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스어 ‘프네우마pneuma‘ 라는 것이 ‘숨결‘, ‘숨쉬기‘, ‘영혼‘ 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얘기를 했었다.

일반적으로 영혼이라는 것은 물리적 실체인 육체 또는 육신과는 상반되는 개념으로써 물리적 실체가 없는 어떤 정신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법의학자로써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다보니 어느순간 영혼이라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듯하다. 그래서 육체와 영혼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도 했는데,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 자신이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영혼이라는 건 아무래도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다보니 오늘 저자가 말해준 답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물론 알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그럴싸한 답으로 들렸다. 영혼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데 충분히 참고해볼만한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영혼은 물과 같은 것이 아닐까. 담는 그릇에 따라 물의 형태가 달라지듯, 우리 영혼도 담긴 육체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개는 개의 감각으로, 고양이는 고양이의 몸으로, 몸에 갇힌 영혼은 그렇게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 아닌지. - P53

우리는 어쩌면 잠수복을 입고 바다를 유영하듯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래 입은 옷은 벗기 힘든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두려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마도 성인聖人들은 세상을 육체의 닫힌 감각이 아닌 영혼으로 바라보라고 이야기했나 보다. - P53

"이 삶도 모르는데 저세상 일은 알 수가 없다" _공자 - P53

마치 나무의 맨 끝이 곧 맨 앞인 것처럼, 타인의 생의 끝에서 느낀 메시지를 품고 돌아서서 다시 삶을 향해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주 느낀다. 정상에서 굴러떨어진 바위를 끊임없이 다시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 P53

우리 몸속 혈관을 전부 연결하면 무려 지구를 세 바퀴 도는 길이가 된다. 그 길고 긴 혈관에 피가 도는 시간은 단 46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사람이 기적이다. 솟아오르는 힘의 표출이고, 솟아오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이다. - P54

여태껏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끼리의 연결과 대화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난 가지만 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 P54

주변을 돌아보면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하나도 없다. - P54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있을 뿐,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다. - P54

"죽음은 이미 지나갔던가 또는 앞으로 올 것인가. 죽음 속에 현재는 없다" _보에티우스 - P54

원문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동아줄로 바늘귀를 꿰는 것보다 어렵다"이다. 바늘귀를 통과하는 낙타보다 훨씬 논리에 맞는 비유가 아닌가. 히랍어로 ‘gamta‘는 동아줄이고, ‘gamla‘는 낙타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성경을 필사해 옮겼는데, 그 과정에서 ‘t‘가 ‘l‘로 잘못 옮겨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필기체로 쓰면 혼동하기 쉬운 글자이니 말이다. 그러면서 졸지에 동아줄이 낙타가 되고, 또 졸지에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기이한 상상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 P61

(습한 환경에 놓인 시신은 부패가 진행되지 않고 밀랍처럼 변하게 되는데, 이를 ‘시랍화‘라 한다. 이러한 시신은 부패가 진행된 경우보다 오히려 손상에 대한 해석을 하기가 더 용이하다). - P66

인간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인간은 경험해보지 못한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 외계인을 예로 들어보면, 우리는 외계인을 만난 적이 없기에 외계인의 외모를 상상할 때 인간이나 동물의 생김새를 기준으로 변형시킬 뿐이다. 눈이 백 개 달렸다거나 혀가 촉수처럼 뻗어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경험치에 근거해 거기서 조금씩 거짓을 보탤 뿐이다. - P70

의학도들에게 유명한 격언이 있다. "말발굽 소리가 나면 얼룩말이 아니라 그냥 말을 떠올려라." 환자에게 어떤 증상이 발생했을 때, 선입견을 갖지 말고 증상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 P72

법의학자는 때로는 죽은 이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어야한다. 아무런 항변도 호소도 할 수 없는 망자의 옆에 우리가 서 있을 것이다. - P72

일반적으로 사람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인식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 P77

멍이 들었다는 것은, 살아있었다는 것이다. - P78

내가 그 아이들을 후원한 것은 가장 먼저 그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지원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이 함께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어 주면 좋겠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그저 엄청난 슬픔과 파괴 속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가장 먼저 본 우리 모두가 그 아이들을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 P84

누군가의 과실로 사랑하는 이를 보내서야 안 되지만, 그 가족을 더욱 괴롭혔던 것은 죽음을 가리고 있던 거짓이었다. 거짓을 밝히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 아버지를 그 누가 도와줄까. 죽음 앞에서 유족들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일들이 많다. 그때 내가 같이 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싸움을 시작할 때 뒤에 있어주고, 오해가 있다면 풀어주고, 억울하다면 같이 맞서줘야 하는 것까지가 나의 일이다. - P92

가족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뭔가 이해되지 않고 미심쩍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제대로 이해시켜줘야하지 않을까? 죽음의 진실을 자세히 밝혀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객관적 진실을 전하되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날, 유가족과 병원을 중재해줄 기관의 필요성을 절실이 느꼈다. - P99

부검을 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죽음, 그 진실을 밝히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구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문제를 찾아내는 것, 그래서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 거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 P99

사고는 중립적으로 봐야 한다. 고의가 전혀 없었음에도 의도치 않게 나쁜 결과가 벌어지는 것이 사고다. 절차대로 최선을 다해 조치를 했음에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변수들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료사고라고 하면, 무조건 의료 과실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의료진의 실수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됐을 때를 의료 과실이라 하고, 실수가 입증되지 않았을 때는 의료 ‘사고‘라고 해야 한다. - P100

임상법의학을 다룰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전제 조건은 의사가 얼마나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느냐이다. 의사는 신이 아니기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수할 수 있다. 그래서 단순한 사고인지, 과실치사인지, 고의성이 있는지 등병원 내 사망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제삼자가 면밀하게살펴보고 진실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가 의사와 환자, 양쪽을 객관적으로 다룰 수 있어야만진실도 규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100

어떤 죽음이든 곱씹어보면 그런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원인이 있다. 이것을 찾아내 해결한다면 상당히 많은 죽음을 막을 수도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법의학의 이러한 역할에 대해 ‘예방법의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 P102

아주 사소한 일, 사소한 선택으로 우리 삶은 참 많이 달라질 수 있다. - P103

‘숨김없이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할 테니, 오늘 이 자리의 대화부터는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P105

마음속에 가득한 불신부터 제거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105

사람은 불안해지면 집중력이 흐려지고, 집중력이 저하되면 또 사고가 생길 수 있다. - P105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이걸 끌어나갈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다. - P108

환자와 병원을 중재하는 역할은 법의학 관련 교수가 하면 가장 좋다. 법도 알고, 의료체계도 알고, 경찰도 상대해본 경험이 있으니 여러 상황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법의학 교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 P109

법의학자로 일해온 우리들은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알기에 그들의 격한 반응과 무너지는 심정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 당장은 반감을 보이고 거칠게 나와도 결국 소통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소통하다 보면 나중에는 그들과 라포가 형성된다.
즉, 신뢰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P110

나는 유족들과 대화하거나 합의할 때는 마음을 담는다는 중요한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환자나 가족들의 말과 행동만 볼 게 아니라, 그 이면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먼저 그 마음을 보아야 유족들도 그런 우리의 마음을 받아준다. 병원 사람들이 죄다 자신들을 속이고 사기를 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 아닌 마음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 P112

나는 이 일을 오래 해온 덕분에 때로는 슬픔과 서운함이 분노로 표출되기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유가족의 성난 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 P113

배운 대로, 교과서대로, 원칙대로 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상실의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는 매뉴얼대로 일을 처리하기에 앞서, 그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주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 P113

사람이 몸이 아프면 활기가 넘치던 때와 달리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된다. 병원에 들어가면 환자복부터 갈아입힌다. 먹는 것부터 자는 것까지 일상의 상당 부분을 의사가 시키는 대로, 병원의 스케줄대로 따라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수차례 피를 뽑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검사를 받는다. 내 마음과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게다가 아프면 몸과 마음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 P114

크든 작든 사고가 일어나면 우선 괜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환자의 마음부터 보듬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상의 주도권을 뺏긴 상태로 의료진에게 의지하다가 상황이 나빠지면 덩달아 오해의 마음도 커지게 마련이다. - P115

감정이 악화되기 전에 그 마음을 헤아려주고 다독여주어야 한다. 스트레스와 같은 마음의 고통이 병을 악화시킬 수 있듯이, 반대로 의사의 따뜻한 한마디가 병을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될 수도 있다. 의사와 환자 간에 쌓인 정서적 교감은 불신과 오해, 감정적 분노도 사그러뜨릴 수 있다. - P115

어쨌든 사실관계를 올바르게 정리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 P116

"의미를 찾을 때 사람은 생존할 수 있다." - P117

언젠가 해방될거라는 희망에 매달렸던 이도, 신에게 의존했던 이도, 반드시 선이 악을 이길 것이라는 신념에 의지했던 이들도 삶의 의지를 놓을 때 자신만의 의미를 찾은 이들은 견뎌낸다 - P118

실제로 이 책(《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원제는 ‘맨즈 서치 포미닝 Man‘s Search for Meaning‘ , 우리말로 번역하면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 P118

인간은 ‘내가 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부단히도 그 해답을 찾아가는 존재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안전하고 공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 P119

그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든 견딜 수 있게 해주려면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 즉 목표를 얘기해주어야 한다 ...(중략)...그것이 빅터 프랭클이 말한 ‘로고테라피 logotherapy‘, 즉 ‘의미치료‘다. - P120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_신현림 시인의 시「나의 싸움」 - P120

인간은 원래 의미 없는 짓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여야 하며 뭘 해야 하는지 의미를 부여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 P121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P122

거역할 길 없는 진리들도 인식됨으로써 사멸한다. - P122

부조리함을 극복하거나 부정하려 애쓰지 말고 차라리 받아들이라 - P122

부조리함에 희생된 이들끼리 연대하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함에 맞서는 반항이며 삶에 희망을 안겨주는 유일한 방법 - P122

조금 이르거나 느리거나 방법이 다를 뿐 인간이 죽는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니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겼지?‘라며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의 답을 찾으려고 평생을 바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부조리의 답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겠지만, 그 속에서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의미를 찾아가길 바란다. 그것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살아가는 먼지 같은 존재인 인간이 할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저항이다. - P123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끝끝내 생존한 사람들은 평소에 강한 인내심으로 많은 고난을 극복해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고난이 닥치기 전까지 행복했던 시간이 많았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행복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그동안 삶 속에서 바로 그 행복을 자주 경험한 사람들이다. - 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령 객관식 시험 문제 같은 데서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배경지식에 근거하여 올바른 접근법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 정답을 맞추는 경우도 있겠지만, 접근법같은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오지선다 중에 그냥 아무 답이나 찍었는데도 답을 맞추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운빨(?)이 따라준 경우다. 하지만 결과가 옳다고 해서 그 과정까지 옳았다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게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의 교훈이다.

다만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세상은 항상 이성적인 논리로만 돌아가는 곳이 아니기에 이러한 운빨(?)이 어느정도는 작용한다고도 봐야할 듯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일단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겠으나 운의 영역이라는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어보인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확률이라는 개념은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을 모두 고려한 어떤 가능성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항상 옳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좀 더 높은 쪽을 생각하면서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한 쪽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도 대비하는 그런 자세와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잠시 언급했었지만 확률의 본질은 예측보다는 관리Management에 좀 더 가깝다.
.
.
.
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저자가 예술 작품의 가치가 매겨지는 방식에 대한 간단한 공식을 적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는데, 개인적으로 상당부분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이라는 것의 자본주의 사회하에서의 가치는 그것의 인기와 그것의 지속시간에 따라 정해질거라는 저자의 말에 그냥 직관적인 느낌으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혹여나 예술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러한 저자의 얘기에 동의하지 못하실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어떤 작품의 순수한 예술적 가치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얼마나 되는가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좀 더 맞다고 보여진다.

곧바로 뒤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인쇄술로 인해 글쓰기의 가치가 사라졌고, 사진기로 인해 그림의 기술적 가치가 사라졌고, 축음기로 인해 음악의 가치도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독자인 나는 처음엔 이게 무슨 궤변인가 싶었으나 문맥적 의미를 추론해보니 어떤 생각을 통해 창조된 새로운 활동이 아니라, 사람이 그냥 단순히 다른 글을 배껴쓰는 (과거의 필경사들이 했던 것과 비슷한) 글쓰기, 어떤 이미지를 단지 똑같이 배껴 그린 그림, 어떤 악기를 직접 연주하여 단순히 어떤 소리를 흉내내는 행위 같은 것들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단순히 어떤 것을 흉내내는 정도의 예술은 가치가 별로 없다는 말로 난 이해했다. 만약 어떤 예술 행위가 결과물이 대중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는 방식으로 행해진다면 그것은 저자가 앞서 언급한 것들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
.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요즘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챗GPT의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이것이 가진 한계점에 대한 얘기를 덧붙인다. 핵심은 어떤 데이터가 챗GPT를 통해 학습되느냐에 따라 그것이 옳은 정보가 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데이터의 진실성이 오히려 중요하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이런저런 가짜 뉴스들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온갖 가짜 뉴스들을 챗GPT같은 인공지능이 학습한다면 그것을 학습한 챗GPT에서 도출되는 결과물이라는 것도 결코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좀 더 편해지고자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어쩌면 우리 삶의 근간을 완전히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에 직접적으로 나온 표현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의 역습‘에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술이 가져다주는 편리성 외에도 그 이면에 있는 위험성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이 맞았으니, 답을 찾는 접근법이 맞았다는 논리는 완전히 틀린 논리이다. - P165

숫자가(혹은 데이터가) 객관적일 수 없다...(중략)... 즉, 데이터가 동일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데이터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숫자(데이터)를 인지하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감정적으로 극대화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무엇인가를 대변하는 데이터는 객관적일 수가 없다. - P170

왜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수를 인식하는 정도가 달라질까? 왜 서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달라질수 밖에 없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편향된 생각(혹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사실을(세상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 P170

세상은 크게 인지적 편향을 인식하는 자와 인식하지 못하는 자로 나뉘며, 이러한 편향을 인식한 자들 가운데서는, 이러한 편향을 이용하려는 자와 이용당하지 않으려는 자로 나뉜다고 봐도 된다. 그러면 인지적 편향을 이용하려는 자들은 누구인가? 이러한 부류의 대표 주자들은 정치인과 언론인이다. 그리고 정보를 독식하고 있는 부동산 중개인이나, 자동차 딜러, 자칭 전문가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펀드매니저, 미래를 내다볼 줄 안다는 예언가, 자기네 가게 물건이 싸다고 호객을 하는 점원 언니까지도 모두 이런 인지적 편향을 이용한다.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나의 인지적 편향을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 P171

당신이 만약, 스스로 다른 이들 보다 인지적 편향에 대해서자유로울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 당신은 인지적 편향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 P172

아무리 데이터 리터러시를 외치고, 데이터의 객관성을 외친다 해도 스스로 인지적 편향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아무리 데이터 분석을 잘하더라도 편향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 P172

내가 인지적 편향을 인식한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이 이러한 인지적 편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적 편향의 인식하는 것이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을 할 수 있는 기본이 된다. - P172

데이터 리터러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사결정이 필요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모델링을 하고, 감정이나 감성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돕는 능력을 의미한다. - P173

행동경제학은 인간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전제를 부수고 들여다보는 학문이기에, 개인이나 집단에서 표출되는 인간 습성의 데이터를 다루는 사회과학분야에서는 꼭 필요한 학문적 도구이다. 이러한 인지적 편향을 깨는 것들(행동경제학, 게임이론 등)을 잘 이용해야 데이터 리터러시를 갖게 된다. - P173

페이오프 함수Payoff Function(각 플레이어가 전략적 선택에 따라 받게 되는 보상이나 결과를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 - P177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게임이론 중 하나인 혼합 전략MixedStrategy은 게임 이론에서 플레이어가 여러 전략 중 하나를 확률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전략적 우위를 분석하거나 내쉬 균형을 찾기도 한다. 혼합 전략의 일반적인 적용은 바로 일명 "찍기" Randomize라 불리는 방법이다. - P178

(때로는 찍기가 최선의 전략이다) - P179

우리 큰 딸이 나나 아내 몰래 나쁜 짓을 덜 하는 이유는 아빠인 내가 모든 일을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느만큼 알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P179

딸 아이 예제에서의 최선의 전략을 적용하는 방법은 아이가 뭔가 나쁜 짓을 하다가 들켰을 때 무조건 혼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1)혼도 내다가, 또 때로는 (2)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하다가, 또 가끔은 (3) 나중에 슬쩍 알려주기도 하는 것이다. 각각의 비중은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적으로는 (2)>(3)>(1)의 순서가 좋다. - P180

즉, 도덕적으로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되도록 혼은 내지 말고 설령 눈치를 채더라도 대부분은 그냥 넘어가 준 다음, 가끔 딸에게 "너 예전에 그런 거 아빠가 알고 있었다" 정도만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순서가 중요한 이유는 혼을 내는 것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효과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했다고 매를 들면, 처음에는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같지만, 결국 (아이들 입장에서) 내성이 생겨서 더 강한 자극을 요구 받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P180

게임 이론은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대체재 - P181

다양한 문제 상황에 대해 과학적, 논리적으로 표현(모델링) 하는 훈련에 있어 수학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 - P182

어떤 문제에 대한 최적화된 문제 꼴을 찾고, 해당 문제 꼴을 쉽게 풀 수 있는 기법을 선정하는 것이 바로 시스템 및 프로세스 설계이다. 즉, 데이터 분석을 하기에 앞서 이 같은 프로세스 설계가 문제의 현상과 본질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데이터 분석보다 훨씬 더 말이다. - P182

데이터 사이언스에서 시스템이나 오퍼레이션이 중요한 이유는 데이터 사이언스를 이용한 분석 도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한다고 했을 때, 일련의 절차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석을 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스템과 절차 설계가 데이터 분석 도구 자체의 성능보다 훨씬 중요하게 작동한다. - P188

"Everybody‘s responsibility is no one‘s responsibility."
모두의 책임은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이 된다. - P195

데이터와 관련한 분야를 아우르는 기초 학문은 통계학이며, 컴퓨터 이론과 관련된 분야를 아우르는 기초 학문은 수학이다. 이렇게 다른 듯 같은 분야를 두루두루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가 되는 학문 영역을 잘 알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이 되는 영역을 제대로 안다는 의미는 단순히 데이터 사이언스 자체를 공부한다는 것을 넘어서 문제의 본질을 다양한 각도로 파악할 줄 아는 것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 P197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하는 데 필요한 것이 리버럴 아트Liberal Arts (인문학)이다. 인문학 공부를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바탕과 기본을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문제 정의를 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데이터 사이언스를 이용해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 문제가 제대로 정의되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분석을 한다고 해도 다 헛일이다. - P198

조기 교육 단계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발생하는 수많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는 기본을 배우는 공부에 집중하는 게 맞다. 그래야 새로운 문제를 당면했을때, 그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 P198

우리가 데이터 리터러시라고 말하는 것도 결국 또 다른 문제 꼴인 데이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대로 된 문제의 이해는 데이터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푸는 시발점이 된다. 이는 비단 데이터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를 표현하는 모든 수단(문장/글, 수학 수식, 데이터 세트, AI 모델 등)에 다 해당한다. - P198

결국은 문제의 본질을 읽는다(혹은 이해한다), 라는 기본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P199

리터러시는 정보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그 정보가 어떤 경로(책인지, 모니터인지, 킨들인지, 휴대폰인지 나아가 빅데이터인지, AI인지, 챗GPT인지)를 통해서 만들어지는지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 P199

리터러시를 향상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문제의 문맥(상황)이나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수학적 사고력을 포함한 리버럴 아트, 인문학이다. - P199

챗GPT는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를 기반으로 한 챗봇chat Bot이다. GPT는 (인공지능) 언어 모델 중 하나로 빅데이터를 사용하는 거대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 계열에 속해 있다. 여기서 "거대"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바로 빅데이터이다. 그러니까 빅데이터라고 불리는 거대한 언어데이터가 없었다면, GPT는 탄생할 수 없었다. - P204

GPT가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인데,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데 있어서 기존의 인공지능 모델들은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결과를 도출하는 것에 반해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존의 학습을 기반으로 결론이나 데이터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고 있다. - P204

리즈닝 Reasoning이란 주어진 조건(혹은 데이터)을 가지고서 여러 각도로 추리해서 결과를 생성해 내는 것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영역을 이제는 인공지능이 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 P206

이제 점점 더 데이터 분석만 할 줄 아는 데이터 과학자들이설 자리가 없어짐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겠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영역의 지식 없이 기본적인 데이터 사이언스 도구만 사용할 줄 아는 수준의 데이터 분석가들은 더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 P206

일반인들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습관처럼 사용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배운다는 것과는 약간 차별점을 두고서). - P207

챗GPT를 사용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GPT를 이용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우선 되어야 한다. 이 고민은 챗GPT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챗GPT가 되었건, 달리 DALL-E(이미지 생성 인공지능)가 되었건, 에덱셀SDXL(이미지 생성 인공지능)이 되었건 관련 도구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한 다음에 배워야 한다. - P207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당신이 미래에 어떤 필요 때문에 해당 기술을 사용할 시기가 되었을 때는 해당 기술은 이미 당신에게 다가와 있을 것이다. - P207

당신이 최신형 컴퓨터를 사려고 한다고 가정해보자. 언제사는 것이 좋을까? 컴퓨터가 필요한 바로 그 순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최신 컴퓨터라도 2~3년이 지나면 구닥다리가 된다. 그러니 필요하지도 않는데 지금 당장 컴퓨터를 구매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기술이란 그런 것이다. 특히, 발전 속도가 빠른 기술은 더더욱 그렇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기술이 아무리 최신이어도, 1~2년이 지나면 구닥다리가 된다. 그리고 그 기술이 정말 혁신적인 기술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사용하기 편리해지고, 머지 않은 미래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개선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금의 잡지식들은 깡그리 쓸모없는 구닥다리가 된다. - P208

지금 모두가 챗GPT를 쓰고, 달리를 쓰고 있다고 해서 너무안달복달하지 마시라. "The technology shall come to you if you don‘t come to the technology." 당신이 기술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기술이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 P208

챗GPT는 자신이 뭔가를 알아서 대답하는 것은 아니다. 챗GPT의 기본이 되는 NLP Natural Language Process (자연어 처리)는 기존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학습한 내용을 기반으로 관련 사항을 "조합"Generative 하는 원리이다. 그래서 많은 양의 학습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면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 가짓수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그럴싸한 답을 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 P210

조합 형태의 모사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이 생각하는 문학,
예술과 같은 창조 영역이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창조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보면 조합을 통한 모방이었음을 역으로 증명한다. - P210

챗GPT는 앞으로 크리에이티비티 Creativity(창의성/창조성)를 새롭게 정의할 것이다. 우리가 창조적이라 여겼던 많은 것들이(글, 음악, 그림, 디자인, 심지어 혁신 활동까지) 더이상 창조적인 것과 전혀 관련이 없는 "조합"의 영역임을 깨닫게 해준다. - P210

나는 개인적으로 평범한 머리의 집단 지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평범한 머리가 아무리 모여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봐야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11

집단의 구성원이 가진 데이터나 정보를 조합하는 것에서 창조적인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수준의 창조성은 한 명, 혹은 소수의 천재에게서 나온다. 이들의 생각은 세상을 바꾸는 초석이 된다. 이 같은 진정한 의미의 창조성은 챗GPT가 기존의 데이터를 조합해서 만들어 내는 "가짜" 창조성과는 확실하게 구별된다. - P212

앞으로의 예술 작품에 대한 가치는 오로지 대중들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인기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이 될 것이다(가치 = 인기 X 지속 시간). 그러면 예술 작품의 가격은 그 당시의 인기 정도에 따라 매겨질 것이며, 이때 매겨진 가격이 예술 작품의 가치라고 착각하게 된다. - P213

이미 유명한 셀럽의 발로 그린 그림이 몇 십년 미술 전공을 한 예술가의 그림보다 더 비싸게 거래 되는 세상이다. 유명한 유튜버의 1분짜리 음악이 몇십 년 작곡 공부를 한 이들의 곡보다 훨씬 더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예술적 가치는 오로지 대중들의 인기와 그에 상응하는 가격으로 평가 받는 세상이 될 것이다. - P213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글쓰기의 가치가 사라졌고, 사진기가발명되면서 그림의 (기술적)가치가 사라졌고, 축음기가 나오면서 음악의 가치도 사라졌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예술 전반을 향해 그 가치를 사라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오직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여되는 절대적인 예술적 가치따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P213

챗GPT의 특성 즉, 기존의 데이터(학습)를 기반으로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답을 조합한다는 점은 문학, 사회, 예술과 같이 딱히 정답이 없는 분야에서 더 나은 답을 구하기 위한 집단 지성을 무력화시킨다. 이는 문학, 사회, 예술과 같이 정답이 딱히 없는 분야에서 보다 나은 답을 구하려는 집단 지성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뜻하고, 수학이나 과학과 같이 정답(혹은 진리)은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는 완벽한 정답을 찾아가는 분야에서는 다수(데이터)가 떠드는 대로 해당 연구의 방향성이 쏠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P214

혹자는 해당 분야를 알고 있는 전문가 그룹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게 될 경우, 대답의 질이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전문가들조차도 정답을 모르는 (그렇지만, 안다고 착각하는) 분야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에의 의존은 완전히 정답을 찾기 위한 새로운 방향의 접근을 방해하는 도구로 동작할 가능성이 높다. - P214

챗GPT가 16세기에 나타나 그 당시의 지식을 학습했다고가정해보자. 천동설이 주류였던 그 시대의 챗GPT가 내놓는 답은 지동설이 아닌 천동설일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 집단의 좋은 데이터로 학습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16세기에는 전문가들 또한 천동설을 진실로 믿었다). 대중의 집단 지성이 아니라 극소수의 천재(?) 과학자들의 과학적 사고가 없었다면 지동설은 당분간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 P215

인공지능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 사이언스는 과학이 아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도출된 해답은 실제에 대한 답(진실)을주는 것이 아니라, 답을 얻기 위해 학습에 사용된 데이터의 대푯값에 따른 결과만 정답으로 제공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푯값은 데이터의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다. 천동설이 대세인 데이터를 학습한 챗GPT에서는 천동설이 정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 P215

데이터 사이언스는 과학적 기법이라기보다는 다수결(데이터의 대표성)에 의해 정답이 바뀌기에 비과학적 기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특히 찾고자 하는 해답이 사람이나 사회와 관련된 것들(사회 과학 분야)이라면 분석이나 학습을 위한 데이터는 해당 집단의 비과학성(혹은 비합리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의 비합리성은 이후 아무리 정교한 데이터 사이언스 기법이 나온다 하더라도 올바른 해답을 찾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 P216

많은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기술이ㅈ엄청난 발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가 마냥 밝지만은 않은 이유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범용성과 학습 데이터의 태생적 한계로 비롯된 데이터의 비과학성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을 이용할 땐 하더라도 태생적 한계를 알고 이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이비 과학자가 된다. - P2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에서 말하는 독서의 제3수준에 해당하는 ‘분석하며 읽기‘는 앞의 단계인 ‘기초적 읽기(독서의 제1수준)‘, ‘살펴보기(독서의 제2수준)‘에 이어서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분석하기의 세부원칙 중 첫번째로 ‘책을 종류와 주제에 따라 분류하라‘ 는 얘기를 했었다. 본문에서는 정확한 분류가 힘든 책의 사례들이 더러 나오기도 했지만, 분류가 힘들 경우 저자는 ‘분석하기‘의 바로 직전 단계인 ‘살펴보기‘를 먼저 할 것을 권한다. 이 작업을 먼저 거치면 자신이 읽으려는 책이 어떤 종류와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인지를 분류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살펴보기‘에 대해 복습 차원에서 다시 한 번 간단히 언급하자면 책의 제목, 챕터별 부제, 목차 그리고 저자의 머리말이나 서론,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찾아보기 등을 미리 훑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대다수의 독자들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이러한 ‘살펴보기‘만 제대로 하더라도 비교적 단시간 내에 굉장히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한다.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라는 책과 관련된 얘기가 나온다. 저자는 자신이 가르치는 (비교적 읽기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의 1장에 왜 ˝안토니누스 왕조 시대 제국의 영토와 군사력˝이라는 것이 나오는지에 대해 물었다고 하는데 그 학생들 중 아무도 저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잠깐 설명하자면 비록 본문을 직접 읽기 전일지라도 책의 제목에 ‘쇠망사Decline and Fall‘라는 말이 들어있었고 1장에서 ‘안토니누스 왕조‘에 대해 나왔으므로 저자가 ‘살펴보기‘ 단계에서 언급했던 제목과 목차만이라도 파악했더라면 안토니누스 왕조가 로마제국의 절정기였던 왕조였고 여기서부터 몰락이 시작된다는 식으로 어느정도 전반적인 내용의 유추가 가능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을 보면서 본문으로 직접 들어가기에 앞서 위와 같은 ‘살펴보기‘를 통해 선제적으로 본문의 내용을 예상하면서 읽어나가는 것이 한 번을 읽더라도 본문 내용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저자가 ‘살펴보기‘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제목을 잘 파악해 두면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에 대한 기본적인 사실을 미리 알 수 있다. - P76

사람들이 제목과 머리말에 신경 쓰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읽고 있는 책을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못 해서다. 그래서 분석하며 읽을 때 이 제1원칙을 따르지 않는 셈이다. 하지만 이 원칙을 따라 하면 저자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저자들은 자신이 쓴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머리말이나 제목, 부제에 이를 잘 표현해 놓는다. - P77

아인슈타인과 인펠트는《물리학의 발전》이라는 책 서문에서 "일반 대중도 읽을 만한 과학책이라고 해서 소설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또 자세히 다루기 전에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 내용을 분석한 목차를 만들었고 주제의 의미를 상세히 부연 설명해 주는 표제를 각 장에 적어두었다. - P77

이 책이 어떤 책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러한 것들을 눈여겨보지 않은 그 자신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다른 질문들에는 더더욱 답을 못하고 쩔쩔맬 수밖에 없다. - P77

그럼 제목만 읽으면 될까? 내용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해 놓은,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제목이라도 머릿속에 책을 분류할 표가 미리 그려져 있어야 한다. - P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사뭇 진지하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 바쁜 삶 속에서 잊고 지냈던 중요한 것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길 바래본다.
.
.
.
오늘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기록의 중요성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잊혀지고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기록이 남아있다면 기록했던 것을 보고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여기서 죽음과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기록에 대한 얘기가 나왔냐는 식의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이것은 저자가 법의학자로 일하면서 정확한 원인미상의 죽음이 생각외로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만약 망자들이 죽기 전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었다면 보다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아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겠다는 판단에서 나온 저자의 생각이다.

독자인 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죽음과 관련된 기록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남기게 되는 기록들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블로그나 북플 앱을 통해 독서기록을 남기는 것도 내가 독서한 내용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그분들의 몫이고, 어쨌든 나는 기록하지 않으면 읽었던 책의 내용들을 기억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이렇게 글을 남긴다. 물론 잘 쓰면 더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읽고 알게 되거나 느낀 것들을 자유롭게 기록하는 데 더 중점을 두는 편인 듯하다.
.
.
.
오늘 읽은 부분 중에서 여기 별도로 밑줄치진 않았지만 그리스의 마지막 철학자였던 플루타르코스가 자신의 아내에게 썼던 위로의 글이 나온다. 플루타르코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라는 작품으로도 유명한 사람인데, 자신이 일 때문에 집을 떠나있던 동안 딸아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고 한다. 이 상황에서 플루타르코스 자신도 물론 고통스럽고 슬펐겠지만 자신 못지 않게 슬퍼하고 있을 아내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 편지에서 플루타르코스는 딸아이에 대한 고통스러운 생각으로 인해 자신의 딸아이에 대한 기억마저 지우지는 말자는 말을 아내에게 건넨다. 슬픔에 파묻혀 딸아이가 주었던 기쁨마저도 잊어버리진 말자는 게 이 편지의 핵심이다.

저자는 이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이 업무상으로 만나게 되는 유족들에게 자신이 유가족의 슬픔을 이루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아이와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은 잊지 마셨으면 좋겠다는 말로 위로를 건넨다고 한다.

법의학자의 직업 특성상 유가족들을 자주 만날 수 밖에 없을텐데 저자의 말이 유가족들에게 100% 위로가 되기는 물론 힘들겠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나은 다른 어떤 위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당연히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지만, 어차피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죽음으로 인한 고통의 바다에서만 허우적대기보다는 살아생전에 망자와 함께 했던 좋았던 추억들을 잘 간직하고 그러한 기억들을 더듬어보려는 태도가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바람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은 이렇게 썼지만 만약 내가 당사자가 된다면 이렇게 담담하게 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자가 인용한 플루타르코스의 얘기처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 왠지 그냥 맞는 것 같다. 이는 어쩌면 고전이 괜히 고전인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
.
오늘 포스팅의 맨 마지막에는 영혼에 대한 저자의 의문이 나온다. 솔직히 독자인 나는 평소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의 궁금증에 호기심이 생겼다. 영혼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 포스팅에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라. 죽음에는 분명한 교훈이 있다."

내가 책의 저자라면, 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죽음을 기록하고 또 논평할 것이다. 죽음을 가르치는 사람은 동시에 삶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_몽테뉴《수상록》 - P5

"모든 의사들이 사람을 살리려 하지만, 저는 이미 사망한 사람을 통해 놓친 것이 무엇일까를 되짚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P7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 P8

"우리가 보는 것들은 모두 다 죽어가는 것들이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 P9

그렇다. 새순도, 갓 태어난 아기도 계속 늙어가고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 그 무엇도 더 젊어지는 것은 없다. - P9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삶의 맨 끝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동전의 뒷면처럼 언제든지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존재다. - P9

‘팩트fact‘라는 단어는 라틴어 ‘파케레facere‘라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만들다, 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로 제시되지만 거짓일 수 있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 P10

"여러분, 눈이 쌓였다고 눈사람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실은 겨울이라는 환경이 있기에 가능한 겁니다. 그러니 눈만 보지 말고 겨울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 P11

인간이 하나의 객체로 성장해 어떤 쓸모를 다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기대고 희망을 얻을 것은 사람뿐인지도 모르겠다. - P12

어떤 죽음인들 갑작스럽지 않을까. - P19

"건강한 눈은 보이는 것은 모두 보아야 하며 ‘나는 초록색만 보고 싶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건강한 청각과 후각은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듣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냄새 맡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_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 P21

인간의 몸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맡고 싶은 것만 맡을 수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 P21

사연 없는 시신은 없다. - P22

멍의 색깔이 다양하다는 것은 손상의 시기가 제각각 다르다는 것으로, 이는 상습적이고 만성적인 구타의 흔적으로 볼 수 있었다. - P23

모르투이 위워스 도켄트 Mortui vivos docent,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의학도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라틴어 격언이다. 죽은 자가 자신의 몸을 통해 산 자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의미다. 이 격언에 등장하는 ‘도켄트docent‘라는 말이 파생되어 ‘닥터doctor‘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그만큼 의학이 발전하는 데 있어서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지 알 수 있다. - P23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은 이제 자신의 몸을 의사에게 보여줄 기회는 마지막 단 한 번뿐이 남지 않았기에 더욱 절실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 침상에 누운 그들을 내려다봐줄 의사가 되어주는 것, 법정에서 그들을 대신하여 억울함을 밝혀줄 증언자가 되는 것, 그것이 법의학자의 역할이다. - P24

법의학자는 의사이자 고인의 대변자이며, 철저한 과학적 증거로 사실만을 말하는 사람이다. - P25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도 의사가 필요하다는 생각 - P29

젊은이의 직업 선택의 십계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 P30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 P30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 P30

4.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 P30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 P30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 P30

7.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P30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P30

9.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 P30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 P30

모든 만남은 기적이다. 서로의 존재도 모른채 각자 다른 우주를 살고 있던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혜성의 충돌처럼 기적 같은 일이다. 어쩌면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어느 날 길을 걷다 발을 삐끗하기만 했어도, 운명은 나비효과처럼 변화를 일으켜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 P31

지금까지 내게 있었던 일 중에 어느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혹은 내게 없었던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났더라면, 나는 법의학자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모든 만남은 기적이며, 그래서 나는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고맙고 감사하다. - P32

물에 빠져 부패한 시신에서는 사인을 규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의학이 그때보다 훨씬 더 발전한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 P33

내가 그랬듯 모든 법의학자는 직업 선택의 십계를 따른 사람들이다. 월급이 적은 곳,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고, 오려는 사람이 거의 없는 황무지 같은 곳, 부모나 아내가 결사반대하는 곳으로 기꺼이 걸어온 사람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한 사람들,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는 곳을 택한 사람들이다. - P35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 격변의 시기에 법의학자가 국가 권력의 편에 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권력과 자본에 양심을 속이려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 길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 P36

나는 스스로에게 단 한 점 부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도록 모든 일에 조심 또 조심하게 되었다. 법의학 선배들이 이토록 외롭고 힘들게 지켜온 원칙과 신념을 이어가기 위해. - P36

물결 이는 수면 위에 비죽 튀어 나와 있는 그것은, 사람의 발이다. 추락해 바다에 빠진 이카로스의 발. 사람들은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마을은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그리고 어디선가 누군가는 죽어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이는 죽어가겠지만 우리는 아무런 인식도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차마 안타깝게 죽어가는 어린 소년의 얼굴을 볼 수 없어 발만 그린 것일까.

<이카로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_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프터르 브뤼헐Pieter Brueghel의 그림을 보고 난 뒤 남긴 저자의 생각 - P39

사람의 죽음이 국가에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절차인 ‘사망 등록‘은 사망진단서 발급 일자로부터 한 달 이내에만 관할 주민센터에 접수하면 된다. - P42

시신의 이상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전문가인 법의학자는 ‘사망-장례-사망 등록‘의 전 과정에서 아무런 의견을 내지 못한다. 죽음에 대한 전문가의 검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 P42

아주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관행으로 굳어진 문화여서 우리는 ‘장례(화장 혹은 매장)후 사망 등록‘이라는 절차가 이상하다고 여기지 못하지만, 대다수 외국에서는 우리와 정반대의 절차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 영국, 일본 등의 경우에는 사망 등록이 먼저 이루어져야만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유족이 사망 신고를 하면, 법의학자와 같은 전문가의 검토하에 범죄 혐의가 없다는 것을 인증받은 뒤에야 화장 혹은 매장 허가증을 국가로부터 발급받을 수 있고, 그래야 장례식을 치르고 고인을 묻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와는 순서가 정반대다. 어느 쪽이 합리적인 사회일까. - P43

보이지 않고, 기록해두지 않고, 근거를 밝히지 않는 일들은 머지않아 우리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매년 원인을 모른 채 사라지는 2만 8천 명의 사람들이 애초에 우리 사회에 없었던 것처럼 기억에서 휘발되듯이 말이다. - P44

실패한 사례는 잘 드러나지 않는 까닭에 성공한 사례만을 보고 잘못된 편향에 빠지는 것을 가리켜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이라고 한다. - P46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_세네카 - P47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을 고쳐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는 사인 없이 죽어간 2만 8천 명 속에 있다. 우리 옆에서 조용히 사라져간 사람들, 죽어간 사람들 속에 우리 사회의 불완전함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는 거기서부터 찾아야 한다. - P47

보려고 해야 볼 수 있고, 알려고 해야 알 수 있다. 이미 썩어 뼈만 남은 코끼리의 화석에서는 결코 코를 찾을 수 없다. - P47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앎으로써 인생을 이루어나가듯이, 죽음에도 앎의 완성이 필요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죽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망자를 대신하여, 살아남은 우리가 죽음의 육하원칙을완성해야 한다. 그것은 떠나간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또 그들을 밀어낸 이 세상을 살아갈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 P48

어린아이가 돌연사하는 경우, 사법당국에서는 혹시 모를 아동학대의 가능성을 확인해야만 하기 때문에 부검을 강제집행하게 된다.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긴 하지만, 이로 인한 부모의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고려해 설명을 해야 하는 법의학자에게는 괴로운 순간이다. - P50

"제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이겠지만, 그 아이가 부모님들께 주었던 보석 같은 추억들이 퇴색하지 않을 정도로만 슬퍼하시기 바랍니다." - P52

그리스어 ‘타나토스thanatos‘는 ‘죽음‘을 의미하는데, ‘어두운‘, ‘흐린‘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 P52

그리스어 ‘프네우마pneuma‘는 ‘숨결‘, ‘숨쉬기‘, ‘영혼‘ (물리적 몸을 차지하고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활기찬 원리 또는 개체라는 라틴어 psyche)을 의미한다. 우리 몸의 숨구멍을 통해 영혼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이것이 멈추면 몸을 떠난 영혼이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뜻이다. - P52

영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는 몸을 통해 고통과 통증도 느끼지만 슬픔과 그리움, 아쉬움, 사랑도 느낀다. 무엇이 주인일까, 몸일까 영혼일까? 만약 몸을 떠난 영혼이 나의 진짜 정체성이라면, 굳이 몸을 통해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는 뭘까?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물음이다. -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른 책들을 읽다보니 본의아니게 이 책은 정확히 1달만에 다시 집어들게 되었다.

오늘 시작하는 내용은 ‘로마의 탄생‘이라는 소제목의 글인데, ‘로마‘라는 도시의 이름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 중고등학교 시절에 학교에서 세계사 시험을 보면 그냥 단편적인 지식들을 암기해서 시험지에 모조리 쏟아내고 시험이 끝난 뒤에는 그저 단순암기했던 것들을 잊어버리는 식의 패턴이 반복되어 이 과목에 그다지 큰 흥미를 못 느꼈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경우 단편적인 지식보다는 어떤 스토리와 흐름 위주로 역사를 접하다보니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너무 자잘한 세부사항보다는 ‘익스프레스‘라는 책의 제목답게 굵직굵직한 사건들 위주로 간단히 짚고 넘어가다보니 왠지 속도감있게 세계사를 훑어나가는 느낌도 받았다. 그래서 이 책이 역사에 대한 흥미를 다시금 북돋아 주는 좋은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를 빌어 저자께 감사드린다.




기원전 753년, 오늘날 이탈리아 지역에서 로마가 탄생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로물루스가 쌍둥이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자신의 이름을 따 도시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 P34

로마 건국 신화에 따르면,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부모에게서 버려진 뒤 늑대의 젖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두 형제가 세운 로마는 테베레강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유리한 교통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형제간의 갈등은 비극적으로 끝났죠.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는 사건은 로마의 건국이 피와 희생으로 이루어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P34

오늘날 서양에서 사용되는 언어, 달력, 법, 철학, 건축물 등이 모두 로마의 유산입니다. - P162

로마에서 가장 높은 카피톨리누스 언덕 - P169

실속 없는 승리를 가리켜 ‘피로스의 승리‘ - P170

기원전 264년 양국(로마와 카르타고)은 시칠리아섬의 지배권을 놓고 전면전을 벌였는데, 이것이 바로 ‘제1차 포에니 전쟁‘이었습니다. - P170

카르타고에는 한니발이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한니발의 이름은 ‘바알Baal의 영광‘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페니키아의 신이었던 바알은《성경》과 <디아블로>라는 게임에서 악마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 P171

양군(로마군과 카르타고군)은 칸나에 평야에서 만나 정면승부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의 포위 섬멸 작전이 완벽하게 먹히면서 카르타고가 대승을 하게 되었죠. 칸나에 전투에서는 8만 명의 로마군 중에서 무려 7만 명이 전사했습니다. 이는 로마 성인 인구의 20퍼센트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죠. 궁지에 몰린 로마는 더 이상의 전투를 포기하고 시간을 끄는 지연작전을 펼쳤습니다. 한니발은 그 후 10년간 이탈리아 반도를 누비면서 로마를 전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 P172

어느 정도 국력을 회복한 로마는 스키피오 장군을 보내 역으로 카르타고 본토를 공격했습니다. 카르타고 본토가 공격당하자 한니발은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반도에서 본국으로 귀국해야했죠.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이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을 격파했습니다. 이로써 제2차 포에니 전쟁도 로마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 P1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