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에서 개미의 분업과 이타주의에 대한 내용이 나왔었는데, 개미에게서 볼 수 있는 협업 등과 같은 이타주의가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단지 개미의 유전적인 특수성으로 인해 그저 행동양식이 조금 달라보이는 것일뿐 결국엔 생존본능적인 행동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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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 관련 내용이 일단락 되고 다음 챕터에서는 화학 관련 내용이 나온다. 원자, 원소, 분자, 전자 등 중고등학교 때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개념들이 등장한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저자는 학창시절에 물질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그닥 없었기에 과학과목(특별히 여기선 화학)에 관심이 안 생겼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운명적 문과‘일 수 밖에 없었음을 고백하는데, 저자의 이 고백은 비단 저자만의 고백이 아닌 독자인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나도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 시간이 되면 과학에 대한 어떤 학문적인 호기심이 발동하기보다는 이런게 실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나 하는 회의감이 더 컸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과학 과목에서 호기심이나 흥미를 느끼기보다는 그냥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쪽팔리지 않을 정도의 점수만 맞았으면 좋겠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어리석었던) 생각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과거에 시험본다고 꾸역꾸역 머리에 우겨넣었던 지식들이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과거에 이해없이 단순 암기만 했던 것들이 많았던지라 읽으면서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많아서 제대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저자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이제 겨우겨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정도까지는 된 것 같다. 과학쪽에 무지몽매했다는 표현이 딱 나에게 해당되는 표현이었는데 이제는 기초과학, 교양과학 수준정도로는 올라갈 수 있는 레벨로 접근하기 시작한 듯 하다.

일꾼개미와 여왕개미의 분업은 유전적 우연과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동물이 출산과 양육을 위해 헌신하도록 진화한 것은 자식을 잘 돌보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의 번식 성공률이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 P154

자연선택은 어떤 종 어떤 개체한테도 특권을 주지 않으며 진화는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 P154

자식을 돌보는 것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훌륭해서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다. - P154

해밀턴은 그 모든 형태의 친족이타주의에 유전 연관도라는 생물학적 기초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는 그 이론에서 물질의 증거를 토대로 대상의 보이지 않는 실체에 다가서는 과학의 매력을 보았다. - P154

거듭 말하지만 우리의 뇌는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조합한 기계인데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한다. - P156

자연선택은 보편적인 친족이타주의를 진화시켰는데 우리의 뇌는 적응의 이익과 무관하게 그것을 확장했다. 자신의 존재를 고귀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믿음 때문에 친족 아닌 타인에 대해서도 이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 P156

아름다움과 고귀함은 물질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물질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런 믿음을 표현하려고 때로는 목숨까지 건다. 이타주의도 그런 것 중 하나일 수 있다. - P156

신神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이 있다고 믿으면서 간절하게 기도한다. 자신이 신을 대리한다고 주장하는 성직자한테 돈을 바친다. 크고 높고 화려한 집을 지어 신을 경배한다. 신을 배신하지 않으려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이 붐비는 시장 한복판에서 폭탄을 터뜨리기도 한다. 때로는 똑같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서로를 죽인다. - P156

어디 종교만 그런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든가 천부인권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은 물질이 아니며 물질에 깃들어 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런 게 있다고 확신하면서 대규모 공동 행동을 조직한다. - P156

이타 행동이 고귀하다는 관념도 우리 뇌의 인지 제어시스템이 만들었다. 그런데 그 관념이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사람을 이타 행동으로 이끈다. 자연선택은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한 친족이타주의를 진화시켰지만, 우리의 뇌는 유전 연관도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까지 이타주의 적용 범위를 확장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굶주린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해변에 좌초한 돌고래를 구조하면서 기쁨에 들뜬다. 진화의 부작용인데,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 P157

유전자는 유전자, 나는 나다. 유전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유전자가 만들어낸 나는 생각한다. 둘은 차원이 다르다. 유전자는 복제할 뿐이고, 나는 인생을 나름의 의미로 채우며 살아간다. 나보다 오래 산다고 해서 유전자가 부럽지는 않다.
"자랑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 P158

유전자는 생존기계가 배타 행동을 하든 이타 행동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개인은 배타 행동도 하고 이타 행동도 하면서 그것이 초래한 결과를 각자 감당한다. 그러나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단은 극히 예외적으로만 이타 행동을 한다. 집단은 클수록 더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 P158

인간과 개미는 완전히 다르지만 인간 집단과 개미 집단은 닮은 데가 많다.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 개인들이 인종적·경제적·국가적 집단으로 뭉치면 힘이 허용하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집단은 크면 클수록 더 이기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 P158

집단은 행위의 결과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나치의 범죄를 끝없이 사죄하는 독일은 드문 예외다. 보통은 일본처럼 제국주의 침략과 인권유린 행위를 부인한다. - P159

유전자는 특정 종의 생존에 관심이 없다. 모든 종의 모든 개체에 서식하고 있으니 어떤 종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 P159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지만 전적으로 공감하는 건아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 P159

탄소는 단백질 분자의 기본이고 지방 · 탄수화물 · 효소 · 비타민에 있으며 무생물도 만든다. - P164

메탄 분자의 수소 3개를 염소(Cl)로 바꾸면 마취용 클로로포름이 되고, 넷 모두를 염소로 바꾸면 드라이클리닝에 쓰는 액체 사염화탄소가 된다. 탄소 원자가 여러 개인 탄화수소를 사슬 모양으로 배열해 다른 원자나 분자를 붙이면 맹독성 물질을 만들 수 있다. 화학자들은 그런 방식으로 DDT · 클로르데인 · 알드린·엔드린 같은 살충제를 합성했다. - P164

탄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4개가 결합한 메탄(CH4) - P164

사육 가축의 방귀와 배설물에서 나온 메탄은 온실효과를 일으켜 지구의 온도를 높이며, 탄광 갱도에 쌓인 메탄은 폭발을 일으킨다. - P164

살충제는 특정 해충만이 아니라 모든 곤충을 죽인다. 없애려고 했던 해충은 살충제 내성을 얻어 다시 창궐한다. 인간이 곤충을 상대로 전개한 군비확장 경쟁은 새를 죽였다. 새가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살기 어렵다. - P165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펜이 돈보다 힘이 셀 때가 있다. - P166

아는 사람은 안다. 화학이 ‘돈 되는 과학‘이란 걸, 화학의 이미지가 나빠도 사람들은 ‘화학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 P166

화학은 어떤 학문인가? 물질의 조성과 구조·성질·관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 P166

화학은 천연의 반대말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 존재하든 사람이 만들었든, 물질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화학의 연구 대상이다. 화학을 모르면 물질과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정의다. - P167

일상 언어로 말하자면 화학은 욕망 · 생명력 · 번식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품을 만드는 과학이다. 뇌의 기본 업무와 관련이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화학산업은 시장이 크다. - P167

립스틱 · 주름방지화장품 · 자외선차단제 · 미백크림 · 오메가3 · 비타민C · 비아그라 · 살균제 · 소독약 · 항생제 · 백신 · 항우울제 · 일회용기저귀 · 껌· 아스팔트 · 시멘트 · 젖병이 다 화학제품이다. 막걸리 · 맥주 · 포도주를 포함해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드는 알코올 함유 음료도 모두 화학의 세계에 속한다. 여기에 농축산물 생산과 유통에 쓰는 비료 · 농약 · 포장재와 건축용 시멘트 · 페인트 · 내장재를 더해 보라. 현대인의 삶은 화학에서 시작해 화학으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167

화학은 생명을 해치는 사악한 마법이 아니다. 좋지 않은 물질을 만들어 잘못 사용한 책임은 화학이 아니라 사람한테 있다. - P168

소금이 물에 녹는다는 건 먼 옛날에도 알던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한 건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원자의 구조와 전자의 운동을 모르면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 P168

화학의 정의를 다시 보자. ‘물질의 조성과 구조 · 성질 · 관계 ·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 이다.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정체를 모르고는 물질의 구조와 성질을 파악할 수 없다. 양자역학이 나온 뒤에야 화학은 비로소 온전한 과학이 되었다. - P169

화학은 ‘환원‘還元(reduction)의 필요성과 위력을 잘 보여준다. 환원은 크고 복잡한 것을 작고 단순한 것으로 쪼개는 것이다. 모든 대상을 이런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을 ‘환원주의‘라고 한다. 원자와 같이 작고 단순한 것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으로 크고 복잡한 대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다. - P169

물리학을 모르면 화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하지 못하면 재미를 느낄 수 없다. - P169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소‘元素(element)로 이루어져 있다.
결합해서 어떤 물질의 분자를 이루는 원소는 보통 두 종류이상이지만 산소·금·다이아몬드처럼 원소가 하나인 물질도 많다. 더 작게 나누면 고유의 성질을 잃는다는 의미에서 물질의 기본 성분‘인 원소는 원자原子(atom)와 같고 또 다르다. 물리학 책에는 주로 원자가 나오고 화학 책에는 원소와 원자가 뒤섞여 나온다. - P170

원자는 원소의 한 단위다. 생물학 언어로 하면 원소는 호모사피엔스, 원자는 한 사람이다. 물질의 성질과 변화를 연구하는 화학자에게는 원소가 중요하고, 미시세계의 역학을 탐구하는 물리학자에게는 원자가 중요하다. - P170

산소(O2)를 보자. 없으면 우리가 몇 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물질인 산소의 원소는 산소 한 가지다. 산소
‘분자‘分子(molecule)는 산소 원자(O) 2개가 결합한 물질이다. - P170

화학에서는 물질의 분자를 원소의 기호와 원자의 수를 적은화학식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화학식 H2O는 물의 원소는 수소와 산소 두 가지이고, 물 분자는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2개로 이루어진다는 정보를 담고 있다. - P170

모든 원소는 영어 알파벳에서 가져온 ‘원소기호‘와 원자핵의 양성자 수를 나타내는 ‘원자번호‘가 있다. - P170

원자번호 1번은 양성자가 하나인 수소(H), 2번은 양성자가 두 개인 헬륨(He), 원자번호 92번은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 중에서 가장 무거운 우라늄(U), 원자번호 93번부터 118번까지는 인위적 핵반응에서 나온 원소다. - P170

모든 원소를 원자번호와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한 것이 ‘주기율표‘週期律表(periodic table of the elements)다. - P170

물질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들이 결합해 물질의 분자를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원자들은 왜 결합할까? 결합한 원자들은 왜 흩어지지 않으며, 흩어질 때는 왜 흩어질까? 어떤 힘이 원자들을 뭉치게 할까? 궁금해한 적은 없었지만, 알고 나니 신기했다. 화학이 이렇게 신기한 과학인지 몰랐다. - P171

둘 이상의 원자가 서로 전자를 공유해 화합물을 만드는 것을 ‘공유결합‘이라 하고, 전자를 방출하거나 영입해 양이온이나 음이온이 된 원자들이 서로 끌어당겨 화합물을 만드는 것을 ‘이온결합‘이라고 한다. - P171

금속 원소의 원자들이 고체 결정을 형성하는 ‘금속결합‘ - P171

공유결합이 만든 ‘분자화합물‘은 부드러워서 액체나 기체가 많은 반면, 이온결합이 만든 ‘이온화합물‘은 고체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분자화합물인 물은 액체, 이온화합물인 소금은 고체다. 그렇지만 원자를 결합하게 만드는 것은 두 경우 모두 전자電子(electron)다. - P171

물은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2개가 전자 두 쌍을 공유한 분자화합물이다. 산소 원자를 꼭짓점 삼아 수소 원자 2개가 V자로 가지처럼 붙어 있다. - P171

잠시 인문학 언어를 쓰자. 산소 원자는 수소 원자보다 욕심이 많고 힘도 세다. 그래서 수소와 공유하는 전자를 자기 쪽으로 살짝 당겨 놓는다. 그 불균형 때문에 물은 중성이지만 산소 원자는 음전하를 띠고 수소 원자 2개는 양전하를 띤다. - P172

소금은 나트륨(Na)과 염소(Cl)의 이온화합물이다. 나트륨 원자는 전자를 11개 보유한다. 전자는 원자핵에서 가장가까운 전자껍질에 2개, 그다음 전자껍질에 8개, 최외곽 전자껍질에 하나가 있다. (중략) 나트륨 원자가 최외곽 전자껍질에 혼자 있는 전자를 방출하면 전자가 양성자보다 하나 적어져 양전하를 띤 나트륨 이온이 된다. - P172

염소 원자는 전자가 17개다. 전자는 첫 번째 전자껍질에 2개, 그다음 전자껍질에 8개, 최외곽 전자껍질에 7개가 있다. 염소 원자가 혼자 돌아다니는 전자하나를 영입해 최외곽 전자껍질을 전자 8개로 채우면 전자가 양성자보다 하나 많아져 음전하를 띤 염소 이온이 된다. - P172

두 이온(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서로를 끌어당겨 뭉친 것이 염화나트륨(NaCl)이다. 염화나트륨 분자의 염소 이온과 나트륨 이온은 다른 염화나트륨 분자의 이온들과 들러붙어 정육면체 결정을 만든다. 그것을 소금이라고 한다. - P172

엄격한 물리학자라면 이쯤에서 물질이 분자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지적할 것이다. 물은 원자 3개가 분자 하나를 이루니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소금은 다르다. 소금 결정은 염소 이온과 나트륨이온의 육면체 배열 패턴이 모든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분자에 해당하는 최소단위를 엄격하게 정의할 수 없다. - P172

나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서술이 아님을 알면서도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장을 쓴다. 이온화합물인 소금도 ‘소금 분자‘라고 한다. 분자화합물과 이온화합물을 매번 구분해서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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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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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그 속에 숨겨진 여러가지 상황이나 배경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들을 통해 건축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또한 책속에서 드러나는 저자만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관점은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건축을 보다 흥미롭게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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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특별히 ‘건축물은 공간으로 말을 한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게 느껴졌다. 대다수의 예술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이런저런 장황한 설명보다는 만들어진 결과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이 진정한 가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에 더해 건축물이라는 최종 결과물 자체로 시공을 초월하여 그 가치가 전달된다는 저자의 말도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오래 전에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들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전부 다 포함된다고 본다.

위와 비슷한 맥락에서 부가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좀 더 보태보자면 축구같은 스포츠 경기에서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는 인터뷰 같은 것을 가끔 볼 때가 있는데, 이 또한 최종적인 결과물로 경기를 보러 온 관중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준다는 측면에서 이 책의 저자가 앞서 말한 ‘건축물은 공간으로 말을 한다‘ 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또한 위에서 함께 언급한 시공을 초월하여 가치가 전달된다는 것의 한 예로 과거 2002년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던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다시 보다보면 그때의 그 감동이 어느정도 되살아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어떤 말보다도 그 장면 자체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보여진다. 건축물이 공간으로 말을 하는 건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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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저자는 건축의 정체성에 대해 논하는데 최종적인 결론은 ‘건축은 그냥 건축‘이라는 것이었다. 건축은 과거엔 과학이었으나 어느순간 예술이 되었고 이후 기타 다른 학문들(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등)이 융합된 ‘건축‘이 되었다는 것이다. 단지 이러한 결론만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는 얘기일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부분에선 저자가 이 책을 쓰게된 이유로 건축가가 아닌 비전공자들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이는 단순히 어떤 건축관련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차원이 아닌 향후 더 나은 건축물을 만들어가기 위한 생산적인 소통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이 책이 ‘건축가가 건축 비전공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저자의 말에 참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건축주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건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건축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갈때 보다 훌륭한 건축물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건축가들과의 소통을 통해 우리의 의견이 건축에 반영된다면 건축물도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싶다.

서로 다른 물감이 적당히 섞이면 아름다운 색을 만들지만,
너무 많이 섞이면 회색빛이 되는 법이다. - P379

내연기관 : 연료의 연소가 기관의 내부에서 이루어져 열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는 기관. - P387

건축물 앞에는 설명서가 없다. 대신 공간이 말을 한다. - P381

음악이나 미술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긴 설명을 하는 말이나 글이 필요하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음악, 미술, 건축 같은 창조의 분야에서 창작자는 읽고, 보고, 먹고, 느끼고, 만나고, 살면서 하는 모든 경험들을 통해서 깨달은 바를 자신이 선택한 매체를 통해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릇 예술은 체험하는 이로 하여금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언어의 설명 없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381

아이러니하게도 건축가인 필자가 책을 썼다. 그 이유는 건축은 예술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 P382

과거에 건축은 과학이었다. 한 나라의 최첨단 기술을 과시하는 도구로서의 건축이 있었다. 건축은 어느 시대나 지구의 만유인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 주는 과학적 도구이자 결과물이었다. 반면 의술은 과학이 아니라 미신에 가까웠다. 지금도 오지에서는 무당들이 병을 고친다. - P382

건축과 의학 이 둘은 19세기에 운명이 바뀌었다. 의학은 과학을 택해서 지금의 MRI와 각종 첨단 시설을 이용한 기술의 서비스가 되었다. 반면 건축은 예술을 택해서 지금껏 사회적 대접이라는 면에서 퇴보해 왔다. 건축이 예술이 되면서 질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00년 전에 이루어진 의학과 건축의 선택의 결과는 지금 의사와 건축가의 평균 연봉이 말해 주고 있다. - P382

건축이 예술이라는 관념이 깨졌으면 한다. 건축은 예술이기도 하고, 과학이기도 하고,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그냥 ‘건축‘이다. - P382

글을 쓴다는 것은 건축 행위가 아니다. 하지만 건축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보편적인 의사소통의 도구인 글을 통해서 건축 전공자 밖의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건축은 건축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 사용자와 함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제대로 된 건축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아야 한다. - P383

제대로 된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건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 건축은 세상을 바꾸는 도구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축이 기술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건축이 재테크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차이를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어야 한다. - P383

이 책은 건축가가 건축 비전공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이다. 이 편지를 읽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건축에 대한 답장을 해 주었으면 한다. - P383

우리 모두가 다 건축가가 될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는 일종의 건축주이다. 사는 집을 고를 때, 데이트할 거리를 선택할 때, 개발 정책에 따라서 정치 후보자에게 표를 던질 때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건축주의 입장에 서게 된다. 훌륭한 건축은 결국 훌륭한 건축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P383

훌륭한 건축주가 되는 첫걸음은 관심을 가지고 건축적으로 주변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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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가 되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뭔가 새로운 배움과 통찰을 얻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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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레이징 룩스‘라는 체스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자가 그들에게서 발견한 지속적인 성공과 성장의 요인들을 되짚어보고 여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그러한 요인들이 타당한지 여부를 확인해본다.

저자는 서문에서 엄청난 성과를 낸 사람과 보통 사람들의 차이는 어떤 재능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적절한 기회의 유무와 배우고자 하는 동기유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야망과 열망이라는 단어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소개하는데 야망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결과인 반면 열망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뒤이어지는 글에서 저자는 [주도력, 친화력, 자제력, 결의] 라는 4가지 키워드를 소개하면서 이 4가지가 제대로 갖추어져야 자신의 열망을 제대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 여기서 이 4가지 요소들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것은 아이들이 어릴 때 다니는 유치원에서 부터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단 여기서의 전제조건은 충분히 훈련된 선생님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뒤에서 저자가 고백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러한 잘 훈련된 선생님들을 만나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기에 어릴 때 위에 언급한 4가지 품성요인들을 온전히 기르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선천적 재능이라는 것을 ‘인지적 기량‘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일정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비슷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4가지의 ‘품성 기량‘은 그렇지 않다. 이 4가지의 품성 기량은 후천적인 상황과 환경에 의해 길러질 수 있는 것이고,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포텐(잠재력)을 지속적으로 터트리고 발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뒤이어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과 함께 이러한 뜻을 이루기 위한 보조 장치로서 ‘임시 구조물‘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원래 이 단어는 건설 현장에서 어떤 작업을 할 때 사람이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높이나 위치에 도달해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때 임시적으로 설치하여 작업했다가 작업이 끝나면 다시 해체시키는 구조물을 지칭하는 용어인데, 저자는 이 책에서 이 단어를 어떤 사람이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임시적인 장치의 의미로 사용한다. 책에 나온 표현으로 하자면 목표달성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임시 구조물‘의 역할을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가 제시한 답을 독자인 내가 나만의 문장으로 풀어자면 그것은 상대방에게 그저 추상적이고 막연한 목표만을 던지기 보다는 단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어떤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책에 나온 사례를 보면 여기에는 어떤 재미나 자극 이런 것들이 양념처럼 가미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좀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동기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어서 상황에 맞는 행동들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해서 길러진 품성 기량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공에 가까워져가는데 선천적인 재능보다 훨씬 더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오로지 판단만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결과는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체스는 천재들의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의 젊은 선수들은 수열을 암기하고 신속하게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여러 수를 미리 내다보는 두뇌를 지닌 신동들이다.

누구든 숨은 잠재력이 있다. 이 책은 그 잠재력을 실현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위대함은 대개 타고나는 것이지 길러지는 게 아니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신동이 아니어도 대단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우리 모두 어떻게 하면 대단한 성과를 올리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내가 이 책을 통해 추구하는 목표다.

남다른 재능이 아니라 남다른 동기 유발

"이 세상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배울 수 있다. 적절한 학습 조건만 조성된다면..."

수학, 과학, 또는 외국어의 새로운 개념을 터득하려면 보통 7~8차례 연습이 필요하다. 이 횟수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학생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타고난 능력의 차이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기회와 동기 유발의 차이인 경우가 흔했다.

우리는 잠재력을 가늠할 때 출발점(바로 눈에 보이는 능력) 에 집중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한다. 타고난 재능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전도 유망한 이들은 첫눈에 두드러지는 이들이라고 넘겨짚는다.

성취도가 높은 이들이 어릴 때 보이는 재능은 천차만별이다. 아주 어렸을 때 보인 재능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많은 이들의 잠재력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히게 된다.

출발점을 토대로 종착점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적절한 기회와 배우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되면 누구든 대단한 성취를 이룰 기량을 지니게 된다.

잠재력은 출발점이 아니라 얼마나 멀리까지 가느냐다. 따라서 출발점보다는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했는지에 좀 더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는 특이한 재능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대체로 성장 환경과 양육의 산물로서 길러진다.

양육의 중요성을 무시하면 처참한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영역과 터득 가능한 재능의 범위를 과소평가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제약을 가하게 된다. 안락한 지대를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보다 폭넓은 가능성을 타진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다른 이들에게서 밝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기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된다. 그들이 위대한 성취를 누릴 기회를 세상이 박탈해버리게 된다.

자신이 지닌 장점을 초월해야 잠재력을 실현하고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발전은 탁월함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지는 것 자체가 가치있는 성취다.

이 책은 야망이 아니라 열망을 논하는 책이다.

야망은 당신이 달성하고자 하는 결과다. 열망은 당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얼마나 많은 직함을 얻고, 얼마나 많은 상을 받는지가 관건이 아니다. 그처럼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들은 개개인의 발전을 가늠하기에는 형편없는 대용품이다.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관건이다.

성장하려면 마음가짐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성장은 우리가 보통 간과하는 기량의 묶음과 더불어 시작된다.

탁월함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보다 훨씬 타고난 재능에 덜 의존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주도력, 친화력, 자제력, 결의 등의 행동 유형을 타고나는 자질로 보지만, 사실 이러한 행동은 유치원에서 배운다. 학생의 출발점이 어디든 상관없이, 수 십 년 후 학생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행동을 학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아리스토텔레스)는 품성을 사람들이 순전히 의지력을 통해 습득하고 실천하는 원칙의 묶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나는 품성을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기량의 묶음으로 간주한다.

품성은 원칙을 지니는 상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지닌 원칙을 실천하는 학습된 역량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통달하는 교훈

기회가 저절로 굴러오진 않는다

기회가 두드릴 문은 본인이 직접 만들어야 했다.

품성이 재능보다 훨씬 중요하다

어릴 때 인지적 기량이 주는 장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진다.

체스 마스터가 되려면 평균 2만 시간 이상, 그랜드 마스터 (Grand Master)가 되려면 3만 시간 이상을 연습해야 한다. 계속 실력을 향상하려면 과거의 게임을 복기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는 주도력, 절제력, 결의가 필요하다.

품성 기량은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최고 기량의 수준을 한층 더 올려준다.

품성 기량은 "삶에서 성공할지를 예측하고 성공을 실현한다."

그러나 품성 기량은 무에서 창조되지는 않는다. 그런 기량들을 기를 기회와 동기 부여가 필요하다.

멍석을 깔아주면 알아서 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길이 보이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달하겠다는 꿈을 접는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에 불을 붙이려면 길을 보여줘야 한다. 바로 그게 임시 구조물이 하는 역할이다.

거꾸로 가르침

이길 방법이 생기자 배우려는 의지가 생겼다.

"아이들에게 ‘인내심과 결의와 강인함을 터득하게 된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런 말을 하자마자 아이들은 꾸벅꾸벅 존다"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게임 재미있다. 한 판 하자. 내가 너를 묵사발 낼 작정이다.‘ 그래서 투지를 불러일으키고 승부욕에 불을 지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차분히 앉아서 게임을 배우기 시작한다. 일단 게임에 꽂히고 난 후 게임에서 지면 이기고 싶게 된다."

경험적으로 볼 때, 품성 기량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

"구조적 문화적 억압 때문에 품성의 구축을 통해 이러한 기량을 터득할 필요가 더욱더 증폭된다. 수 세대에 걸쳐 당신 목을 짓누르는 억압을 받아왔다면 강해야 한다."

강한 품성 기량을 갖췄다고 해도, 심신이 지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가 생기거나 정체기를 겪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없다. 그러나 상당한 결과를 얻기 위해 일벌레가 될 필요도 없고 지칠 때까지 밀어붙일 필요도 없다.

놀이가 아닌 연습은 불완전하고,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게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 일지도 모르며, 자력으로 해낸다는 게 혼자 한다는 뜻이 아닌 이유를 알게 된다.

잠재력이 큰 사람들에게 사회가 열어주어야 하는 기회의 문은 가장 큰 장애물에 직면해온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닫혀있는 경우가 흔하다. 간과되거나 과소평가되어 왔지만 오랜 세월 끝에 돌파구를 찾게 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기회도 얻지 못한다.

행동이 아니라 당신이 터득하는 교훈이 차이를 낳는다. (중략) "성취는 성장에 있다"

근시안적인 수를 두려는 유혹을 뿌리치는 자제력은 갱단과 마약의 유혹을 뿌리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패턴을 암기하고 상대방의 수를 예측하는 결의와 주도력은 시험을 준비할 때도 적용되었다.

함께 연습하고 서로 비판해주면서 습득한 친화력은 그들이 뛰어난 협력자이자 스스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스승이 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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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건축이 기후의 영향을 받는 것과 관련된 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벼와 밀을 재배하는데 있어 강수량의 차이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이러한 기후의 차이가 건축 재료에도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최종 결과물로 나온 건축물의 형태에도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비가 많이 오는 동아시아 지역과 상대적으로 비가 적게 오는 유럽지역 간의 건축양식에도 커다란 차이가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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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절을 바꿔서 이 책의 마지막 챕터인 제15장 ‘건축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 이라는 제목으로 된 부분이 나온다. 가장 먼저 ‘성 베네딕트 채플‘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글을 읽다보니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을 곰곰이 되짚어봤다. 개인적으로 몇 달 전에 동 저자의《인문 건축 기행》이라는 책을 읽었었는데, 거기에서 봤던 내용들과 거의 유사한 내용들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일종의 반복학습이 되어 뭔가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인 핵심메시지는 그 책과 이 책이 비슷했으나 세부적인 텍스트는 약간 수정이 된 듯 하다. 어쨌든 예전에 읽었던 책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다. 참고로《인문 건축 기행》의 p.174에 내가 밑줄쳤던 내용이 있으니 그 부분을 참조하면 될 듯 하다. 독자인 내가 봤을때 이 부분의 핵심은 자연환경을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보는 것이 가장 성숙한 디자인의 방식(p.347)이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장을 통해 저자가 자연과의 조화 혹은 균형을 중시하는 건축가인 것 같다는 내 나름의 근거있는(?) 추론도 해볼 수 있었다.

이어서 미국의 필립 존슨이 설계한 ‘글라스 하우스‘와 일본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스미요시 주택‘이 소개되는데, 전자는 저자의 다른 책에서 한 번 만나봤던 기억이 났는데 후자인 스미요시 주택은 이 책에서 처음 보는듯 했다. 다만 본문을 읽다보니 동 저자의《인문 건축 기행》에 잠깐 소개되었던 안도 다다오의 ‘아즈마 하우스‘ 와 유사한 건축물처럼 느껴졌다.

부가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하자면, 정말 신기하게도 ‘아즈마 하우스‘를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스미요시 주택과 같은 건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미요시 지역에 위치해서 ‘스미요시 주택‘이라고 지칭했는데, 집 주인의 이름이 아즈마Azuma 여서 ‘아즈마 하우스‘ 라고도 부른다는 것이었다. 왠지 책에 나온 그림이 낯설진 않았는데 이름만 생소했던 터라 궁금증이 하나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소개되는 건축물은 일본 삿포로에 위치한 ‘아사히야마‘ 라는 동물원이다. 이 동물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원과는 달리 좁은 공간을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활용한 것으로 유명한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직접 한 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동안 손놓고 있었던 일본어 책을 다시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 정도 였으니 뭐 말 다했다.


이어서 한강 다리 중 하나인 잠수교가 소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잠수교에 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저자의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도 직접 방문해서 저자가 책에서 말해줬던 것들을 느껴보면 더욱 좋을 듯 하다.


다음에는 ‘시간의 이름‘ 이라는 제목의 글이 나오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절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절기라는 것은 원래 농사일을 위한 목적으로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여기서 시간에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또한 시간외에도 장소나 사람을 지칭하는 이름에 까지도 그 사고를 확장하여 이름을 붙이는 것의 의미에 대해 독자들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갈수록 획일화되어가는 시대에 독창적인 정체성을 가진 이름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우리가 경사진 지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옹벽에 대한 것이다. 옹벽이 발생하게 된 이유와 이것의 건축적인 의미가 단절이라는 것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또한 옹벽이 단순히 건물들간의 물리적인 단절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사람들 간의 심리적인 단절까지도 유발할 수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심리적 단절에 덧붙여 저자는 임대주택공급으로 인한 집값하락을 우려하는 임대주택부지 인근의 집주인들에게서 형성되는 보이지 않는 벽까지도 다루고 있다. 물리적인 벽인 옹벽에서 시작하여 사람들간의 관계단절로 인한 심리적인 벽 그리고 자산 수준에 따른 보이지 않는 벽까지 저자는 유무형의 모든 벽을 섭렵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어느 누구보다도 벽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는 벽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 같다는 게 느껴졌다.

벽에 이어서 울타리에 대한 얘기도 잠깐 등장한다. 저자는 울타리라는 것도 결국 시대가 변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긴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울타리같이 구획하는 것이 사라지고 가급적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낸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실제 영국의 사례도 하나 소개하고 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통적인 건축이 어떤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데, 저자는 그 시대와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 전통이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본문에서 우리나라 한옥이 지어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는데, 각각의 과정들을 보면서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덕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비단 건축분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해당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BEST가 아닐까 싶다.

유럽 건축은 벽, 동양 건축은 지붕 - P339

우리가 사는 건축의 대부분의 것들은 절반은 자연환경과 기술력, 건축 재료 등에 의해서 결정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고유의 문화적 가치관이 합쳐져서 독특한 건축물을 만든다. - P339

자연 속에서 생물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건강한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하게 된다. 그 이유는 생태계가 변화할 때 한가지로 통일된 체제는 변화에 실패했을 경우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P340

인류를 위해서 다양한 삶의 패턴과 모습이 유지되는 것이 좋다. 같은 이유로 건축 역시 지역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P340

건축은 수천 년간 끊임없이 험악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하지만 이 두 집(글라스 하우스와 스미요시 주택)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고안된 디자인이다. - P348

일본 건축의 특징 중 하나는 제한된 3차원 공간 안에 보행자 동선을 복잡하게 집어넣어서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10평이라는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면 좁아 보인다. 하지만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한눈에 안 들어오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면서 다른 시점에서 체험하고 바라보게 하고 시간을 지연시키면 더 넓게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전통 건축에서부터 시작해 현대에 와서 안도 다다오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나타난다. - P350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근처에 ‘아사히야마‘라는 시립 동물원이있다. 이 동물원은 커다란 사파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희한한 동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300만 명이 넘게 오는 세계적인 동물원이다. 한겨울에도 꾸준하게 사람들이 찾게 만드는 매력은 동물 축사의 건축 디자인에 있다. - P350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건축 공간이 다르다. 동물을 위한 재미난 건축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 동물원 축사에 가면 첫 번째 드는 느낌은 ‘좁은 공간이지만 동물들이 지루하지 않겠구나‘이다. 마치 일본에서 사람을 위한 건축물에서 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하려고 다채롭게 이리저리 동선을 파서 공간을 만들 듯이 동물들의 동선도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 P351

이 모든 공간은 한 곳에서 다 보이지 않는다. 계속 이동하면서 보고 머릿속에서 재구성올 해 봐야 겨우 이해가 가능한 공간이다. - P352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동물이 다니는 공간은 구석구석 높이와 폭이 다르고 동물의 공간과 인간의 공간이 서로 관입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공간이 아주 작은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이렇게 동물의 동선과 사람들의 동선이 꽈배기처럼 교합되어 있어서 동물을 위, 아래, 옆에서 다채로운 형태로 관찰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들 역시 이전에는 체험해 보지 못한 깊이 있는 동물과의 교감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 P352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는 좋은 건축 디자인이 좁은 공간에서 동물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 수 있게 해 주었다. - P352

한강에는 많은 다리가 있지만 하나같이 너무 높고 길어서 도보로 건너기보다는 자동차나 지하철을 이용해서 건너기 마련이다. 교통수단을 통해서 빠르고 높게 강을 건너다보니 강과의 교류를 체험하기가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 - P353

건축물 중에서 인간의 삶을 가장 크게 변형시키는 건축물을 찾는다면 다리일 것이다. 태초에 땅은 하나였다가 비가 내리면서 시내와 강이 생기고 이들은 땅을 둘로 나누었다. 다리는 이렇게 물이나 골짜기로 나누인 두 땅을 다시 연결하여 땅의 관계와 성격을 바꾼다. 비근한 예로 마포대교가 여의도에 놓이고 아무도 가서 살기 싫어하던 여의도는 서울의 맨해튼이 되었다. - P353

잠수교는 전쟁 시에 폭격으로 다리가 끊어져도 손쉽게 공병대가 연결할 수 있도록 짧은 교각을 자주 놓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한강의 어느 다리보다도 수면에 가깝게 붙어 있다. 장마철에는 물에 잠길 때 저항을 줄이기 위해 난간도 만들지 않았다. - P353

잠수교는 추후 유람선을 위해서 아치 구조를 만들어서 가운데를 들어 올렸다. 이 아치는 사람이 다리를 건널 때 물과의 거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게 해 준다. 이러한 경험은 항상 일정 간격을 유지해서 지루하기만 한 다른 다리보다 더 낭만적이다. 잠수교는 진입부에서 강 건너편이 안 보였다가 아치의 꼭대기기에 서면 높은 데서 내려다보게 되는 특별한 경험도 제공한다. - P354

잠수교는 한강 수위가 올라가면 끊어진다. 거의 모든 건축은 자연을 극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하지만 잠수교는 자연에 져 주기도 한다. 마치 시골에서 물이 불어나면 없어지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 P354

24절기는 농사일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 P355

시간을 사람의 체험과 연결시킨 절기는 숫자 달력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 - P355

절기는 시간의 이름이다. - P355

장소에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그 장소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이름이 없다면 인간과 상관없는 ‘곳‘일 뿐이다. 북위 37도 동경 129도하면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같은 곳에 ‘정동진‘이라는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 바뀌게 된다. (중략) 새해의 일출을 보면서 다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P356

시간이든 장소든 이름을 붙이는 것은 나와의 관계를 맺는 첫 단추이다. - P356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지명들은 대부분 두 글자의 한자로 되어 있다. 사람 이름을 두 개의 한자로 작명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 장소도 인격이라는 선조의 뜻이 있는 듯하다. - P356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비로소 사람에게 의미가 결정되어지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부터 지어 주고, 연애를 시작하면 자신들만의 애칭을 만들어서 붙이는 것이다. - P356

우리는 보통 발전소와 저수지가 눈에 안 보이는 곳에 있어서 느끼지 못하지만, 실제로 도시가 형성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불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원과 마실 물이다. - P357

달동네는 사람이 걸어 다니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그래서 더욱 사람에게 정감이 가는 공간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 P359

수십 미터의 건물이 평지에 들어갈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경사지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커다란 평지의 땅이 필요해졌다. 당연히 토목기사들은 커다란 계단식 택지 개발을 하였다. 건물을 땅에 맞추지 않고 땅을 기존 건물 스타일에 맞추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땅에 어마어마한 콘크리트 옹벽을 보고 살게 된 배경이다. - P359

경사가 급한 땅일수록 그 옹벽의 높이는 더 높아진다. 달동네가 재개발 되어서 들어가는 지역일수록 더욱 심하다. - P360

건축 요소적으로 보았을 때 벽은 단절을 의미한다. 하나의 공간이었다가 벽이 서면 둘로 나누어지게 된다. 옹벽도 벽이기 때문에 지역의 단절을 의미한다. - P360

사람 사이에 벽이 없이 오갈 수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커뮤니티 형성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 동별로 옹벽이 나누어져 있다. 이들은 전체의 커뮤니티라기보다는 동별로 나누어진 사회이다. - P360

경사 대지와 아파트라는 건축 형식으로 야기된 옹벽은 사람들 간의 단절을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땅의 모양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도 바꾸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이유이다. - P361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차별화시키고 싶어 한다. 단순한 다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존재로 구별되고 싶어한다. - P363

인간은 끊임없이 신분 계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계층이 만들어지면 시스템에 의해서 자신의 권리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다르다‘는 것을 의상으로, 말투로, 자동차로, 핸드백으로, 학교로, 사는 동네로 구분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본능이 우리의 발전을 채찍질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다. - P363

한국 사회에서는 현재 지난 수십 년간 자본주의 원리에 의해서 형성되었던 주택 시장에 새로운 형태의 임대주택을 융화시켜 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자 기존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옹벽보다도 더 심각한 벽이다. 우리나라에 브랜드를 가진 대형 아파트 단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집단 차별화 의식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 P363

계층 간의 이동을 막는 벽이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런 사회에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 문제가 있어도 그것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고 나 자신의 문제라고 귀결되기 때문이다. - P364

모두가 내 탓이라고 하는 사회도 모두가 시스템 탓이라고만 하는 사회도 바람직하지 않다. 둘 사이의 조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건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 계층간의 이동을 막는 벽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 간의 신분 계층을 나누려는 보이지 않는 벽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느냐에 우리 사회 미래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 P364

너무 많은 울타리와 보호난간은 민주화, 산업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 P365

무단 점유로부터의 소유권 보호가 중요해지면서 각자 울타리를 치게 되고 하나의 자연은 인간에 의해서 갈기갈기 찢겨졌다. 도로 역시 빨라진 자동차로부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난간이 설치되었다. - P365

현대 산업화 사회로 더 발전할수록 땅에 선을 긋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다. - P365

실제로 자연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다. 자연을 나누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국경선, 38선, 이스라엘 가자 지구도 그렇다. 건축에서 울타리는 벽이고, 벽은 단절을 의미하는데, 인간은 자연 속에 너무 많은 단절의 벽을 세운 거다. - P365

수백 년 전 영국 귀족들은 자신의 영토의 영역을 나타낼 때에 담장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신이 키우는 양들이 자신의 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멀리서는 안 보이는 해자 같은 웅덩이를 파서 울타리를 대신했다. 이를 ‘히호‘라고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역은 구획하지만 시각적으로 자연 속에 인공의 경계가 안보이게 했다. 히호 덕에 자신의 영토가 무한하게 더 넓게 느껴지기도 하고 동시에 자연의 모습을 보존할 수도 있었다. - P366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에서 나타나는 기법을 지금 현대의 건축과 도시에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현대 도시의 밀도와 전통 건축의 밀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 P366

정자 건축은 전반적으로 도가의 무위자연에 영향을 받아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자세를 견지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필요에 의해서 자연을 정복하자는 서양식 사고방식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사회이다. 그런 사회는 "우리는 불도저를 가지고 있으니 땅의 모양을 바꿀 수 있다"는 사회이고 건축은 그것에 맞추어서 발전해 왔다. 어찌 보면 둘은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대하고 있다. - P371

한국적인 것과 조선적인 것은 다르다 - P372

과거를 지나치게 폄하해도 안 되지만 미화해서도 안 된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은 현재와 미래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과거의 성공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 P372

우리가 좋아하는 전통 건축이라는 것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 비결은 그 시대의 수요와 기술에 가장 맞는 건축을 하는 것이다. 한옥을 예로 들어 보자. 한옥이 훌륭한 것은 그 시대의 재료, 기술적 한계에서 만들어 낸 최선의 답이기 때문이다. - P372

부재: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 여러 가지 재료. - P387

공포 :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나무쪽 - P387

대단한 철학적인 사고 없이도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이유에서 한옥 디자인의 발생을 설명할 수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한계와 적용 가능한 기술을 최대한 적용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 전통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P374

어떠한 것이 되든 재료, 기술, 한계를 적절하게 적용한 것이이 시대를 대표하는 전통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데는 무엇보다도 절대적인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는 다름 아닌 ‘시간‘이다. - P375

건축가의 재능과 노력 위에 시간과 적절한 경제적 투자가 합쳐진다면 후대에 자랑스럽게 남겨 줄 한국적인 것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한 가지 형태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시대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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