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학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교육제도권 내에서의 공부와 능력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제도권 밖에서의 공부가 그것이다. 나는 제도권 밖, 즉 사회에서 여러 책들을 보며 하는 공부를 대단히 강조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중간한 대학원도 당사자가 이미 학력, 학벌위주 집단에 하고 있는 중이거나 혹은 공무원이 좀 더높은 자리로 승진하고자 할 때에는 도움이 된다.

대학원은 들어가기 힘든 곳에 다녀야 가치가 있다.

한편 공부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좋아서 교수가 되려고 하거나, 또는 연구소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한국에서 대학원을 나온 뒤 외국 유명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얻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가 쓴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한국의 대학과 교수 사회의 치부를 제삼자의 눈으로 아주 잘 보여 준다(세이노 같은 부자들은 별로 안 읽을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인데, 공부를 오래 하려는 사람은 교수들에 대한 박노자의 글을 반드시 읽어라).

그러나 박사 공부는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다. 공부나 연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부수적으로 얻는 것이 학위이어야지, 학위 자체가 목표라면잘못된 것이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공부를 상대적으로 ‘아주 잘하며‘, 전공이 ‘돈 버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나이가 많지 않다면 고학력을 추구한 대가를 경제적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투자대가를 경제적으로 크게 기대하지는 말아라.

나는 자격증이 당신의 연봉을 제한하고 당신이 부자가 되는 길에서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죽으면 죽었지, 이사회에서의 대가가 너무나도 뻔하게 고정되어 있는 그런 직업은 처음부터 피하려고 했다. 나는 내가 운전면허를 갖게 되면 운전사가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운전면허증에 의해 이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대가가 평생 고정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싫어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어쩌다 한 번 들어간 놀이판에서 평생을 놀게 될 가능성이 꽤 높지 않는가.

가난이 주는 절망에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던 나였다. 다시 가난하게 살 바에야 차라리 또다시 죽어 버리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부자가 될 것 같지 않은 직업 분야에는 아예 나 자신이 들어가지도 못하도록 나의 주변에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를 쳐 놓았던 것이다(그러나 직업이 없다면 일단은 아무 일이나 해라.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이라도 몇 년 하면서 돈을 모으라는 말이다).

주변을 보면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든지 간에 몇 개월 학원에서 배워 획득한 자격증에 의해 진로가 결정되는 사람들이 많다. 취직을 하기 위한 보조 도구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이건 직업 선택으로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이건 간에 그 자격증이 자신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라.

자격증은 당신을 봉급생활의 쳇바퀴 속에 던져 넣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으며 당신이 이 세상에서 운신할 공간을 제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과거에 무엇을 하였고 학교에서 무슨 공부를 하였든,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다면 의식적으로 부동산 중개업 방향으로만 기회를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방향으로 나갈 기회를 당신 스스로 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나 역시 그 어떤 자격증도 크게 믿지는 않는다. 직원이 어떤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그저 참고만 할 뿐이지, 그 실력을 크게 인정해 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어차피 대부분의 자격증은 보통 사람들보다 이론을 조금 더 안다는 의미일뿐 실무를 더 잘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격증에 지나치게 매달린다.

자격증을 소유함으로써 더 많은 대가를 받는 게 가능한 직종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격증 소지자가 많다는 것은 결국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며, 정작 기업에서 필요한 사람은 실무에 밝고 비지니스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임을 잊지말라. 입사할 때 유리한 자격증이 있기야 하지만 실무 수행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 한 곧 잊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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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행수를 바라거나 무엇인가에 쫓기며 하는 투자는 언제나 허무하게 끝나기 마련이다.

살다 보면, 해도 해도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이 보일 때가 있다. 어떠한 대안도 보이지 않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적인 때가 있는 것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

미래를 미리 계산하여 절망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저 이순간부터 당신의 미래 언젠가에 무슨 일인가가 새로 일어날 수 있도록 책을 읽고 지식을 축적하라!

뭘 배우든지 간에, 뭘하든지 간에, 미친 듯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하여라.

승자는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서 계산을 하지만 패자는 달리기도 전에 계산부터 먼저 하느라 바쁘다(유대경전에 나오는 말인데 정말 진리이다).

한편 의학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과중한 업무를 하게 되면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면서 신경이나 관절 등 신체 조직이 긴장하여  면역력이 떨어지고 뇌출혈, 심혈관계 질환, 뇌경색, 심근경색 등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여 보면, 결국 능력을 키워야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고 건강도 유지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능력을 키우려면 내가 권유하는 바대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내가 피 토하듯 하라는 것은 어느 한 분야에 정신을 계속 집중시키면서 두뇌를 계속 사용하라는 뜻이다.

왜 상을 누군가로부터 받으려고 하는가. 상은 당신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것이 진짜이다.
새겨들어라. 훌륭한 화가는 자기 그림이 마음에 들 때까지 붓을 놓지 않는 법이다. 당신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수준에 스스로 흡족할 때까지 공부하고 노력해라. 스스로 얻게 되는 뿌듯함, 내가 여기까지 알게 되었구나 하는 벅찬 기쁨, 이런 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당신이 허약 체질이라도 재미있는 컴퓨터 게임은 쉬지 않고 24시간 이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미를 느끼는 데다가 육체적 에너지의 손실이 크지 않고 두뇌를 사용하는 일이기때문이다. 육체노동이 아닌 일에서 자꾸 쉬고 싶어지는 이유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몸이 비비 꼬이고 싫증이 날 때는 자기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재미를 느끼기만 한다면 스트레스는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

셋째,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반드시 주어진다는 것을 믿어라. 문제는 그 시기가 당신이 생각하는 시간보다 더 미래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나는 "보상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돈다. 가속도가 붙기까지는."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넷째, 긴장감을 잃지 말라. 긴장감이 있다면 싫은 것을 오랫동안 억지로 하여도 탈이 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당신 정신 상태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 배수의 진을 치라는 뜻이다.

고민과 문제를 혼동하지 마라. 고민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운다는 뜻이고, 문제는 해답 혹은 해결이 요구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고민이 어떤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고민은 중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전 과목 모두 잘하는 사람은 정작 필요한 업무에서는 능력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학벌이나 학연이 보잘것없다면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나 역시 그랬다. 분명히 말한다. 대졸자들이 대학에서 보내는 4년과 동일한 기간 동안 어느 한  분야에 홀로 파고든다면 그 어떤 분야에서건 대졸자보다도 더 큰 실력을 갖추게 된다.

영어를 전공으로 하는 대학생들이 하루에 2시간씩 4년간 공부한다면 도사가 된다는 말을 우연히 듣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2시간씩 4년? 하루에 4시간을 하면 2년? 8시간이면 1년? 16시간이면 6개월? 18시간이면 6개월도 안 걸린다는 말인데… 한번 미쳐보자.‘

학력이 없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일을 배우려 하지 않고 돈을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

그러나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들다면, 빚이 많다면, 땡전 한 푼 없다면, 그 일(ex.대리운전)을 해라.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종잣돈을 악착같이 모아라. 그러고 난 뒤에는 독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배워라. 봉급이 적더라도 기를 쓰고 그 일을 해라. 거기서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학벌이 신통치 않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이다. 이 사회에서 일하는 데 있어 필요한 칼과 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것들을 갈고 닦아라. 이러한 과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어딘가에 틀어박혀서 그 누구와도 만나지 말고 배우고자 하는 분야에 100% 미쳐라. 밥 먹는 시간도 아깝게 생각하라. 많이 먹으면 졸음이 온다.

그리고 스스로 독립하거나 중소기업 같은 작은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좋은회사‘라는 곳에 다니지는 못하겠지만 일 전체를 배우게 되며 ‘길거리지식‘을 얻게 되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만이 중소기업의천국인 이유는 직원들이 일을 배워자꾸 독립하기 때문이다. 극복해야 하는 것은 체념과 게으름이다.

학벌이 좋건 나쁘건 부자가 되려면 세상 사람들이 돈을 놓고 벌이는 게임 (games people play) 을 충분히 이해하여야 한다. 그 게임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아동도서  <펠릭스는 돈을 사랑해> 같은 쉬운 책부터 읽어 보라. 하루에 3시간 이상 자기를 위한 투자에 사용하라. 학벌이나학력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은 게으른 사람들의 핑계일 뿐이다.

학력과 학벌이 좋으면 일단은 이 사회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이후에는 개인의 능력이 문제가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배제당할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하라.

직장내 파워 게임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필 포터가 쓴 〈먹어라 그렇지 않으면 먹힌다(‘어떻게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는가‘로 제목이 변경됨ㅡ편집자 주>를 반드시 몰래 읽어라.

결국 조직 내에서 계속 올라가지 못할 것 같다면 탈출하여  ‘길거리‘로 나와야 하는데 체면이나 안정에 대한 욕구가 커서 여간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조직에서는 일이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집단 속에 숨기 쉽고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기에 능력 배양을 등한시하는 경향도 많다.

부자가 되려면 미국인들이 ‘길거리 지식 (street knowledge)‘이라고 부르는 총체적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대조직에서 배우기는 대단히 어렵다.  언제나 일 전체보다는 일부분만 배우게 되고 맡은 분야  이외에는 관심을 잘 두지않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는 지식들을 얼마나 자기 머릿속에 이전시켰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창의력과 응용력이 얼마나 개발되어 있고 부가가치의 창출능력이 어느 정도나 있는지가 결정요인이다.

이런 능력을 기르려면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더 많은 대우를 찾아다니는 것보다는 일을 총괄적으로 좀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직장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정말드물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평생을 직장인으로 살게 되는  
빈도가 높고 소비 성향도 높다.

재미있는 것은 학력과 학벌이 화려한 사람들이 들어가고자 애쓰는 회사들이 대부분 학력이 짧은 사람들이 만든 회사라는 점이다. 이 사실은 부자가 되려면 학교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일까? 헛소리하지 말라. 특출한 능력과 노력이 따로 없는 한 학교 공부를 너무 안 하면 아예 기회가 박탈되어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는 더 높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에디슨은 학교 무용론을 직접 실천하고자 자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는데 그 아들은 나중에 사기꾼이 되어 감옥살이도 하였고 평생 비참하게 살았다.)

그렇지만 명심해라. 좋은 학력과 학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첫 출발점에서 폼 나게 설 수 있으며 가난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다‘는 뜻이지, 자동으로 부자가 되는 길이 열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그 출발점에는 비슷한 학력과 학벌 소지자들이 다 같이 경쟁자로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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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게임 투자로 역대급 재벌 08 게임 투자로 역대급 재벌 8
인랑 / KW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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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있는 문장들을 밑줄치며 읽었는데 그 중에 가장 임팩트있었던 것은 ‘게임에는 재미가 전부‘라는 말이었다. 나이 국적 소속 등을 불문하고 게임의 본질인 재미에 충실하라는 이 말이 어찌보면 단순해보이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어떤 대상의 본질에 집중하라는 말처럼 느껴져서 그랬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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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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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독서력이 미천하여 생소한 작가나 작품들이 많았던 관계로 완독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완독 전과 후의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바다만 경험했던 우물안 개구리같던 사람이 드넓은 태평양이나 대서양, 인도양 같은 바다를 경험한 듯한 느낌이었다. 읽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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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직 시를 통해서만 형상 없는 세계에 의미와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시는 언어에 기반하며, 언어의 진정한 음악은 오직 살아 있는 일상 구어의 진정한 리듬으로 회귀함으로써만 나올 수 있다.
크노가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풍부하고도 다양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경화된 형식을 파괴하고자 노력하고, 표음식 철자와 치누크어의 문장 구조를 새로운 시선으로 발견해 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슬쩍보기만 해도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 주는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 - P361

레몽 크노는 예술가란 작품이 따라야 하는 모든 미학규칙을 충분히 잘 알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러한 규칙들의 특수한 의미와 보편적인 의미. 그 기능과 영향까지 잘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노의 글쓰기 방법이 즉흥적이고 익살스러운 변덕을 따라갈 뿐이라고 보았던 사람이라면 그의 이러한이론상의 ‘고전주의‘에 놀랄 수도 있겠다. - P367

크노 특유의 ‘지혜‘는 보편적인 지식에 대한 욕구와 동시에 그 한계를 자각하는 능력에 그리고 어떠한 절대적 철학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 P368

그러나 논리학도 하나의 예술이며, 여러 사물에 규칙을 부여하는 것 또한 하나의 게임이다. 20세기 초반 내내 과학자들이 구축한 하나의 이상은 과학을 지식이 아니라  방법들과 규칙들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규정할 수 없는) 개념들, 공리들, 상세한 설명들을, 다시 말해 규정들의 체계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과학은 체스나 브릿지 게임과 같은 하나의 게임이 아닌가? - P369

그(레몽 크노)는 어떠한 이론이 승리했음을 입증하는 데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가장 역설적인 명제에서조차 오직 논리와 일관성만을 알아보고 유지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 P373

그러한(암울한) 시기에는 역사로부터 벗어나는 일만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도착점처럼 보였다. "역사란 인간의 불행에 관한 과학"이기 때문이다. - P375

자크 루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적인 사유의 생산자인 크노가 가장 좋아하는 영역은 결합 체계의 분야다. 결합 체계는 서구의 수학만큼이나 매우  오래된 고대의 전통에서부터 온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100조 편의 시》에 대한 분석은 이 책을 순수 수학으로부터 문학으로서의 수학으로의 전환이라는 맥락에 위치시키게 한다. - P378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인류의 희생 제의와 불 축제의 기원을 찾아 전 세계 구석구석을 도는 일종의 기행을 그리고 있다. - P382

파베세에게서 볼 수 있는 어둡고 근원적인 운명론은 그가 운명론을 피할 수 없는 출발점으로 본다는 사실 안에서 바라볼 때만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 P383

파베세의 전형적인 특징은 역사와 민속학의 차원에서 한 인물이 화자에게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안내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P384

이 책은 20세기 현대 문학의 거장이자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문학 세계로 유명한 이탈로 칼비노(1923~1985)가 자신이 애독하던 작가 및 작품에 대해 쓴 평론 모음집이다. - P389

칼비노는 국내 독자들에게도 《반쪼가리 자작》《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로 이어지는 ‘우리 선조는 3부작‘과 《보이지 않는 도시들》등의 작품으로 낯설지 않은 작가이다.  - P389

호메로스, 플리니우스, 크세노폰과 같은 고대 그리스·로마 작가에서부터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디드로, 볼테르, 근대 소설의 선구자로 흔히 평가되는 ‘로빈슨크루소‘의 대니얼 디포, 19세기 영국 문학의 디킨스,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톨스토이, 『닥터 지바고』를 통해 현대의 서사시를 창조해 낸 파스테르나크, 이탈리아 중세 르네상스시대 문인과 현대 작가들, 20세기 현대 문학의 새로운 잠재성을 보여 준 프랑시스 퐁주, 레몽 크노,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그가 논의하고 있는 작가들의 목록은 대단히 폭넓고 다양하다. - P390

이 평론집은 무엇보다 칼비노 문학 세계의 지형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문학적 지도라 할 수 있다. - P391

우리는 이 책에서 수많은 권장 도서나 필독 목록을 ‘강요하며 그 당위를 설명하는 지식인의 모습보다는 한 작품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그 책을 다시 펼쳐 들 때 느끼는 즐거움을 회상하는 순수한 독자로서의 칼비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P392

그가 이렇듯 독자로서 이야기하는 ‘고전‘의 필요성은 고전이 글쓰기와 읽기에 있어서 일정한 구조이자 규칙으로 또다른 잠재적인 가능성의 보고로 자리한다는 점에 있다. - P392

새로운 글쓰기와 읽기는 이러한 ‘고전‘이라는 구조가 펼쳐 놓는 자유로부터 나온다. 고전이라는 일정한 규칙으로부터 나오는 자유는 수사적 놀이와 선행 텍스트에 대한 패러디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의 맥락에서 새로운 실험을 허용하는 것이다. ("구조는 자유다 구조는 텍스트를 생산하며 동시에 잠재적으로 대체 가능한 모든 시들을 생산해 낸다. 이것이 ‘잠재적인 문학이 지닌 다양성의 사유이다. 규칙의 제약들로부터 문학은 스스로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에게 강제적인 규범을 부과한다.") 칼비노는 문학 텍스트, 질서에서 새로운 무질서가 생산되고, 다시 그러한 무질서 속에서 질서가 창조되는 순환적 구조 안에서 바라보며, 그러한 반복 속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것으로 본다. - P392

칼비노는 하나의 작품 속에서 중심적인 진실을 고집하지 않는 반(反)본질주의적인 독해를 하면서도, 문학의 고전적인 기능, 그러니까 독자들에게 의미를 제시하고 역사와 문화를 대하는 윤리의 태도를 제시하는 일을 중요시하고 있다. 텍스트의 본질적인 중심을 거부하고 표면의 무늬를섬세하게 읽어 내며 형식과 서술 구조를 탐색하다가, 어느 순간 이미지의 연쇄를 끊고 수직적으로 의미를 통찰해 내는 힘이야말로 칼비노가 작품을 읽는 독창적인 시각이라 할 수있다. -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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