츠드렁크에 대해, 어떻게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는지 등을 알려주는 가이드북과 같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이미 팬츠드렁크와 같은 시간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될까 하는 주저함이 있다면 그건 진정한 팬츠드렁크가 아니다. 쉬는 순간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안성맞춤인 <팬츠드렁크>를 보며 진짜 나로 쉬는 방법을 알아보길 바란다.


팬츠드렁크의 핵심은 '의미 있는 무의미함'이다.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계획된 방식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야 한다. 팬츠드렁크에서는 무엇보다 혼자만의 시간,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물론 마음이 잘 맞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기에는 함께 보다 혼자가 더 좋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맥주 또는 와인을 준비한다. 자신의 주량을 고려해 적당한 술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만약에 술을 마시지 못한다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를 준비해도 좋다. 팬츠드렁크의 옷차림은 기본적으로 최대한 벗는 것이지만 가장 편안한 옷을 입으면 된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수면 잠옷이 최고의 옷이 아닐까. 음악을 좋아한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가 가득 담긴 음악을 준비하고 오락을 좋아한다면 오락기기를 가져온다. 책을 읽어도 좋고 스마트폰을 해도 좋고, 유튜브를 보거나 실컷 웃을 수 있는 예능을 봐도 좋다. 어떤 것이든 자신이 가장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면 오케이이다. 그리고 술과 함께 꼭 준비해야 할 것이 바로 기분을 북돋는 적당한 당분과 나트륨이다. 팬츠드렁크는 날마다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므로 팬츠드렁크를 할 동안 만은 칼로리나 영양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행복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것들로 준비한다.


아마 매일매일 바쁘게 살았던 우리 부모님 세대라면 팬츠드렁크하는 자녀들을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팬츠드렁크>에서도 그런 구절이 있다. '젊은 직원들은 팬츠드렁크를 중성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반면 더 나이가 있는 직원들을 서글프고 외로운 삶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술을 마시는 중이나 마시고 난 후에 SNS를 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팬츠드렁크>에서는 소셜 미디어가 팬츠드렁크에 짜릿한 재미를 더해준다고 말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하는 실수 또한 삶의 일부이다. 하지만 도를 넘지 않고 언행을 조심하기 위한 자제심은 필요하다.


<팬츠드렁크>에는 팬츠드렁크를 하는 방법, 필요한 것들, 왜 해야 하는지 등 팬츠드렁크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헬싱키에서 맥주 마시기 좋은 장소'를 소개하는데 만약에 헬싱키 여행을 간다면 핀란드인들처럼 야외에서 팬츠드렁크를 즐겨봐도 좋을 것이다.


팬츠드렁크를 한다고 언제나 술을 마시며 영화나 스마트폰만 할 수 없다면 업그레이드된 팬츠드렁크를 해보자. 팬츠드렁크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느긋한 휴식이지만 이 말이 곧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기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양말 짝 찾기, 빨래 개기 등 손쉬운 집안일, 블랙헤드 짜기나 옛날 일기 읽기 등의 자기 관리도 있고 조금 더 강한 활동을 원하다면 그동안 미뤄둔 욕실 바닥 청소나 소파 밑에 떨어진 동전을 꺼내는 등의 청소를 해보는 건 어떨까.


팬츠드렁크를 하는 방법은 있지만 정해진 방법은 없다. 쉼과 명상이라는 팬츠드렁크에 목적에 잘 맞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바로 팬츠드렁크이기 때문이다. 지친 일상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을 좋아한다. 집에 들어오기 전 편의점에 들러 4개 만원 세계맥주를 구입하고, 그때 기분에 따라 적당한 안주도 함께 산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하루의 고됨이 묻은 옷을 벗어던지고 큼지막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으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의미 없이 TV를 켜놓고 스마트폰으로 이곳저곳 둘러본다. 그것마저 피로할 때면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본다.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 하루를 더욱 열심히 산다.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와 혼자서 즐기는 저녁 한두 시간이 나에겐 진정한 팬츠드렁크이자 내일을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영양제가 된다.


당신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가? 당신이 가장 행복함을 느끼는 시간은 언제인가? 팬츠드렁크, 나만의 온전한 휴식 방법에 정답은 없다. 만약에 어떻게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팬츠드렁크>를 읽어보길 바란다. <팬츠드렁크>에서 알려주는 방법을 시작으로 진정한 휴식의 세계로 들어가 보길 바란다.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더 잘 쉬어야 한다. 진짜 행복하기 위해 오늘부터 팬츠드렁크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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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리더십 경영
윤형돈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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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역사 속 많은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미래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자 한다. <조선 리더십 경영>은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조선시대의 리더십을 선택했다. 우리는 보통 리더십을 높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리더십은 꼭 높은 위치의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는 개개인이 갖출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남들에게 호감을 얻고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가 꼭 알아야 할 것이다.


<조선 리더십 경영>은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진정한 리더가 무엇인지, 그들의 경험을 통해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려야 할 것인지 알려준다. 다소 딱딱한 느낌의 제목과 달리 책 속의 이야기들은 재미있다. 잘 알고 있는 인물과 사건도 있지만 <조선 리더십 경영>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역사 이야기도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조선 리더십 경영>은 처세의 진짜 기술, 신념을 지키는 리더,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춘 리더십, 미래 리더의 자격이라는 주제로 총 12명의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 처세의 진짜 기술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종과 조광조의 관계, 김종서, 세조의 삶을 통해 처세술에 대해 말한다. 수많은 역사 책과 드라마를 통해 만나고 있는 인물들인 만큼 그들의 삶은 매력적인다. <조선 리더십 경영>을 통해 만나본 그들 이야기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이 책에서는 기존의 것들과 달리 오직 리더십, 특히 처세에 초점을 두고 풀어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김종서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점이 많아서 놀라웠고 인상 깊었다.


<조선 리더십 경영> 2부 신념을 지키는 리더에서는 처음 만나는 인물인 김육과 리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순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순신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이 책에서는 이순신뿐만 아니라 진짜 리더인 이순신을 괴롭힌 가짜 리더의 위험에 대해서 알려준다. 진정한 내부의 적으로 조선 수군을 궤멸시킨 원균이 바로 가짜 리더이다. 이순신 편을 통해 가짜 리더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었는데, 문제는 그런 가짜 리더가 현대에서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3부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춘 리더십에서는 자신의 생각만 고집해 문제를 만든 선조와 보스형 리더십의 정점인 태종, 여기서는 그래도 된다는 착각 속에서 선을 넘어버린 홍국영에 대해 설명한다. 미래 리더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4부에서는 조선 최고의 리더십을 가진 세종과 영조를 만난다. <조선 리더십 경영>에서 세종의 리더십은 서번트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서번트 리더십이란 지시가 아니라 '공감대를 바탕으로 팀을 이끄는 리더십'이다. 하지만 의외로 서번트 리더십은 활용되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세종은 힘들더라도 미래를 위해 시스템을 만들 방법을 선택해 역사에 기리 남을 한국형 서번트 리더가 되었다.


올바른 리더십이란 자신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도 같이 살펴야 생긴다. 타인을 살펴볼 때 변화의 흐름을 볼 수 있고, 비로소 미래의 방향이 보인다.


저자가 말하는 올바른 리더십의 정의처럼 <조선 리더십 경영>은 리더십이 필요한 특정한 집단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계속되는 시대에 맞춰 우리도 조선시대의 그들처럼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지키고 바꾸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라고 나서는 누군가에게 이끌려 가는 시대는 지났다. 한사람 한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고 자신만의 특성으로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조선 리더십 경영> 속 다양한 리더십을 가진 그들을 통해 당신만의 리더십을 발견하고 변화를 앞서 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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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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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의 시대>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짐작 할 수 없었다. 김민섭 작가는 언제나 씁쓸한 '지금'의 모습들을 명쾌하게 들려주기 때문에 이번에도 기대감을 안고 책을 들었다. <훈의 시대>를 펼치고 곧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들려주는 훈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훈의 시대>를 통해 언어의 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훈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를 사용했을 뿐 책이 하는 이야기는 나도, 당신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이다.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그냥 그렇게 의심없이 훈속에서 살고 있었기에 <훈의 시대>를 읽으며 익숙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시대의 언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훈의 시대>를 읽으며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구절이 떠 올랐다. 이 책이 언론이나 정보 전달의 무서움을 이야기하진 않지만 가만히 읽어보면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사실들을 들려준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삶 속에 당연한 듯 깊이 새겨진 훈들에 대한 이야기. 폭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펜을 들었던 사람들은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하다. 하지만 훈은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나는 <훈의 시대>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훈으로 가득한 세상이 새삼 무섭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훈'이란 무엇일까? <훈의 시대>에서 말하는 훈은 한자로 가르칠 훈(訓)을 말한다. 한 단어만 이야기해서 혹시 이 단어가 추상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훈은 단어 그대로 우리가 쉽게 쓰는 훈계, 훈육, 가훈, 교훈등에 사용하는 바로 그 훈이다. <훈의 시대>에서 작가가 말하는 훈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훈'은 1)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언어이고, 2)지배계급이 생산, 해석, 유통하는 권력의 언어이고, 3)한 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욕망의 언어이다.


문자가 소수만의 특권이자 권력의 원천이었을 때가 있었다.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처벌등의 수단을 통한 몸으로 기억되는 훈만을 사용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문자를 알게 되면서 부터 훈은 이전의 직접적인 통제때 보다 더욱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 언어의 영향력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광범위했고 효과도 뛰어났다.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시대이건 당시의 지배적인 훈이 있었고 언제나 새로운 훈들이 등장했다. 작가의 말처럼 시대의 훈은 그 시대의 야만과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훈의 시대>에서는 학교, 회사 그리고 개인의 훈에 대해서 들려준다. 과거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고, 현재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대표적인 두 공간에 그토록 많은 훈들이 있었다는게 놀라웠다. 의심하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나 주류에 따라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훈의 시대>를 읽으며 나 역시도 습관처럼 반복되는 시대의 훈에서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의 훈'에서는 모든 학교에 있는 교훈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었데 나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교가 역시 누군가가 들려주면 어렴풋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수없이 불러댔던 그 교과가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의 훈에서 나오는 수많은 교훈과 교가들에 그렇게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다녔던 여중과 여고의 교가와 교훈이 궁금해 책을 읽다 인터넷으로 고등학교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책에서 말하는 극단적인 단어가 없는 교가 가사를 보며 왠지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남성이 군복무라는 희생을 도맡고 있으니까 어디에서든 주체가 되어야 하고 여성은 주변부로 밀려나도 괜찮다'는 논리는 많은 남성들의 몸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군복무가 그러한 당위성을 부여하느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그러한 욕망이 학교에서부터 이처럼 구체화되고 있는 데는 문제가 있다.


<훈의 시대>가 단지 특정 집단에서 많이 쓰는 훈에 대해 찾아보고 정리해서 들려주는 책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당연한 듯 머리 속에 새겨진 예전의 훈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잠식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갈등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 이야기한다.


학교와 회사 중 어느 쪽이 훈을 통해 더 쉽게 통제할 수 있을까? 나는 학교보다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집단들이 훈을 통해 지배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한다. 어느 회사든 사훈이 있다. 단지 글로 써 있지 않아 많은 사원들이 자신의 회사에 사훈이 있는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모를때가 많다. 하지만 글로 적어놓지 않더라도 나는 회사의 분위기가 사훈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에 속하며 우리는 일원이 되기 위해 그 곳의 색깔로 조금씩 변하려고 한다. 인식하지 못할 뿐, 그 회사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어느 순간 나에게도 느껴진다면 회사의 훈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훈의 시대>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훈은 바로 '개인의 훈'이였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글을 통해 조목조목 읽어보니 다시금 내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브랜드 아파트로 가야한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 훈에 대한 이야기. 저마다의 건설사가 아파트 브랜드를 만들어 냈고 끝없는 TV광고를 통해 자사의 브랜드를 개인들이 쟁취해야만 할 훈으로 정착시켰다. 그들의 전략은 성공했다. 어느새 우리는 아파트가 자신의 품격을 증명하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브랜드 아파트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그 곳에 살면 정말로 자신들이 더욱 특별하게 되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비단 브랜드라는 이름뿐이겠는가. 경비원에 대한 갑질, 임대아파트와 구분하기 위한 가림막 설치, 택배 차량의 지상 집입 금지등 '우리'만의 특별한 공간을 지키지 위해 참 많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고, 여전히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공간들도 많다. 요점은 내가 특별하면 너 역시 특별하고 우리 역시 특별하다는 사실을 모두 인식해야 된다는 것이다. 공간의 주인은 폐쇄된 공간을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로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훈들이 남아 이 시대와 여전히 동시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야만의 언어들이, 산업화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언어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것은 몹시 모욕적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이제 폐기하고 스스로의 훈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세계 곳곳으로 떠나고 오는 항공기와 훈련 중인 전투기가 지나다니는 곳이다. 가끔 놀러오는 친구들은 나에겐 들리지도 않는 조용한 민항기 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한다. 처음에는 나 역시도 그랬다. 비행기가 지나갈때 마다 TV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고, 전투기가 빠르게 지나가면 집이 흔들리기도 해서 과연 여기에 살 수 있을까 싶었다. 한해가 지나고 두해가 지나며 이제는 민항기 소리는 들리지도 않으며 전투기가 뜨면 '야간 훈련인가' 하고 만다. 시끄럽지만 그러려니 하고 내가 사는 공간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훈의 시대>는 앞에서 말한 언어가 가진 힘과 함께 익숙함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당신의 훈, 회사의 훈, 학교의 훈에 대해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대답하지 못할 뿐 우리는 수많은 훈을 듣고 듣고 들으며 살아왔다. 마치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에 익숙해져 조용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때로는 버려야할 훈, 편협한 훈, 욕망의 훈에 익숙해져 그것이 잘못된 훈임을 판단하지 못한채 나의 의견인양 말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훈의 시대>를 통해 훈이 어떤 것인지 알았으니 이제 찾아보자. 당신도 모른채 따라가고 있었던 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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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 삶, 사랑, 죽음, 그 물음 앞에 서다
경요 지음, 문희정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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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었다. 사람들의 가장 큰 착각 중의 하나는 자신이 나이 들어 죽을 것이라는 것. 죽을 때까지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마지막 눈을 감을 때는 가족들의 따뜻한 눈물과 배웅 속에서 세상을 떠날 거라는 확신. 적어도 자신만은 그렇게 죽을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후에 치매가 걸리거나, 몸을 마음대로 못 움직여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잘 죽어가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요즘엔 존엄사나 웰다잉에 관한 책이나 다큐가 종종 나오고 있어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무척 불편해한다.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하루씩 줄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 유한한 삶이기에 우리는 젊음을 사랑하고 열정을 불태우며, 정말 열심히 산다. 20대에는 30대를 준비하고, 30대에서는 40대를 계획한다. 하지만 노년에 맞이하는 늙음이 주는 병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계획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아.'


얼마 전에 존엄사에 관한 다큐를 봤다. 대만은 우리보다 웰다잉에 대한 인식이 앞서가고 빠르게 준비하고 있는데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를 읽으며 다큐에서 봤던 장면들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았다.

 

경요는 '황제의 딸'이라는 드라마로 알게 된 작가이다. 그녀의 드라마에 정신없이 빠졌고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가 경요의 에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무척 읽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어떤 내용인지 몰랐다. 노년을 살고 있는 그녀의 삶에 대한 에세이겠거니 했었는데 의외로 존엄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더구나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과 웰다잉의 권리에 대한 글이라니.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한 줄 비위관 이야기'에서는 존엄사법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남편의 치매를 알게 되고,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남편을 간호하는 과정 그리고 남편이 원하지 않은 비위관 삽입을 하며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잃어버린 남편을 바라보는 경요의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 2부 이제는 모두 추억이 되어'에서는 남편과 경요와의 일상적이지만 아름다운 순간순간들을 들려준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존엄사 법에 찬성하는 작가 경요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웰다잉을 지지한다. 온갖 주사기 줄을 주렁주렁 달며 이곳이 어디인지, 지금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짧은 숨만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노인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페이스북에 올려 엄청난 반응을 겪었던 글을 다시 손본 것도 있지만 이 책의 대부분은 미발표작이다. 남편의 치매 과정을 겪으며 느꼈던 고통과 절망을 그대로 담았다.


2017년 3월 12일 '아들과 며느리에게 보내는 공개서신'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아플 때와 사후에 해줬으면 하는 몇 가지 당부를 한다. 그녀의 가장 큰 바람은 몸뚱이만 억지로 붙들고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와병 노인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갑자기 효자 증후군에 걸려 대불효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것이자 필연적으로 닥치는 일이지. 반대로 '생명'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것은 항상 '우연'이야. ~ 죽음은 네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일이야!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탄생'에만 기뻐하고 '죽음'에는 슬퍼하는 걸까? 긍정적인 에너지로 죽음 맞이할 수 없는 걸까?


경요 어머니 역시 돌아가시기 전 2년 동안 치매를 앓으셨다. 치매 말기까지는 이르지 않은 채 돌아가셨지만 2년 동안의 고통은 경요에게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었다. 조금씩 생명과 즐거움을 잃게 만드는 질병인 치매. 중증에 이르면 환자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생명의 존엄, 삶의 품격도 상실한다.

 

경요가 어머니 병간호 후 관심을 가진 문제는 바로 현재 치매 인구와 현재 와병 노인의 숫자였다. 급속도로 노령화가 진행되는 타이완의 현실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갈수록 치매와 노인성 장애 인구가 증가한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에세이이기 전에 노인문제에 대해 보다 부드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었다.


책 속의 많은 구절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다음 문장이 가슴에 와닿았다.

 

"무슨 인생이 이래? 세상에 태어나자마다 배워야 할 것 천지지. 말하는 것도 배워야 하고 걷는 것도 배워야 하고, 그 뒤로는 일생을 전력투구해야 해. 학생 때 죽을 둥 살 둥, 취업할 때 죽을 둥 살 둥, 연애와 결혼도 죽을 둥 살 둥, 아이가 생기면 죽을 둥 살 둥, 퇴직해도 죽을 둥 살 둥, 그렇게 평생을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은 것이 다 늙어서 '잊어버리기' 위한 거였나?'


경요 작가의 일기를 읽는 듯했다. 남편의 치매를 알고부터 한 단계 한 단계 고통이 더해지는 과정은 담담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에 슬픔이 진하게 묻어있다. 그녀가 책을 통해 하는 말은 사랑하는 가족 중에 누군가가 치매나 노인성 질병에 걸릴 경우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비위관 삽입을 두고 가족들 사이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적이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녀의 심정이 어떤지 아주 약간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 있다는 말은 침대 위에 누운 채 숨을 쉬고 심장만 뛰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다는 말은 무척이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세상을 즐길 수 있고,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며, 해가 지는 것을 보고, 바람과 비의 소리를 들으며, 맛있고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영화와 각종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생과 사는 본래 쌍둥이 형제와 같아서, 탄생이 있으면 죽음도 있는 것이다. 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것은 아름다운 결말이어야 한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에세이였다. 존엄사나 웰다잉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이고, 그토록 싫어하는 삽입관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남편을 지켜보는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경요의 글답게 묵직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그녀의 고통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한없이 슬픔에만 빠지지 않는다.

 

이 책은 죽음 앞에서 존엄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경요가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답한다. 잘 죽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준비가 여전히 서툴다. 나이가 들면서 멋지게 사는 삶보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까에 대한 고민이 늘어간다. 부모님에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나에게 내 생명 유지의 선택권이 없을 때 나는 어떻게 될까? 등 끝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녀는 책의 말미에 독자에게 묻는다. 생각해 보라. 당신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싶은가? 인위적으로? 빨리? 천천히? 생각해 보시라. 진지하게 생각해 보셔야 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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