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개미와 여왕개미의 분업은 유전적 우연과 자연선택이라는 필연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동물이 출산과 양육을 위해 헌신하도록 진화한 것은 자식을 잘 돌보도록 하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의 번식 성공률이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 P154
자연선택은 어떤 종 어떤 개체한테도 특권을 주지 않으며 진화는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 P154
자식을 돌보는 것과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훌륭해서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진화한 것이 아니다. - P154
해밀턴은 그 모든 형태의 친족이타주의에 유전 연관도라는 생물학적 기초가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는 그 이론에서 물질의 증거를 토대로 대상의 보이지 않는 실체에 다가서는 과학의 매력을 보았다. - P154
거듭 말하지만 우리의 뇌는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조합한 기계인데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한다. - P156
자연선택은 보편적인 친족이타주의를 진화시켰는데 우리의 뇌는 적응의 이익과 무관하게 그것을 확장했다. 자신의 존재를 고귀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믿음 때문에 친족 아닌 타인에 대해서도 이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 P156
아름다움과 고귀함은 물질의 특성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물질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런 믿음을 표현하려고 때로는 목숨까지 건다. 이타주의도 그런 것 중 하나일 수 있다. - P156
신神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이 있다고 믿으면서 간절하게 기도한다. 자신이 신을 대리한다고 주장하는 성직자한테 돈을 바친다. 크고 높고 화려한 집을 지어 신을 경배한다. 신을 배신하지 않으려고 죽음을 받아들인다. 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이 붐비는 시장 한복판에서 폭탄을 터뜨리기도 한다. 때로는 똑같은 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서로를 죽인다. - P156
어디 종교만 그런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든가 천부인권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은 물질이 아니며 물질에 깃들어 있다는 증거도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런 게 있다고 확신하면서 대규모 공동 행동을 조직한다. - P156
이타 행동이 고귀하다는 관념도 우리 뇌의 인지 제어시스템이 만들었다. 그런데 그 관념이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사람을 이타 행동으로 이끈다. 자연선택은 유전자의 생존에 유리한 친족이타주의를 진화시켰지만, 우리의 뇌는 유전 연관도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까지 이타주의 적용 범위를 확장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굶주린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해변에 좌초한 돌고래를 구조하면서 기쁨에 들뜬다. 진화의 부작용인데,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 P157
유전자는 유전자, 나는 나다. 유전자는 생각하지 않지만 유전자가 만들어낸 나는 생각한다. 둘은 차원이 다르다. 유전자는 복제할 뿐이고, 나는 인생을 나름의 의미로 채우며 살아간다. 나보다 오래 산다고 해서 유전자가 부럽지는 않다. "자랑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 P158
유전자는 생존기계가 배타 행동을 하든 이타 행동을 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개인은 배타 행동도 하고 이타 행동도 하면서 그것이 초래한 결과를 각자 감당한다. 그러나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단은 극히 예외적으로만 이타 행동을 한다. 집단은 클수록 더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 P158
인간과 개미는 완전히 다르지만 인간 집단과 개미 집단은 닮은 데가 많다. "집단에는 양심이 없다. 개인들이 인종적·경제적·국가적 집단으로 뭉치면 힘이 허용하는 일은 무엇이든 한다. 집단은 크면 클수록 더 이기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 P158
집단은 행위의 결과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나치의 범죄를 끝없이 사죄하는 독일은 드문 예외다. 보통은 일본처럼 제국주의 침략과 인권유린 행위를 부인한다. - P159
유전자는 특정 종의 생존에 관심이 없다. 모든 종의 모든 개체에 서식하고 있으니 어떤 종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 P159
기후위기와 환경오염에서 지구를 구하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지만 전적으로 공감하는 건아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 P159
탄소는 단백질 분자의 기본이고 지방 · 탄수화물 · 효소 · 비타민에 있으며 무생물도 만든다. - P164
메탄 분자의 수소 3개를 염소(Cl)로 바꾸면 마취용 클로로포름이 되고, 넷 모두를 염소로 바꾸면 드라이클리닝에 쓰는 액체 사염화탄소가 된다. 탄소 원자가 여러 개인 탄화수소를 사슬 모양으로 배열해 다른 원자나 분자를 붙이면 맹독성 물질을 만들 수 있다. 화학자들은 그런 방식으로 DDT · 클로르데인 · 알드린·엔드린 같은 살충제를 합성했다. - P164
탄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4개가 결합한 메탄(CH4) - P164
사육 가축의 방귀와 배설물에서 나온 메탄은 온실효과를 일으켜 지구의 온도를 높이며, 탄광 갱도에 쌓인 메탄은 폭발을 일으킨다. - P164
살충제는 특정 해충만이 아니라 모든 곤충을 죽인다. 없애려고 했던 해충은 살충제 내성을 얻어 다시 창궐한다. 인간이 곤충을 상대로 전개한 군비확장 경쟁은 새를 죽였다. 새가 살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살기 어렵다. - P165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펜이 돈보다 힘이 셀 때가 있다. - P166
아는 사람은 안다. 화학이 ‘돈 되는 과학‘이란 걸, 화학의 이미지가 나빠도 사람들은 ‘화학제품‘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 P166
화학은 어떤 학문인가? 물질의 조성과 구조·성질·관계·변화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 P166
화학은 천연의 반대말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 존재하든 사람이 만들었든, 물질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화학의 연구 대상이다. 화학을 모르면 물질과 생명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정의다. - P167
일상 언어로 말하자면 화학은 욕망 · 생명력 · 번식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품을 만드는 과학이다. 뇌의 기본 업무와 관련이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화학산업은 시장이 크다. - P167
립스틱 · 주름방지화장품 · 자외선차단제 · 미백크림 · 오메가3 · 비타민C · 비아그라 · 살균제 · 소독약 · 항생제 · 백신 · 항우울제 · 일회용기저귀 · 껌· 아스팔트 · 시멘트 · 젖병이 다 화학제품이다. 막걸리 · 맥주 · 포도주를 포함해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드는 알코올 함유 음료도 모두 화학의 세계에 속한다. 여기에 농축산물 생산과 유통에 쓰는 비료 · 농약 · 포장재와 건축용 시멘트 · 페인트 · 내장재를 더해 보라. 현대인의 삶은 화학에서 시작해 화학으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P167
화학은 생명을 해치는 사악한 마법이 아니다. 좋지 않은 물질을 만들어 잘못 사용한 책임은 화학이 아니라 사람한테 있다. - P168
소금이 물에 녹는다는 건 먼 옛날에도 알던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한 건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원자의 구조와 전자의 운동을 모르면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을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 P168
화학의 정의를 다시 보자. ‘물질의 조성과 구조 · 성질 · 관계 · 변화를 연구하는 과학‘ 이다.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의 정체를 모르고는 물질의 구조와 성질을 파악할 수 없다. 양자역학이 나온 뒤에야 화학은 비로소 온전한 과학이 되었다. - P169
화학은 ‘환원‘還元(reduction)의 필요성과 위력을 잘 보여준다. 환원은 크고 복잡한 것을 작고 단순한 것으로 쪼개는 것이다. 모든 대상을 이런 방법으로 연구하려는 경향을 ‘환원주의‘라고 한다. 원자와 같이 작고 단순한 것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으로 크고 복잡한 대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다. - P169
물리학을 모르면 화학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해하지 못하면 재미를 느낄 수 없다. - P169
우주의 모든 물질은 ‘원소‘元素(element)로 이루어져 있다. 결합해서 어떤 물질의 분자를 이루는 원소는 보통 두 종류이상이지만 산소·금·다이아몬드처럼 원소가 하나인 물질도 많다. 더 작게 나누면 고유의 성질을 잃는다는 의미에서 물질의 기본 성분‘인 원소는 원자原子(atom)와 같고 또 다르다. 물리학 책에는 주로 원자가 나오고 화학 책에는 원소와 원자가 뒤섞여 나온다. - P170
원자는 원소의 한 단위다. 생물학 언어로 하면 원소는 호모사피엔스, 원자는 한 사람이다. 물질의 성질과 변화를 연구하는 화학자에게는 원소가 중요하고, 미시세계의 역학을 탐구하는 물리학자에게는 원자가 중요하다. - P170
산소(O2)를 보자. 없으면 우리가 몇 분 버티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물질인 산소의 원소는 산소 한 가지다. 산소 ‘분자‘分子(molecule)는 산소 원자(O) 2개가 결합한 물질이다. - P170
화학에서는 물질의 분자를 원소의 기호와 원자의 수를 적은화학식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화학식 H2O는 물의 원소는 수소와 산소 두 가지이고, 물 분자는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2개로 이루어진다는 정보를 담고 있다. - P170
모든 원소는 영어 알파벳에서 가져온 ‘원소기호‘와 원자핵의 양성자 수를 나타내는 ‘원자번호‘가 있다. - P170
원자번호 1번은 양성자가 하나인 수소(H), 2번은 양성자가 두 개인 헬륨(He), 원자번호 92번은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 중에서 가장 무거운 우라늄(U), 원자번호 93번부터 118번까지는 인위적 핵반응에서 나온 원소다. - P170
모든 원소를 원자번호와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한 것이 ‘주기율표‘週期律表(periodic table of the elements)다. - P170
물질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들이 결합해 물질의 분자를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원자들은 왜 결합할까? 결합한 원자들은 왜 흩어지지 않으며, 흩어질 때는 왜 흩어질까? 어떤 힘이 원자들을 뭉치게 할까? 궁금해한 적은 없었지만, 알고 나니 신기했다. 화학이 이렇게 신기한 과학인지 몰랐다. - P171
둘 이상의 원자가 서로 전자를 공유해 화합물을 만드는 것을 ‘공유결합‘이라 하고, 전자를 방출하거나 영입해 양이온이나 음이온이 된 원자들이 서로 끌어당겨 화합물을 만드는 것을 ‘이온결합‘이라고 한다. - P171
금속 원소의 원자들이 고체 결정을 형성하는 ‘금속결합‘ - P171
공유결합이 만든 ‘분자화합물‘은 부드러워서 액체나 기체가 많은 반면, 이온결합이 만든 ‘이온화합물‘은 고체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분자화합물인 물은 액체, 이온화합물인 소금은 고체다. 그렇지만 원자를 결합하게 만드는 것은 두 경우 모두 전자電子(electron)다. - P171
물은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2개가 전자 두 쌍을 공유한 분자화합물이다. 산소 원자를 꼭짓점 삼아 수소 원자 2개가 V자로 가지처럼 붙어 있다. - P171
잠시 인문학 언어를 쓰자. 산소 원자는 수소 원자보다 욕심이 많고 힘도 세다. 그래서 수소와 공유하는 전자를 자기 쪽으로 살짝 당겨 놓는다. 그 불균형 때문에 물은 중성이지만 산소 원자는 음전하를 띠고 수소 원자 2개는 양전하를 띤다. - P172
소금은 나트륨(Na)과 염소(Cl)의 이온화합물이다. 나트륨 원자는 전자를 11개 보유한다. 전자는 원자핵에서 가장가까운 전자껍질에 2개, 그다음 전자껍질에 8개, 최외곽 전자껍질에 하나가 있다. (중략) 나트륨 원자가 최외곽 전자껍질에 혼자 있는 전자를 방출하면 전자가 양성자보다 하나 적어져 양전하를 띤 나트륨 이온이 된다. - P172
염소 원자는 전자가 17개다. 전자는 첫 번째 전자껍질에 2개, 그다음 전자껍질에 8개, 최외곽 전자껍질에 7개가 있다. 염소 원자가 혼자 돌아다니는 전자하나를 영입해 최외곽 전자껍질을 전자 8개로 채우면 전자가 양성자보다 하나 많아져 음전하를 띤 염소 이온이 된다. - P172
두 이온(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서로를 끌어당겨 뭉친 것이 염화나트륨(NaCl)이다. 염화나트륨 분자의 염소 이온과 나트륨 이온은 다른 염화나트륨 분자의 이온들과 들러붙어 정육면체 결정을 만든다. 그것을 소금이라고 한다. - P172
엄격한 물리학자라면 이쯤에서 물질이 분자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지적할 것이다. 물은 원자 3개가 분자 하나를 이루니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소금은 다르다. 소금 결정은 염소 이온과 나트륨이온의 육면체 배열 패턴이 모든 방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분자에 해당하는 최소단위를 엄격하게 정의할 수 없다. - P172
나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서술이 아님을 알면서도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장을 쓴다. 이온화합물인 소금도 ‘소금 분자‘라고 한다. 분자화합물과 이온화합물을 매번 구분해서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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