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하루 수케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2월
평점 :
품절


내리자마자 따뜻하게 마시면 은은한 과일 향이 느껴져서 좋고, 요즘처럼 더울때 얼음 넣어서 시원하게 마셔도 향긋한 향과 함께 부드러운 목넘김이 느껴져서 좋습니다. 주의하실 것은 물조절을 잘 하셔야 제가 말씀드린 향과 맛을 온전하게 느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조절은 과유불급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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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 함께 읽을 책과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존 보인, 비룡소
《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 문학사상사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미국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프란시스코 페레, 우물이 있는 집
《천국의 아이들 2 - 시험 보는 날》골람 레자 라메자니, 이란
지그재그3부작 중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올리브 나무 사이로》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이란


<아티스트>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독 짓는 늙은이》황순원
《꽃신》김용익
《서편제》임권택, 한국
《폴락》에드 해리스, 미국


<일 포스티노>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안토니오 스카르메타, 민음사
《시》이창동, 한국


<뷰티풀 마인드>와 함께 읽을 책과 영화

《뷰티풀 마인드》실비아 네이서, 승산
《시지프의 신화》알베르 카뮈, 범우사
《솔로이스트》조 라이트, 영국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전 재산을 털어 1,100명의 유대인을 구했던 쉰들러는 독일의 항복으로 전쟁이 끝난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차에 오릅니다. 그리고 그는 울고 말지요. 그차를 팔았더라면 유대인 10명의 목숨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요. - P141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로 경건합니다. 동네아이들이 조그만 손에 먹이를 가져와 아기오리를 정성껏 먹이고 보살폈습니다. 그렇게 아기오리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생명의 소중함을 깨쳐가는 거지요 - P142

꾸중 - 정호승

엄마를 따라 산길을 가다가
무심코 솔잎을 한 움큼 뽑아 길에 뿌렸다
그러자 엄마가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호승아 하고 나를 부르더니
내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니는 누가 니 머리카락을 갑자기 뽑으면 안아프겠나
말은 못하지만 이 소나무가 얼마나 아프겠노
앞으로는 이런 나무들도 니 몸 아끼듯이 해라
예, 알았심더
나는 난생처럼 엄마한테 꾸증을 듣고
눈물이 글썽했다 - P143

스페인 자유교육의 선구자 프란시스코 페레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최초의 교육순교자로 불리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교육의 전체적인 가치는 아동의 신체적, 지적, 도덕적 재능을 존중하는 데 있다. 교육이 모든 교조주의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아동의 자발적인 표현을 존중하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다면 교육은 그 가치가 없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중에서). 그는 민중이 권력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부터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그래서 또한 학교가 복종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지요. - P148

어른들은 자기 얘기만 하지요. - P150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은 심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도 음식과 같아서 때로는 심심하지만 재료의 맛이 살아 있는 이런 영화들이 아이들을 감동시킬 때도 있습니다. 볼 때의 투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순한 감정으로 이 영화를 되새겨보고는 합니다. 그 맛이 민들레 나물처럼 담백하거든요. - P152

영화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사람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무언가를 건드려 주기도 합니다. - P155

하지만 영화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둘 다 각자의 의견만 고집한 이유는 서로의 시선이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아마드의 엄마는 그 친구가 숙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퇴학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마드는 선생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 P156

조지의 조언은 말하자면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배우들이 지천으로 널린 영화 현장에서 어떤 개성만이 그 배우의 존재감을 드러내줄 것이라는 무언의 메시지였지요. 그 예측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습니다. - P163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에 "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옛것을 낡은 것이라고만 치부하지만 ‘온고지신‘을 통해 지나간 세월의 지혜가 있어야 새로운 문물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P164

어떤 것이건 옛것과 새로운 문물이 서로 소통할 때 진정 깊이 있는 문화가 나올수 있습니다. - P165

"저 개가 말만 하면 더 바랄게 뭐가 있겠느냐." 는 말로 인간에게 배신당한 쓰라린 심정을 표현한 조지 곁에는 발군의 연기력을 지닌 강아지가 있습니다. - P165

중요한 것은 현란한 말솜씨가 아니라 몸짓으로 드러나는 표현과 마음 씀씀이라는 것을 강아지도 보여줍니다. - P165

사람들은 통상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라고 하지만 소통은 그야말로 서로 틈을 보여주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틈이 있어야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생기니까요. 너무완벽한 사람에게는 스며들 자리가 없습니다. - P166

사르트르가 그랬지요. "인간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만이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고 말입니다. 그 존재감은 아무한테서나 발동되는 것이 아니고 두 사람만의 공통분모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P166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하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P168

강아지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조지의 생명을 두 번이나 살리고 대중에게, 모두에게 외면 받은 자기의 주인을 일관적인 태도로 지켜봐주고 사랑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페피마저 의도치 않게 조지에게 말로 상처를 주지만 주인의 충실한 애완견은 오롯이 행동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다. 말하지 못하는 강아지와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들과의 대조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를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무성영화 또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 P170

무성영화의 특징은 말이 없기 때문에 행동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유성영화의 특징은 대화를 통해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 P170

옛것이 그윽하게 숙성된 와인 같다면 새것은 갓 수확한 싱그러운 포도 한 송이와 같다. 하지만 와인과 포도 모두 시작은 같은 씨앗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포도로 와인을 담그면 옛것의 향미를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은 무엇을 드시겠는가. 그윽한 와인? 혹은 싱그러운 포도? - P171

"시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우편배달부인 마리오 루폴로는 칠레의 국민시인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정면으로 이 말을 던집니다. 이를 시인과 시, 독자는 시에 관한 한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소명의식으로 이해해도 될 듯 합니다. - P173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의 국민들에게 칭송받는 민중 시인입니다. 그가 야당의 상원의원일 때 정부의 탄압을 피해 잠시 이탈리아로 은신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칠레의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먼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일 포스티노>가 제작되었는데, 책의 내용을 충실하게 영상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책은 책의 몫이, 영상은 영상의 몫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P174

"사람은 의지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시인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말합니다. - P174

네루다는 시를 통해 민중을 사랑하고 세상을 바라보지만 우편배달부인 마리오에게 시는 단지 여자들을 사로잡는 마법으로만 보입니다. 그에게 네루다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시인일 뿐이며, 그래서 네루다에게 수북한 연애편지를 갖다 주면서 그는 점점 네루다를 닮고 싶어 합니다. 단지 여자들로부터 시선을 끌기 위해서지요. - P175

"우체통처럼 서 있군."
"장승처럼요?"
"아니, 체스판의 말처럼 요지부동이었어."
"도자기 인형보다 조용했죠."

자신과 네루다가 주고받은 말이 은유(Metaphor)라는 걸 깨닫고 비로소 시의 세계에 눈뜨게 된 마리오는, 그야말로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 P175

‘시는 경험한 세계를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 이라고 《시정신과 유희정신》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루다는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겪어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P175

민중과 여자는 닮았습니다. 시의 대상으로서, 사랑의 증표로서, 삶의 희망으로서. 네루다는 민중의 시인이었고, 마리오는 사랑의 시인이었습니다. 은유를 사용할 줄 알았고 설명하지 않는 시를 쓴다는 점에서 또한 둘은 닮았습니다. 부르주아 정치인은 매번 거짓말을 일삼지만 민중은 그의 말에 속아 넘어갑니다. 우매한 민중은 독재자의 지원군이나 다름없지요. - P176

시는 설명하면 진부해진다 - P177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이겠지요. - P177

마리오는 은유를 이해함으로써 깨어 있는 삶을 알게 되었고 그 스스로 실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부당한 일에 항의할 줄 아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 P177

사르트르가 "실존은 본질보다 우선한다." 라고 했는데 - P177

그 대답을 소크라테스가 해줍니다. "평탄한 삶은 인간에게 적합한 삶이 아니다." 라고요. - P177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에서 저자 이왕주 교수가 써 둔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울립니다.
"시인의 진리는 시인으로 완성되어 있는 마리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으로 다듬어져가는 미완의 마리오에게 있다." - P178

시는 잘 익은 홍시를 닮았지민 시인은 홍시가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쓸쓸해야 시를 잘 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P179

힘들고 지쳐가는 일상 속에서의 좋은 영화 한 편은 교훈을 주고 감수성을 풍부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힐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인물들에게 공감하고 그들과 함께 감정을 나누다 보면 자신의 마음속 상처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어쩌면 롤모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 P181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는 아는 만큼 존재하고 스스로에게서 출발합니다. - P186

이 빠진 동그라미가 행복한 것은 조각이 빠진 빈자리 때문에 덜컹덜컹 굴러다니며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동그라미였다면 너무 빨리 굴러가느라고 결코 보지 못했을 세상을 볼 수 있는 겁니다. 느리고 더디게 굴러가지만 그래서 얻는 행복은 얼마나 큰 것인지요. - P188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시포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평생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습니다. 어차피 떨어질 것임을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시시포스. 알베르 카뮈는 그의 저서《시지프의 신화》 (프랑스어로는 ‘시지프‘로 불린다고 합니다.)에서 신들이 그에게 이런 형벌을 내린 까닭을 두고 ‘무익하고 희망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일리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는 시시포스를 일러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한 사람‘이라고 평했다지요. 희망없고 무익한 일을 하게 하면 인간은 엄청난 고통에 빠질 것이라고 신들은 생각했겠지만 그 바위는 오히려 시시포스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었을 것 입니다.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정상으로 바위를 올리는 일, 그것은 위대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존 내쉬는 자신에게 주어진 바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바위를 스스로 평생 밀어올리기로 합니다. 존 내쉬는 천재였기에 불행했고 불행했기에 위대했습니다. - P189

그는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환영과 싸우면서도 학문에 정진합니다. 훗날 더 큰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신과 대결이라도 하듯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낸 내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합니다. 또한 끝없는 반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훌륭합니다. - P189

여자는 남자의 지성에 약하고, 남자는 여자의 감성에 끌리기 마련인데, 영화 속의 부부는 지성과 감성의 적절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 P189

자식이 천재가 아니어도 그저 평범하더라도 건강하게만 자라준다면 그것이 부모에게는 가장 큰 선물인데 말이죠. - P190

최시한 작가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에서 윤수라는 아이가 외칩니다. "우리는 마라톤 선수가 아닙니다. 모두 승리하면 누가 패배합니까?" 어른들은 모두 내 아이에게 승리만을 말하지만, 정작 훌륭한 것은 패배를 극복한 승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모나 아이들이나 시시포스의 바위 하나씩은 모두 안고 있습니다. 그것을 형벌로 생각할 것인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할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지말고 앞만 보고 달리기를 종용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말합니다. 생의 완성은 스스로의 잣대에 달려 있으며, 그 어떤 성공보다 사랑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 P190

영화 <뷰티풀 마인드>는 정신분열증을 극복하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존 내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P192

전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어떤 논리나 이성으로도 풀 수없는 사랑의 신비한 방정식을 말합니다. 난 당신 덕분에 이 자리에 섰어요 당신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내 모든 존재의 이유예요. - P193

알리샤가 내시에게 준 사랑은, 연인간의 사랑을 넘어선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단순한 이성간의 관계에서는서로에게 싫증이 나 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식의 좋은 면, 나쁜 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그런 사랑을 알리샤가 내시에게 준 것이었다. 다시 한 번 사랑의 힘이라는 것을 되새겨 본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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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8-20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줄무늬 파자마...반전이 있는 영화더라고요 더운 일요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8-20 15:30   좋아요 1 | URL
예 저는 영화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에서 저자분께서 내용설명해주신 것만 읽어보았는데도 뭔가 짠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이것저것 생각해볼게 많아지게 해주는 영화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날 더운데 무더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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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진 지음 / 넥서스CROSS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저자의 간략한 일대기와 더불어 중국에 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면서 저자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성경말씀 구절에 빗대어 간증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저자만의 스토리가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에게 신앙적으로 자극이 되고 충분히 도전이 될 만한 내용이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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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두 가지 일이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스케일이다. - P201

하나님의 스케일에 해당되는 일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에 관한 개념이나 신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는 것이다. - P201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그분의 스케일대로 우리를 통해서일하신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홍해를 건너는 일, 바위를 쳐서물을 내는 일,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일, 기드온의 300명으로 미디안 군대를 이기는 일,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일, 다니엘과 친구들이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거부하는 일, 스룹바벨이 훼파된 성전을 재건하는 일, 베드로가 바다위를 걷는 일, 귀신을 내쫓는 일, 방언을 하는 일, 조지 뮬러가 2천 명의 고아들을 먹이는 일, 모든 민족을 제자삼는 일 등은 우리의 스케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일이다. - P20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우리를 통해 행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자는 당당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지만 반응하지 못하면, 아니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자신의 능력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사람은 사는게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 P202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과 차별화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세상에서의 성공신화를 일구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나의 스케일, 나의 능력에만 국한할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일, 하나님의 능력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 P204

진정한 믿음은 입술로가 아닌 행동으로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는 사람은 결과에 민감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께서하시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듯, 현재 우리의 수고와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믿음의 반응을 보이지 못할 때가 많다. 실패할 것을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쫀쫀한 그리스도인이나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 P204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앞뒤 따지지 않고,
즉 계산하지 않고, 이성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반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능력을 부어주신다. 그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한 계속적으로 말이다. - P206

그러나 거센 바람이 불어오자 베드로는 무서움에 사로잡혀결국 물에 빠지고 만다. 팔짱 낀 친구들은 아마 ‘그러면 그렇지, 짜~식 만용을 부리더니만 결국 빠지는구나!‘ 라는 반응을 보였을지 모른다. 이때 물에 빠져들어 가는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이 취한 행동을 보아야 한다.
"살려주세요!" 하고 베드로가 허우적거리며 외치자 예수님은 잽싸게 손을 내미시는 것이 아닌가. 베드로의 손을 잡아끄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이 적구나. 왜 의심했느냐?" - P207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을 꾸짖기보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능력을 의심한 것에 대해 꾸짖으신 것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여 순종하다가도 다시 우리의 능력으로 내려올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근심하게 된다. 막상 시작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장벽들이 얼마나 많은지, 방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P207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을 당할 때다시금 시름하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때 잽싸게 손을 내미시면서 나를 붙잡으실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설령 물에 빠지더라도 뛰어내려!" - P208

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찌질이 같은 청년들을 보면답답함을 느낀다.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저리 나약하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전혀 분간이 안 된다. 입으로 열심히 찬양하는 것 같은데, 목소리 높여서 기도하는것 같은데, 열심히 성경을 보는 것 같은데, 그때뿐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려면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해야 한다. 일단 한번 배에서 뛰어내리면 예수님이 당신에게 즉시 손 내미실 것이다. 약간의 꾸중을 들을 것조차 감안하고 용기를 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믿음은 순종이자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의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증명해야 한다. 하나님을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은 믿음의 행동으로 차별화된다. - P208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의 크기로 일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보기에도 뻔히 이루어질수있는 것들에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뻔할 뻔‘자에 믿음을 거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지나가는 개들도 웃을 일이다.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사람이야말로 믿음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둑한 믿음의 배짱을 주기를 원하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P209

그렇다면 사라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판단과 지혜로 행동했으며 인간적 능력의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 P211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사라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사라는 자기의 스케일대로 반응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스케일대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를 표현한다. - P211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자 했으나, 우리가하나님께 제대로 반응하지 못함으로 지구 종말이 올 때까지 고통 가운데 신음해야 하는 백성들이 생길지 모른다. 아브라함과사라의 불순종을 보라, 우리의 불순종도 그러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의 한계를 넘으시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해야 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 P213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녀, 가정, 이웃, 그리고 이웃 민족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과거에 ‘못해‘ 신앙인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몰랐다. 내가 계속해서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나를 통해 일을 이루시겠다는데 나는 내 영역을 침범하시지 말라고 무례하게 굴었다. 나는 나의 경계선을 분명히 해놓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서도 침범하시면 안 된다고 한 것이었다. - P215

주님 앞에 우리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안 돼요. 나는 못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나에게 배짱 주시려고 할 때 언제나 드려야 하는 말이 있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능력 없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욥 11:7), - P2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백두산이나 한라산만큼 큰 믿음이 아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느니라(막 10:27). - P216

겨자씨만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런 고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난 이거밖에 안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고백으로 나아갈 때, 뽕나무가 뽑혀 바다로 심겨질 수 있고, 이 산을 들어 저 산으로 옮길 수도 있는 것이다.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 겨자씨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 - P21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 P21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과 한계를 너무나 잘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우리에게 감히 상상도 못할 스케일로 일을시키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에게 배짱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그 배짱은내가 할 수 있다는 똥배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일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 P217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눅 16:10) - P218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 - P222

하나님께서는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시는 나의 리더이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은 여호수아 1장 3절이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에게 임무를맡기실 때 약속하셨던 말씀이다. 여호수아는 그동안 평생 모세의 밑에서 2인자로서 상관이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되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모세의 종‘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백성을 향한 지팡이가 여호수아에게 쥐어졌으니,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는가? 아마 잠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이 말씀에힘입어 하나님께서 새롭게 맡기시는 일에 순종할 수 있었다. 이때 내가 결심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리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만큼 편한 것이 없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수 1:3). - P22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우리를 통해 이루길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손짓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부르신다

할 일을 주신다

우리의 긍정적 반응을 바라신다

우리를 격려하신다

우리를 통하여 성취하신다 - P225

주님의 주도하심에 순종으로 반응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신 분이며 최선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P225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한번 질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주도하심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 순종했는가? 하나님의 타이밍을 충분히 기다리고 있는가?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출 19:8) - P226

하나님께서는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대답을 가장 기뻐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으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자 [여자(마리아)]는 행복합니다(눅 1:45, 쉬운성경), - P228

베드로는 긍정적이고 순종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어로는
"But because you say so" 즉,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내가 따르겠다는 결단이었다. 마리아가 천사의 말에 "as you have said" 즉,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순종의 반응을 보인 것과 같이 베드로도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4~6). - P230

마리아나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따르겠다는 결단은 우리 인생에서 엄청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2002년 건축 공사를 시작한 중국 열방학교는 나의 대학 제자들만으로는 필요한 교사수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중국 내에서 크리스천 청년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학교를 지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교사 역시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어떻게 주실지는 전혀 아이디어가 없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순종했다. - P231

주의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 나에게 축복이 됩니다(시119:56. 쉬운성경). - P234

아무것도 없었지만 맨 무릎은 아직 멀정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만은 충천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요단강을 건너고, 길갈에 진을 치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공격하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하루하루 이루어나가셨듯, 희망시에도 열방중학교를 시작으로 대학생 사역, 유치원과 초등학교 사역 등을 확장해나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려면 일단 하나님께 순종의 반응을 보이고 믿음의 행진을 해나가면서 성령의 파도를 타야 한다. - P235

하나님의 파도가 밀려올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윈드서핑 보드를 하나 준비한 후 파도가 밀려올 때까지 자세를 가다듬고 기다린다. 목전까지 밀려왔을 때 순간적으로 보드를 타지 않으면 다음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공식도 마찬가지다. 기공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인 앞에서 나의 믿음을 공표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은 뒤돌아보거나 물러서지 않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다짐이었다.
믿음의 발걸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확인하는 작업만 남은 것이다. 하나님의 파도는 세상의 파도와 비교할수 없다.

주님은 위엄을 갖추고 다스리셨으며, 능력을 띠로 띠셨습니다. 세계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주님의 왕위는 예로부터 견고히 서 있었으며, 주님은 영원 전부터 계십니다. 주님, 강물 소리가 높습니다. 강들이 물결 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높이 계신, 위엄이 있으신 주님은, 큰 바다의 소리보다 더 크시고, 광란하는 바다보다 더 힘세십니다. 주의 법령은 매우 확실하고, 주의 집이 거룩함은 당연합니다. 주님, 영원무궁토록 그러할 것입니다(시 93:1~5, 표준 새번역). - P238

여호수아 5장 13~15절을 보라. 거기서 그는 칼을 빼들고서있는 어느 군인을 만난다. 그리고 대뜸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우리 편입니까. 적의 편입니까?"
칼을 빼든 남자가 말했다.
"어느 편도 아니다. 나는 오직 주님의 군대 사령관으로 온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여호수아가 정신을 차렸다. 그전까지는 자기가 사령관으로서 공격 루트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주님의 군대사령관의 말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에게서 어떤 메시지를 그의 종을 위해 가지고 계시는지요?"
즉, 여호수아가 사령관이 아닌 주님의 종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차별화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같이 종이라는 신분의식이 확실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바로 이것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 P239

여호수아는 철저히 주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시간을 바라보며 7일간 여리고성 주변을 돌수 있었다. 주님의 종이 아니었다면 성 주위를 돌기 전에 여호수아의 머리가 먼저 돌아버렸을 것이다. 그가 여리고 작전에 돌입하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과외는 성공적이었다. 하나님의 작전에 절대 순복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에, 눈을 들어서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들고 자기 앞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원수 편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주의 군사령관으로 여기에 왔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한 다음에 그에게 물었다. "사령관님께서 이 부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주의 군대 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하였다 (수5:13~15, 표준새번역). - P240

우리는 체질적으로 계산하려는 습관이 있다. 여호수아가 그랬다. 주님의 군대 사령관을 첫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 편인가 적의 편인가 질문하고 있다는 것은 벌써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가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문제해결에 골머리를 앓다 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오히려 다른 방법을 동원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에 대한 경고를 우리는 <이사야서>를 통해 볼 수 있다.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칠것이다. 그들은 군마를 의지하고, 많은 병거를 믿고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바라보지도 않고, 주께 구하지도 않는다(사 31:1 표준새번역), - P241

하나님은 우리의 사령관이자 지휘관이시다. 그렇다면 주님의 방법대로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가 구해야 할 일이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3~5). - P243

그러나 둘째아들은 말과는 달리 가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순종에 대해 혼동한다. 순종이란 둘째아들과 같이 하겠다고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아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결단과 외침이 있다.
"하나님, 주님의 명령이라면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도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컴퓨터 자판의 ‘삭제‘라는 글자판이라도 두들긴 것처럼 자신의 기도 메모리를 깨끗하게 지워버리곤 한다. 순종은 행동하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확실하게 알려주셨다. 우리가 사랑한다면서 순종하지 않으면 거짓이다. 왜냐하면 순종은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 14:15, 표준새번역) - P245

순종으로 주께 반응하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보게 된다. 이러한 우리의 작은 순종은 더 큰 순종을 낳게 된다. 결국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 P246

"언제까지 겉으로만 빙빙 돌래?"
"언제까지 아직은 아니라고 하면서 뒤로 미룰래?"
"언제까지 ‘나는 못해요‘ 하면서 머뭇거릴래?"

만약에 이중 한 가지 질문이 당신에게 해당된다면, 하나님께 대한 반응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미치도록 나를 바꿔보고 싶다면, 신앙의 높이뛰기 선수가 되고 싶다면, 거짐없이 돌파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이제 하나님의 선행하심에 제대로 반응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반응이지 우리의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신호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주고 싶어 안달 나신 분이다. - P246

지금 하나님께 반응하라.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은 이제 환란의 골짜기에서도 소생할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흩어져 있는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레이저 광선과 같은 집중력의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좌절(breakdown)을 넘어 돌파(breakthrough)의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몸 안의 모든 세포가 경험할 것이다. 당신은 그분을 더욱 알아갈 것이며 더욱 당당하게 세상과 차별화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으라.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길, 상상만 해도 흥분되지 않는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 P24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시며 시시때때로 사인을 보내신다. 말씀을 통하여, 사람과 환경을 통하여, 생각을 통하여.….
반응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라고 말하고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통로를 통하여 먼저 말씀하실때 우리는 세 가지 반응을 한다.
다음 페이지 도표의 ‘Yes!‘, ‘Why me?‘, ‘No!‘라는 긍정적 회색적,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이다.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도 계속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반응해나가신다.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변화될 때까지 기다리시며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신다. - P250

이 책을 정리하면서 내 신앙을 돌아보게 되었다. 하나님께 반응함으로 나는 그분을 더 알고 싶고, 더 듣고 싶고, 더 만지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서로 긍정의 반응을 주고 받으며 걸어가는 행복과 감격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성령님께, 아버지 하나님께 반응하기를 기도한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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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에선 공무원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민원인이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이 방송국 취재가 시작된 이후에는 민첩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억울한 일을 당하면 청와대에 탄원서를 넣는것을 장땡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청와대에서는 "귀하의 민원을 관련 부서로 이첩하였습니다"라는 식의 답변이나 보낼 가능성이 높으며 그 관련 부서라는 것이 결국 당신이 민원을 넣었으나 해결해 주지 않는 부서이기에 오히려 미운털이나 더 박히기 십상일 수도 있으므로 탄원서보다는 방송을 타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민원인 중에서는 행정기관과는 별개로 일어난 일을 해결해 달라고 데모 용역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데모 용역은 주로 관에서 직접 발주한 공사 등에 대한 불만 외에 관에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허가, 공사 대금, 면허 관리 등과 관련하여 불만을 제기할 때 전문 시위꾼에게 용역을 주는 것을 말하는데 민노총, 전노련등등에서 대신 시위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런 경우 담당 공무원들은 형사적으로 문제가 되는 소음이나 몸싸움, 청사 점검 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는
한 대부분 직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유들이기에 의외로 대처하지 않는다.

또한 민원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보여질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지나치게 과도하게 액션을 취하는 경우 오히려 찍혀서 담당자 여러 명이 검토 단합하여 티끌만 한 편의도 봐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관련 부서의 결정 내용이 불만족스럽다면 법령을 공부한 후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담당자를 찾아가 읍소하며 민원을 접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문제는, 관련 법령 공부하는 방법을 일반인들은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있다.

일반 서민들이야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공무원을 대면하는 정도로 그치겠지만 장사나 사업을 하다 보면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된다. ‘권력을 가진 행정‘을 이길 수있는 민원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끗발이 있으면 이길 수 있다).

공무원은 자기 임의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법과 규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이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철저히 그러하다. 물론 재량권이라는 것이 숨어 있지만 그 범위 역시 규정에 나온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때문에 공무원이 봐주었다‘는 것은 이미 규정에서 봐줘도된다고 나오기 때문에 봐준 경우에 해당될 수도 있다.

기억하여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담당 공무원은 법과 규정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살은 편법도 가장 잘 안다는 점이다. 즉 이른바, 빠져나가는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다만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 안 가르쳐 줄 뿐이고 관련 경험자들을 통해서만 전수된다.

(기억해라. 공무원이 문서를 보냈다는 것은 결재 과정을 거쳤고 기록 보관이 되는 것이며 감사대상 자료로 남는다는 의미이므로 정부기관하고 어떤 분쟁이 생기면 담당공무원이 문서를 만들기 전에 가서 "쇼부"를 쳐야지 문서를 발송한 이후에는 "쇼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법으로 안 될 땐 다른 우회로로 접근하는 게 맞지만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어설프게 덤빌 경우에는 괘씸죄로 찍히기(?)까지 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내가 지켜본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가장 부패한 곳들은 대부분 일반 국민들이 직접 대면할 가능성이 없는 부서들이다. 이를테면 제약 관련 부서는 일반인들을 만나지 않으며 제약회사들하고만 만나게 된다. 학교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부서 역시 각급학교의 임직원들을 만나게 될 뿐이지 학부모를 만나는 것은 아니다. 부패는 이렇게 특정 민간인들만 계속 만날 수밖에 없는 공무원들 세계를 중심으로 "감사의 뜻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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