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작은 아씨들>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이야기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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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사랑한 영원한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

이름만 들어도 미소가 지어지는 책 <작은 아씨들>,

그리고 작은 아씨들 그 후의 이야기인 <조의 아이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이 두 권 (1~2 부, 3~ 4부) 책의 저자 인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야기인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까지 읽어야

비로소 책을 모두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조의 이야기> 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조’와 책의 저자인 ‘루이자’가 닮았다는 것과

저자인 루이자의 특성과 이야기를 조금씩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읽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이야기 밖의 루이자가 이제는 작품 안으로 들어왔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통해 읽었던 책의 장면들이 다시 펼쳐지고

책 안의 인물들이 실제 인물들과 연결되며 스토리가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래서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의 내용을 소개하려고 한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인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보고

루이자의 성격에 궁금증이 생겼었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서는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라는 책 제목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되었다.

우선 ‘고집쟁이’ 라고 하면

다른 사람의 의견은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어학 사전에 고집쟁이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고집쟁이 (固執쟁이)

[명사] 고집이 센 사람.

[유의어] 고집통, 고집통이, 독불장군

네이버 어학사전

좀 더 구체적인 뜻을 알기 위해 한자 사전에서 ‘固執’를 검색하면 아래와 같다.

固執 (고집)

자기(自己)의 의견(意見)만 굳게 내세움

네이버 어학사전

평소에 생각했던 ‘고집쟁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 ‘고집쟁이 (固執쟁이)’를 영어로 하면 ‘obstinate person’ 이라고 나온다.

고집쟁이 (固執쟁이) obstinate[stubborn headstrong] person

obstinate

1. 고집 센, 완강한

2. 없애기 힘든, 난감한

네이버 어학사전

그렇지만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의 영어로 된 책 제목은

< Invincible Louisa> 다.

‘고집쟁이 (固執쟁이) obstinate[stubborn headstrong] person’ 이 아닌

‘Invincible’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여기서 ‘Invincible’은 ‘천하무적의, 아무도 꺾을[바꿀] 수 없는 (=unconquerable) ’ 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제목은 ‘천하무적 작가 루이자’가 아닌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다.

영어와 한글의 표현이 달랐지만, 둘 다 그렇게 표현한 이유가 이해되었다.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해석해 보려 한 것이기 때문에 이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책을 읽고 두 제목의 차이는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 것이다.

루이자의 가정은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풍족함 가운데 있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스물 아홉번 이상의 이사를 다녀야 했으며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이겨내고 버텨내는 삶에 가까웠다.

모두 소망이 있었지만 환경적 여건을 보면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상황들이 아니었다.

루이자가 가진 소망은 가족을 돌보는 것이었다.

책을 보면 자신의 필요와 환경보다 가족의 행복과 필요를 먼저 살피는

루이자의 따뜻함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는

그런 루이자의 소망이 이루어졌음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루이자가 삶에서 이루고 싶었던 꿈은 가족을 보살피는 것이었으니,

진정으로 행복한 결말이었다.

<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어쩌면 힘든 환경과 그 모든 과정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지닌 여성으로서

‘천하무적’이라는 표현이 나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루이자가 그런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신체적 조건이나

좋은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신체적인 조건으로는 루이자는 ’굽은 어깨‘, ’어색하게 긴 팔과 다리‘ 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전에는 건강하였지만, 자원했던 간호병 생활에서 몸이 약해지고

이전처럼 건강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성격적인 측면에서 루이자는 수줍음이 많았으며 매우 예민했다.

그렇기에 루이자는 좌절이 다가올 때 다시 웃으면서 기운을 내려 했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했다.

루이자는 자기 성향을 이른 나이에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좋은 쪽으로 바꾸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루이자는 자신의 성향을 알았다.

그렇지만 그런 성향을 다르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에 필요한 부분을 알고 필요한 부분에서 용기를 내고,

노력하며 자신의 강점을 잘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루이자의 글을 보고는 한 잡지사 편집장이 “작가가 될 일은 없을 거야” 라고 말했을 때

루이자는 좌절하거나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되어서 그 편집장이 운영하는 잡지에 글을 쓰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루이자의 이런 모습은 작가로서의 ‘고집’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국 루이자는 그 잡지에 글을 싣게 되었다.

그런데 단지 ‘오기’로 글을 쓴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집쟁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이해한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는 앞서 살펴본 ‘고집쟁이’라는 뜻이 아닌

‘고집’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가깝다.

‘고집’

[명사]

1.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

2. 마음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심상이 재생되는 일.

네이버 어학사전

그리고 이런 ‘고집’의 뜻에 ‘-쟁이’가 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쟁이

[접사]

1.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네이버 어학사전

그리고 이 의미가 이해되는 이유가 바로

내가 루이자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내용을 설명하면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이라는 뜻은

옳지 않은 것을 고집 있게 버티는 의미 말고 다른 의미로서 다가왔다.

내가 느낀 루이자가 바꾸지 않은 의견과 태도는

어린 시절 마음에 지닌 소망과 관심, 사랑이었다.

열세 살 루이자는 마음속에 희망을 품었다.

‘배우, 극작가. 작가’

이아기를 구성하고 공연하는 것을 좋아하는 루이자의 관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었다.

연극을 좋아하고 무대에 올라 연기를 했다.

그렇지만 이 때 품은 희망은 배우나 작가가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직업 보다도 더 큰 희망이 있었다.

열세 살 루이자의 마음에는 ‘가족’이 있었다.

어떤 일을 하든, 루이자는 자기 능력으로 해낼 생각이었다. 의욕이 넘쳤지만,

루이자의 마음 한쪽에는 확실한 결정을 방해하는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버지는 몸을 회복했지만 혼란스러운 세상 물정을 잘 몰랐고,

어머니는 생계 문제로 지쳐 있었다.

애나도 자기만의 야망이 있었고, 엘리자베스는 몸이 허약했다.

어린 메이는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열정적인 아이로 커가고 있었다.

모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가족에게

루이자가 느낀 사랑과 아끼는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열세 살 소녀가 이토록 자신의 가족을 생각하고 아끼고 있다는 마음이 정말 예뻤다.

그저 가족이 좋아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루이자는 자신의 가족을 돌보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방에서 인생 계획을 세우며 사랑하는 가족 모두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고 맹세했다.

이 어린 소녀의 다짐과 사랑은 고난이 온다고 무너질 소망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것부터 앞서서 생각할 나이인 열세 살에

이렇게 가족을 생각하고 사랑한 루이자의 마음은 루이자의 온 삶에 묻어나 있다.

인생 계획을 세우는 시작부터 이제는 떠나야 하는 마지막까지도 루이자의 마음에는 가족의 행복이 있었다.

"언니가 곁에 있으면 힘이나" 라고 말한 엘리자베스의 말처럼

루이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그렇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천하무적이라는 제목이 붙을 정도로

(한글로 된 <고집쟁이 루이자>에서는 ’천하무적‘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 않지만)

힘든 상황을 마주하고 무너지지 않는 강한 루이자 였다.

전쟁 가운데 간호병으로 자원한 루이자는 ‘내가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을 때 도

“메이 가문의 기운으로 헤쳐나갈 거야.” 라고 말했다.

간호하다가 자신의 몸이 안 좋아졌을 때도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엾은 환자들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을 까봐 걱정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 표현 된 보스턴에서 생활하던 시기에도 루이자는 강했다.

아무리 애써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절망적인 시기였다.

그렇지만 루이자는 한숨만 내 쉬며 우울함에 빠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 가운데도 루이자는 "분명히 나를 위한 일이 있을 테고, 반드시 찾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으로 절망에서 벗어났다.

분명히 나를 위한 일이 있을 테고, 반드시 찾을 거야.

<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 코닐리아 메그스 지음, 김소연 옮김 / 윌북

이렇게 정리하며 생각해보니 루이자의 작품과 루이자의 삶에 대한 내용의 첵 제목으로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 와 <Invincible Louisa> 둘 다 맞는 의미였다.

이렇게 루이자를 알아가는 시간이 나에게는

알고 싶었던 누군가를 알아가고 그 삶에 감탄하게 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조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조’의 따뜻함에 감탄했었다.

‘어떻게 이토록 아이들의 눈에 맞춰 같이 웃어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해 줄 수 있을까.

아이들을 보며 한계를 짓거나 어렵고 힘들게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믿어주고 희망하고 품어 줄 수 있을까. ’

가상의 인물이라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읽으며 루이자의 삶에서 조가 보였고, 낸, 넬리가 보였다.

그리고 다시 각 인물들에서 ‘루이자’가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 책은 ‘루이자’만을 알게 되는 책이 아니다.

작가로서의 루이자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으면서도

‘작은 아씨들’ ,‘조의 아이들’에 나오는 아이들과 각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루이자는 가상의 인물들로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루이자 자신과 자매들의 이야기,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작은 아씨들> 과 <조의 아이들>에 담겨 있다.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읽으면서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에 나오는 인물들과 더 친해지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저 스토리로 만났던 이야기 속 인물들의 실제 삶을 만날 수 있는 책이면서도

책 속의 인물들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이 더욱 좋아졌다.

그리고 ‘루이자 메이 올컷’을 알아가며 ‘조’와 친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부족한 글로 담기 어려운 정말 좋은 책이었다.

<작은 아씨들>과 <조의 아이들>을 사랑하는 독자님들과

‘루이자 메이 올컷’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독자님들이라면

<고집쟁이 작가 루이자>를 꼭 만나 보셨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윌북서포터즈4기 활동을 통해 받은 책을 읽은 후 작성한 개인적인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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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가든 - 초판본 비밀의 화원 - 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 박혜원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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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공녀>, <소공자>, <비밀의 화원>의 작가인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책을 좋아하는데

특히 '더스토리' 출판사 디자인으로 나온 <비밀의 화원>은 특별하다.

왜냐하면 표지 디자인 부터 소장욕구가 생기는 책이기 때문이다.

'초판본 표지 디자인' 책으로 ,

1911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이다!!

 

 

양장본을 좋아해 책을 잡고 읽으면서도 기분이 좋았고

신비로움을 머금한 듯한 초판본 표지 디자인과 흑백의 책 안의 삽화가

더욱 <비밀의 화원>이야기를 흥미롭게 해주었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작가가 쓴 책의 표현은 <소공녀>에서도 느꼈지만 섬세하고 아름답다.

특히 감정과 풍경, 자연에 대한 글의 표현은 정말 눈앞에서 그 모습이 보여지는 것 같다.

마치 표현된 그 풍경이 바람을 타고 책장 넘어 나에게도 다가올 것 같이 느껴진다.

정말 자세한 표현을 넘어 섬세하고 아름답다.

여기서 내가 느낀 아름다움은 눈부시고 화려한 조명 같은 표현보다는,

밤하늘 은은하고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이나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은 없지만 작은 반딧불이들이 어두운 밤을 비추는 듯한 표현에 가깝다.

정겹고 아름다운 표현들,

그래서 읽다보면 포근하고 평안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미소로 얼굴에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또한 주인공에게 갑작스러운 어려움을 주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과

주인공이 그런 상황 가운데서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고

결국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발판이 되어준다는 점에서도

<소공녀>의 스토리와 공통점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공통점이 있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작가의 책을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비밀의 화원> 책을 만나는 시간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비밀의 화원>, 이 책을 읽으며 자주 웃었다.

귀여운 표현에 소리내며 웃는 경우도 있었지만

따뜻한 마음이 들어 조용한 미소를 짓는 시간이 더 많았다.

외롭고 제멋대로였던 한 아이가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그런 메리 레녹스를 다른 주인을 모시듯이 대하지 않고

편하게 대하며 소중한 인연이 되어준 마사와 가족들이 좋았다.

또한 메리보다 더 자기 멋 대로 지냈던 콜린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그 모든 만남의 순간과 사건들이 이어져 기적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순간 순간이 정말 기뻤다.

그리고 <비밀의 화원>은 읽으면서 계급, 부모의 양육방법과 태도의 중요성,

아이다움의 과점에서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 놀이의 중요성 등을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이다.

 

잔디밭을 건너오는 미셀스웨이트의 주인은

이곳의 많은 하인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에는 고개를 똑바로 치켜들고 눈에 웃음기를 가득 담은 남자아이가 발걸음도

단단하도 씩씩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바로 영략 없는 요크셔 아이, 콜린 도련님이었다.

 

마지막 장면이 저절로 상상되며 기쁨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이 이후에 이들에게 어떤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되었다.

지난 아픔을 잊지 못해 우울함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아이를 보고 웃을 수 있게 된 크레이븐,

그런 아버지와 손을 잡고 잔디밭을 씩씩하게 걸어오는 콜린,

그리고 함께 그 기적을 만든 메리와 디콘에게도

이젠 황무지와 미셀스웨이트는 적어도 메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와는

아주 다른 의미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제 황무지와 미셀스웨이트는 더 이상 음침하고 우울한 장소가 아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참을 수 없는 즐거움이 묻어나는 웃음소리가 가득한 곳이다.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들리고 비가 계속 내려 나가지 못하는 날도

음울한 분위기가 더 이상 이곳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메리도 콜린도 비가 온다고 우울해하거나

하루종일 가만히 앉아만 있지 않을 것이다.

백개가 넘는 방에서 많은 방이 잠기어 있다고 해서

이상하고 쓸쓸한 곳으로 이야기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들이

이곳 저곳 자신들이 놀 공간을 찾아 탐험을 하듯 그 많은 방을 뛰어다닐 것이고

오래도록 조용한 회색빛 공간은 다시 빛깔을 되찾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질 것이다.

엉뚱하고 신비로운 이 아이들은 그저 아이답게 장난치고 자신들의 상상을 펼쳐가며

미셀스웨이트에 즐거움의 향기를 풍기며 예쁜 웃음꽃을 피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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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오늘은 씁니다
서민재 지음 / 한평서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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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많이 본 책 표지.

요즘 이 책을 많이들 읽으신 것 같다.

sns에서 이 책 표지가 자주 보였다.

자주 보이면 더 관심이 가게 되는 것일까.



 

제목에서는 여전히 앉아서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올라 이 전에 읽었던 다른 글쓰기 책들처럼

‘일단 써라’ 또는 ‘그냥 써라’를 이야기 하는 책인가 보다 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관심이 갔다.

자주 보게 되니 정이 들었나 이 책에 관한 서평단 이벤트를 보았을 때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관심이 갔다.

그런데 내 뻔한 생각은

책을 내는 것, 작가가 되는 것을 소망하면서도 시작을 못하고 있는 내 마음으로 인한 편견이었다.

제목을 다시 보아야 했다. ‘여전히 오늘은 씁니다.’

‘오늘도 글을 씁니다.’가 아닌

‘오늘은 씁니다.’ 오늘의 맛이 쓰다.

‘쓰다’ 라는 것에 글을 쓴다는 것이 먼저 생각나다 보니

그것에 만 초점을 두었던 것 같다.

‘아!’라는 말과 함께 이 책의 제목에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다시 알고

이 책에 이상하게 관심이 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은 틀에 박혔었지만, 나도 못느끼는 나는 알고 있던 것이다.

내가 이책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을.

특히 이렇게 언어의 의미적 표현을 사용한 글을 좋아한다.

제목의 의미를 다시 느끼며 책을 넘기는데 또 웃게 되었다.

이 의미의 맛이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의 맛이 씁쓸했다면

그 뒤에는 위로의 글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달달할 거예요 :)’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책을 본다는 것 보다

그 안으로 문장을 따라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어른이 된 당신에게’

‘벌써 커버린 우리들에게’

‘여전히 오늘은 씁니다.’

 

< 여전히 오늘은 씁니다.> 서민재 / 한평서재

 

이 책은 구성은 ‘쓰다’로 이루어져있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뒤에 부록도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구성의 내용은 ‘쓰다’이다.

‘쓰다’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생활에서도 ‘쓰다’라는 말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맛이 쓰다.’, ‘모자를 쓰다’, ‘글을 쓰다.’ 등...

쓰다의 의미를 말하며 각 장의 쓰다를 설명하면 길어질 것 같아 저자의 설명으로 소개하려 한다.

친절하고 이해하기 쉽게 나누어 설명해 주었다.

1부는 인생의 쓴 맛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삶과 행복에 대한 글을 모았습니다.

2부는 남일을 뒤집어 썼던,

예스맨으로 살아온 과거를 후회하며 준비했습니다. 직장과 일에 대한 경험을 글로 풀어보았습니다.

3부는 사람과 물건을 쓰는 이야깁니다.

우리 주변의 살아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의

용도에 대해 썼습니다.

4부에선 글 쓰는 행위에 대한

개인적 경험과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나를 찾고 꿈을 찾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 여전히 오늘은 씁니다.> 서민재 / 한평서재

 

각 장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저자의 글. 그 글 안에 담긴 ‘쓰다’.

저자의 ‘쓰다’와 나의 ‘쓰다’를 비교해 보며 공감과 위로를 얻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 책은 출퇴근 시간 버스에서 꺼내 읽기 좋은 책이었다.

버스에서 책을 읽다가 생각에 자기기도 하고

씁쓸한 마음에 버스 안 창문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때로는 문장을 다시 곱씹어 보기도 했다.

그렇게 곱씹다 보니 쓴맛이 강해지기도 하고 쓴맛이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더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달달할 거예요’ 라는 저자의 싸인 속 문장처럼.

쓴맛 하루에 달달한 위로의 문장이 마음에 담기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읽기도 했다.

토닥토닥, 문장이 다가와 나를 다독여주기도 했다.

그렇게 ‘괜찮다’는 위로의 말을 나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책의 앞 부분을 보고 돌려서 뒤를 보면 제목과 이어지는 문장이 있다.

‘여전히 오늘은 씁니다.’

 

“당신도 그랬나요?”

 

< 여전히 오늘은 씁니다.> 서민재 / 한평서재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만나는 여러분의 오늘은

저자의 싸인 글처럼 달달했으면 좋겠다.

떠나는 당신앞에

더 좋은 날들이 놓이기를

당연한 사람들과의

사소한 시간들이

더 가치있기를

덜 쓰거나 더 쓰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비로소 당신답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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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북클럽 - 우리 아이 책과 평생 친구가 되는 법
패멀라 폴.마리아 루소 지음, 김선희 옮김 / 윌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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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책을 읽어주는

듣기 식 독서교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둘려주기보다는 함께 읽고 함께 만지고 함께 나누며

함께 웃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

말 그대로 독서지도가 아닌 함께하는 '북클럽'이다!

책에 집중하지 않는 것 처럼 보여도 아이는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하는 그림속 메세지를 읽어낼 수 도 있다.

나보다 더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에 공감하고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도 있다.

나보다 더 자유롭게 탐색하며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책을 즐거워 할 수도 있다.

내가 지도 하고 내가 둘려주는 주입식이 아니라

험께 읽고 함께 활동하며 함께 즐거워하자.

아이들은 두 번다시 만날 수 없는 소중한 북클럽 회원들이고

어떤 성인들과 나누는 것 보다 순수하고 미소짓게 만드는 응원이 되어주는 존재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책을 나누는 북클럽이라니!

표현부터 미소가 지어지는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난생처음하며 그 처음이 마지막 기회인 북클럽!!

많은 이들이 알고 진행하셨으면 좋겠다. 😊

 

 

 

 

 

 

 

이 책은 '난생처음 북클럽'을 이끄는 리더로서

함께하는 회원(아이)의 연령에 따라 어떤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를 안내해준다.

단순히 '이런 책이 좋아요. 책은 당연히 좋은 거지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 이 연령때에 이 책이 좋은지를 설명해주고

그렇게 책과 친해지도록 북클럽을 이끌어 사는 과정에서 가질 수 있는 걱정과 고민에 대해서도 공감하며 격려해준다.

연령별로 나뉜 장에서 그에 따른 도서를 추천해주고 소개해준다.

혹시나 미국도서들만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는데 이수지 작가님의 '그림자놀이' 등 한국 작가님 책도 있어서 감사했다.

(미국 도서와 한국 작가님 책을 구분해서 안내해줘서 하나하나 구분하지 않아도 됩니다. 😊)

 

책의 이름만 적혀 았지 않고 간단한 소개도 적혀있다.

그렇지만 이런 책들을 오디오북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만나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그 순간 북클럽 리더로서 참여를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방송, 오디오나 기계적인 음으로 책을 만나는 것은 북클럽 활동에서 포함되지 않는 더고 한다.

직접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연령이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직접 목소리로 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육성으로, 자신의 목소리로 아이와 책을 읽고 나누는 것이다!

또헌 나도 이 북클럽을 위해 책을 가까이 해야한다.

책을 읽을 시간과 공간은 여우 있을 때 가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부터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며 밀어냈던 독서를 다시 삶으로 가지고 오는 것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말할게요. 자녀를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나부터 책을 읽자고요!

 

 

어떤 책을 고를까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주는 글 다음에는 '유의사항'이 따로 나온다.

이 부분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었다.

맹목적으로 모든 책이 좋으니 무조건 많이 읽어라 라고 하는 경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그래서 책 선택에 대한 글이 앞에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안내된 책을 찾아읽으려 하다보면 역시 고민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 부분을 미리 알고 유의할점을 적어주어 적절한 책을 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 겉다.

예를 들어 칼데콧 상과 같은 수상도서는 읽으면 좋지만

무조건 반짝이며 상이라고 적힌 것들이 좋은 책은 아니라는 것!

마케팅 차원에서 상업적인 상인 경우도 있다고해요!

반짝이는 무엇인가 있으면 그것이 어떤 상인지 확인해야겠다!

책을 장난감으로 아는 아이, 책으로 건축물을 만드는 아이, 책을 담요삼아 덮는 아이,,

어떤 방식으로 책과 친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저 아이가 책과 함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이 북클럽의 시작일 것이다.

다만 얌전하고 가만히 앉아 읽는 것 만을 북클럽 활동으로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난생처음 북클럽'에서는 말이다.

이 북클럽 가운데 아이와 닉네임을 나눠보아도 즐거울 것 같다.

애독가,책꽂이 탐험가, 독서가, 책덕후 어떤 별명으로 책과 친해지며 성장하고 있을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 작은 만남의 순간이 더 큰 세상으로 펼쳐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책 읽는 행복한 아이의 모습을 여러분 마음속에 등대처럼 간직하기 바랍니다.

삶의 목표 대부분이 어릴 적 기쁘게 책을 읽던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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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앤 -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TV애니메이션 원화로 읽는 더모던 감성 클래식 6
버지 윌슨 지음, 애니메이션 <안녕, 앤> 원화 그림, 나선숙 옮김 / 더모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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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녕, 앤 _ 빨강 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앤 탄생 100주년 (공식) 기념작/ 버지 윌슨 / 더모던

 

 

 

 

 

 

 

'안녕, 앤'이라는 책의 제목 처럼

앤에게 인사를 건네며

앤의 삶을 응원해주고 싶은 책이다.

나는 주로 책을 읽으면 책의 내용이 머리에 남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가슴에 남는 편이다.

특히 이 책이 그랬다.

앤의 탄생과 부모님, 엊갈린 만남, 오랜 소망이 무너진 배신과 같은 이별, 좋아지려하면 찾아오는 죽음의 소식,

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환경, 놀림,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 고아원,,

너무나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다.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으로는 앤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순간 순간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웠다.

또한 이 순간들로 생각하게 되는 주제들도 많았다.

여성의 역할, 가정환경이 주는 영향, 양육과정과 방법의 중요성,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의 중요성, 선생님의 역할과 중요성,

삶의 균형과 성장과정, 자존감과 자기효능감, 단어의 의미,,

생각하게 된 주제들이 많아 더 이 책이 소중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만남이 감사한 책이며

'앤'을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조금씩 적어보려한다.

우선 빨강머리 앤 노래 중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라는 가사를 바꾸고 싶다.

앤은 빨강머리와 주근깨 때문에 자신이 ’예쁘지 않다‘라는 마음의 상처가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앤이 자기가 본 아이들 중에서 가장 못생겼었다는 토머스 부인의 말.

토머스 부인뿐만 아니라 토머스씨가 해고 당해 이사를 가기 바로 전날 토머스 집에 온 한 여자분은 ’비정상적으로 빨갛다고‘ 표현했다.

어릴 때부터 들은 그 말은 앤의 마음에 남아서 상처가 되었다.

어디서든 주목 받는 빨강머리이기에 학교에 가게 되었을 때도 혹여나 아이들이 놀리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예쁜 친구를 사귀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어렸을 때나 자라며 성장할 때나 앤이 자신의 외모

특히 빨강머리와 주근깨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문장과 표현들을 자주 읽게 되어 마음이 아팠다.

앤은 자신이 분홍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결코 분홍 드레스를 입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얼마나 슬픈지 헨더슨 선생님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분홍색이 이 빨강 머리를 더 끔찍하게 보이게 할 거예요. 그래서 가슴이 슬픔으로 가득 차요. 가끔은 분홍색을 갖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렬해서 가슴이 답답해질 때도 있어요.” (380)

나이를 물으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많대. 왜 그런지 난 잘 모르겠어, 나이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 나이든게 빨강 머리와 주근깨를 가진 것과 약간 비슷한 건가 싶기도 해. (306)

자신의 빨강머리로 인해 항상 놀림과 부정적인 주목을 받았던 앤이기에 빨강머리를 좋게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치볼드 부인이 앤의 머리를 보고 아름다운 머리라고 말했을 때는 ’잘못 들은 건가?‘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케이티 모리스가 찻장에 비친 자신임을 알지만 케이티 모리스는 빨강머리가 아닌 ’적갈색이고 주근깨가 별로 없다‘고 표현했다.

또한 헤거티 할머니가 자신도 이전에 앤처럼 빨강머리였다고 하니 “물론 저만큼 빨간색은 아니셨겠죠”라고 하였고

이어 대화 가운데 “제가 하느님에 대해 알았더라면, 제 머리카락을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적갈색으로 바꿔달라고 부닥했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456)

앤이 ’적갈색‘으로 변하길 바라는 것은 아빠인 월터 셜 리가 적갈색 머리카락이었다는 것을 알고 말한 것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안타까웠다.

아마 셜리 부부에게서 자랐다면 앤은 적갈색으로 변하길 소망하기 보다는

자신의 개성이자 사랑스러운 색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선명한 빨강색‘ 그것은 앤의 엄마인 버사셜 리가 사랑한 색이었다.

그 이유는 앤의 아빠인 열정적이고 과장된 모습이 월터의 성격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앤을 못생겼다고 표현했지만

부모님의 표현은 달랐다.

"아기가 당신의 완벽한 코를 빼닮았어요.

당신의 사랑스러운 작은 턱도,

하지만 우리 아이 눈 봤어요? 엄청나게 커요.

바로 ‘당신의 눈’처럼"

월터의 뺨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이 기다란 손가락을 봐요. 월터, 전부 다 길어요.

조그만 발가락까지도, 다 당신을 빼닮았어요.

게다가 자신만의 특색도 있어요.

머리카락을 보세요."

"앤은 뭔가 특별한 느낌이에요.

'Ann'이 아니에요. 끝에 'e'가 꼭 붙은 앤.

이 아이는 우리의 완벽한 앤이에요."

이렇게 앤을 사랑하는 따뜻한 부모님과 함께 자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정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아파온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책의 앞 부분인 ’장례식‘ 부분에서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버사, 월터.,, 그리고 앤,,,‘

읽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안타깝다니.

’삶이란 게 참 너무 알 수 없고,, 안타깝다..,, ‘

작고 소소한 행복도 커다란 기쁨으로 채우며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셜리 부부.

저자의 글에서 앤의 삶의 과정이 힘들 것이라는 것은 알았는데,

앤의 부모님도 이렇게 선하고 선한 과정에서 안타까움을 맞이하는 삶을 살았을 줄이야.

제시를 걱정하던 월터와 버사는 결국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세상 ‘앤’을 두고 떠나게 된다.

안타깝고, 너무 안타깝다.

이웃을 위해 베푼 선함이 열병이 되어

앤을 지키던 세상들을 가져가 버렸다.

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괜한 선행은 주제 넘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까.

그렇게 떠난 부모님과 필요한 목록을 적어주었던 이웃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그 목록을 받고 이웃의 집에 왔다갔다 하지 않았더라면,

그럼 앤과, 월터,버사 모두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어린 시절 다른이를 많이 생각하고 걱정한 부모님이 밉거나 혹은

그렇게 떠나보내야 했다는 것이 마음에 상처가 되어 사무치지는 않았을까.

그렇게 다른이에 대한 마음의 문이 닫히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선함은 베풀지 않으려 애쓰지 않을까.

하필이면 앤의 부모님, 셜리 부부가 떠난날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하필이면,,

그리고 그 아름다운 풍경과 달리 앤의 삶은 너무나 힘든 시작이었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아니,,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삶이었다..

 

앤의 성장과정은 노래 가사에 나오는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 라는 문장이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 외롭고, 외로웠다. 수없는 힘든 나날과 슬픔이 찾아왔고 그런 일들에는 항상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따라왔다.

하지만 앤은 않좋은 상황가운데도 희망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아이였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아이였다.

외롭고 슬프지만 그렇다고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모든 과정가운데 앤은 이겨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고

그 과정에서 강하게 성장해 나간다.

그래서 이 가사는 정말 앤의 삶을 담은 부분 같았다.

어린 시절 집 베란다쪽 창문을 통해

태풍이 불어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그런데 나의 시선에 더 오래 남는 것은 바로 그 큰 나무 옆에 있던 작은 나무다.

작고 얇아 보이는 연약한 나무였다.

그렇지만 모진 태풍에 옆의 큰 나무가 쓰러져가도 그 나무는 버티고 있었다.

앤도 그랬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무너져가는 상황 가운데서도 앤은 강하게 버티며 성장하고 있었다.

마치 태풍을 견디고 자라난 그때 그 작은 나무 처럼.

앤은 많은 태풍을 만났다.

그 태풍들은 예상치 못할 때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슬픔의 감정을 함께 가져왔다.

앤 부모님인 셜리 부부의 장례식 이후

앤은 그곳에서 일했던 조애너(토머스 부인)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이 곳은 아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조애너의 딸들은 자신들의 집인 토머스 집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 정도로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하기를 넘어, 버티며 자라나기도 힘든 환경이었다.

다행이도 앤이 토머스 집에 갔을 때는 '일라이저'가 있었다.

일라이저는 토머스의 첫째 딸이며,

그 가정에서 유일하게 ’고맙다‘라는 표현을 쓰는 아이였다.

앤에게 일을 시키거나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

정말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앤은 일라이저와 함게 하는 삶을 소망했다.

그리고 일라이저가 말한 부분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일라이저가 그 소망의 이야기를 앤에게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라이저와 앤은 서로 함께하기를 소망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소망은 오히려 앤에게 상처가 되었다.

일라이저는 로저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일라이저는 앤과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로저는 일라이저만을 원했다.

그것을 몰랐던 앤은 로저가 일라이저에게 청혼한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뻐했다.

”아! 언니가 그 아저씨랑 결혼하면 우리 이제 떠날 수 있잖아! 언니가 항상 약속한 대로! 이제 고함치는 사람도 없고 우는 아기들도 없는 곳으로 갈 수 있겠네. 술 취해서 화내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여기 일은 언니랑 나 대신에 트루디 언니가 하면 돼.“

앤은 어릴 때부터 아니 이 책에 나오는 앤은 어리다. ’앤의 어린시절‘에 관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일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했었고,

앤은 자신의 나이

일라이저와 함께 하는 삶을 소망할 때

앤은 공주같은 삶을 꿈꾼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싶었고,

밤새 울거나 나쁜 냄새가 나지 않는 예쁜 아기 인형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단지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 주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또한 일라이저와 로저의 아기가 태어나면 자신이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싶었다.

어린 앤이 바란 소망은 이런 것이 었다.

특히 생일을 기억해주기라고 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부분에서 마음이 아팠다.

네 살 생일을 맞이 하기 바로 전날

앤은 일라이저가 알려줘서 자신의 생일임을 알고 기뻤다.

그때는 토머스 부인을 엄마라고 불렀을 때 였는데,

내일이 자신의 생일임을 기뻐하며 이야기했다가

토머스 부인의 모진 대답에 마음의 상처만 받았다.

그리고 생일 선물 대신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마저 사라졌다.

내일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어린 앤의 말에

토머스부인은 더 이상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대답했다.

두 뺨을 적신 앤의 눈물,

토머스 부인의 삶도 힘든 삶이지만,

토머스 부인이 앤에게 내 뱉은 말들도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엄마, 일라이저 언니가 그러는데, 내일이 내 생일이래요. 이제 나는 네 살이 되는 거래요.”

“엄마라고 부르지 마! 내가 왜 네 엄마야?

난 네 엄마가 아니야. 앞으로도 영원히 아닐 거야.

너는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내가 친절을 베풀어

받아 준 버르장머리 없는 고아일 뿐이야!

그리고 생일 어쩌고 하는 말로 나를 귀찮게 하지 마.

이 집에 새로 태어나는 애들과 생일이 몇이나 되는 줄 알아? 생일파티를 하는 사람들, 있기는 하지만이 집에서는 냄비에 넣을 감자가 있어도 다행인거야.”

못생겼다는 말, 밥 값을 하라는 말, 자식도 아닌데 손수 키웠다는 말, 생일날 들은 모진 대답, 상상을 하며 잡시 멈추면 게으른 계집애라고 혼내는 말,,, 앤에게는 토머스 부인의 이 모든 말들이 마음의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읽으며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토머스 가정에서 일라이저를 제외하고는

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거나

앤을 보며 웃어주거나

앤을 좋아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앤에게 있어 일라이저는 마음을 나누는 유일한 사람이자

소통할 수 있는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앤을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단 한명의 사람이자,

함께하는 삶을 이야기 하며 어린 앤이 버틸 수 있는 소망을 준 사람이었다.

더욱이 앤의 표현에 의하면 일라이저가 ’항상‘ 함께하는 미래의 말을 했다고 했으니

앤에게는 자신고 함께가 아닌 로저와 둘이 떠나는 일라이저의 결혼은 더욱이 큰 상처였을 것이다.

앤에게 있어서 일라이저의 결혼은

그전까지 하던 소망의 말이 거짓말이 되는 순간이며,

자신을 토머스의 집에 버리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라이저의 간절한 부탁에도 자신을 신혼집에 못 오게 한 로저에게도,

자신을 춥고 소란스러운 집에 두고 간 일라이저에게도

항상 혼내고 일하라는 말을 하며 계속 아이들 낳는 토머스 아주머니에게도

앤은 화가 났다.

단순히 ’화‘라는 표현 보다는

그 모든 상황이 힘들고 버거웠던 것 같다.

힘든 환경과 더불어 유일하게 자신을 생각해주는 존재인 일라이저의 떠남이

또한 그렇게 간절히 부탁해도 자신은 버려진 상황이라고 생각되어

더욱 앤의 마음을 슬프고 애처롭게 했던 것 같다.

앤은 나중에 일라이저가 결혼하는 날 착한 행동을 하지 못했다며 속상해하기도 했지만,

그 순간의 감정과 소망이 무너진 것에 대한 아픔은 오랜 상처로 남은 것 같았다.

앤은 일라이저가 떠났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앤이 이전 이야기를 말할 때,

그리고 ’단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자주 ’일라이저‘가 등장했다.

일라이저에 대한 추억이나 고마움도 이야기하지만,

’지독한 로저‘,’배신‘,’속은 적‘ 이란 표현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라이저의 결혼은

앤에게 있어서는 ’일라이저와의 이별‘,’일라이저의 배신‘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어린 앤이 유일한 애착의 대상과 이별을 맞이한 날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라이저가 떠난 토머스 가정에는

앤과 아픔 마음을 나눌 대상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도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지만 없다고 낙심하지 않았다.

앤은 참 특별한 아이였다.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아이였다.

그렇게 마음을 나눌 대상을 스스로 찾았다.

어쩌면 스스로 만들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힘든 상황이라고 환경 가운데 먹혀 낙심하는 것이 아닌

힘든 상황이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을 할 수 있는 아이이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어둠 가운데 한 줄기 빛을 찾아낼 수 있는 아이였다.

정말 이 글을 쓰면서도

이 특별한 아이 ’앤‘이 참 좋다.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으면서도

기특하고 대견해 칭찬해주고 싶은 아이다.

원래도 좋아하는 ’앤‘이지만,

앤의 어린시절을 알아가며 ’앤‘이 더욱 특별해졌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앤은 정말 특별하게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

일라이저가 떠나고 앤이 만난 마음을 나누는 대상은 ’케이티 모리스‘였다.

정확히 말해 앤의 집에서 온 유일한 물건인 찻장 오른쪽 창문에 비친 ’앤‘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일라이저 언니의 친한 친구의 이름인 ’케이티 모리스‘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설명하는 앤의 표현이 참 예쁘다.

"너는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행복한 사람이야. 고요하게 움직이는 강처럼 온화한 친구야.

137

그런데 그 찻잔은 바로 토머스집에 있는

유일한, 하나뿐인 셜리부부(앤의 부모님)의 물건이었다.

그냥 ’우연적인 소재‘라기보다는 여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부모님의 품은 아니지만,

부모님이 주신 물건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하는 것의 의미는

앤이 앤의 부모님 셜리부부 처럼

따뜻하고 주변을 밝게 변화시켜주는 에너지가 있는 아이로

자라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앤은 토머스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조애너나 토머스를 닮지 않았다.

그보다는 부모님인 셜리부부를 달았다.

외모 뿐 만 아니라 좋아하는 것, 표현, 마음이 닮았다고 생각되었다.

책을 보며 지내거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어머니 버사처럼 책과 문학을 좋아했으며

월터처럼 재미있고 경이로운 상상력이 넘쳤다.

그리고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였다.

작은 아이지만, 강하고 영향력 있는 아이였다.

---

앤을 통해 변화를 가지게 된, 앤과의 특별한 만남이라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들은 ’토머스 아저씨‘, ’존슨 아저씨‘, ’해거티‘, ’해먼드 가족‘, ’헨더슨 선생님‘ 등이 있다.

우선 토머스 아저씨는 술을 먹으면 토머스 부인을 때리고 물건을 부수는 나쁘면서도 무서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으며, 술을 마시지 않아도 친절하거나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소리 지르고 화만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라이저가 떠나는 날 토머스 아저씨는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였다.

앤 말이다. 내가 그 애를 지켜 주마.

그 애한테는 특별한 게 있어.참으로 강한 영혼을 지닌 아이야. 나 그게 감탄스럽다. 내 자식들한테 화내는 것처럼 그 애한테 화내지 않잖니, 터무니없다만 겨우 다섯 살인 그 애가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이 느껴진단 말이야.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것 같다고나 할까. 내가 얼마나 힘들게 싸우는지, 그 싸움에서 이기지 못할 때 내 기분이 얼마나 고약한지 이해하는 것만 같단 말이다. 내가 고함을 지르고 가끔...... 네 엄마를 때리는 것 그 아이가 싫어하더라만, 날 미워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더구나. 그러니까 일라이저 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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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아저씨는 정말 앤을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일라이저가 떠난 후 앤에게 질문이라는 것을 한 (일 관련이 아닌 개인적인 질문) 사람은 토머스 아저씨 뿐이었다.

앤에게 소란스러운 가정에서 어떻게 침착하게 있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앤이 말하는 ’상상하기‘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아저씨가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세요”

이게 앤이 이야기 해준 상상하기를 시작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토머스 아저씨는 앤이 말한 ’상상하기‘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춤을 추러 갔다가 술을 먹게 되어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만큼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가운데

상상하기를 하는 앤은 정말 어리지만 성숙한 아이였던 것 같다.

해고를 당한 후 다행히도 다른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메리스빌이란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두 가지의 즐거운 일이 있었다.

하나는 토머스 아저씨가 조애너(토머스부인)와 아이들, 앤을 데리고

’바다‘로 소풍을 간 것이다.

앤이 토머스 가정에서 지내며 ’소풍‘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다‘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토머스 아저씨가 가족들과 소풍을 간 것 자체가 대단한 변화 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표현되는 일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조애너(토머스 부인)와 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직접 고민하며 구매했고,

함께 먹을 오렌지도 샀다.

이 과정에서 앤이 이야기 했던 ’상상하기‘도 해보았다.

어머니가 결혼 선물로 주셨던 그릇에 오렌지를 담아서 부엌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장면,

가족들이 앉는 식탁 둘레로 각자 앞에 오렌지를 하나씩 내려놓는 모습,

식구들의 얼굴에 떠오를 기쁨의 표정들을 상상했다.

식구들의 모습 특히 조애너가 놀라워하고 기뻐할 모습을 떠올리자

그는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행복해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앤이 말한 ’상상하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푸딩을 만들고 싶었던 조애너(토머스 부인)가 계란이 없어서 울었을 때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아마 크리스마스 전날 푸딩을 만들고 싶어도 계란이 없다는 것이 속상하고

돈도 부족한 처지에 있던 계란 마저 아이들이 던져서 푸딩조차 만들지 못해 서러웠을 것이다.

계다가 계란을 사러 가기에는 날씨가 무척 안 좋았다.

바람이 매섭게 부는 날이었다.)

토머스 부인의 울음에 토머스 아저씨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포악한 바람과 휘몰아치는 눈 보라에도 직접 계란을 사러 갔다.

계란을 파는 존슨 아저씨네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다녀오겠다고 말하며 조애너를 위해 직접 계란을 사러 갔다.

그리고 계란도 원래 필요한 24개가 아니라 넉넉하게 36개를 샀다.

또한 크리스마스 만찬용으로 통통한 달도 두 마리 샀다.

토머스 가정이 이렇게 화목한 순간이 있을 줄이야.

아마 일라이저나 다른 자식들이 알았더라면

정말 기적이라며 놀라워했을 것이다.

그날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토머스 가정이 화목한 순간이었다.

그래도 최고의 선물은 토머스 아주머니의 머프였어.

그걸 아주머니한테 줄 때 토머스 아저씨는 아주 불안한 표저이었어.

아마 좋아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신 것 같아. 털이 엄청 부드러워서 엄청 비쌀 거야.그 돈으로 술을 살 수도 있었을 텐테 아저씨는 그러지 않았어. 그게 제일 큰 기적 중 하나였어.

토머스 아주머니가 머프를 받아서 쓰다듬고 또 쓰다둠었어.

얼굴에 대고 가슴에 꼭 껴안았어. 그러다가 울음을 터트리셨어.

꼬마들도 그게 기쁨의 눈물인걸 알았어.

그다음에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어. 아주머니가 일어나서 아저씨를 껴안은 일이야.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좋아하는 줄은 전혀 몰랐거든,

아저씨는 아주 놀라면서도 정말 크게 기뻐하셨어.

분명 아저씨한테도 만족스러운 순간이었을 거야.

351

단순히 선물을 산 것이 기적이 아니었다.

물건으로서의 선물이 아닌 다른 의미의 기적이 더 많이 일어났고 더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가족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 토머스 아저씨는 기뻐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고,

그러기에 포악한 날씨에도 가족들을 위해 직접 계란을 사러 갔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선물을 건네고 그것은 조애너에게 큰 감동이 되었다.

일라이저만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토머스 부인도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이 ’크리스마스‘를, 그리고 가족이 가족으로서 기뻐할 수 있는 날이었다.

토머스의 선물은 물건으로서의 가치로 토머스 부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렇게 토머스 부인을 생각한 토머스 아저씨의 마음과

아무거나 산 것이 아니라 좋아할지 고민하며 선물을 준비한 마음

술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술이 아니라 가족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 마음에

조애너(토머스 부인)는 사랑받음과 감동, 고마운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남편인 토머스를 껴안아 주었다.

토머스 또한 놀라면서 정말 크게 기뻐했다.

토머스 가정에서 일어난 기적의 순간, 기적의 날, 기적의 감정들이었다.

그날 토머스 부인은 앤에게도 상냥했다.

그리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토머스 아주머니와 함께 설거지를 했는데,

내게도 얼마나 상냥하시던지!

아주머니 안에 정말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들어 있었던 거야.

그동안 너무 억눌려 지내서 밖으로 나오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

어쩌면 내 엄마가 방법을 알려 줬는지도 모르지,

전에 토머스 아주머니가 나한테 말한 적이 있거든.

내 엄마를 위해 일할 때가 행복했었다고.

크리스마스 전에는 토머스 아주머니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어.

이제야 나는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새로운 모습읋 본 것 같아.

351

그리고 토머스 가정 뿐 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앤은 특별한 아이였다.

앤을 만남으로서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만남의 순간이, 감정이, 변화가 있었다.

달걀을 사러 가 만나게 된 존슨 아저씨는 앤을 통해 가장 많은 변화를 가지게 된 인물이다.

존슨 아저씨는 원래는 교사 였는데, 아픔을 겪고서 갈아 입을 옷 한 벌, 냄비 하나만 가지고 숲으로 들어와 지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존슨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는데,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생각났다.

존슨 아저씨가 겪은 아픔은,

다른 날도 아닌 결혼식 날 아침에 일어났다.

결혼식 날 아침,

존슨 아저씨가 사랑한 여인은 더 이상 존슨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쪽지를 보냈다.

대신 다른 남자와 떠날 거라는 내용도 함께 적힌 쪽지였다.

결혼을 하기로 한 여인이 함께 떠날 거라는 그 다른 남자는

그저 다른 남자도 아닌 존슨 아저씨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존슨 아저씨는 마음을 닫고 숲으로 온 것이.

’사랑‘과 ’애정‘을 상자에 넣고

다시는 열리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저 닫을 거라는 억누르는 마음이 아니라

그것이 열릴까 두려운 마음이었다.

이렇게 마음을 조심하는 존슨 아저씨지만,

앤에게는 달걀 장수가 아닌 소중한 ’단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앤에게 달걀만 판 것이 아니라

단어를 알려주었다. 앤이 궁금해하는 단어들의 의미와 표현할 때 사용하고 싶어하는 단어들을 알려주었다.

직접 앤에게 줄 펜과 노트도 준비했다.

또한 존슨아저씨는 앤에게 상상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 사람이며,

상상할 수 있는 힘과 희망의 말을 해준 사람이었다.

"뭔가를 상상한다는 건 못된 게 아니야. 아주 좋은 거야. 그게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할 수 았는 서야. 그건 어떤 '척한다'는 뜻이야. 그대로 계속 하렴. 토머스 부인이 짜증을 내더라도 절대로 그만두지 마라. 그것이 자주 너를 슬픔의 심연에서 구출해 줄 거야." (230)

마음의 문을 닫고 들어온 숲에서

앤이라는 따뜻한 아이를 만나

존슨 아저씨의 얼어 있던 마음이 녹고 있던 것이다.

정말 애정을 마음의 상자 속에 닫아 두기만 했다면

단어의 의미를 알려주는 일도, 펜과 노트를 준비해주는 일도,

앤이 토머스 아주머니의 야채솔을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주는 일도,

상상하는 것의 의미와 힘을 알려주고 앤에게 희망을 주는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내 말 잘 들어. 괜찮아질 거야.

오늘은 아니야. 어쩌면 내일이나 다음 주도 아니겠지. 다음 달도 아닐 거야.

내가 빠져 있던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는 데 얼마아 오랴 걸렸는지 봐라.

하지만 빠져나왔어. 절대로 못 나올 줄 알았는데, 나왔단다.

게다가 넌 나보다 두 배나 더 큰 용기를 지녔어.

그러니 넌 더 빨리 일어날 거야. 그러니까 명심하고 믿어. 괜찮아질 거야.

존슨 아저씨를 만나며 앤은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자신의 감정을 더욱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저 자신이 하는 생각이 어떤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의미와 힘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상상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더욱 희망할 수 있었다.

또한 앤을 만나며 존슨 아저씨는 열릴까봐 두려웠던 마음 속 상자의 문을 열 수 있었고

단어의 중요성을 다시 느낄 수 있어고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용서가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경험했고,

더 이상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을을 열고, 결혼도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외모도 단정히 해지고 다시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연인으로서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존슨 아저씨와 사랑을 한 여인은 바로 앤의 학교 선생님인 핸더슨 선생님이다.

학교를 소망하고 정말 가고 싶어 했던 앤에게 핸더슨 선생님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다.

앤은 학교를 정말 가고 싶어했다.

학교를 사랑하고 단어와 문장을 배우고 싶어했다.

책을 좋아하고 학교에 가는 길이 어떠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배우고 싶고,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학교에 가는 건 절대로 겁나지 않아요. 처음에 조금 부끄럽겠지만, 학교에 간절히 가고 싶으니 부끄러운 것쯤 얼마든지 괜찮아요. (199)

앤은 어린 나이에 마음에 묻혀두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배움에 대한 열망, 삶에 대한 희망과 소망, 쉼과 평안한 마음, 부모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생일의 기쁨, 아이 다운 시절 등,,,,

혼자 일어나야 한다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에요.

토머스 아주머니, 나도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요, 난 아주머니를 도울 거예요.

하지만 내가 너무 철들어 버리기 전에 어린애처럼 살아 봤으면 좋겠어요.

401

이 문장이, 어린 앤의 문장이라는 것이 정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런 앤에게 삶의 기쁨을 주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바로 ’학교‘였다.

앤을 통해 배움의 소중함과 선생님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케이티, 좋은 일들도 많았어. 학교가 끝날 때쯤 내가 네 개의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됐단다. ‘나는 오늘 읽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오늘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말했던 거야. 내가 태어난 그날 다음으로, 오늘 나는 다시 한 번 태어난 느낌이거든, 헨더슨 선생님이 새로 생긴 내 어머니인 것만 같아.

265

핸더스 선생님,

앤의 표현처럼 헨더슨 선생님은 정말 좋은 선생님이셨다.

배움에 대한 열정과 소망이 있는 앤의 마음을 알아 주었고,

앤의 상황이 쉽게 학교에 올 수 없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모른척 하는 분이 아니셨다.

직접 책을 가지고 토머스 집에 와서 앤에게 배우고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 것은 단순한 ‘수업’의 의무 정도의 의미가 아니었다.

앤에게는 배움과 기쁨의 감정을 가질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주는 것이었다.

"척하고 있지 않았어요. 오늘은 매우 아름다운 날이었기 때문에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요. 지극히 행복한 날을 보내면 어떤 척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기억하는 것도 근사한 일이거든요." (332p)

헨더슨 선생님이 찾아와 수업을 할 수 있던 날은

앤에게 있어서 ‘지극히 행복한 날’이었다.

이렇게 존슨 아저씨와 핸더스 선생님,

이 두 사람은 앤에게 있어서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앤도 이 두 사람에게 있어 특별한 아이였다.

둘을 연결시켜 준 아이였으며, 마음의 사랑과 교육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해 준 소중한 아이였다.

“너를 떠나보내야 한다니 슬프구나, 앤. 너 같은 제자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야. 언제까지나. 언젠가 나에게 딸이 생기는 행운이 따라주더라도, 너를 사랑하는 이 마음보다 더 어떻게 그 애를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424)

"너의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든, 너는 멋진 인생을 꾸려 나갈 수 았을 거야. 아떻게 아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알아. 네가 스스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만들 거라고 나는 확신한단다." (426p)

“앤, 내게 단어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 줘서 고맙다. 네 덕분에 가르치는 즐거움도 다시 깨닫게 되었어. 용서가 가능한 일이라는 것도. 이 모든 것을 네가 나에게 보여 주었어” (424)

토머스 씨의 죽음,

그렇게 앤은 토머스 가정을 떠나야했고,

토머스 부인, 노아, 헨더슨 선생님, 존슨 아저씨, 그리고 ‘케이티 모리스’와도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안녕, 케이티 모리스, 내 인생의 그 모든 세월 동안 내가 얘기하고 사랑할 수 있게 여기 있어 줘서 고마웠어.“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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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이 토머스 가정 다음에 가게 된 다른 가정은 해먼드씨의 가정이었다.

해먼드씨의 가정으로 가기 전 앤은 기도했다.

제발 여기서보다 삶이 낫게 해 주세요. 더 편하게 해 주세요. 너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난 부타드릴래요. (410)

공주같은 환경이나 편한 것도 아닌,

‘여기보다 삶이 낫게 해주세요,’

어린아이의 기도에서 마음이 아팠다.

다행이라면,

해먼드 아저씨는 술을 마시거나 안내를 떼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해먼드 부인도 앤에게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아이들도 모두 어렸고 앤을 때리거나 놀리지 않았다.

다만, 아이들이 많았다.

해먼드 부인은 첫째, 둘째 다음에는 계속 쌍둥이를 낳았다.

그리고 집에 있는 여섯 아이 외에도

뱃속에 아이가 또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도 쌍둥이였다.

아이들이 어리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그 어린 아이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명이었다.

그럼에도 앤은 일이 많을 거라며 낙심하거나 좌절, 혹은 원망의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일이 많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지만,

그러면서도 특별한 장소를 희망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앤이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희망할 수 있는 앤이 정말 좋았다.

‘그때 모퉁이를 돌자 키다리 나무들로 둘러싸인

삭막한 공터 한가운데에 아주 커다란 집이 나타났다.

집 앞에 스물다섯 그루의 아름드리나무의 흔적이

그루터기들로 남아 있었다. 앤이 기대한, 아주 조그만 기쁨의 떨림이라도 주는 것은 아누것도 없었다. 마차가 완전히 섰을 때,

앤은 그 나무들의 장벽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있었다.

'해먼드 아저씨는 저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을 알고 계신 거야. 강과 작업실로 가야 할 테니까. 그 길이 다른 곳으로 이어지고, 너른 들판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소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달려 내려갈 수 있는, 아니 그냥 바라보기라도 할 수 있는 언덕이 있을 거야. 달리거나 바라볼 시간이 많지는 알을 테니까. 어쩌면 오후에 가족 모두 낮잠을 잘지도 몰라. 그럼 난 도망칠 수 있어. 틀림없이 특별한 장소를 찾을 거야. 찾을 때까지 계속 찾아볼 거야.'

439

많은 것들을 희망하는 버릇이 있다고 표현되었는데

나는 이 앤의 버릇이 좋았다.

그리고 앤의 그 희망은 이루어졌다.

그렇게 앤이 찾은 특별한 장소는 앤에게 있어 또 하나의 친구가 되었다.

정말 앤의 소망처럼 ‘언덕’을 찾았다. .

앤은 이 언덕, 정확히 말하면 언덕에서 울려퍼지는 메아리에게 ‘비올레타’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메아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앤은 또 다시 상상했다.

케이티 모르스처럼 앤은 상상을 하며

분홍빛 뺨과 온화한 미소와 당당한 태도를 지닌

‘비올레타’라는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해먼드 가정은 어린아이들 웃음 소리나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귀여워하거나 행복해 하는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장소가 아니었다.

해먼드 아저씨는 일을 하느라 바쁘고

해먼드 부인은 일에 매년 5월이면 태어나는 아이들로 힘들었다.

임신을 계속 하니 몸도 힘들고 쌍둥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집안은 시끄러웠다.

우는 아이들, 싸우는 아이들, 노는 아이들,,, 쌍둥이라 아이들을 구분하는 것도 어렵고

아이들이 태어날수록 밥도 빨래도 해야할 일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앤은 학교를 가면서도 해먼드 가정의 일을 잘 도왔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았다.

핸먼드 부인과 해먼드 씨의 표정과 마을을 느끼기도 했고,

계속 태어나는 쌍둥이에 아이들 이름조차 생각하지 못했을 때

‘줄리 애너’와 ‘로더릭’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가장 큰 변화는 해먼드 씨가 집 주변에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울타리’는 어린 아이들도 나가서 놀 수 있는 안전하고 커다란 공간을 의미했고,

울타리 안의 그루터기에서 ‘산’인 척 상상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되어 줄 수 있었다.

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수 도 있는 공간될 수 있었다.

이것은 앤이 부엌에서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지므로

집안이 보다 평화롭고 조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앤과 아이들이 함께 집 밖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해먼드 부인이 혼자 쉴 수 있는 평온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해먼드 씨가 울타릴ㄹ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서도 가치 있는 일이었다.

울타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해먼드씨는 이전의 불아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즐거워했다.

안전한 문과 아이들이 가지고 놀 나무 토막, 바퀴 달린 수레, 인형의 집 등도 만들었다,

이 울타리는 집안의 분위기를 완화시켜주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이 울타리와 그 안의 장난감들을 만드는 과정은 큰 의미가 있었다.

특히 엘라와 거티는 자신의 아버지인 해먼드씨가 자신들을 위해 인형의 집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작업실에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한테도 진짜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이 울타리와 장난감들이 완성되었다면

해먼드 씨의 가정에는 웃음꽃이 피었을 것이다.

아이들도 사랑을 느끼고

해먼드 씨와 해먼드 부인도 왜 자신들이 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봐줄 시간없이 지쳤는지 힘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복의 순간들은 해먼드씨의 가정에 찾아오지 못하고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해먼드씨의 이웃이자 산파지만,

앤을 만남으로서 오랜 시절 가지고 있던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 사람이있었다.

‘해거티양’

해거티양의 삶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앤처럼 많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삶이 지쳐서

해거티양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삶에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는 해거티양,

그런데 앤과의 이별에서 그녀는 의외의 말을 하였다.

“앤, 너에게 이말을 해주고 싶구나. 널 알게 된 후로 결혼하지 않기로 한 나의 결정이 실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단다. 너 같은 아이가 내 아이였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20년만 젊었다면 널 내 딸로 입양했을 거야. 하지만 난 일흔다섯 살이야. 몇 년 지나면 네가 날 돌봐줘야 할 상황이 될 거다. 넌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돌봐왔잖니. 그럴 순 없어. 하지만 난 널 원했단다.” (532)

안타깝게도 또다시 만나야하는 죽음과 이별.

그렇게 앤은 해먼드씨의 가정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가정이 아닌 ‘고아워’에 가게 되었다.

앤이 고아원으로 가기 전,

읽어가는 과정에서 안타까움 감정이 계속 찾아왔다.

앤이 만나는 가정은 전부 아픔이 있는 가정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고아’라는 상황에서 가게 되는 가정이라는 것과

가정에 도움이 필요해서 앤이 그 도움을 주기 위해 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 일 수도 있다.

앤이 만난 가정은 그렇게 도움이 필요하고 따뜻하기보다는 힘들고 일이 많은 곳이었다.

그렇지만 앤을 통한 변화와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제 좀 괜찮아 지려 하면 죽음이 찾아왔다.

좋아지려 하는 순간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이별.

인생이 참 한스럽고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랬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과 말을 하게 된 부분들이 많았다.

단순히 어땠을까 라기 보다는 ‘이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 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안타까운 과정 만큼이나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된 것 같다.

먼저 토머스 아저씨는 ‘술’을 먹지 않으려 노력해도

쉽게 그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는

어쩌면 알코올 중독이지 않았을까.

당시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을 잘 알지 못하짐나

만약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술을 먹고 모두에게 괴로움을 주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 행동을 한 후 헛간에 숨어 괴로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토머스씨의 행동이 개선되었다면

조애너도 달라졌을 것이고, 앤을 때리고 놀리는 아이들의 행동도 변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이게 아니더라도

더 안타까웠던 것은 ‘춤’이었다.

토머스 씨는 춤을 정말 잘 추었고 사랑했다.

조애너도 춤을 좋아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 그 둘이 춤을 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토머스 씨는 앤에게 ‘상상하기’에 대한 말을 듣고는

상상이 아닌 혼자 춤을 추러 파티에 참석한다.

그런데 이때 밖으로 혼자 나가서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조애너와 춤추는 시간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전히 멋진 춤 솜씨의 토머스씨에게 조애너도 박수를 보낼 것이고

여전히 토머스씨에게 특별한 ‘조애너’이기에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토머스씨가 춤을 추다 기차에 치여 죽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스트레스를 술로 풀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

정말 좋아하는 춤을 사랑하는 조애너와 추며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토머스씨가 변하기 시작한 크리스마스부터 기쁨의 춤을 감사의 춤을 가정에서 추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아니 그때가 아니더라도 토머스씨가 ‘춤’을 떠올렸을 때 아내에게 함께 추자고 했다면 변화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뭘까? 아마 춤일 거야. 우리가 더 많이 춤을 출 수 있었을 텐데, 이젠 너무 늦었지, 음악도 없고, 우리의 발과 심장도 느리고 무거워졌어.’

그렇게 그는 아내와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혼자 춤을 추러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다시 읽어도 이 부분이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또한 토머스 아저씨는 앤에게 예쁜 여자 인형을 사주려고 했다.

자신이 사준 곰인형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좋아하는 앤을 보며

예쁜 여자인형을 사주지 못한 것을 마음에 걸려했다.

어쩌면 그 날 토머스씨가 파티에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정에서 조애너와 함께 춤을 추었더라면

나중에 앤이 정말 좋아하는 예쁜 인형을 사주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토머스씨의 죽음으로 앤과 토머스 가정이 이별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그 때 여자인형이 아닌, 곰 인형을 사준 것이 다행인 것 같기도 하다.

고아원에서는 인형을 가질 수 없고 (개인물품으로 가져가도 소유할 수 없게 뺐었다.)

앤이 노아에게 주는 선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아저씨 죽음에서 앤은 노아와의 이별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앤은 노아를 자신의 아이처럼 생각하고 사랑했다.

그 가정에서 노아를 가장 신경쓰고 사랑을 표현해 준 것도 앤이었다.

앤은 노아에게 자신의 보물인 ‘보리스’를 선물로 주며 작별 인사를 했다.

노아야, 보리스는 나의 ‘유일한’ 보물이야, 난 이 애를 아주 많이 사랑해.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상상도 못할 만큼, 네가 이 애를 데리고 있어 주면 좋겠어. 보리스가 너랑 함께 있고 싶어해. 밤에 잘 때 보리스를 꼭 껴안아 줘.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생각해 줘.

428

어쩌면 시간이 지난 뒤 노아도 곰 인형을 보며 앤을 추억하지 않을까.

앤에게 있어 노아는 특별한 아이였다.

그렇지만 노아에게 있어 앤도 특별한 가족이었다.

어쩌면 토머스 가족 중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족이 아니었을 수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적어도 노아에게 있어서 앤은 가족이었다.

심지어 노아가 크루프에 걸렸을 때도

엄마인 조애너가 앤에게

“노아는 너를 제일 사랑하니까, 네가 안고 있으면 너의 품에서 뭔가를 느낄지도 몰라.” (373)

라고 말했을 정도로

노아와 앤은 서로에게 특별했다.

일라이저가 들려준 이야기와 표현들을 추억하는 앤 처럼

그래서 떠나기 전에 “토머스 아주머니, 태언나서 석 달만에 부모를 잃은 저를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손수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일라이저 언니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조애너 (토머스 부인)에게 말한 것처럼

노아도 곰 인형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앤을 추억하고 앤에게 고마워하며 자라지 않을까.

이외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부분이 있다.

특히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제시가 토머스 갖어에 찾아왔을 때다.

참 안타까운 장면으로 계속 남는 부분인 ’제시‘와의 엇갈린 만남.

제시가 토머스 부인의 집에 찾아왔을 때

토머스 부인은 앤에게 자신의 가정이 좋은 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일을 도와줄 사람으로 앤이 필요했다.

그래서 밥값을 해야 한다며 앤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제시를 돌아가게 했다.

그때 앤은 자신의 친구이자 소중한 물건인 ’케이티 모리스‘의 안전을 확인하러 올라갔었다.

그래서 엄마의 친구라는 분이 왔지만, 궁금했던 엄마에 대하 질문도 하지 못한 채

그리고 자신이 토머스 가정을 떠나 엄마 집 근처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엇갈린 만남으로 끝나게 되었다.

어쩌면 애초에 토머스 부인이 앤을 데려간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앤을 데려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토머스 집으로 갈 일도 없었을 테고

제시가 그 상황을 이야기하면 제시의 가정에서 자랄 수 있지 않았을 까.

어쩌면 앤에게는 그게 더 좋지 않았을까.

토머스 부인이 앤을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면 오히려 제시의 가정으로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앤은 제시 가정으로 가서 적어도 토머스 부인의 가정에서의 삶 보다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 앤은 아버지가 부탁했던 엄마의 물건들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태어나 집 근처에서 예쁜 추억을 가지고 자랄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서른 개 이상의 기저귀를 갈고 11인분의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리고 해먼드씨의 가정이나 고아원을 갈 필요도 없고,

학교를 다니며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소망하던 아이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진짜 친구를 사귀며 우정의 의미도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과정과 엊갈린 만남,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사건들,,

앤은 그 알 수 없는 과정 가운데서도 어둠을 밝히는 전구처럼 빛났고, 바르게 성장했다.

언제나 밝을 수 없는 환경과 사건들 가운데

앤도 힘들어하고 속상해 하고 우울해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앤은 내가 현실에서 그리고 책 속에서 만난 누구보다도 강했다.

앤 또한 스스로 강한 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강한 아이는 없다.

더욱이 앤의 환경이라면 더 아프고 힘들고 우울하게 자랐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앤은 강하게 성장했다.

그 이유는 스스로 강하게 자라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앤은 ‘강해질 거야’라고 말하거나 다짐한 적은 없다.

다만, 낙심이 아닌 소망을 말하고, 좌절하는 대신 희망하는 마음을 가졌다.

이 부분에서는 소공녀 세라가 생각났다.

물론 앤은 세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삶을 살아냈지만, 앤과 세라는 힘든 과정 가운데도 강하게 이겨낸 소녀라는 점에거 닮았다.

특히 세라가 힘든 과정 가운데서 상상하기를 통해 이겨냈는데 (세라의 대사 “전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뿐이에요. 못 견디게 춥고 배가 고파도, 공주처럼 행동하려고 말이에요.”) 앤도 상상하기를 잘 하는 아이였다.

앤은 항상 소망하고 희망하고 노력하는 아이였다.

그렇게 희망을 이뤄가는 아이였으며

자신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주변을 밝힐 수 있는 아이였다.

“그래 아가, 넌 그 어떤 일에서도 결국 살아남을 거야.” (60)

문장 속 ‘어떤 일’.

앤의 삶 가운데 일어난 일들과 사건들은 아이가 감당하고 견디기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일들에는 고아원에 가는 일도 포함되었다.

앤이 가장 일어나기를 원치 않는 일은 ‘고아원’에 가는 일이었다.

앤의 마음속에 고아로서의 슬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고아원’이라는 장소가 더욱 부정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앤이 고아원에 가기 전에

또 하나의 소망을 선물 받았고

새로운 희망의 마음을 가졌다.

정확히 말하면 앤이 맥도걸 선생님께 선물 받은 것은 ‘사진’이지만

이 사진은 앤의 마음에 소망을 주었고

앤은 주어진 환경만 보고 소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망을 기억하고 여전히 소망으로 간직했다.

더 나아가 희망하고 가능성이 아닌 희망의 마음으로 노력했다.

희망이나 소망, 그리고 노력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을 때 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앤을 통해 다시금 기억할 수 있었다.

주어진 상황과 상관없이 마음에 두고 바라는 것이 소망이고

그 소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어도 그것을 꿈꾸는 것이 희망이었다.

또한 노력은 그 희망과 소망이 터무니없어 보이더라도 좌절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고아워에 갔을 때 앤은 수업시간을 제외하고는 이전의 앤과 많이 달랐다.

‘누구도 앤의 가슴에 구멍을 내지 못했고, 누구도 용기의 갑옷을 벗겨내지 못했다. 케일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은 자신에게 허락했다. 시와 그림들은 부끄러움 없이 흠모했다. 그 정도까지만 기꺼이 사랑을 허락했다. 앤은 거의 웃지 않았다. 그 대신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다. (563)

그렇지만 앤이 마음을 다시 열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소망하던 예쁜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다.

앤에게는 친구와의 우정을 나눌 기회도 없었고

학교에서 잠시 만남이 있었어도

앤의 의지나 마음과는 상과없이 헤어짐을 맞이해야 했다.

‘친구’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마음이 있었지만

정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짜 친구(사물이나 자연이 아닌 사람인 친구)를 사귀고 우정이란 것을 가지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앤이 소망하던 아름답고 영리한고 즐거운 아이인 애드너가

앤을 ‘너무나 소중한 친구’라고 말하며 다가온 것이다.

영원한 헌신이라는 행동을하며 앤이 소중하다고 증명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애드너와의 우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버렸다.

다른 아이들이 앤을 좋아하고 앤도 다른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 것을 느낀 애드너는

앤을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에 다른 아이들에게 앤의 단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말그대로 호박씨, 뒷담화 였다.

애드너가 자신을 험담하는 것을 들은 앤은 애드너가 알 수 있도록 접시를 깨며 소리를 냈다.

그리고 다시 앤, 자기 자신 안으로만 파고들었다.

어쩌면 이 과정에서 자신의 빨강머리와 주근깨를 싫어하고 언젠가는 머리 색이 변하고 주근깨가 사라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줄었을 것 같다.

외모로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외모가 예쁜 사람이 마음과 성품, 인격까지 예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죽어버린 우정’이라는 표현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닫힌 마음을 열게 해준 그리고 앤이 정말 소망했던 친구 였는데,

그렇게 앤이 작가가 되면 한 부분은 온전히 너에대해 쓸거라고 말한

앤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친구였는데,

그런 소중함이 한 순간 깨지고 ‘죽어버린 우정’이 되어 ‘원수 상자’안에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또 다시 아픔을 경험한 앤,

그렇지만 그 곳에서 앤은 또 다른 희망을 가진다.

바로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가는 것이다.

고아원으로 오기 전,

앤이 맥도걸 선생님께 선물 받은 것은 프린스에드워드 섬 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였다.

‘프린스 에드워드’섬은 맥도걸 선생님 수업시간에 들은 장소로

앤은 그 사진을 보고 정말 그곳에 가보기를 소망했다.

정말 간절히 소망한 장소 였다.

소망이라는 표현을 넘어, 앤은 프린스에드워드 섬을 사랑했다.

그리고 고아원에 앤이 사랑하는 섬에서 손님이 오는 일이 생겼다.

스펜서 부인이라는 숙녀분이 와서

자신이 입양할 ‘예쁜 다섯 살 아이’와

그녀의 친구 커스버드 남매를 위해 ‘열한 살의 쓸모있는 아이’를 데려갈 예정이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앤이 선택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얼마나 되었을까?

책 속 내용으로 보았을 때는 앤이 선택될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있든 없든, 앤은 그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다른 고아원아이들에 비해 온지 별로 되지 않은 앤이었으며,

그동안 고아원에서 일을 적극적으로 하거나 마음을 열고 생활을 한 것도 아니었다.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 칼라일양에게 특별히 칭찬을 받으며 생활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접시를 깨고 혼난 적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앤이 일을 잘하는 아이로서 뽑힐 가능성은 매우 적어보였다.

‘그저 다른 누군가가 가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일부러 접시를 깨는 상황을 만든 뒷담을 한 애드너를 원망하거나

왜 나는 이렇게 엇갈리고 힘든 환경만 만나야 하는지 낙심했을 수도 있다.

또한 애드너는 마치 누가 갈지 아는 것 처럼 말했으므로

‘이미 누군가가 정해져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낙담하여 더 우울하거나 게으르게 행동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앤은 그렇지 않았다.

희망하는 버릇이 있다고 스스로 말한 앤은

그저 마음에만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보이지 않는 희망이라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가는 노력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리고 앤의 희망은 정말 이루어졌다.

헤거티 양이 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글쎄, 때때로 그분은 아무것도 못 들으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 대답이 정확히 어디로 이끌지는 절댜로 모르는 일이란다. 그분은 널 놀라게 하실 거야."

정말 앤에게 있어서는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보다도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앤이 그토록 소망하고, 희망했던 일이었다.

                            

제 인생이 얼마나 자주, 어느 정도 까지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는지 아마 상상도 못하실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여행이 저에게

천국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 역시 이해하기 힘드실 거예요.

(604)

‘프린스에드워드섬’ 이 섬은 실제 캐나다에 있는 섬이다.

책을 읽으며 앤이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대해 표현하는 문장들을 통해

바다와 마을의 풍경, 섬을 상상하였다, 문장으로 만나는 ‘프린스에드워드섬’은 정말 아름다웠다.

기회가 된다면 앤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프린스에드워드섬에 가보고 싶다

그곳에 직접 가서 앤을 느끼고 다시 추억하는 그렇게 앤의 희망을 배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앤의 말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과거의 삶에서 꺼내 새로운 삶으러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릴리, 너도 나만큼 프린스에드워드 섬을 사랑하게 됐으면 좋겠어. 행복해야 돼."(617p)

앤의 어린 시절을 읽고 다시 빨강머리 앤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빨강머리 앤은 읽은 분들도 이 책을 통해 앤의 어린시절을 만나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앤의 어린시절을 알아가며 앤의 마음과 희망을 배울 수 있었다.

이미 사랑스러운 앤이지만 앤의 삶을 알아가며 이 전보다 앤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 이다.

앤의 표현도, 문장도, 마음도, 생각도 사랑스럽고

이 책을 읽어가며 배우고, 사랑하고, 감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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