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인 ‘연재‘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한다. 연재는 로봇에 관심이 많아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금방 친해졌는데, 이후에 그 친구들의 집에 놀러다니면서 자신의 가정 형편과 다른 친구들의 가정 형편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이 연재의 집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다소 실망스런 기색을 띠는 것을 연재는 느끼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연재는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오픈하는 게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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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휴머노이드인 ‘콜리‘의 관점에서 글이 쓰였다. 인간이 아닌 로봇의 관점으로 써졌다는 게 나름 독특하게 느껴졌고 로봇은(물론 소설가의 상상이겠지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세상과 주변 환경들을 바라보는지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연재가 경마장에 있던 휴머노이드인 콜리를 집으로 데려온 후 콜리는 연재가 학교에 가있는 동안 연재의 엄마인 보경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이 둘 사이의 대화가 왠지 모르게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것 같아 나름의 감동이 있었다. 비록 소설 속 설정이긴 하지만 로봇인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대화가 딱딱한 듯하면서도 딱딱하지 않다고나 할까. 아무튼 뭔가 짠하면서도 여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에 연재가 휴머노이드인 콜리를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엄마인 보경은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 둘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보경이 가졌던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이것을 보면서 서로 간에 대화가 관계를 원만하고 좋게 만들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봐도 대화의 중요성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 있었는데 객관적인 증거와 정황상 근거 등을 바탕으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나누고 오해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만약 대화가 없었다면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을 것이고 혹시라도 무슨 안좋은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대화라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자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대화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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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친자매인 은혜와 연재간의 관계에 대해 나온다. 본문에는 은혜가 본의 아니게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고 연재는 신체적인 장애같은 게 없는 그냥 일반적인 아이로 설정되어있다. 이 둘의 엄마인 보경은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소방관과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될 무렵에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게 된다. 그러다보니 엄마인 보경 혼자서 아이 둘을, 그것도 한 명은 신체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워야 하다보니 물리적으로 힘이 들 수 밖에 없었고, 동생인 연재는 이런 집안 형편을 어릴 때부터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은혜를 돌보는 일을 같이 거들게 된다.

여기서 연재는 물론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지만 본능적으로 엄마인 보경의 입장에서는 비장애인인 연재보다는 장애가 있는 은혜에게 좀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기에 연재는 상대적으로 엄마의 관심을 덜 받는 듯한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대신 연재는 엄마의 관심을 얻고자 오히려 은혜를 싫다거나 귀찮다는 기색없이 묵묵히 도와주는데, 본문에서 이것이 엄마의 관심을 받기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은혜와 연재의 관계를 보면서 형제자매간 관계의 속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또한 우리 가족 간에는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본문에도 살짝 언급되지만 형제자매들이란 부모의 사랑을 나눠먹고 사는 존재라는 얘기가 개인적으로 와닿았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을 잘 나눠먹기 위해서는 일단은 가족 내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각각의 가족마다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에 애정이나 관심을 받는 것에 있어서 유일한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위에서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듯이, 부모와 자녀들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서로간의 사랑을 잘 나누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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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에서 은혜가 콜리와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현재를 살면서 가끔 과거에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후회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투데이라는 말(경주마)도 부상을 입기 전에는 그저 달리는 것 자체에서 행복을 느꼈던 말인데, 너무 과하게 달리다보니 그만 회복하기 힘든 부상을 당하게 된다. 이로 인해 경주마로써의 효용가치를 상실하게 되어 더이상 예전처럼 달리면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채 낙심과 상실감을 갖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되는 신세로 전락한다. 하지만 투데이와 함께 했던 휴머노이드 기수(騎手)인 콜리와 투데이가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하던 은혜는 투데이를 살리고 싶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콜리가 한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프기 전으로.˝

솔직히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물리적인 시간의 비가역성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독자인 나는 콜리가 휴머노이드라 현실적인 고려를 하지 못한채 그냥 단지 자신의 바램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다음에 나오는 문장에서 뭔가 깨달음이 생겼다.

˝투데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예요.˝

아, 비록 물리적인 시간인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투데이가 과거에 행복하게 달렸었기에, 투데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과거로 돌아가는 거라는 깨달음이었다.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바로 뒤이어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투데이 뿐만 아니라 독자인 나 또한 과거를 후회하고 아쉬워하기만 하지말고 지금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런 후회와 미련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습관처럼 그냥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에요.˝ 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현실을 살다보면 행복하게 살기보다는 과중한 업무나 쉽지 않은 인간 관계 등으로 인해 고통속에 허우적거리고 살 때가 참 많다. 이런 현실 속에서 가끔씩 과거를 떠올리며 옛날에 내가 좀 더 열심히 했으면 혹은 그 때 이걸 했어야 되는데 하는 식의 후회들을 종종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만만치 않은 현실 속에서 그런 후회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위에서 콜리가 말한 것처럼 지금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 뿐이다. 시간의 비가역성으로 인해 물리적인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후회되는 과거가 미처 생각날 겨를도 없이 지금 이 순간을 미친듯이 행복하게 사는 것 뿐이다.

예전에 개인적으로 읽었던 어떤 책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하나이기에 그냥 우리는 현재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서 거기에 맞게 살아가는 게 행복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진리는 어디 멀리 있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라 가장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것들은 숨길 수 있는 한 숨기는 것이 좋다고.

방에 있으면 시간이 예전보다 빠르게 흐르는 듯했다.

콜리는 이 집에 사는 인간들을 한 명, 한 명 살폈다. 전부 다르고 독특한, 이를테면 파랑노랑 하늘이거나 분홍보라, 초록빨강의 하늘같은 인간들이었다. 천 개 이상의 댠어를 알고 있었다면 이 인간들을 표현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을 텐데.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중략)...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중략)...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보경은 콜리에게 사사로운 것까지 내뱉은 자신의 말을 후회했는데, 그때 거부감이 한 꺼풀 벗겨졌다는 것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콜리는 보았다. 자신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냈다며 말을 무르는 보경의 표정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소량의 편안함을 발견했다. 콜리는 이를 통해 한 가지 방법을 습득했다. 대화다. 대화를 많이 할수록 보경에게 깔려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표피같이 얇게 한 꺼풀씩 벗겨졌다.

콜리는 에너지를 얻는 수단이 외부에 있지만 모든 생명은 에너지 동력원이 몸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면 생명은 쉬어야 한다. 에너지를 회복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잠을 자는 것이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콜리는 연재가 하는 말들, 제 몸이 될 부분들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유독 빛나는 연재의 눈을 보았다. 사람은 아주 가끔, 스스로 빛을 낸다.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죽었다. 복희가 말했던 이 행성에서의 동물들의 위치였다.

살아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난관은 은혜가 뛰어넘거나 비껴갈 수 없을 만큼 커다랗고 무거웠다. 아예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많은 길들이 막혔다.

은혜는 현재까지 무수히 많은 난관에 부딪혀 돌고 돌아 이곳까지 오지 않았는가. 이 길의 끝을 알 수도 없고, 알게 된다고 한들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길로.

정말로 한계가 없다면 한계라는 것조차 모르지 않았을까.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은혜는 사람이 피곤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아. 꼭 같을 필요는 없잖아. 그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너도 나도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는 게 꼴 보기가 싫다."

"나는 왜 굳이 그렇게 멋있게 살아서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이제 와서? 지금까지는 뭘 하고 있었는데?‘

민주는 말들의 관리인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마방에 갇힌 또 다른 말이었다.

사회는 개개인이 촘촘히 연결된 시스템이었고 그 선은 서로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끊어야 할 때 연결된 선을 과감하게 끊어야 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민주의 속마음과 달리 입은 자꾸 진실만을 말했다.

"이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사람만 이렇게 잔인한 거 같아요."

보경이 은혜에게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이 사소한 불편이 너를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할 때마다 은혜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너의 정상성은 괜찮은 것이고, 그것이 너를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은혜도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보경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가끔은 자신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확인시키는 차갑고 날카로운 창살 같다는 것을.

휠체어 덕분에 걷지 못하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인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였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형제는 태어나면서부터 한정적인 사랑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관계였다. 시간적 여유가 아무리 충분하다고 해도 사랑을 둘로 나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쟁구도를 만들었다. 형제는 관심을 차지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성장했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관계였을 때를 말했다.

은혜는 연재의 무조건적인 순응이 결국 관심받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음을 알았다.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도 보경은 제멋대로 받아들일 것이 뻔했다. 그리고 괴로워하겠지. 그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침묵이 건너고 건너 연재의 족쇄가 될 줄은,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상처 주고 싶어서 하는 의도적인 행동.

은혜의 마음 속에서 불신과 희망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프기 전으로.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큼 완벽한 해결방법은 없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에는 어떤 고통이나 슬픔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누구도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겠지.

"투데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거예요."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은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힘없고 겁 많은 어른으로 자라난 것이 창피했다. 네가 그토록 아끼던 그 말이 연골이 닳았다는 이유로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보고만 있으므로.

"저는 기억이 아니라 저장을 해요. 저장은 삭제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죠."

호흡을 맞춘 상대가 편할테지.

"...퇴근했으니 카페인보다는 알코올이 낫지 않을까요."

한 생명을 오롯이 책임지는 자들의 자세.

지금으로서는 대책이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그렇다면 복희도 투데이를 위해 조금 더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우리 과 농담 중에 앞으로 수의사가 되려면 기계과를 가야 된다는 말이 있거든요."

"테드 창의 소설 중에 소프트웨어가 반려동물을 대신하는 소설이 있거든요. ...(중략)... 아무튼 소설 속에서 인공지능 객체가 생물의 진화를 모델링한 유전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어요. 발달할 수 있는 거죠. 발전이기도 하고요. 아프지 않고, 죽지 않는 애들이요. 가끔 고장은 나겠지만."

공업용 휴머노이드가 보급되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사이버 범죄를 전부 잡아냈다 ...(중략)... 조직 하나만으로 그 장기를 똑같이 만들어냈다

"언젠가는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시기가 올까 봐 두려워요."
...(중략)...
"물론 빠른 시일 내에는 아니겠지만 아주 먼 미래에요. 짐승이 이 행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요.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물의 유전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혀 착취당하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유전자가 생존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잖아요."

기술의 발달과 멸망의 속도가 같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매일 뉴스에 나오는 새로운 기술과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만, 사라져가고 학대받는 동물들에게 관심을 나눠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우리가 불행한 미래를 상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피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상상보다 늘 나을 거예요. 예를 들면 동물이 사라지고 인공지능을 키우는 시대가 도래하는 대신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인간이 부재하는 시간 동안 동물을 돌봐주겠죠. 동물의 영양 상태를 매일 체크해서 필요한 영양소도 알려주고요."

"그래도 저는 조금 무서워요. 아프지 않게 동물을 죽일 수 있는 수의사가 될까 봐요."

"방금 전 불행한 상상이 불행한 미래를 피할 수 있게 한다면서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동물을 살리는 선생님이 되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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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간만에 다시 읽는다. 지난번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이 인도양의 코코스 제도에서 산호초를 폭넓게 조사했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오늘은 이 산호초 중에서 고리 모양을 한 ‘환초‘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보면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찰스 다윈을 그저 진화론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지질학자로써도 유명한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외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대산호초 군락이자 관광지로도 알러진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라는 곳도 알게 되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 경관이 꽤나 아름다워보였다. 기회가 된다면 직접 방문하여 그 경관을 직접 두 눈으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산호 진화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산호라는 종에 대해 배울 것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다른 생물들과 공생하는 파트너십과 더불어 종의 절멸위기에서도 꿋꿋이 회복하여 다시 번성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그저 일개 생물이 지닌 특징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기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순히 어떤 이야기뿐만 아니라 특정 생명체의 속성으로부터 이렇게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조금은 새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다.

산호 진화의 역사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산호가 이 지구 생태계에서 어떤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지만 독자인 내가 느끼기에 산호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내가 전공자가 아니라 자세한 원리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으면 기온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생명체들이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하는데, 이런 것을 예방하고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데 산호의 역할이 아주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요즘 신문 기사나 언론 매체에 종종 나오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내용에서 탄소 중립을 실천해야 한다는 얘기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데, 결국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산호를 비롯해 자연에 서식하는 생태계가 더이상 파괴되지 않고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 저자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우리 인간이 생태계의 중요성을 지금이라도 절감하고 환경파괴와 관련된 행동을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과학자다보니 이미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지구의 생명체가 전부 멸종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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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자연사自然史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나온다. 저자는 이것을 역사를 배우는 이유와 같다는 말로 설명한다. 역사를 보면 어떤 나라든 간에 결국에는 멸망했기 마련인데, 이를 통해 그 나라들이 왜 망했는지, 어떻게 망했는지를 알고 현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같은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자연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멸종했던 생물들이 왜 멸종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현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지속적인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는 오늘 읽은 부분 중에서 저자가 자연사를 배워야하는 이유를 말해준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물론 역사나 자연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가 이것 말고도 또다른 것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자가 말한 이유만큼 피부에 와닿는게 과연 있을까 싶을만큼 훌륭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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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전까지 있었던 다섯번의 대멸종의 역사를 돌아봄과 동시에 대멸종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는 급작스런 기온 변화, 급작스런 대기 산성화, 급작스런 산소 농도 하락이 다섯번의 대멸종의 공통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덧붙여 이러한 원인들은 생명체가 도무지 책임질 수 없는 (대륙이 합쳐지거나, 화산이 터지거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것 같은)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사건들로 인해 발생했다고 말한다.

오늘 읽은 본문에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이보다 앞서 읽었던 본문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다섯번의 대멸종과는 달리 앞으로 있을 여섯번째 대멸종은 그 원인이 지구적이거나 우주적인 외부요인이라기보다는 우리 인류의 행동으로 인해 촉발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저자는 본문을 통해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인간들아 정신좀 차려라. 이러다 다 죽는다고.‘

다음 포스팅에서 추가로 이어지는 내용들을 더 다뤄보도록 하겠다.

섬 주위를 둘러싼 산호를 거초라고 한다. 섬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산호초와 섬 사이에 석호潟湖, lagoon가 생기면 보초가 되고 섬이 완전히 가라앉으면 환초만 남는다. - P81

산호가 죽으면 산호의 석회질 골격이 쌓여 굳으면서 석회암이 된다. 분필의 주성분이다. 석회성 골격이 얕은 바닷속에 쌓여 만들어진 암초를 산호초라고 한다. - P81

산호초는 모양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거초fringing reef다. ‘옷자락 거裾‘
와 ‘물에 잠긴 바위 초礁‘로 이루어진 단어다. 그러니까 옷자락 모양으로 섬을 둘러싼 물속 바위라는 뜻이다. 둘째는 섬과 산호초가 바다로 분리된 보초다. 여기서 ‘보堡‘는 둑 또는 제방이라는 뜻이다.셋째는 섬은 없고 고리 모양의 산호초만 남은 환초環礁, atoll reef다. - P83

거초는 열대 바다 섬 주변에 있다. - P83

화산섬에 산호가 성장한 후 섬이 침강하면서 산호초의 모양이 바뀌는 것이다. ‘거초→보초→환초‘ 순서로. - P83

공룡 골격 화석은 뼈 모양을 한 돌일 뿐 뼈가 아니다. 보초를 비롯한 산호초 역시 생명의 흔적일 뿐 생명은 아니다. 한때 생명인 적이 있긴 하다. 바로 산호다. - P84

산호는 캄브리아기에 처음 등장했다. - P84

산호초가 처음 발달하기 시작한 때는 4억 8500만 년 전이다. 오르도비스기라고 한다. - P84

현대 산호의 조상은 현대 생물의 상당 부분을 멸종시킨 페름기-트라이아스기 대멸종, 즉 세 번째 대멸종 사건 이후 2억 4000만 년 전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출현하기 시작했다. 육지의 공룡보다 조금 일찍 발생한 이 새로운 산호는 돌산호라고도 하는 스클레락티니아scleractinia과 산호에 속한다. 지금도 스쿠버다이빙을 할 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산호다. - P84

중생대는 크게 트라이아스기-쥐라기-백악기로 나눈다. 쥐라기와 백악기에 산호가 다양해졌고 이때 요즘 볼 수 있는 산호와 비슷한 산호들이 많이 등장했다. - P84

산호는 다양한 해양 환경에 적응하면서 여러 해양 생물과 공생하는 파트너십을 형성했다. 많은 해양 동물이 우리 산호초 안에 들어와 살고 우리는 해조류의 광합성 산물을 활용해 번성할 수 있었다. 특히 영양분이 부족한 열대 바다에서 파트너십은 번성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 P85

산호는 대멸종을 비롯하여 수많은 도전에 직면했다. 우리에게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백악기-제3기 멸종으로 알려진 약 6600만 년 전의 다섯 번째 대멸종이었다. 이때 많은 산호초가 황폐화되었다. 하지만 우리 산호는 그 후 다시 회복하고 다양성을 획득하는 회복탄력성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홀로세Holocene 시대에도 우리는 계속 확장했다. 마침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와 같은 현대 산호초 생태계로 발달했다. - P85

다윈은 우리 산호초의 역동적인 특성과 환경 조건에 대한 의존성을 파악했다. 그 결과 상호 성장과 산호초 발달의 생태학적 복잡성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 P86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지구에서 가장 생물성이 풍부한 지역 가운데 하나다. 산호초에는 400여 종의 산호와 1500여 종의 어류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면, 말미잘, 바다지렁이, 갑각류 같은 수천 종의 무척추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다거북이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듀공 같은 해양 포유동물의 번식지 역할도 한다. - P86

산호초는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이동하고 먹이를 찾고 번식하는데 필수적인 생태 중심지가 된다. 혹등고래, 바다거북과 수많은 어류를 포함한 이동성 동물들이 생애 주기 동안에 산호초를 방문한다. 산호초는 이들이 대양의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쉬고 먹이를 구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 P86

맹그로브 숲과 해초밭 같은 해안 서식지는 어류의 산란장이자 새들의 먹이터, 다양한 해양생물의 은신처다. 그런데 때로 파도와 해일이 이 서식지를 파괴하기도 한다. 산호초는 해안 생태계를 파도와 해일로부터 보호하는 거대한 장벽 역할을 한다. - P87

산호초는 생물학적인 역할 외에도 기후 환경에 크게 기여한다. 건강한 산호초는 탄소를 순환시키고 격리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지구 기후변화를 완화한다. 예를 들어 산호는 바다에 녹아 있는 칼슘과 이산화탄소를 결합해 탄산칼슘을 만드는데, 탄산칼슘은 조개껍데기와 산호초의 재료다. 즉 우리 산호초는 생물 다양성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탄소 순환과 해안 보호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일을 5억 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 P87

고체인 설탕이나 소금은 따뜻한 물에 잘 녹는다. 그런데 산소와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는 찬물에 더 잘 녹는다. 콜라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냉장고에 보관한 콜라에는 이산화탄소가 잘 녹아 있다. 그 콜라가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높은 체온 때문에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지 못하고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이때 사람들은 톡 쏘는 느낌을 받는다. 그 맛에 콜라를 마신다. - P87

5억 년 전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무려 10기압 이상 존재했다. 바닷속 100미터 깊이의 수압이다. 누군가 육상으로 진출했다면 마치 빈 깡통을 손으로 꽉 쥐었을 때처럼 짜부라졌을 것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으니 기온도 덩달아 높았다. 지금보다 15도 이상 높았다. 아무도 육상으로 진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 P88

생명체가 육상에 진출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리(산호) 덕분이다. 우리(산호)는 바다에 녹아드는 이산화탄소를 마그마와 함께 올라오는 칼슘과 마그네슘과 결합해 탄산칼슘과 탄산마그네슘으로 만들었다. 탄산칼슘은 조개껍데기의 재료가 되었고 탄산마그네슘은 흙의 재료가 되었다. 우리 (산호) 덕분에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점점 줄어들었다. - P88

1억6000만 년 전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불과 0.0002 기압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대기압이 1기압으로 줄어들었으니 대기 중 0.02퍼센트(200피피엠)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농도는 1억 6000만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간혹 0.03퍼센트(300피피엠)으로 오르기도 했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그렇다. 우리 산호의 가장 큰 사명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 P88

바다는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4분의 1을 흡수한다. 이걸 그냥 두면 해양이 산성화되어서 해양 생물들이 견딜 수 없다. 우리(산호)는 이것을 탄산칼슘으로 제거해 해양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해 왔다. 무려 5억 년 동안이나. 딱히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구 기후에 정말 큰일을 했던 것이다. - P88

놀랍게도 천연기념물 1호는 대구 도동의 측백나무 숲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른다. 교과서에 실린 적도 없고 시험에 나온 일도 없기 때문이다. - P89

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번식하고 10월 하순쯤 한국에 오는 철새인 두루미는 예상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호랑이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한다. 한국의 자연에는 단 한 마리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은 존재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하는데 아예 없는 것을 어떻게 지정하겠는가! - P89

한국에 국보,보물 등 국가 유산이 있는 것처럼 세계에도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 문화 유산과 세계 자연 유산이 있다. - P89

오스트레일리아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1981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일단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했다. 길이 2000킬로미터, 넓이 20만 7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3000여 개의 거대한 산호초에는 400종 이상의 산호 종이 산다. 지구 전체 산호의 3분의 1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뿐 아니라 1500여 종의 물고기, 215종의 조류, 3000종 이상의 연체동물, 전 세계에 존재하는 7종의 바다거북 가운데 6종, 30종의 고래와 돌고래, 그리고 듀공이 산호초를 제집 삼아 어우러져 잘 살고 있는 곳이다. - P90

장엄하고 아름다운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 문제가 생겼다. 내가(산호가) 색을 잃고 하얗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산호는 표면을 감싸고 있는 공생 조류藻類의 광합성 작용으로 형형색색 빛깔을 띠는데, 높은 수온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조류가 산호를 떠나고 죽으면서 산호가 하얗게 변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백화 현상‘이라고 한다. - P90

우리(산호)와 함께 사는 조류는 동물산호조류라고 하는데 이들은 광합성을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90퍼센트를 공급한다. 높은 수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류들이 알아서 우리를 떠난다. 조류가 없으면 우리는 색을 잃는다. 색을 잃는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인간들은 섭섭해할 뿐이지만 조류가 없으면 우리(산호)는 에너지를 잃고 크게 약해져서 병에도 쉽게 노출된다. - P90

지구가 더워지면서 해수면 온도도 올라갔고 그 여파로 산호가 색을 잃고 있다. 산호가 사라지면 다른 동물들도 더 이상 대산호초에서 살 수 없게 된다. 다행히 백화 현상은 영원한 게 아니다. 다시 회복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수온이 정상화되면 산호도 회복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회복이 더뎌졌고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고 있다. 2016년 이후 백화 현상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 P92

백화 현상이 일어나도 산호는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지만 성장이 더디고 질병에 약해져서 결국은 죽게 된다. 방법은 하나. 산호들이 대량으로 죽기 전에 수온이 내려가야 한다. 그래야 수생동물들이 돌아오고 산호도 살아날 수 있다. 이전의 백화 현상 때도 그랬다. - P93

우리(산호) 존재는 지구 대기와 바다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에 의존했다. 우리의 사명은 이산화탄소 제거였는데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아져 우리가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이산화탄소 제거의 종결자인데 이산화탄소 때문에 우리 존재가 종결되려고 한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 P93

세상에 하등한 생물도, 고등한 생물도 없다. 모든 생물은 생태계의 틈새 하나를 맡아 자기 삶을 산다. - P95

(파울 크뤼천은 지구의 오존 구멍을 연구해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라 전 세계는 더 이상 프레온 가스를 냉장고와 에어컨 냉매로 쓰지 않게 되었다) - P96

1만 1700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시대를 뜻하는 홀로세는 충적세沖積世 또는 현세라고도 부른다. 플라이스토세 Pleistocene 빙하가 물러나면서부터 시작된 시기로 신생대 제4기의 두 번째 시대다. 학문적 용어일 뿐이긴 하지만 크뤼천은 더 이상 홀로세라고 하지 말자고 했다. 지질과 생태에 끼치는 인류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 P97

"홀로세라는 단어를 그만 사용합시다. 우리는 더 이상 홀로세에 있지 않아요. 우리는... 그... 그… (올바른 단어를 찾고 있어요)... 이제 인류세에 살고 있는 겁니다." - P96

인류세라는 말은 1980년대에 이미 미국 생태학자 유진  스토머가 도입한 개념이다. 인류세는 영어로 ‘안스로포센Anthropocene‘이라고 한다. 사람을 뜻하는 ‘anthropo-‘와 시기를 뜻하는 ‘-cene‘을 연결한 것이다. - P97

지구 생물 역사에서 대멸종은 생명 다양성과 궤적을 근본적으로 재편성하는 중대 사건으로 작용했다. - P98

자연사는 지병이 없는 사람이 어느 날 잠자다가 이유없이 평온하게 숨을 거두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자연사가 아니라 돌연사다. 야생동물의 자연사는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혀 죽는 거다. 사자와 호랑이도 평소에는 자기랑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놈들에게 잡아먹혀 죽는다. - P101

자연사를 왜 배울까? 역사를 배우는 이유와 같다. 조상들의 대단한 과거를 알고 우쭐대려고 역사를 배우는 게 아니다.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나라는 망한 나라들이다. 위대한 로마 제국도 망했고 찬란했던 한나라도 망했다. 한반도에서 500~700년씩 지속한 신라, 고려, 조선도 모두 망했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들이 왜 망했는지, 어떻게 망했는지를 알기 위한 거다. - P103

자연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3억 년 동안 고생대 바닷속에 바글댔던 삼엽충은 왜 멸종했는지, 1억 6000만 년 동안 육상을 지배했던 공룡은 왜 멸종했는지를 배워서 현생 생물, 특히 인류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할지 따져보기 위해 자연사를 배우는거다. 결국 자연사自然史란 멸종의 역사다. 인류세라는 극한의 위기에 선인류에게 자연사는 마지막 지혜의 비단 주머니일 수 있다. - P103

대멸종이란 여러 서식지와 분류군에 걸친 생물 종의 급속하고 광범위한 멸종이다. 그 결과 지구 생물 다양성이 심각하게 손실된다. 인간의 시간관념으로 치면 때로는 영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비교적 짧은 지질학적 기간 안에 전 세계 동식물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다. - P103

일반적으로 대멸종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종의 75퍼센트 이상이 수백만 년에 걸친 기간 동안 멸종하는 경우지만, 46억년에 달하는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로 볼 때 짧은 기간이다. - P103

생물 다양성이 급격히 감소하면 생태계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생태계의 기능이 저하된다. 지구 환경이 회복되고 새로운 종이 진화해 빈 생태계의 틈새를 채우는 데 수백만 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 P103

첫 번째 대멸종: 약 4억 4380만 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말기

온실가스 감소로 대규모 빙하가 발생했다. 또 우주에서는 감마선 폭풍이 불었다. 해양 생물의 86퍼센트가 멸종했다. 이때 육상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그때는 육상에 아무도 안 살았으니 아무 일도 없었다. - P104

두 번째 대멸종: 약 3억 5890만 년 전 고생대 데본기 말기

갑자기 지구가 추워졌다. 소행성이 충돌하고 화산이 터져 화산재가 태양을 가리면서 지구는 얼어붙고 대기는 산성화되었다. 해양과 육상생물의 75퍼센트가 멸종했다. - P104

세 번째 대멸종: 약 2억 5190만 년 전 고생대 페름기 말기

가장 큰 규모의 멸종이다. 초대륙이 형성되면서 생명이 살기 좋은 해안선은 줄어들고 사막이 늘었다. 산소 농도는 급격히 떨어졌으며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산 폭발로 심각한 기후변화가 일어났다. 지구 생명의 95퍼센트가 멸종했다. 이 사건으로 고생대가 끝나고 중생대가 시작되었다. - P104

네 번째 대멸종 : 약 2억 14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기

화산활동으로 이산화탄소와 온갖 종류의 산성 기체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대기 중 산소는 급격히 낮아졌고 대기는 산성화되었으며 기온은 상승했다. 지구 생물 종의 80퍼센트가 멸종했고 이후 본격적인 공룡 시대가 시작되었다. - P105

다섯 번째 대멸종 : 약 66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기

항상 거대한 화산이 문제다. 인도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하면서 대멸종이 시작되었다. 다섯 번째 대멸종의 대미는 지름 10킬로미터짜리 거대한 운석의 충돌이 장식했다. 운석의 충돌은 열폭풍과 거대한 쓰나미를 불러왔다. 또 지진을 유발했고 지진은 화산 폭발로 이어졌다. 이때 전체 생물 종의 76퍼센트가 멸종했다. 육상에서는 고양이보다 커다란 동물은 모두 멸종했다. 그리고 조류를 제외한 공룡들은 모두 몰살되었다. - P105

자연사에서 배우기 위해서는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야 한다.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급작스런 기온 변동. 기온이 지질학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5~6도씩 오르거나 내렸다. 둘째, 대기 산성화. 화산 폭발의 영향이다. 대기가 산성화되면서 산성비가 내려서 해양과 토양이 산성화되어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되었다. 셋째, 산소 농도의 하락. 산소 농도가 갑자기 떨어졌다. 동물에 따라 살 수 있는 산소 농도는 다르다. 낮은 산소 농도에서도 살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 하지만 높은 산소 농도에 적응한 생명체들은 산소 농도가 떨어지면 버틸 수가 없다. - P106

변화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속도가 결정적이었다. 서서히 변화하면 생명도 적응할 틈이 있다. 하지만 변화 속도가 빠르면 생명은 적응하지 못하고 생태계에 빈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급작스런 변화의 원인은 모두 지구적 또는 우주적 사건이었다. 대륙이 합쳐진다든지, 화산이 터진다든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생명체가 책임질 일이 하나도 없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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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뇌과학자 엔델 털빙(Endel Tulving)이 제시한 일화 기억(episodic memory)과 의미 기억(semantic memory)의 개념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었다. 해당 개념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일화 기억‘은 어떤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고, ‘의미 기억‘은 어떤 대상과 개념을 다른 대상과 개념에 연결시킴으로써 의미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기억을 두 종류로 나누어 생각하는 이유는 유전자에도 기본 단위가 있듯이 문화에도 어떤 기본 단위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저자는 문화의 기본 단위를 기억이라는 것에서부터 찾아보려는 듯하다.

오늘은 이 두 종류의 기억이 뇌에서 어떻게 작용하여 의미를 만들어 내고,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 인간 사회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살펴보면서 시작한다.

초반부만 잠깐 읽어봤지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모든 과정들을 세세하게 쪼개보니 그 사고(思考) 과정이 아주 복잡한 단계들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뇌라는 게 참 신기하고도 놀라운 것이라는 걸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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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기본 단위를 찾아나가기 위해 제일 먼저 저자는 개념이라는 것을 위에서 언급했던 ‘의미 기억‘의 연결점(node) 또는 참조점으로 간주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개념들은 일반적으로 ‘단어‘를 통해 식별된다고 한다. 이후에 이런 단어들로 구성된 언어를 통해 복잡한 정보가 생성되며 전달된다고 한다. 또한 연결점이라는 것은 언제나 다른 연결점들과 맞닿아 있는 속성이 있기에 이런 연관 관계를 통해 ‘의미‘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좀 복잡하게 보일 수 있는데,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자면 일단 단어로 표상되는 ‘개념‘이라는 것이 하나 있고, 이런 개념들이 다양한 형태로 조직된 것이 ‘정보‘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개념과 정보들간의 관계 속에서 의미라는 게 창출된다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여기서 문장의 형태로 조직된 ‘정보‘라는 것은 다른 말로 어떤 ‘명제‘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복잡성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단순한 ‘개념‘보다는 한층 더 높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제보다 상위에 있는 것으로 도식(圖式, schema)이라는 단위가 등장하는데, 이는 쉽게 말해 명제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이야기 단위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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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머리가 좀 지끈지끈 아파오지만, 한편으로는 중구난방으로 머릿속에 흩어졌던 개념들의 위계질서를 잡아볼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또한 문화의 단위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 또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각각의 개념들의 위계질서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그리스-로마 신화의 다프네를 쫓아다니는 아폴론 이야기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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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서로 간에 팽팽한 대립이 있는 후천주의와 유전주의에 대한 논쟁이 나온다. 본문에는 원론적인 얘기와 함께 과학에 관련된 사례들이 일부 소개되어 있는데, 독자인 나는 이 논쟁을 요즘 사람들이 종종 말하곤 하는 ‘공부는 재능이냐 노력이냐‘ 같은 논쟁과 그 결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재능이라고 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유전주의, 즉 선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노력이라고 한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후천주의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본문을 읽으면서 물론 선천적으로 타고난 유전자나 재능 같은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이런 것들을 본문에서는 ‘유전도‘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었다.) 주변 환경의 중요성 또한 굉장히 크다는 걸 느꼈다. 선천적으로 주어진 유전자가 엇비슷하더라도 후천적으로 접하게 되는 환경들이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 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결과물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본문에 나온 내용과는 별개로 위에서 내가 잠시 언급한 논쟁인 ‘공부는 재능이냐 노력이냐‘ 라는 것은 결국 재능과 노력의 비중을 어느 쪽에 더 많이 두느냐의 차이이지 양자택일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된 내용을 잠시 눈을 돌려 다른 분야에 적용해볼 수도 있다. 한 예로 재테크 분야에서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로 자기 재산의 투자 비중을 결정할 때 위험자산과 무위험자산의 비중을 몇 대 몇으로 나눌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각자의 투자 성향에 따라 그 비중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이렇게 투자 비중을 정하는 것과 유사하게 위에서 언급한 유전자와 환경의 비중을 몇 대 몇으로 볼 것인지도 각 개인마다 생각하는 바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각자가 자신에게 가장 바람직한 비율을 설정해서 거기에 맞는 의사결정을 해나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의 정확성과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소위 말하는 자기 객관화, 메타인지 같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참 쓰다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진다. 다음 포스팅에서 또다른 얘기로 시작해보겠다.

의미 기억은 일화들 내에서 비롯되며 거의 언제나 뇌가 다른 일화들을 상기하도록 만든다. - P245

뇌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한 종류의 일화를 기호를 통해 표상되는 개념으로 집약하는 강한 경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비행기와 화살표의 윤곽만으로도 "공항은 이쪽 방향이다." 라는 의미가 성립되며 두개골 위에 교차된 대퇴골만으로도 "이 물질에는 독성이 있다."라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P245

두 유형의 기억을 염두에 두고 문화의 단위를 찾아보자. 우선 개념을 의미 기억의 ‘연결점(node)‘ 또는 참조점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때 연결점은 의미 기억에서 뇌의 신경 활동에 궁극적으로 연관될 수 있다. - P245

개념과 그 기호는 일반적으로 단어를 통해 식별된다. 따라서 복잡한 정보는 단어들로 구성된 언어를 통해 조직되고 전달된다. - P245

연결점은 거의 언제나 다른 연결점들과 맞닿아 있어서 한 연결점을 상기하면 다른 점들도 상기할 수 있다. 이런 연관을 통해 우리가 ‘의미‘라고 부르는 것이 생겨난다. - P245

이 연결점들은 더 많은 의미들이 포함된 정보 위계를 이루며 조직되어 있다. 예컨대 사냥개의 일종인 ‘하운드‘, ‘산토끼‘ 그리고 ‘뒤쫓다‘는 모두 연결점들인데 그 각각은 유사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대상을 집단적으로 기호화한다. - P245

‘하운드가 산토끼를 뒤쫓다.‘는 하나의 명제이며 이 명제는 정보의 복잡성 측면에서 단어 다음으로 복잡하다. - P245

명제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도식(圖式, schema)이다. 오비디우스가 들려준 사랑을 위해 다프네를 쫓아다니는 아폴론 이야기가 이런 도식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잡히지 않는 산토끼를 끊임없이 뒤쫓아 다니는 하운드도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 이런 딜레마는 다프네와 산토끼라는 한 개념이 하나의 명제로 이뤄진 또 다른 개념인 월계수로 변했을 때 해결된다. - P245

새로운 일화들과 개념들이 기억 장치에 첨가되면 그것들은 변연계와 피질계를 통해 확산 · 탐색의 절차를 밟는다. 이런 탐색을 통해 이전에 창조된 연결점들과 맞닿게 된다. 연결점들은 다른 중심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공간적으로 고립된 점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수많은 신경 세포들의 복잡한 회로로서 뇌의 전 지역에 걸쳐 중첩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 P246

몇몇 여성 마니아들로부터 열대 과일 중 최고라는 찬사를 듣는 동남아시아의 두리안을 생각해 보라. 이것은 가시가 있는 포도송이처럼 생겼고 맛이 달지만, 입에 들어가면 점점 달걀 과자 맛이 나고 멀리서 냄새를 맡으면 마치 하수구 냄새가 나는 아주 독특한 과일이다. - P246

문화의 자연적 요소들은 의미 기억에 위계적으로 잘 조직된 구성 요소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때 의미 기억은 확인을 기다리는 이산적인 신경 회로에 의해 암호화된다. - P247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서의 문화 단위의 개념은 지난 30년 동안 여기저기에서 제시되었다. 학자들에 따라서 그것은 기억소형(記憶素形, memotype), 아이디어 (idea), 개념자 (idene), 모방자(meme), 사회유전자(sociogene), 개념(concept), 문화유전자(culturgen) 그리고 문화형 (culture type) 등으로 다양하게 명명되었다. 이중에서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그의 영향력 있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1976년)에서 처음 도입한 "모방자"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 P247

우리는 문화의 단위(지금은 모방자라고 불리는)가 의미 기억의 연결점과 그것의 뇌 활동 상응물이라고 주장했다. 연결점은 개념(인식 가능한 가장 단순한 단위), 명제, 도식의 여러 수준들에서 존재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나 행동, 인공물의 복잡성을 결정한다. 그리고 문화 속에서 이런 복잡성들이 유지되는 것을 돕는다. - P247

나는 연결점으로서의 모방자 개념과 일화 기억과 의미 기억 간의 구분조차도 뇌과학과 심리학의 발전으로 인해 더 정교해지고 세분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P247

수많은 유전자들이 뇌, 감각 체계 그리고 다른 모든 생리적인 과정들을 규정한다. 이때 생리적 과정들은 마음과 문화의 전일적 속성들을 산출하는 물리·사회적 환경과 상호 작용한다. 자연선택을 통해 환경은 궁극적으로 어떤 유전자들이 그런 규정 작업을 할 것인지를 선택한다. - P248

유전자와 문화의 인과 관계는 유전자와 다른 생명 활동들의 인과 관계와 마찬가지로 유전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환경만으로 설명할 수도 없다. 그것은 그 둘 간의 상호작용이다. - P249

상호 작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반응 양태(norm of reaction)개념을 알아야 한다. 이 개념은 다음과 같이 쉽게 이해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아니면 미생물이든 한 종을 선택하라. 그리고 그것의 특정 형질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혹은 유전자 집단을 고르라. 그런 후에 그종이 생존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열거해라. 이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선택된 유전자나 유전자 집단에 따라 규정된 그 형질이 변이를 일으킬수도 있다. 생존 가능한 모든 환경에서 그 형질의 전체 변이가 그 종의 그 유전자 혹은 그 유전자 집단의 반응 양태이다. - P249

반응 양태에 관한 교과서를 보면 양서식물의 화살잎 모양이 대표적인 사례로 나와 있다. 예컨대 내륙에서 자란 잎은 화살촉을 닮지만 얕은 물에서 자란 것은 백합 부엽과도 같고 깊은 물에서 가라앉아 자란 것은 주변 물 흐름에 앞뒤로 움직이는 바닷말 오라기와 유사하게 생겼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변이들의 기저에는 유전적 차이가 전혀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사례에서 같은 유전자 집단이 상이한 환경에 처함으로써 생긴 표현형은 세 가지 기본 유형을 형성한다. 이 유형들이 합해져서 잎의 형태를 규정하는 유전자의 반응 양태가 결정된다. 달리 표현하면 어떤 유전자(들)의 반응 양태는 알려진 모든 생존 환경 내에서 그 유전자(들)의 모든 표현형이다. - P249

만일 어떤 변이들이 단지 환경만이 아니라 유전자의 차이 때문에 발생할 때에도 반응 양태는 각 유전자나 유전자 집합에 대해 원칙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 P249

형질 변이와 유전자 변이의 관계 그리고 유전자의 반응 양태는 인간의 몸무게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몸의 형태가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수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 유전적으로 비만 성향을 가진 사람은 통통할 정도까지는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어도 다이어트를 그만두자마자 예전 체중으로 되돌아가기 쉽다. 반면 유전적으로 날씬한 사람은 체중 변화가 거의 없이 대체로 날씬한 상태를 유지하고 간혹 과식을 하거나 호르몬 불균형이 생길 때에만 비만해진다. 즉 두 사람의 유관 유전자들이 서로 다른 반응 양태들을 보이는 셈이다. 두 사람이 같은 환경 (음식과 운동 요소를 포함한)에 놓여도 서로 다른 결과가 산출된다. - P250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개인들이 같은 결과를 산출하려면 서로 다른 환경, 즉 서로 다른 음식이나 운동 체제 등에 놓여야 한다. - P250

유전자와 환경 사이의 이러한 상호 작용은 인간 생물학의 모든 범주 내에서 일어난다. 즉 인간의 사회적 행동도 이런 상호 작용의 산물이다. - P250

사람의 성격이 출생 순서와 그로 인한 자신의 가족 내 역할 부여에 큰 영향을 받는다 - P250

예를 들어 맏이가 아닌 이들은 대개 가족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며 부모의 기대도 덜 받는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맏이보다 더 혁신적이며 정치적·과학적 혁명들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결과적으로 역사를 통해 맏이보다는 나중에 태어난 아이들이 문화적 변화에 더 많은 공헌들을 해 왔다. 그들은 처음에는 가족 내에서 독립적이고 종종 반항아적인 역할을 수행하다가 나중에 사회에서도 그런 역할을 맡게 된다. - P250

자식들의 출생 순서가 유전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발달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들은 환경 내의 다양한 니치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표현형을 확산하는 것이다. - P251

변이를 최대한 이용하고 건강과 재능을 증진시키며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유전과 환경 둘 다의 역할을 이해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 P251

상호 작용을 측정하는 방법 중에 통용되고 있는 것은 유전도(heritability)이다. 유전도는 형질의 변이 중에 유전에 따라 생겨난 것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로서 일차적으로 개체군에 적용된다. - P252

쌍둥이 연구는 유전자들에 따라 생긴 변이의 부분(유전도)을 측정하는 주요 수단이다. - P252

일란성 쌍둥이들은 이란성 쌍둥이들보다 더 많이 닮았고 이런 차이는 형질의 전체 변이에 유전도가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를 대략적으로 알려주는 척도가 된다. 이런 방법은 일란성 쌍둥이 형제(혹은 자매)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다른 환경에서 자라게 된 경우를 연구할 때 더욱 강력해진다. 왜냐하면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이들이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을 때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를 알게 되면 유전도의 크기를 좀 더 정확히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방법은 다중 상관 분석을 통해 더욱 향상된다. 다중 상관 분석에서는 주요 환경 영향들이 확인되고 그 영향들이 전체 변이들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가 개별적으로 평가된다. - P253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과 성격에 어울리는 역할들만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전적 성향을 보상해 주는 환경에 끌리기도 한다. 비슷한 유전 형질들을 가진 그들의 부모 또한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방향으로 자라나도록 분위기를 만들기 쉽다. 즉 유전자는 자신이 더 잘 표현될 수 있는 특정 환경을 창조하는 일을 돕는다. 이렇게 되면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난 사회 내 역할들이 매우 다양해진다. - P253

가령,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와 선천적으로 스릴을 추구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첫 번째 아이는 어른들로부터 지원과 격려를 받게 되면 악기를 일찍 접하고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을 연습에 몰두하게 될 수도 있다. 한편 두 번째 아이는 언제나 충동적이고 공격적이어서 결국 자동차 경주에 매료될 수 있다. 첫 번째 아이는 자라서 전문적인 음악가가 되고 두 번째 아이는 (만약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성공적인 카레이서가 된다. 아이들 간의 재능과 성격의 유전적 차이는 매우 작을 수도 있지만 그 결과는 그 차이가 인도하는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증폭되었다. - P254

생물학(유전자) 수준에서 측정된 유전도는 환경과 반응하여 행동 수준에서 측정된 유전도를 증가시킨다. - P254

피아노를 잘치게 하는 유전자, 또는 피아노를 최고로 잘 치게 하는 ‘루빈스타인(Rubinstein) 유전자‘ 같은 것은 없다. 대신에 손재주, 창조성, 감정 표현, 집중력, 주의력, 음조, 리듬, 음색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강화시키는 데 영향을 주는 커다란 유전자들 집합이 있기는 하다. - P254

유전도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가진 유연성이다. 단지 환경이 변화되기만 하면 유전에 의해 생긴 변이의 비율이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있다. - P255

유전도는 주어진 환경의 변이들에 유전자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가를 측정하는 탄탄한 방법이다. 우선 유전자의 존재를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P256

유전도는 현재 환경과 미래 환경에서 개인의 능력이 어떠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틀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물론 드물기는 하지만 거의 전적으로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행동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언급했던 사례들은 개인이나 사회의 가치를 재는 과정에서 이런 예측 도구가 사용될 때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 P256

유전학자가 지식인과 정책 입안자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장려하고 싶은 사회를 선택하라. 그리고 그 사회의 유전도를 받아들여라. 유전도를 변화시키는 사회정책을 장려하는 일일랑 절대로 하지 마라. 최선의 결과를 원하거든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교화하라. - P256

많은 것들이 성취되기 전에는 통섭을 위한 노력이 정치·사회적 견해를 미묘하게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의 이데올로기 언쟁으로 얼룩질 위험이 있다. - P257

좀 더 세련된 유전학 개념으로 말하자면 후천주의자는 인간 행동 유전자가 매우 폭넓은 반응 양태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셈이다. 반면 유전주의자들은 반응 양태의 범위가 좁다고 여긴다. 이런 의미에서 두 견해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이지 종류의 차이는 아니다. - P257

후천주의자들은 문화를 묶고 있는 유전적 속박은 실제로는 별 것 아니기 때문에 사회에 따라 무한정 다양한 문화들이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유전주의자들은 강력한 유전적 속박으로 인해 문화가 주요한 측면들에서 수렴한다고 생각한다. - P257

후천주의자들과 유전주의자들은 문화 사이의 거의 모든 차이들이 대개 역사와 환경의 산물일 개연성이 높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 P258

개인들은 특정한 사회 내에서는 매우 다른 행동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들 간에는 그런 차이들이 통계적인 수준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남서부 칼라하리 사막의 수렵채집 문화는 프랑스 파리의 토박이 문화와 매우 다르지만 그들 간의 차이는 일차적으로 역사와 환경의 차이 때문이지 유전적 차이 때문은 아니다. - P258

반응 양태와 유전도를 명확히 이해하는 일은 때로는 다소 전문적이고 건조해 보일 수는 있지만, 유전과 환경이 인간의 행동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첫걸음이다. 따라서 생물학과 사회과학의 통섭을 꿈꾸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 P258

논리적으로 보면 이제 다음 단계는 행동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의 위치를 찾아내는 작업일 것이다. 만일 어떤 유전자가 염색체상의 어느 곳에 있는지 알려지고 발현의 경로가 어떻게 되는지 밝혀지게 되면 유전자와 환경의 수많은 상호 작용도 좀 더 정확히 추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상호 작용들이 제대로 정의된다면 그것들 전체는 정신 발달에 관한 더 완전한 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다. - P258

정신 분열증의 증상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하지만 진단 기준으로 사용될 만한 공통적 형질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정신 활동이 일관되게 실재와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 환자들은 자신이 위대한 선각자(대표적으로 메시아)라고 믿거나 감쪽같고 광범위한 음모의 대상이라고 믿는다. 또 다른 경우에는 환상이나 환청을 경험하며 완전히 깨어 있는 데도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엽기적인 일들을 경험한다. - P259

정신 분열증 환자들의 경우 태아 발생기에 전전두엽 피질 속에 있는 몇몇 신경 세포들이 다른 세포들과 의사소통에 실패해서 뇌의 다른 부분들과 비정상적인 교환을 하게 된다...(중략)... 특히 문제의 세포들은 메신저 RNA분자를 만들어 낼 수 없어서 신경 전달 물질 감마 아미노낙산(r-aminobutyric acid, GABA)을 합성하지 못한다. GABA가 생기지 않으면 신경 세포들은 정상처럼 보여도 기능을 하지 못한다.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이런 손상은 외부 자극이나 일상적인 합리적 사고와 차단된 내부 정신 세계를 구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가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마치 잠들었을 때처럼 말이다. - P259

양전자 방출 단층 촬영기(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 - P259

정신 분열증의 궁극적 원인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쌍둥이 연구와 가족사 연구에서 얻은 자료들에 따르면 그 원인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전적인 것이다. - P260

(인간은 22쌍의 상염색체와 한 쌍의 성염색체를 가지는데남성은 XY를 여성은 XX를 가진다. 그리고 각 염색체의 쌍에는 임의적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다.) - P260

인간 행동의 복잡한 부분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비록 정신 분열증이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은 문화의 진화에 영향을 준다. 독재, 종교 의식 그리고 위대한 예술은 미친 사람의 망상과 비전에서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이런 극단적인 기이함을 대하는 전형적인 태도는 많은 사회의 문화 속에 공통적으로 녹아 있다. 즉 정신 분열증에 걸린 이들은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신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거나 악마가 깃들어 있는 자들로 분류된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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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3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3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4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7-15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경마장에 있는 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복희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했다고 언급했었다. 오늘도 복희와 관련된 얘기가 계속 이어진다.

처음 밑줄 친 부분에서 복희가 말들과 교감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여기 나온 말 뿐만아니라 어떤 동물이든 간에 그들과 잘 교감하기 위해서는 물론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진심이 담긴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서로 직접적인 언어가 통하진 않더라도 그 내면의 마음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 관계에서도 진심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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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 중간에 우서진이라는 인물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기존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이야기의 포커스가 좀 바뀐듯 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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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계속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들간에 서로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이어졌었는데, 이제는 다시 앞서 한 번 나왔던 보경과 은혜 그리고 연재에 대한 얘기가 각각 이어진다. 앞부분에서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과거의 스토리들을 마치 양파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듯이 하나하나 알게 되는 묘미가 있었다. 또한 각각의 인물들과 연계된 또다른 인물들에 대한 스토리도 알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중구난방식이 아닌 뭔가 체계적으로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간혹 어떤 소설들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들쭉날쭉 나타나서 그들간의 관계도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얘기 할 수 있을 듯하다.

복희는 천천히 목덜미를 쓸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말의 체온과 숨결을 더 자세하게 느끼기 위해 선배의 목소리를 따라 눈을 감고, 소리가 피부를 통해 전달될 수 있도록 낮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경주마는 수명이 짧다. 선수로서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수명이 짧았다.

달리지 못하는 말은 말이 아니다.

인간 역시 이따금씩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때가 있었으나 언제나 회생 가능했다. 하지만 말은 말 취급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말은 지구에서 살아갈 이유를 얻지 못했다.

투데이의 병명은 퇴행성관절염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관절을 많이 쓴 결과였다. 연골은 소실되었으며 활막은 염증으로 가득 찼다. 지금쯤이면 걸을 때마다 뼈가 부딪치는 통증을 느낄 거였고 조금 더 지나면 골 미란이 진행될 것이다.

베팅금으로 마방세를 내지 못하는 말들은 얼른 방을 비워주어야 했다. 그래야 더 어리고 빠른 말들이 들어와 돈을 벌어다주기 때문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요, 달릴 때 저 애한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라요. 무작정 빠르게 달리기 위해 다리를 뻗는 것이 아니라 그 발짓이 우아해요. 발레하는 흑조 같아요. 동물 흑조 말고요. 흑조를 연기하는 발레리나요."

우아하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보법 때문일 테고 또 다른 하나는 흑진주처럼 빛나는 투데이의 검은 털 덕분이리라. 복희는 투데이가 달릴 때마다 요동쳤을 검은 물결을 상상했다. 그 역동적인 빛의 물결이 은혜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리라.

"달릴 수 있을 거야."
부질없는 위로였다. 밧줄이 필요한 사람에게 휴지를 뽑아 내민 기분이었다.

"슬프지만 아무것도 못 해주는 주제에 슬퍼하는 것도 웃긴 것 같아서 그냥 보고 있어요."

"취재정신 좋은데 준법정신은 있어야죠."

극이 끝나면 우연히 만났던 두 사람은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앱이 업데이트되는 속도가 동물의 멸종 속도와 같대요. 제가 앱 하나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지구상의 어떤 동물이 완전히 멸종한다는 괴상한 말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꺼낸 지난날을 굳이 수면 위로 올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얹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보호받지 못하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자유를 주다니. 복희는 그것 역시도 착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 여겼다.

서울에 서울숲이 있고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듯이 지구에는 아마존이 있었고 동물들에게는 마사이마라가 있었다. 케냐에서는 마사이마라로 불렸고 탄자니아에서는 세렝게티라고 불렸다.

진화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결과물일 뿐이다.

보경은 단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느끼는 다급함과 초조함이 싫었다. 그러니 모든 일은 예정보다 조금 더 일찍, 버스를 놓치거나 영화 관람 시간에 늦는 일이 없도록 부지런을 떨었을 뿐이었다.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

숨통을 조이는 순간 분명 어느 한 곳이 짓무르기 시작할 거라고 믿었다.

정말로 다급하게 손을 뻗을 때에만 아이들의 SOS를 놓치지 않고 들으면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리라. 섣부른 판단과 간섭은 아이를 답답하게 할 뿐이었다.

보이지 않으면 무엇이든 더 생생해졌다. 상상도, 소리도.

그리움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을 예견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게 준비라도 할 텐데, 친절하지 못했던 이별처럼 그리움도 불친절하게 찾아왔다.

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설령 살이 찢길 정도로 이를 악문 채 버티고 서 있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보호자가 힘을 내야 합니다. 모든 병은 결국 병과 환자, 그리고 보호자 셋의 싸움이거든요.

긴 병은 가족 사이의 부채負債를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잖은 상처를 줬지만 그 상처를 해결할 틈도 없이 또 새로운 상처가 쌓였고, 이전에 쌓였던 상처는 자연스럽게 묻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충분히 빚을 덜어낼 기회가 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끝이 있는 고난이라 다독일 수 있었다.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해 아주 처절하게 울었다.

그 일은 애초에 보경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문제였으므로 탓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많았다. 억울하다고 소리치며 삿대질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손가락이 보경의 가슴을 찔렀다. 날카롭게 파고들어 기어코 상처를 덮어둔 가슴을 짓이겼다.

그날 이후로 보경과 은혜 사이에는 갚을 수 없는 부채가 쌓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결국 서로가 떠안고 있어야 했다.

조금만 게으르면 모든 걸 놓치는 시대가 아니던가.

역시나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먼지가 금방 쌓였다.

또다시 저 박스에 든 것이 무엇인지 잊을 때쯤 찾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잊고 살리라 다짐했다.

속는 척했다. 속는 척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속아질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본인 인생은 본인이 알아서 보듬으세요.

유전성 질환인 푹스내피이상증으로 각막내피세포의 감소가 일반인보다 몇 배는 빠르다는 주원은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미안함이나 고마움 따위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사람 사이에 당연하게 일어나는 화음 같은 것.

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눈물이 날 정도로 속이 엉망이지만 울면 더 엉망이 될 것이다. 시원하게 울었지만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평생토록 울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우는 건 그만두어야 했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안 해서 어쩔 건데?‘

‘징징거려봤자 너만 피곤해‘

속을 갉아먹고 얻은 힘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정한 말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때는 도망치는 기간을 정해뒀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정확한 날짜를 정해두지 않으니 돌아가는 날이 점점 미뤄졌다.

가끔 세상은 은혜가 들어갈 틈 없이 맞물린 톱니바퀴 같았다. 애초에 은혜가 들어갈 수 없게 조립된 로봇 같았다. 그런 세상에 제대로 한 방을 날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때마다 분에 못 이겨 경마장을 찾았다.

투데이는 은혜만의 대나무 숲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비밀이 보장되는 유일한 속마음의 창구였다. 그런 투데이가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어."

울어서 해결되는 일은 없다.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꾸역꾸역 참아내며 다짐하듯 말했다.
"내가 너를 놓지 않을 거야."

나는 강하다. 나는, 지킬 수 있다.

"보고 싶은데 꼭 이유가 필요해? 되게 이상한 걸 물어본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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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다른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구성 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느껴졌다. 보통은 하나의 흐름이 쭉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책에서는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또는 로봇의 입장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서술한 것이 개인적으로 독특하다고 느껴졌다.

대략적인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콜리와 연재 그리고 연재의 엄마인 보경, 연재의 누나 은혜 등과 같은 인물들 각각의 스토리들이 소개되는데, 이것들 중에는 각 캐릭터들만의 고유의 스토리도 있지만, 등장인물들간에 겹치는 사건 등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이야기의 맥을 중간에 놓치지 않고 쭉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연재의 엄마인 보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오는데, 읽어보면서 캐릭터별로 어떤 기질과 특징이 있는지를 좀 더 파악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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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보경이라는 인물은 과거에 배우로 활동했을 정도로 외모가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얼굴에 상처가 생기고 이로 인해 왕성했던 배우활동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외면의 상처뿐만 아니라 내면의 상처까지 유발시키고 말았는데, 어떤 일이 발단이 되어 그 상처들을 조금씩 회복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회복도 잠시였다. 예상치 못했던 또다른 일로 인해 다시 마음에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된다.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꿈꿔왔던 삶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데, 참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하나 내 마음이나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기 정말 힘들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내가 꿈꾸는대로 인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루 다 말하기 힘들정도로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데, 솔직히 이런 요건들을 완벽하게 갖추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작년에 읽었던 유현준 교수의 책에서 저자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정확한 문장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핵심은 바로 ‘차선이 모여서 최선이 된다‘는 말이었다. 내가 매번 최선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기에 내가 생각했던 최선보다는 조금 못미치는 차선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이런 선택들이 모여서 결과적으로 최선을 만들어간다는 말이다. 실제로 유현준 교수도 자신의 책에 고백한 바에 따르면 ‘자기 인생도 결코 자신이 처음에 생각하고 꿈꿨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선책을 선택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 비록 못마땅하거나 꿈꿔왔던 것과는 차이가 있더라도 그 처한 상황에서의 최선을 늘 추구하는 것이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냥 힘겹다고 인생의 끈을 무작정 놓을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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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지수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지수는 연재와 같은 반 친구인데, 가정형편이 평범한 연재와는 달리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으로 영어 유치원은 물론이고, 외국 생활까지 하다 온 친구였다. 물론 연재도 특정 분야에 있어 특출난 재능이 있었지만 그외의 것들에 있어서는 지수보다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연재는 자신과 나이는 같지만 여러면에서 앞서있는 지수같은 친구들을 보며 자괴감이 들곤 하는데, 이것이 비단 이 소설 속 연재만의 느낌은 아닐 듯하다. 특출난 극소수의 인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보았을 고민이지 않을까?

하지만 연재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했던 지수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연재와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는데, 이런 걸 보면서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는 소설 속 설정 상 어느정도 의도된 것이겠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딱히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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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복희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 인물은 기존에 나왔던 인물들과는 별개로 경마장의 말을 관리하는 사람인듯 보이는데, 뒤에 이어질 내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예쁨 받는데 더 많은 사람에게 왜 예쁨 못받겠어?‘ 라는 생각

모친은 인생의 2막이란 원래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보경이 보기에는 시대의 흐름에 탑승하지 못한 예견된 추락일 뿐이었다.

여기가 왜 지하인줄 알겠어?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니까, 이곳에 네가 뿌리를 내려야 지상에 꽃으로 필 수 있다는 말이야.

인간은 숨이 끊겼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삶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게 생겼다. 선남선녀가 목숨을 계기로 만났으니 사랑에 빠지기는 쉬웠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꽤 가쁘게 흘러갔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자 자연스럽게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난 사람은 편안했다.

"3%였잖아요."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꺼진다고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니까요. 3%라는 뜻은 말 그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에요."

소방관과 약지에 반지를 나눠 낀 후부터 보경의 삶은 자신이 그려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배우의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다급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시선보다 단 한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3%도 살았는데 80%는 왜 못살아. 당신 왜 이러고 있어."

모친의 요리 솜씨로 시작됐던 인생은 긴 레일을 돌고 돌아 다시 모친의 요리로 돌아왔다.

요리는 연구하지 않아도 혀가 시키는대로 따라가면 금세 모친이 내던 맛이 났다.

죽음이 확률로 계산되지 않고 예견되지 않는 날들을 쭉 누릴 생각이었다. 연재가 쓰레기같은 기수 휴머노이드를 데리고 오기 전까지는.

"쟤가 뭐를 저렇게 갖고 싶어 한 게 처음인 것 같아서."

예전에는 휴머노이드가 갑자기 나타나서 멀쩡히 은행에 다니던 사람을 밖으로 내쫓더니 이제는 제 딸이 다 망가진 휴머노이드를 가지고 왔다. 어쩐지 눈은 뜨고 있으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빼앗긴 적 없는데 빼앗긴 기분이었고 버려진 적 없으나 버려진 기분이었다. 휴머노이드를 보면 그랬다.

사람은 이따금씩 강렬하게 무언가에 끌렸다. 그게 사람일 수도, 사랑일 수도, 음악일 수도, 물건일 수도 있었다. 그 강렬한 끌림 앞에서는 무엇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월급을 전부 꼬라박을 정도의 강렬한 끌림을, 어제 연재는 다 망가진 콜리를 보고 느꼈으리라.

때때로 어떤 일들은, 만연해질수록 법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일에서 손을 놓아버리고는 했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휠체어를 끌어주는 휴머노이드나 사이보그 다리가 아니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너무 많이 바뀌어야 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어떤 것도,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다 왔잖아. 조금만 더 힘내.

반드시 그곳에 가리라는 마음을 먹자 몸에 힘이 생겼다.

완벽한 차단이란 존재하지 않으리라. 분명 어느 틈으로는 그 화려한 경기를 볼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그 믿음은 오래 걸리지 않아 현실이 됐다.

가족 둘이 모이면 다른 가족의 흉을 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대화가 흘렀다.

가족의 대화란 게 또 그렇듯이 주제도 흐름도 없이 그때그때 튀어나왔다.

"시긴 진짜 빨리도 간다. 1년이 하루처럼 흐르는 것 같아. 징그럽게 빨리도 가."

은혜가 그곳에 오래도록 있고 싶어서 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공간이 은혜가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gyro sensor. 기본적으로 회전하는 물체의 역학운동을 이용한 개념으로 위치 측정과 방향 설정 등에 활용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리모컨, 비행기나 위성의 자세 제어 장치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플라스틱보다 가벼운 카본

들개는 살아 있었다. 숨은 쉬고 있지 않지만 살아 있는 지상의 어떤 생명과도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일부러 할 말 없게 대화를 툭툭 끊는 것

"말하는 꼬라지 진짜 별로다."

다르파가 네 발 달린 휴머노이드라는 걸

어쩔 수 없는 차이는 숨겨지지 않았다.

급이 높은 아이들의 진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다는 것에 있었다.

"좋아. 내가 오늘부터 아주 끝장나게 너랑 친구해준다."

희박한 반전에 기대를 걸 만큼 체력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그러니 연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것.

삶의 격차라는 것이 어느 틈을 비집고 생기는 것인지 한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똑같이 학교에 다니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부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아이들에게는 다가갈 수조차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우리 부모님도 돈을 벌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같은 나이에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까.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각기 다른 몸값을 지니고 나왔다. 연재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세상은 연재와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탄생시켰다. 그제야 삶의 격차가 어느 틈을 비집고 생겼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연재의 균열이라기보다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보다 더 먼 부모님의 삶 어디에선가부터 천천히 시작된 균열일 것이다. 연재가 스스로 절대 여밀 수 없는 크기로 말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힘은 결국 문명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냥 처음부터 같이 가면 될 걸 미련하게 힘을 왜 빼."

"요즘 세상에 공부만 잘해도 모자랄 판에 공부 빼고 다른 거 다 잘해서 뭐 먹고 살 건데?"

이제 찌를 던져 낚시 바늘을 틈에 걸기만 하면 됐다. 지수가 팔짱을 꼈다. 아빠에게서 들은 거래의 기술 중 하나인데, 본디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면 그만큼 매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인생이 언제 한 번쯤 순탄하게 풀리나 생각했는데 그날이 오늘인가 싶었다.

사람들은 돌고래의 지능은 익히 알면서도 말 역시 돌고래와 지능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했다. 말은 인간으로 치자면 6세 정도의 아이큐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손에는 말들이 좋아하는 당근과 각설탕을 함께 준비했다. 각설탕이 말에게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단걸 좋아하는 말들에게 각설탕은 스트레스를 최단시간 안에 풀어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당보다는 스트레스가 최악이었다.

선배는 말의 목덜미를 두드리며 복희에게 이곳을 쓸어보라고, 만져주면 가장 좋아하는 부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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