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기억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간략히 살펴봤었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된 내용이 추가로 이어진다. 기억의 속성에 대해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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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예술가와 심리학자‘ 라는 소제목의 글이 하나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약간 난해하고 추상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용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듯한 느낌‘ 이랄까... 아무튼 내가 가지고 있는 이해력을 최대한 동원해 이해해보려 애썼으나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부분이었다. 100중에 한 60, 70 정도 이해한 듯하다. 웹서핑 등을 통해 추가로 더 정보를 찾아서 읽어봐야 할 듯하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본문 내용이 약간 난해했다는 류의 서평들을 몇 개 봤었는데, 아마도 지금 내가 위에서 언급한 소제목의 글 같은 것들 때문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지금 약 40% 정도 읽었는데 아직 안 읽은 내용 중에 다소 난해한 내용들이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유년기를 떠올리면서 그 시절 겪었던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물든 파란 하늘에 펼쳐놓은 환상적인 기억만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이미 지나가 버린 날들의 쾌락을 되새기는 것은 그 맛을 다시 곱씹는 일일뿐만 아니라 행복의 모습, 그리움의 기억, 천상의 모습으로 승격한 추억들을 항상 새롭게 즐길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삶에 대한 놀라운 열정과 따스한 온기, 그리고 눈부신 햇살이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이 표현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날에 주어지는 선물을 가능한 한 순수하게 받아들이려고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픔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리 큰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암울했던 날에 대한 기억도 아름답고 성스러운 기억의 한 토막이 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찾아 해매는 동안 그대는 행복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미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는 동안 당신은 목표를 갖고 쉼없이 달리지만 무엇이 평화인지 알지 못한다.

모든 소원을 접어두고 어떤 목표나 열망을 알지 못하고 행복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면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이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지 않고, 당신의 영혼은 쉴 수 있게 되리라.

인생은 덧없고, 잔인하고, 어리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하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영혼을 비웃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을 지렁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의 잔혹한 장난감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너무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이 새나 개미의 삶보다 더 힘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더 편하고 수월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불평불만하지 말고 그런 절망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무시무시함과 무질서함을 자기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거친 자연의 모습에 맞설 수 있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써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가운데 제일 뛰어난 것이며,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동물들이 더 잘 한다.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소망과 상상은 가파른 벽에 부딪히면서 서서히 육체의 감정으로 변신한다.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 머물면서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아픔과 괴로움을 주지만 극복할 힘도 준다. 그렇게 얻은 힘은 고통을 보살피고, 아픔을 연습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그 과정이 어렵고 괴롭다 하여 영원히 고통에 빠져 있고자 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바보다."

"네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나는 고통스럽다. 고통은 네가 막아 내려고만 하기 때문에 아픔을 주고 네가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려고만 하기 때문에 너를 쫓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도망치지 말고, 변명하지 말며,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라."

"너는 네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네 마음속에 구원과 행복이라는 마법같은 단 하나의 힘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의 이름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고통을 사랑하라. 거부하지 말고 도망가지 말라! 마지못해 억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의 은밀한 내면에 있는 달콤함을 맛보아라."

"아픔을 주는 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을 거부하는 마음이 네게 아픔을 줄 뿐이다. 네가 그것과 함께 한다면 고통은 고통이 아니며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네가 귀를 기울여 그들이 내는 소리를 잘 들어 보아라. 그것은 훌륭한 음악임을 알게 된다. 그동안 너는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것과 다른 독특한 소리에 얽매여 그들이 내는 소리를 버리려고만 했다. 하지만 독특한 소리들은 고통의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

"내 말을 들어라. 내 말을 잘 듣고 기억하라.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광기에 불과하다. 오직 너 혼자만 그 아픔을 만들어 내고 네 스스로 너에게 아픔을 주는 것이다."

온 세상은 꿈꾸고 있는 내 영혼에 약한 통증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그곳에는 힘과 동요가 있지만 서로 부대끼기도 하고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아 어색함을 느끼기도 한다. 세상은 아름답고 정열적으로 돌아가지만 그 축은 흔들리며 검은 연기를 뿜어낸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네가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우상을 쫓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올바른 것은 저절로 나타난다. 그냥 고통을 달게 받아라. 그것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맛은 더욱 쓰게 느껴질 것이다."

"비겁한 사람은 운명을 독약이나 약물처럼 들이킨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와인이나 맥주처럼 마셔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운명이 달콤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침 여명보다 더 흥분되고 설레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고통이고 아픔이며 마음 깊은 슬픔이었다. 그러나 거역이나 반발은 아니었다. 그것은 동의, 희생, 경청이었고, 동시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며, 함께 하려는 마음이었다.

성인聖人은 자신을 스스로 희생했고, 희생을 찬양했다. 그는 고통스러워 했지만 미소를 잃지는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는 않지만 영생하기 때문에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기쁨과 사랑을 받아들였으며 그것을 나눠 주었다가 다시 돌려받았다. 그러나 낯선 사람에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운명에게 그렇게 했다.

생각 속에 어떤 사고가 잠기듯, 혹은 어떤 몸짓이 고요함 속에 사라지듯 성인에게는 그의 자식들과 그가 소유한 사랑이 아픔 속에 사라졌다. 사라지기는 하지만 자기 자신의 내면 속에 감추어졌다. 사라졌지만 죽지는 않았고, 변신했지만 폐기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내면으로 숨어들었다. 내면과 관용의 세계로.

그들은 생명이었고 비유였다. 모든 비유가 그렇듯이 또다른 비유로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해 고통 속에 사라진 것이다.

청년 시절에 나는 쾌락을 찾아다녔다. 갈증에 목말라하며 고통과 아픔을 잊기 위해.

아픔과 쾌락은 이제 내게 하나가 되어 스며들었다.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하든, 아프게 하든 둘 다 하나가 되어버렸다.

지옥의 비명으로 신이 나를 부르든 천국의 태양으로 나를 인도하든 내가 그의 손길을 느끼는 한 내게는 둘 다 같은 것이 되었다.

레온하르드 프랑크의 소설 두 권 ...(중략)... ‘심리학 입문서‘ 로 손색이 없다

무의식적인 지식에 속하는 어떤 느낌이나 단상들

역사적 지식이 서사시를 짓는데 약간 도움이 되고, 식물학과 지리학이 자연 환경을 설명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처럼 좋은 심리학이 인간의 존재를 표현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심리 분석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그들이 단지 ‘허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모든 권위적인 기준과 가치를 판단하는 것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정신적 요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심리 분석은 예술가에게 자기 자신을 확인하게 하며 분석적 심리학에 자유로운 지적 활동 영역이 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기억과 꿈,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찾고, 심리 분석적 방법을 진지하게 고찰해 본 사람은 ‘자신의 무의식 세계와 맺어진 내면의 관계‘라고 할 만한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더 따뜻하고, 보람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무의식의 세계와 의식의 세계를 오가며 삶을 영위한다. 자신의 ‘밑에 잠겨있는 것‘을 끌어올리고, ‘무심하게 지나친 꿈에 보이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 분석은 무엇보다도 진실을 회피하고 무심했던 것에 대한 복수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냈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지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단번에 거부했던 것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살펴보고, 확인하고, 다시 한 번 탐색하게 만든다. 이것은 우리가 심리 분석을 하면서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며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뿌리까지 뒤흔드는 엄청난 것을 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점점 고립되는 것 같지만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 인습이나 전통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질문과 의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는 오랜 관습이 무너진 무대 뒤에 씁쓸한 진실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더 많이 보거나 적어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이뤄져야만 세계의 한 부분일지라도 진정으로 체험하고, 거기서 전해지는 생생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심리 분석이 주는 교육적이며 자극적인 힘은 그 누구보다 예술가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그들은 세상에 적당히 적응하면서도, 그것의 관습을 따르려 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특이한 것들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프로이드나 그의 제자들이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직관이 아닌 심리 분석의 기술과 방법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독일의 뛰어난 작가 중에는 인간의 정신적 흐름을 설명한 장 파울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영원히 멈추지 않는 생산적 힘에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접목시킨 뛰어난 예술가다.

오토 랑크Otto Rank는 순수한 이상주의자이기는 했지만 자기 자신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 혹은 몽상가 부류로 나눌 수는 없고, 지적인 성향이 강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내가 보기에 당신이 하는 불평은 당신이 빚어낸 상상을 이성이 판단하고 요구하며 강요하는 점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당신의 이성이 머리에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을 입구의 문에서 날카롭게 검문하는 것은 영혼의 창의력에 좋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생각은 분리되어 관찰될 수 있고, 아주 극단적이거나 아주 모험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다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통해 중요한 것이 될 수 있고, 어쩌면 특이해 보이는 다른 것들과 모종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이성이 다른 것들과 상상이 포괄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그것을 붙잡지 못하는 한 모든 것을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창의적인 머리에서는 입구에서 이성이 검문을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많은 생각들이 거침없이 들어오고, 나중에야 그것에 눈길을 주면 그 사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생각덩어리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무의식적인 것, 통제받지 않은 생각, 꿈. 그것은 머릿속에 유희적인 심리학이 떠오르는 것을 억압하지도 않고, 형성되지 않은 무의식의 무한함에 모든 것을 다 내주지도 않았다. 다만 숨어있는 원천에 귀를 쫑긋 기울인 다음 혼돈에서 비판과 선택을 결정했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늘 그렇게 창작 활동에 임했다. 심리 분석은 그런 보호의 기전을 충족시키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편안한 날을 맞이하자마자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랑스러운 나날을 고통으로 보낸다

그대는 잠시 안식을 취할 뿐 다시 새로운 고통을 찾아 나간다.

성급하게 뜨는 샛별처럼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 차 있다.

물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또 비가 되어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절이 때에 따라 변하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것에도 일정한 리듬이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들도 내면에 정해진 박자에 따라 움직인다.

플리스Fliess라는 교수는 인생 경로의 주기적인 귀환을 표현하기 위해서 수학적인 순열을 계산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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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종종 사용하는 보통의 언어들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저자의 생각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다. 사람들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지만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어느정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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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꿈과 목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나온다. 여기선 각 단어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 내가 느끼기로는 꿈은 상대적으로 상위 개념이고 목표는 꿈을 이루기 위한 중간 과정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다보면 작은 목표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자연스럽게 꿈이 이루어진다는 논리(?) 였다. 어떤 의지를 가지고 간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고 간다는 게 저자가 말하는 핵심이었는데, 꽤나 설득력있게 느껴졌고 실제로 저자의 경우에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서 작사가가 되었다고 하니 본인 스스로 자신의 논리를 증명한 셈이다.

이 논리(?)에 설령 동의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자기가 속해있는 분야가 제각기 다르기에 이 논리가 100% 다 맞다고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상당부분 수긍이 되는 얘기였기에 분명 참조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추억‘에 비해 감정이 덜 관여돼 있다.

기억은 틀릴 수가 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추억은 틀릴 가능성이 없다. 이미 내가 어떻게 저장하기로 한, 나의 감정이 적극적으로 개입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뼈아픈 슬픔도 시간이 흘러 추억이 되기도 하는 것

추억이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면, 기억은 잘려져 나온 디지털 사진이다. 잘리기 전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몰랐던 것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지나가긴 했지만 소멸되진 않았기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기억이 익어 추억이 되진 못하지만, 모든 추억은 결국 기억의 흔적이다.

자존감은 근육 같은 거예요. 한 번 높아지면 계속 높아져 있는 게 아니죠. 그냥 높아질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근육처럼 키워야 해요. 가끔 약해졌을 때는 또 쉬었다가, 다시 운동해서 키우고, 그렇게 반복하는 거죠.

말썽은 아이가 내 뜻대로 굴지 않는 상황을 두고 쓰는 어른 입장에서의 표현이지, 아이에게는 일종의 갈등이다. 나의 의지와 다르게 상황이 흘러감에 대한 저항, 그리고 혼돈의 표현인 것이다.

굳이 상징적인 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거 같긴 해요.

수많은 격언들은 때로 정확하게 서로를 대치한다.
‘모르는 게 약이다.‘ vs ‘아는 게 힘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vs ‘쇠뿔도 단김에 뽑아라‘

나이에 대한 말도 마찬가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풍선과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는 말풍선은 뽀득뽀득소리를 내며 부대낀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파도를 타듯 자연스러울 때 근사하다

나이가 들어 육체가 약해지는 데에는 분명, 조금 더 신중해지고 조금 더 내려놓으라는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중력이 내게 해주고픈 말을 받아들이면서 다만 너무 아프지 않게 나이 드는 것, 그러나 숫자로 모든 걸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 육체의 유한함 앞에 겸허해지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내 나이에 관한 바람이다.

거기에 있지만 거기 있지 않은 것, 당장 손에 닿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아름다운 것. 꿈은, 어릴 때 상상했던 구름과 무지개를 닮았다.

꿈은 어딘가에서 날아온 꽃씨처럼 소리소문 없이 피어났을 때 비로소 꿈이다.

어쩌면 어릴 때 반복적으로 받은 질문 탓에 우리는, 꿈을 목표와 혼동하는지도 모른다.

목표가 지점으로써 존재한다면, 꿈은 장면으로 존재한다.

영화로 말하자면, 목표는 어느 만큼의 관객수를 동원할지, 얼마의 수익을 창출할지 등의 구체적인 ‘수치‘를 다루는 이야기다. 반면 꿈은 미술을 논한다. 어떤 분위기의 장소, 어떤 색깔과 질감의 의상, 또 어떤 종류의 소품에 둘러싸인 주인공.... 즉 나를 상상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훌륭한 목표와 근사한 꿈, 어울리는 수식어도 각각 다르다.

아직 꿈이 없다면 차라리 그대로가 자연스럽다. 꿈은 ‘좋아하는 것들‘이 생겨나고 취향이 생겨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끌려 탄생한 꿈은 자연스럽게 나를 이끌어 작은 목표들을 만들어준다. 마음이 하는 모든 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이끌 듯 꿈도 그렇다.

꿈은 목표와 성질이 다르기에, 반드시 이루지 않아도 나를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작가가 꿈인 사람은 글을 쓸 때 행복할 수 있다. 행복하기 때문에 거듭 글을 쓴 사람은 자연스레 필력이 늘고, 그러다 본격적으로 목표를 세웠을 때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내게는 음악이 그랬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온몸에 퍼지는 엔도르핀의 기운, 사랑에 빠질 때나 느껴지는 뱃속의 간질거림은 여전히 신비롭다. 그러나 그저 너무 좋았을뿐 구체적으로 목표를 세운 적은 없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자연스럽게 음악 쪽 일을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 아주먼 변두리에서 중심부로 조금씩 가까워지다 덜컥 지금의 내가 되었다.

작사가가 꿈인 누군가에겐 나의 직업이 구름이나 무지개처럼 닿을 수 없고 그저 근사한 무엇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오래된 하루하루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나는 그저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열광하다가 지금의 내가 되었을 뿐이니까. 언제 여기서 당신을 만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구름과 무지개를 만져보고 맛보고 싶었던 어린이의 꿈은 깨어졌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날 기분 좋게 만든다. 떠올리면 행복해지는 꿈을 갖고 있다면, 주머니 속에 넣고 살아가다가 계속 꺼내보았으면 좋겠다. 당장 가서 만질 수 없으니별수 없다고 버리지 말고.

유난스럽다 : 주로 비난의 용도로 쓰이는 이 말은 국어사전에 실린 원뜻으로는 아주 근사한 말이다. ‘보통과 달리 특별한 데가 있다‘(엣센스 국어사전 기준). 이 얼마나 극찬인가!

생각건대,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적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을 빛나게 해줄 무언가일 것이다. 그러니 유난스러운 자들이여, 온 힘을 다해 스스로의 특별함을 지키자.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을 해보라

명상을 할 때 호흡에 집중하는 것을 초보에게 권하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 즉 완벽히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일 중에 호흡이 대표적이기 때문이란다.

명상의 목적은 늘 부유하는 잡다한 생각들을 멈추는 데 있다. 이런 생각들 중 대부분은 미세하게라도 과거나 미래에 있다. 다가올 일들에 대한 걱정, 또는 지난 일들에 대한 후회.

참 아이러니하다. 오직 현재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우리인데 정작 생각은 주로 미래나 과거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겪어온 것들(과거)로 인해 생긴 두려움으로 피어오르는 다가올 일(미래)에 대한 걱정.

티벳 승려들처럼 명상의 고수가 아닌 이상, 보통의 사람이라면 떠오르는 생각들을 막을 순 없다. 그럴 땐 가만히 숨을 쉬며 그 생각들을 바라보라고 한다. 신기한 것은 ‘걱정을 하고 있는 나‘를 인지하는 것만으로 실제로 스트레스가 반은 넘게 사라진다는 거였다.

현재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 어쩌면 명상은 그걸 위해 하는 걸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을 극으로 본다면 작가는 나고 주인공도 나다.
작가가 위기에 빠진 주인공 곁에 같이 앉아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하고 발을 동동 굴러선 안 되는 법이다. 걱정에 빠진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회차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순리에 모든 걸 맡기는 것.

생각에 갇혀 잠 못 이루는 밤, 긴 숨을 쉬어보자.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에만 집중해보자. ‘나는 숨을 쉬고 있다. 이렇게 잘 살아 있다. 걱정에 빠진 나를 구원하기 위해, 가만히 숨을 쉬며 누워 있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된 다음, 주인공을 위한 최선의 다음 화를 써내려가보는 거다. 주인공이 방치될 순 없으니까.

너무 내 탓을 하든 남 탓을 하든, 둘 다 본인한테 정말 안 좋은 거예요. 이것 모두 양날의 검 같아요. 저는 그럴 때마다 자의식을 조절하려고 해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오만이야"

 ‘그래 맞아. 내가 하나 못했다고 큰일이 되고 말고 할 게 아니지‘

뭘 해도 내 탓을 심하게 하지 않고 잘됐을 때도 너무 오만해지지 않고 적절하게 파도 타듯이 살아가게 된 거 같아요.

의도적으로 신경 쓰고, 바로잡아주지 않으면 치우칠 수밖에 없는 자의식 과잉과 결핍의 간극.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완벽히 내 탓인 일도, 남 탓인 일도 없을 것이다.

나쁜 결과를 지울 때는 ‘탓‘이라는 말을 쓰고, 좋은 결과를 지울 때는 ‘덕‘이라는 말을 쓴다. 둘 모두 한쪽에만 치우쳐선 안된다.

매력 있다는 말은, 주관적으로 쓰이면서 다수를 공감하게 만들기도 하는 묘한 말이다. 또 다양한 취향들 사이에 있는 중립지역에 사는 말이다.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보지 않았을 때 우리는 서로를 평면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충분히 상대를 파악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우연한 순간에 내가 알고 있던 누군가의 평면적인 모습이 갑자기 입체성을 띄게 될 때가 있다.

누군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많은 표현들 중 ‘매력 있다‘는 말은, 한 사람이 가진 여러 면들의 다름이 기분 좋은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나오는 말이다.

누군가를 ‘매력 있다‘라고 표현하는 나의 기분조차 좋아지는 건, 한 사람의 다양한 면을 보게 될 때 느끼는 일종의 해소감 때문이다.

나를 규정짓고 있는 프레임을 벗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스스로의 매력을 파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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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본문에서 저자는 심리학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예전에는 과거에 했던 행위가 우리 삶을 결정한다는 ‘결정론‘ 관점이 우세했지만, 지금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우리의 행동을 이끈다고 하는 ‘목적론적‘ 세계관이 우세해졌음을 언급한다.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는 이 책의 제목에 있는 단어인 ‘퓨처‘ 라는 단어가 왜 나오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아직 초반이라 프롤르그만 읽어보았는데 어쩌면 조금은 뻔한 내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지만 어쨌든 읽기로 결정한 책이기에 유익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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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을 읽다가 미국의 한 코미디언이 ‘아침 사나이‘와 ‘밤 사나이‘라는 용어로 표현하는 인간의 모습이 소개되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장 좀 보태자면 어떤 진리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읽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느낀 여기서의 핵심은 ‘미래의 나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현재의 나가 끊임없이 고통받는다‘는 것이었다. 즉, 악순환의 무한 반복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의 얘기를 뒤집어 생각하면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다. ‘미래의 나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현재의 나는 날마다 행복하다‘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선순환의 무한 반복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본문에서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미래의 나‘에서 생각과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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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읽다보니 의미가 비슷한 문장들이 약간은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저자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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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저자는 본문에 언급한 핵심 메시지를 자신의 삶에 즉각 적용한 사례를 하나 소개하는데, 이를 통해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메시지가 우리 마음과 생각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라.

ㆍ이 행동을 하는 이유 또는 목표가 무엇인가?

ㆍ이 행동으로 나는 어떤 이득을 얻는가?

ㆍ이 행동의 결과는 무엇인가? - P21

특정한 사건이나 행동은 다음 3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1. 무엇

2. 어떻게

3. 왜 - P22

누군가가 하는 행동에는 반드시 ‘왜‘가 있다. 이 ‘왜‘가 행동의 이유 또는 목표다. - P22

왜를 아는 것이 가장 심오하고 강력한 형태의 지식이다. 왜는 ‘무엇과 어떻게‘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 P22

어떤 사람이 특정 행동을 왜 하는지 알 때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P22

인간 행동 이면에는 언제나 왜 또는 목표가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에 목적이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선택하는지 명확하게 의식해야 한다. 그러면 방법은 저절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행동은 목적이나 목표를 따라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목표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좌충우돌하며 혼돈에 빠지고 만다. - P22

목표나 동기는 모두 접근 또는 회피라는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 일어났으면 하는 일에 대한 접근 또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에 대한 회피, 이 두 가지가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다. - P22

일반적으로 80퍼센트의 사람들이 회피나 두려움이 동력이 되어 행동한다. 그에 반해 접근이나 용기가 동력이 되어 행동하는 사람은 20퍼센트 정도다. - P23

광고업계는 상품을 팔기 위해 우리의 두려움을 가지고 논다. 슬픔은 과거와 관련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것처럼 두려움은 미래에 속한다. 대개 사람은 걱정과 불안, 공포를 안고 살아가며 날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악취를 풍기는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 P23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 둘 다 목표다. - P23

접근 또는 회피를 위한 목표나 이유는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생각과 에너지, 행동에 동력을 제공한다. - P23

모든 경우 인간은 자신이 상상하는 미래를 근거로 행동한다. 그 미래는 자신이 피하고 싶은 미래일 수도 있고, 만들려고 노력하는 미래일 수도 있다. 또한 수십 년 후의 미래일 수도, 몇 초 후의 미래일 수도 있다. - P23

사람들의 행동은 주로 두려움이 동력이 되지만, 단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행동도 많다. - P23

더 먼 미래를 깊이 생각할수록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 능력은 더욱 향상된다. 이것이 힘의 법칙이다. - P24

두려움이 동기가 되면 용기와 비전이 동기가 되는 것보다 낮은 수준의 의식 상태에 머물게 된다. 두려움을 초월해 수용과 용기, 사랑을 행동의 이유로 삼으려면 더 높은 수준의 정서가 발달해야 한다. - P24

두려움과 부정적인 생각, 단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비전과 사랑을 토대로 목표를 세울 때 우리는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사는 길로 들어선다. - P26

미래의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곧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 P26

미래의 나를 창조하고 미래의 나와 연결하는 일의 중요성 - P26

미래의 나와 연결되는 수준이 현재의 삶과 행동 수준을 결정한다. - P27

미래의 나와 더 깊이 연결될수록 지금 더욱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 P27

현명한 결정을 하려면 그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아야 한다. - P28

어떤 결과를 바라는가? 그 결과를 철저하게 분석해 바라는 결과가 나오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것이 최고의 결정이자 행동이다. - P28

원하는 것에서 시작해 거꾸로 가라. 목표를 향해 가기보다 목표라는 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 우리의 뇌는 저절로 그렇게 작동한다.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기본적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기관이어서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행동을 유발한다는 데 동의한다. - P28

배움은 뇌의 예측 능력에 최신 정보를 제공해 그 능력을 향상하는 과정이다. - P28

가고자 하는 곳이 명확할수록 무수한 선택지 사이에서 방황하는 일이 줄어든다. - P28

미래의 나와 단절되면 사람들은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게 시급한 일들만 처리하다 보면 좋은 성과를 얻을리 없다. 하지만 이게 대다수 사람의 삶이다. - P28

밤 사나이는 언제나 아침 사나이를 망친다.
아침 사나이가 밤 사나이에게 복수할 방법은 없다. - P30

아침 사나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대한 자주 늦잠을 자는 것이다. 그러면 낮 사나이는 직장을 잃을 테고 밤 사나이는 돈이 없어 더는 파티를 즐기지 못할 것이다. - P30

미래의 나와 단절된 사람은 눈앞의 목표를 추구하거나 도파민이 잠깐 활성화되는 쾌락을 일삼는다. 이렇게 단기적인 목표만 추구하면 미래의 나는 결국 큰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 P30

"어째서 우리는 미래의 내가 후회할 결정을 내리는가?" - P30

미래의 나와 연결될수록 현재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 P30

행동과 태도를 좌우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 P31

미래의 나와 연결되면 현재를 수용하고 사랑하며 그 가치를 인식할 수 있다. - P31

미래의 나와 연결하는 것이 현재의 목적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 P31

장기적인 미래의 나와 연결하라. 그러면 오늘 더욱 훌륭하고 탁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 P31

미래의 나와 연결될 때 행복하고 생산적이며 성공적인 삶을 살수 있다. - P31

미래의 나와 연결하는 것이 현재의 나를 발전시키고 상황을 나아지게 한다. 그리고 지금의 삶이라는 귀중한 금광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미래의 나와 연결하라. 그것이 지금 강력한 삶을 사는 방법이다. - P31

"53세의 내가 다시 돌아와 남은 오늘을 산다면 어떤 기분일까? 미래의 나는 다시 살게 된 오늘 무슨 일을 할까?" - P32

두 번째 삶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첫 번째 삶에서 했던 잘못된 행동을 지금 하려고 하는 게 아닌지 생각하라! - P33

현재는 과거이며 과거는 바뀌고 수정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 P33

20년 후 미래의 내가 되돌아와 그날 저녁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미래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와 오늘을 다시 살아볼 기회를 얻었다고 상상한 것이다. - P33

20년 후 미래의 내가 이 순간을 어떻게 온몸으로 느낄지 생각해보았다. 미래의 내가 된 나는 그 순간을 평소와 다르게 보게 됐다. - P33

관점을 바꾸니 동네와 거리가 다르게 보였다. 나는 내가 경험한 것에 경건함을 느꼈다. 내가 거룩한 땅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 P34

‘도대체 어떻게 내가 이런 놀라운 삶을 얻었을까?‘ - P35

나의 내면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나의 내면이 더 진화하고 깊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 나를 좌절시켰던 일들이 사소해 보였다. 지금 순간에 몰입하게 되면서 전에는 짜증스러웠던 일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볼수 있었다. 그에 더해 내 행동은 더욱 친절하고 관대해졌다. 나는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미래의 나는 지금 이 상황을 현재의 나와 다르게 더 현명하게 처리할 것이다. - P36

미래의 나를 현재로 불러와 살아가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심지어 나는 미래의 내가 어쩌면 20년 후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게 됐다. - P36

고대 스토아 철학사상으로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인데, 우리는 항상 죽음을 생각하고 있어야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게 된다. - P36

목적의식이나 사명감이 없으면 바로 눈앞에 있는 선물 같은순간을 인식하지 못한다. 미래의 나와 단절되는 순간 현재의 삶이 안겨주는 무한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다. - P37

빅터 프랭클은 지금 이순간이 지나갔다고 상상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쁜 결과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 P37

미래의 나와 연결되면 지금 이 순간이라는 금광을 더 잘 이해하고 감사하게 된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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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저자의 삶을 통해 무언가를 배워가는 시간이 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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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첫 챕터를 다 읽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면서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맨 처음 챕터에서는 저자의 가장 최근(이 책이 쓰여질 무렵)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음 챕터에서는 저자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구성을 한 정확한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독자인 내 생각에는 평범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저자의 스타일 상 순차적인 시간 순서를 살짝 비틀어서 책을 쓰지 않았나 정도로 추측해볼 뿐이다. 아직 책을 끝까지 읽어보지 않았기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겠지‘ 정도로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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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저자의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는데, 결코 평범하지 않은 저자의 성격이 가정환경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본문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을 비롯해 어릴적 생활고로 인해 부모님의 사랑보다는 핀잔과 꾸지람을 듣는데 익숙해져버린 가정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저자를 가정 안에 머물게 하기보다는 거리 밖으로 내몰았고 그 와중에 축구에 재미를 붙였던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가정환경이라는 것이 정말로 아이의 삶과 성격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또한 저자의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게 된 사연에 관한 얘기도 나오는데 이를 통해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동유럽 쪽의 내전 역사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동유럽 쪽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것이 사실인데, 이번 독서를 통해 이 쪽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이런 것은 미처 예상치도 못했던 것이지만 어쩌면 이런 게 독서의 수많은 매력들 중 하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 포스팅에서 좀 더 세부적인 이야기를 보면서 동유럽 국가들 간의 내전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될 듯하다.

남들과 똑같지 않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마라. 이 교훈은 적어도 내게는 효과가 있었다. - P5

그의 심장은 분명 "즐라탄 앞에 즐라탄 없고 즐라탄 뒤에 즐라탄 없다"는 박자에 맞춰 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즐라탄이니까. - P6

판 바스텐은 판 바스텐이고 즐라탄은 즐라탄이다. - P6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국면은 무엇보다 내용과 필치의 솔직함이다. 문학성, 리얼함, 재미 등의 장점과는 별개로, 이 자서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적을 많이 만들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 P7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즐라탄의 자서전 집필 스타일은 그의 축구스타일과 꼭 닮아 있다. 한마디로 ‘즐라탄 스타일‘이다. - P7

언제든 내 실력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18

‘나한테 찾아온 기회를 즐겨보자‘고 생각했다. 저들이 나에 대한 선입견을 굳히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 P19

무슨 일이든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이 내 철학이다.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내 주관대로 살았고, 어렸을 때부터 샌님 같은 사람들과는 즐거웠던 적이 없다. - P19

나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말만 했다. 한심한 노릇이었다. - P19

갑갑했다. 나, 즐라탄은 더 이상 즐라탄이 아니었다. - P20

나는 경기를 잘하려면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 고함도 지르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야 기운이 나는 사람이다. 그런데 분노를 내 안에 봉인해두고 있었다. - P20

삶이 지지부진할 때마다 나는 돌파구를 찾는다. - P21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즐라탄이 다시 옛날 모습을 찾았다. - P21

그라운드에서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경기를 만들어가고 싶은 놈이란 말이다. - P22

페라리를 사놓고 피아트처럼 운전하는 격이야 - P23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전쟁은 원하지 않아요. 그냥 의논하고 싶어요." - P23

"내가 말다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가겠습니다. 그냥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 P23

‘이브라카다브라ibracadabra(이브라히모비치 뜻대로 될지어다)‘ 주문이 예전처럼 잘 통하지는 않았다. - P24

감독의 태도는 내 신경을 긁어놓았고 나는 날마다, 아니 매시간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뭘 어떻게 했지? 뭐가 문제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이렇게 냉담한 이유를 찾자면 내 포지션을 두고 저번에 나눴던 대화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이유라면 참으로 우스운 노릇이었다. - P26

어쨌건 나는 그에게 굽실거릴 만큼 굽실거렸으니 이제 그가 해결할 차례였다. - P26

나는 그가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주관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을 다룰 줄 몰랐던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그는 말 잘 듣는 모범생만 원했고, 게다가 자기가 해결할 문제를 놔두고 줄행랑을 쳤다. 그는 개성이 강한 선수들과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문제는더 꼬였다. - P26

선수로서 내게 신경을 써주는 한 그가 나를 미워해도 상관없었다. 아니, 그가 나를 증오하거나 복수하려고 했다면 차라리 더 힘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 P25

"헬레나 한 가지만 해주면 돼요, 즐라탄을 잘 먹이고, 푹 재우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 P27

감독은 이 모든 결과가 내 잘못이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됐다.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이 내게 주어진 최후의 기회였던 것이다. - P29

몸은 힘들지 않았지만 마음이 힘들었다. - P29

어쨌거나 내가 화가 나서 폭발할 때는 내 근처에 오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다. - P30

예전에도 다른 사람들과 옥신각신한 적은 많지만, 그래도 다음 날이면 뒤끝 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편이었다. - P31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참고 있어야 하나? 이런 분위기에 군말 없이 적응해야 한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 P31

저 얼간이들을 약 올리는 일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 P31

이제 나는 내 목소리를 낼 작정이었다. - P32

나는 내 신조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고, 그런 일이라면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고 있었다. 전에도 이런 싸움을 해보았다. 하지만 싸움에 임해 준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었기에 나는 미노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우리는 늘 함께 전략을 수립한다. 우리 둘 다 영리하고 거칠었다. 나는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했다. - P32

나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고 싶었고,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 P32

"팀이 당신 맘에 들지 않으면 우리 집에서 하나 만들면 어때?" - P32

감독을 쳐다볼 때면 내 안의 어둠이 꿈틀댔다. 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을 때면 주먹을 불끈 쥐고 기어코 응징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그때는 이미 되돌릴 길이 없었다. 이제 당당하게 서서 예전의 나를 회복할 때였다. - P33

"로센고드에서 소년을 데려갈 수는 있어도 몸에 밴 근성까지 데려갈수는 없다"는 말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 P33

어렸을 때 형에게서 BMX 자전거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자전거에 파이도 다이도 Fido Dido라고 이름 붙였다. 파이도 다이도는 꼬불꼬불한 머리에 거칠 것이 없는 성격의 만화 주인공이었다. - P34

내 아버지로 말하자면, "누가 내 자식들을 건드려! 어떤 놈도 내 자식 물건에는 손도 못 대"라고 호통을 치는 유형이었다. - P34

너무 수치스러워서 언젠가 복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P35

나는 온몸에 좀이 쑤셔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녀야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 P36

우리 가족은 스웨덴 서남부에 있는 말뫼 시 외곽에 있는 로센고드에 살았다. 로센고드에는 스웨덴 사람을 비롯해 소말리아, 터키, 유고, 폴란드 등에서 넘어온 가난한 이민자들이 넘쳤다. 이곳 아이들은 가진 것은 없어도 깡다구로 버티는 녀석들이었다. 밖에 나가면 아이들은 툭하면 성질을 부렸고, 집에 돌아와서도 생활하는 게 쉽지 않았다. - P36

우리에게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 P36

모든 일을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누군가 나를 못살게 굴어도 칭얼거리는 것은 금물이다.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다. 칭얼거려봤자 시끄럽기만 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따귀를 맞거나 매질을 당하면서 호되게 야단을 맞을 뿐이었다. - P36

그 시절 어머니는 아이를 달래고 위로해줄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부양하느라 뼈가 빠지게 일했다.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다 보니 어머니는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다른 식구들도 모두 성질이 고약했다. 집에서 오가는 대화는 교양 있는 스웨덴 사람들의 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 P38

식구들 입에 풀칠하는 일, 어머니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집에는 먹여야 할 식구가 많았다. - P39

나는 그런 집안 분위기가 싫어 밖으로 나돌았다. 동네를 뛰어다니거나 축구공을 차며 놀았다. 나는 몸도 마음도 불안정했고, 축구 선수로 성공할 싹수가 보이는 아이는 절대 아니었다. 나는 그냥 공 좀 차는 시건방진 아이 중 하나였을 뿐, 축구를 잘하는 축에도 끼지 못했다. - P42

나는 경기 중에 분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을 머리로 들이받고 동료 선수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래도 축구를 계속했다. 나는 축구가 좋았다. 안마당에서든 축구장에서든 쉬는 시간이면 늘 축구를 했다. - P42

나는 굶주림의 기억을 죽어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 P48

"아버지는 술로 슬픔을 달랜다"고 형이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모르는 일이 많겠지만, 전쟁이 아버지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긴 것은 분명하다. - P50

전쟁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의 일이었다. 나는 전쟁 같은 것은 모르고 자랐다. 어른들은 그 진실로부터 철저하게 나를 보호했다. 어머니와 누나들이 다들 검은색 옷을 입고 있을 때에도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괴상한 패션이 유행하는 줄로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크로아티아 내전 때 폭격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 P50

가족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슬피 울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세르비아 사람이고 보스니아 사람이고 통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전의 직격탄을 맞았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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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은하의 충돌과 관련된 얘기가 나왔었는데 오늘도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진다.

오늘은 다양한 케이스들 가운데 특별히 작은 은하가 큰 은하와 충돌 했을 때 만들어지는 고리 은하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이것을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 수면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설명하는데, 직접 우주에 가기 쉽지 않은 대다수의 독자들이 내용을 보다 잘 이해하는데 충분히 도움이 될만한 비유였다고 생각한다.

작은 은하가 자기보다 훨씬 큰 은하와 정면으로 충돌하면 지름이 수천 광년에 이르는 고리 은하가 만들어진다. 은하 간 공간에 펼쳐진 우단羽緞에 불규칙 은하를 가장 멋지게 그려 놓는다면, 그것이 바로 고리 은하일 것이다. - P491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연못 한복판에 돌을 던지면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물이 튀기면서 구덩이가 잠시 움푹 파일 것이다. 작은 은하와 큰 은하의 정면 충돌 현상도 은하라는 거대한 연못에 돌이 떨어진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큰 은하의 중심이 뚫려서, 고리 은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면 그 뚫린 구멍이 다시 메워질지도 모른다. - P491

여러분이 은하를 모양이 잘 변하지 않는 튼튼한 강체剛體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오해다. 은하는 약 1000억 개의 별들로 만들어진 유동성의 구조물이다. - P492

어느 한 순간 사람은 대략 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가 늘 같은 세포는 아니다. 100조 개의 일부는 죽어 없어지고 동시에 새 세포가 다시 만들어짐으로써 항상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인간의 육체이다. 은하도 마찬가지이다. - P492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수는 늘 일정하지만, 오늘 내 몸에 들어 있는 세포 모두가 어제의 그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나‘로 남아 있다. 은하면에 펼쳐진 나선 팔 구조도 이와 같다. - P492

나선 팔은 늘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나선 팔을 이루는 구성원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오늘‘의 나선 팔을 이루는 별, 성간 기체, 성간 티끌은 ‘어제‘ 의 그것들이 아니다. 어제 나선 팔을 이루고 있던 구성원들이 빠져나가면서 동시에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와 그 빈 자리를 메운다. 구성원 자체는 변했지만 나선 팔의 구조는 그대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선 팔 구조가 유지되느냐가 궁금한 문제이다. 나선 밀도파의 이론에 따르면 나선 구조는 유체에서 볼 수 있는 파동현상의 결과이다. - P492

은하의 자살률은 의외로 높다. 은하의 자살은 흔히 폭발로 목격된다. 수천만 또는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엑스선, 적외선, 전파를 강력하게 내놓는 복사원輻射源들이 여러 개 알려져 있는데, 이것들은 중심핵 부분이 유난히 밝게 빛날 뿐 아니라 대략 몇 주의 시간 간격으로 밝기가 불규칙하게 변한다. 그중 어떤 것들은 그 길이가 수천 광년에 이르는 밝은 빛줄기를 뿜어 내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티끌 때문에 검게 보이는 판구조들을 만들어 그 내부에서 대규모의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은하들 내부에서는 거대한 폭발이 진행 중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 P493

밝기 변화의 주기로부터 폭발과 교란이 일어나는 지역의 크기를 조사해 보니 태양계보다 작은 것으로 판명됐다. 그런데 이렇게 좁은 지역에 앞에서 이야기한 정도의 질량이 들어있다고 하니 그곳의 밀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일 게다. - P493

학자들은 NGC 6251과 M 87 같은 거대 타원 은하들의 중심 깊숙이에는 질량이 태양의 수백만 내지 수십억 배나 되는 블랙홀이 각각 들어앉아 으르렁거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 P493

수십억 광년 저 너머에는 은하 중심부의 폭발이나 소동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격렬한 변동을 겪고 있는 천체들이 있다. 이 천체들을 우리는 준성準星 또는 퀘이사 quasar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대폭발 이후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동을 겪고 있는 젊은 은하일지도 모른다. - P493

퀘이사 quasar는 준성 전파원準星電波源이라는 뜻의 ‘quasi-stellar radio source‘의 머리글자들을 조합해 만든 단어이다. - P493

퀘이사가 발견되고 얼마 후 준성 전파원들 모두가 반드시 강력한 전파원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준성 전파원은 준성체準星體라는 뜻의 ‘quasi-stellar object‘로 이름이 바뀌었다. 요즈음은 이것을 더 줄여서 ‘QSO‘로 흔히 표기한다. - P493

겉보기에는 별과 구별하기 어려웠으므로 처음에는 이것들(준성체, QSO)이 우리 은하에 속한 천체로 간주됐다. 그러나 분광 관측을 통해 적색이동을 측정해 본 결과, 준성체가 우리 은하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천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 P493

준성체는 우주 팽창에 적극 참여하는 천체이다. 우리에게서 후퇴하는 속도가 광속의 90퍼센트에 이르는 준성체들도 있으니, 그들은 우주의 저 먼 변방에 있는 셈이다. 준성체들이 이렇게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보기 밝기가 별만 한 것을 보면 그들의 원래 광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원래의 광도를 환산해 보면 초신성 1,000개가 동시에 폭발할 때 예상되는 밝기의 수준이다. - P494

백조자리 X-1과 마찬가지로 준성체의 변광 주기는 무척 짧기 때문에, 격동의 현장은 태양계보다 좁은 영역에 국한된다. - P494

이렇게 좁은 영역에서 그렇게 높은 수준의 광도를 과연 어떤 방법으로 공급할 수 있단 말인가? 학자들이 제안한 몇 가지 이론 - P494

(1) 준성체는 펄서의 극단적 변형으로서 질량이 매우 큰 고속의 회전체가 그 내부 핵에 자리하고 이것이 강력한 자기장과 연결되어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이론이 있다. - P494

(2) 은하 중심에 밀집하여 있는 수많은 항성들이 서로 격렬하게 충돌하면서 별의 외곽부는 찢겨 달아나고 수십억 도에 이르는 고온의 내부 핵 부분이 노출된 것이 준성체라는 이론이 있다. - P494

(3) 바로 앞의 이론과 연관된 아이디어로서 내부에서 초신성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은하가 준성체라는 이론이 있다. 별이 너무 밀집해 있는 은하에서는 하나의 별이 초신성으로 폭발하면서 발생한 충격파가 주위 별의 초신성 폭발을 촉발할 수 있다. 이리하여 초신성의 연쇄 폭발이 가능해진다. - P494

(4) 물질과 반물질의 상호 소멸에서 생기는 에너지의 급격한 방출이 준성체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이론도 있다. 이 경우에는 어떤 연유에서인가 반물질이 퀘이사 내부에 남아 있어야 한다. - P494

(5) 성간 가스와 티끌이 은하의 중심에 자리한 거대한 블랙홀로 떨어지면서 폭발적으로 내놓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준성체에서 볼 수 있는 제반 현상을 빚어 낸 장본인이라는 이론도 있다. 이 경우 중심 블랙홀은 작은 블랙홀들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충돌ㆍ합병된 결과물일 수 있다. - P496

(6) 준성체가 흰 구멍, 즉 ‘화이트홀 white hole‘ 이라는 이론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우주의 블랙홀들로 쏟아져 들어간 물질이 반대쪽으로 다시 출현하도록 하는 ‘깔때기‘가 화이트홀이다. 이 이론은 화이트홀이 우리 우주 도처에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 P496

켄타우루스자리 전파원 A. 일명 NGC 5128라고 불리는 이 강력한 전파원은 거대 타원 은하가 나선 은하와 충돌하여 생긴 것이라는 설이 있다. 티끌 때문에 검게 보이는 두꺼운 띠는 충돌 과정에서 깨진 나선 팔들의 측면 모습일 수 있다. - P495

또 다른 설에 따르면, NGC 5128은 약간의 가스와 티끌을 동반한 하나의 거대 타원 은하라고 한다. 가스와 티끌 그리고 어쩌면 별로 구성된 원반이 이 은하를 온통 둘러싸고 있다고 생각된다. 검게 보이는 띠가 바로 원반의 측면 모습이라는 것이다. 구체적 정체야 어떻든, 이 은하는 매우 강력한 전파원이다. - P495

전파 세기의 분포도에는 티끌 원반에 수직한 방향으로 두 개의 전파엽電波葉 쌍방 대칭으로 자리한다. 엑스선과 감마선의 방출량도 만만치 않다. 엑스선의 세기가 매우 빠른 주기로 변하는 것으로 보아, 중심에 숨어 있는 거대한 블랙홀을 향해 성단들이 통째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믿어진다. 우리로부터 거리는 1400만 광년 떨어져 있고, 두 전파엽의 총길이는 300만 광년에 이른다. - P495

퀘이사의 에너지원이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즉 전대미문의 거대한 파괴가 퀘이사 내부에서 진행 중이라는 사실 말이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퀘이사 하나하나에서 수백만 개에 이르는 세상들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을 것이다. - P496

파괴되는 세상 중에는 생물과 그 파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생물이 살고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괴되는 순간에도 에너지의 분출과 대혼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고민할 것이다. 고통 또한 인식 기능이 감내해야 할 의무가 아닌가. - P496

우리는 외계 은하들을 연구함으로써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규모로 벌어지는 격렬한 혼돈의 폭력 역시 우주의 한 속성이다. 우주는 자연과 생명의 어머니인 동시에 은하와 별과 문명을 멸망시키는 파괴자이다. - P496

우주는 반드시 자비롭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적의를 품지도 않는다. 우주 앞에서 우리의 생명, 인생, 문명, 역사는 그저 보잘것없는 존재일 뿐이다. - P496

우리의 은하수 은하와 같이 겉보기에 점잖고 준수한 은하에도 들썩거리는 구석이 있고, 야단스러운 동네가 있게 마련이다. - P496

우리 은하의 중심부를 전파 망원경으로 자세히 관찰해 보면 태양의 수백만 배나 되는 질량의 수소 기체 구름 두 덩이가 은하핵에서부터 분출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은하 중심핵에서는 자잘한 폭발들이 늘 심심찮게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 P497

고에너지 우주 망원경이 지구 주위를 선회하면서 우리 은하의 핵을 관찰했더니 특정 파장을 가진 강력한 감마선이 방출되는 것도 검출할 수 있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은하수 은하의 핵 속에 거대 질량 블랙홀이 숨어 있다는 추측을 하게 됐다. - P497

은하 진화의 긴 여정에서 격동의 청년기에 속한 은하들은 준성체로 나타나거나 격렬한 폭발을 일으킴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바깥 세상에 내보인다. 우리의 은하수 은하 같은 은하들은 중년기에 들어선 ‘착실하고 건실한‘ 은하라고 하겠다. - P497

퀘이사를 청년기의 은하로 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퀘이사까지의 거리가 수십억 광년이므로 우리가 관측하는 퀘이사의 모습은 이미 수십억 년 전에 일어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 P497

별들은 은하수 은하의 내부에서 잘 정돈된 궤도를 따라 움직이며, 구상 성단들은 은하의 원반을 향해 곤두박질하여 원반을 뚫고 나갔다가 되돌아가는 진동 운동을 계속한다. 우리가 은하면 상하로 오르내리는 별들의 운동을 하나하나 따라갈 수 있다면 강냉이 알들이 은하면 위로 팍팍 터져 올라오는 것같이 보일 것이다. - P497

우리가 은하 모양의 변화를 직접 관측한 적은 없다. 은하를 구성하는 별들의 운동이 워낙 느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은하수 은하의 중심 원반이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2억 5000만 년이다. 변화가 있다고 해야,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감지될 수 있는 성격의 변화일 뿐이다. - P497

은하에서의 변화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므로 수만 년 정도의 짧은 시간 속에서 뚜렷한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 P498

은하의 중심부는 힘을 가해도 모양이 변하지 않는 강체처럼 회전한다. 그러나 중심부에서 벗어난 지역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케플러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 P498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회전 속도는 감소하고 회전 주기는 증가하므로 하나의 나선 팔에서 은하의 중심에 가까운 부분이 완전히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먼 부분보다 짧게 마련이다. 따라서 나선 팔은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은하의 중심핵 주위로 점점 더 팽팽하게 감기려는 경향이 있다. - P498

하나의 나선 팔을 항시 같은 티끌, 가스, 별들이 구성하며, 그러한 나선 팔이 은하의 전반적인 회전에 정확하게 동참한다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선 팔은 점점 더 팽팽하게 감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나선 팔의 구조는 은하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실제로 나선 팔은 은하의 전반적 회전과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자신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한다. 나선 말의 패턴이 유지되는 것은 은하의 원반에서 모종의 파동 현상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 P498

가스와 티끌은 주위보다 밀도가 높은 나선 팔에 모이며 거기서 별이 된다. 이렇게 태어난 젊고 뜨거우며 밝은 별들 덕분에, 우리 눈에 은하수의 나선 팔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런 별들의 주계열 수명이 대략 1000만 년이고, 이것은 은하 회전 주기의 5퍼센트에 불과한 극히 짧은 기간이다. 그러므로 나선 팔을 장식하던 별들은 은하가 한바퀴를 돌기도 전에 자신의 주계열 수명을 다하고 빛을 잃는다. 그러나 그곳에서 곧바로 새로운 별들이 탄생하고 자기 주위에 발광 성운을 형성한다. 이 때문에 나선 팔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된다. - P499

하나의 별이 은하의 중심을 도는 속도는 일반적으로 나선 팔의 패턴이 움직이는 속도와 같지 않다. 따라서 별은 나선 팔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를 반복하면서 은하 중심을 일주한다. - P499

우리 은하에서 태양이 은하의 중심을 도는 회전 속도는 초속 200킬로미터 정도이다. 이 값은 시속 72만 킬로미터에 해당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기는 하지만 은하 중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약 2만 5000광년이나 되기 때문에 이 속도로 한 바퀴 도는 데 2억 5000만 년이나 걸린다. 그런데 태양의 나이가 대략 50억 년이므로 태양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은하의 중심을 20번 정도 완주했음을 알 수 있다. 나선 팔을 들락날락하기를 반복하면서 이렇게 여러 번 은하의 중심을 맴돌았다는 이야기이다. - P499

우리 은하에는 뚜렷하게 드러난 나선 팔이 두 개 있다. 태양이 은하 중심을 일주하는 동안에 하나의 나선 팔 안에 머무는 시간이 평균 4000만 년, 다음 나선 팔을 만날 때까지 나선 팔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8000만 년, 그리고 다음 팔로 들어가서 또 4000만 년을 지내고, 이 팔을 벗어나서 역시 8000만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 P499

별들이 태어나는 지역이 나선 팔이다. 나선 팔 안에 반드시 태양과 같이 중년기에 들어선 별들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우리 태양은 현재 나선 팔과 다른 나선 팔 사이를 지나는 중이다. - P499

태양계의 반복되는 나선 팔 통과가 지구에 모종의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태양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0만 년 전에 굴드 벨트Gould Belt에서 벗어났다. 굴드 벨트는 오리온 나선 팔을 이루는 다양한 복합체들 중의 일부로서 현재 태양으로부터 1000광년이 채 안되는 거리에 있다. (오리온 나선 팔에서 은하의 안쪽 방향으로 사수자리 나선 팔이 자리하고 바깥쪽에는 페르세우스 나선 팔이 있다.) - P500

나선 팔 안에는 고온의 기체 성운, 저온의 암흑 성간운, 갈색 왜성 등이 나선 팔과 나선 팔 사이에서보다 월등히 많다. 그러므로 하나의 나선 팔 안에 머무는 동안 태양은 거기에 있는 성운을 통과하게 될 뿐 아니라 별이 채 못 된 미소한 천체들과도 조우할 확률이 높다. - P500

태양이 암흑 성간운과 만나 그 안으로 들어갈 때 암흑 성운을 이루던 성간 티끌들이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빛을 차단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지구의 기온이 내려갈 것이다. 지구에서 대략 1억 년의 주기로 발생했던 빙하기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 P500

네이피어W. Napier와 클러비S. Clube 같은 학자들은 현재 태양계 행성들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고리들과 소행성 그리고 위성들의 상당 부분이 원래 암흑 성간운 내부에서 자유롭게 떠돌던 것들로 오리온 나선 팔에 들어온 태양계에 붙잡힌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실제로 그러했을 가능성은 적지만 흥미로운 생각임에는 틀림이 없다. - P500

검증도 간단히 할 수 있다. 현재 화성 주위를 돌고 있는 포보스 위성이나 혜성 등에서 시료를 채취해 지구로 가져와 실험실에서 그 성분, 특히 마그네슘 동위 원소들의 함량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된다. - P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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