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두 가지 일이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스케일이다. - P201
하나님의 스케일에 해당되는 일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에 관한 개념이나 신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는 것이다. - P201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그분의 스케일대로 우리를 통해서일하신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홍해를 건너는 일, 바위를 쳐서물을 내는 일,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일, 기드온의 300명으로 미디안 군대를 이기는 일,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일, 다니엘과 친구들이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거부하는 일, 스룹바벨이 훼파된 성전을 재건하는 일, 베드로가 바다위를 걷는 일, 귀신을 내쫓는 일, 방언을 하는 일, 조지 뮬러가 2천 명의 고아들을 먹이는 일, 모든 민족을 제자삼는 일 등은 우리의 스케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일이다. - P20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우리를 통해 행하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자는 당당하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지만 반응하지 못하면, 아니 부정적으로 반응하면 자신의 능력대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런 사람은 사는게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 P202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과 차별화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세상에서의 성공신화를 일구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나의 스케일, 나의 능력에만 국한할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스케일, 하나님의 능력에 반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고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 P204
진정한 믿음은 입술로가 아닌 행동으로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에 순종하는 사람은 결과에 민감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께서하시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듯, 현재 우리의 수고와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믿음의 반응을 보이지 못할 때가 많다. 실패할 것을 너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쫀쫀한 그리스도인이나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 P204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는 다르게 앞뒤 따지지 않고, 즉 계산하지 않고, 이성을 뛰어넘는 행동을 보여준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반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능력을 부어주신다. 그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한 계속적으로 말이다. - P206
그러나 거센 바람이 불어오자 베드로는 무서움에 사로잡혀결국 물에 빠지고 만다. 팔짱 낀 친구들은 아마 ‘그러면 그렇지, 짜~식 만용을 부리더니만 결국 빠지는구나!‘ 라는 반응을 보였을지 모른다. 이때 물에 빠져들어 가는 베드로를 향해 예수님이 취한 행동을 보아야 한다. "살려주세요!" 하고 베드로가 허우적거리며 외치자 예수님은 잽싸게 손을 내미시는 것이 아닌가. 베드로의 손을 잡아끄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이 적구나. 왜 의심했느냐?" - P207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을 꾸짖기보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능력을 의심한 것에 대해 꾸짖으신 것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여 순종하다가도 다시 우리의 능력으로 내려올 때가 있다. 그때 우리는 근심하게 된다. 막상 시작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장벽들이 얼마나 많은지, 방해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 P207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일을 당할 때다시금 시름하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의심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때 잽싸게 손을 내미시면서 나를 붙잡으실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한다.
"설령 물에 빠지더라도 뛰어내려!" - P208
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찌질이 같은 청년들을 보면답답함을 느낀다.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저리 나약하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전혀 분간이 안 된다. 입으로 열심히 찬양하는 것 같은데, 목소리 높여서 기도하는것 같은데, 열심히 성경을 보는 것 같은데, 그때뿐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려면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해야 한다. 일단 한번 배에서 뛰어내리면 예수님이 당신에게 즉시 손 내미실 것이다. 약간의 꾸중을 들을 것조차 감안하고 용기를 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믿음은 순종이자 행동이기 때문이다. 나의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증명해야 한다. 하나님을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살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삶은 믿음의 행동으로 차별화된다. - P208
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의 크기로 일하기를 원하신다. 당신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보기에도 뻔히 이루어질수있는 것들에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는가? ‘뻔할 뻔‘자에 믿음을 거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지나가는 개들도 웃을 일이다.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하는 사람이야말로 믿음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둑한 믿음의 배짱을 주기를 원하신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1-2) - P209
그렇다면 사라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판단과 지혜로 행동했으며 인간적 능력의 범위 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다. - P211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 아들을 줄 것이라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사라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사라는 자기의 스케일대로 반응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스케일대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크기를 표현한다. - P211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일하시고자 했으나, 우리가하나님께 제대로 반응하지 못함으로 지구 종말이 올 때까지 고통 가운데 신음해야 하는 백성들이 생길지 모른다. 아브라함과사라의 불순종을 보라, 우리의 불순종도 그러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의 한계를 넘으시는 하나님의 스케일에 반응해야 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 55:8~9). - P213
만약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녀, 가정, 이웃, 그리고 이웃 민족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과거에 ‘못해‘ 신앙인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몰랐다. 내가 계속해서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나를 통해 일을 이루시겠다는데 나는 내 영역을 침범하시지 말라고 무례하게 굴었다. 나는 나의 경계선을 분명히 해놓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서도 침범하시면 안 된다고 한 것이었다. - P215
주님 앞에 우리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안 돼요. 나는 못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나에게 배짱 주시려고 할 때 언제나 드려야 하는 말이 있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능력 없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완전히 알겠느냐(욥 11:7), - P2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백두산이나 한라산만큼 큰 믿음이 아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수 있느니라(막 10:27). - P216
겨자씨만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런 고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난 이거밖에 안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고백으로 나아갈 때, 뽕나무가 뽑혀 바다로 심겨질 수 있고, 이 산을 들어 저 산으로 옮길 수도 있는 것이다.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 겨자씨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 - P21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 P21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약함과 한계를 너무나 잘 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우리에게 감히 상상도 못할 스케일로 일을시키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에게 배짱을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그 배짱은내가 할 수 있다는 똥배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못하시는 일이 없다는 강한 믿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 P217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눅 16:10) - P218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 - P222
하나님께서는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시는 나의 리더이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끄신다면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은 여호수아 1장 3절이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에게 임무를맡기실 때 약속하셨던 말씀이다. 여호수아는 그동안 평생 모세의 밑에서 2인자로서 상관이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하면 되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모세의 종‘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백성을 향한 지팡이가 여호수아에게 쥐어졌으니,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는가? 아마 잠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이 말씀에힘입어 하나님께서 새롭게 맡기시는 일에 순종할 수 있었다. 이때 내가 결심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리더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만큼 편한 것이 없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수 1:3). - P224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우리를 통해 이루길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먼저 손짓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의 뜻을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부르신다
할 일을 주신다
우리의 긍정적 반응을 바라신다
우리를 격려하신다
우리를 통하여 성취하신다 - P225
주님의 주도하심에 순종으로 반응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패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으신 분이며 최선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 P225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한번 질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주도하심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 순종했는가? 하나님의 타이밍을 충분히 기다리고 있는가?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반응이다.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출 19:8) - P226
하나님께서는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는 대답을 가장 기뻐하신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수 있으니까.
주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자 [여자(마리아)]는 행복합니다(눅 1:45, 쉬운성경), - P228
베드로는 긍정적이고 순종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어로는 "But because you say so" 즉,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내가 따르겠다는 결단이었다. 마리아가 천사의 말에 "as you have said" 즉,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순종의 반응을 보인 것과 같이 베드로도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눅 5:4~6). - P230
마리아나 베드로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따르겠다는 결단은 우리 인생에서 엄청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2002년 건축 공사를 시작한 중국 열방학교는 나의 대학 제자들만으로는 필요한 교사수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나는 중국 내에서 크리스천 청년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나님께서 학교를 지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교사 역시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어떻게 주실지는 전혀 아이디어가 없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순종했다. - P231
주의 교훈에 순종하는 것이 나에게 축복이 됩니다(시119:56. 쉬운성경). - P234
아무것도 없었지만 맨 무릎은 아직 멀정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만은 충천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요단강을 건너고, 길갈에 진을 치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아이성을 공격하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하루하루 이루어나가셨듯, 희망시에도 열방중학교를 시작으로 대학생 사역, 유치원과 초등학교 사역 등을 확장해나가기를 원하셨다. 그러려면 일단 하나님께 순종의 반응을 보이고 믿음의 행진을 해나가면서 성령의 파도를 타야 한다. - P235
하나님의 파도가 밀려올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윈드서핑 보드를 하나 준비한 후 파도가 밀려올 때까지 자세를 가다듬고 기다린다. 목전까지 밀려왔을 때 순간적으로 보드를 타지 않으면 다음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공식도 마찬가지다. 기공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만인 앞에서 나의 믿음을 공표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것은 뒤돌아보거나 물러서지 않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다짐이었다. 믿음의 발걸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확인하는 작업만 남은 것이다. 하나님의 파도는 세상의 파도와 비교할수 없다.
주님은 위엄을 갖추고 다스리셨으며, 능력을 띠로 띠셨습니다. 세계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합니다. 주님의 왕위는 예로부터 견고히 서 있었으며, 주님은 영원 전부터 계십니다. 주님, 강물 소리가 높습니다. 강들이 물결 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높이 계신, 위엄이 있으신 주님은, 큰 바다의 소리보다 더 크시고, 광란하는 바다보다 더 힘세십니다. 주의 법령은 매우 확실하고, 주의 집이 거룩함은 당연합니다. 주님, 영원무궁토록 그러할 것입니다(시 93:1~5, 표준 새번역). - P238
여호수아 5장 13~15절을 보라. 거기서 그는 칼을 빼들고서있는 어느 군인을 만난다. 그리고 대뜸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우리 편입니까. 적의 편입니까?" 칼을 빼든 남자가 말했다. "어느 편도 아니다. 나는 오직 주님의 군대 사령관으로 온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여호수아가 정신을 차렸다. 그전까지는 자기가 사령관으로서 공격 루트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주님의 군대사령관의 말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에게서 어떤 메시지를 그의 종을 위해 가지고 계시는지요?" 즉, 여호수아가 사령관이 아닌 주님의 종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차별화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같이 종이라는 신분의식이 확실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바로 이것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 P239
여호수아는 철저히 주님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시간을 바라보며 7일간 여리고성 주변을 돌수 있었다. 주님의 종이 아니었다면 성 주위를 돌기 전에 여호수아의 머리가 먼저 돌아버렸을 것이다. 그가 여리고 작전에 돌입하기 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과외는 성공적이었다. 하나님의 작전에 절대 순복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에, 눈을 들어서 보니. 어떤 사람이 손에 칼을 빼들고 자기 앞에 서 있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우리의 원수 편이냐?" 그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주의 군사령관으로 여기에 왔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한 다음에 그에게 물었다. "사령관님께서 이 부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렵니까?" 주의 군대 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너의 발에서 신을 벗어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하였다 (수5:13~15, 표준새번역). - P240
우리는 체질적으로 계산하려는 습관이 있다. 여호수아가 그랬다. 주님의 군대 사령관을 첫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우리 편인가 적의 편인가 질문하고 있다는 것은 벌써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가 어떤 도움이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문제해결에 골머리를 앓다 보니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오히려 다른 방법을 동원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에 대한 경고를 우리는 <이사야서>를 통해 볼 수 있다.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칠것이다. 그들은 군마를 의지하고, 많은 병거를 믿고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바라보지도 않고, 주께 구하지도 않는다(사 31:1 표준새번역), - P241
하나님은 우리의 사령관이자 지휘관이시다. 그렇다면 주님의 방법대로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가 구해야 할 일이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3~5). - P243
그러나 둘째아들은 말과는 달리 가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순종에 대해 혼동한다. 순종이란 둘째아들과 같이 하겠다고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아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결단과 외침이 있다. "하나님, 주님의 명령이라면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도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컴퓨터 자판의 ‘삭제‘라는 글자판이라도 두들긴 것처럼 자신의 기도 메모리를 깨끗하게 지워버리곤 한다. 순종은 행동하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확실하게 알려주셨다. 우리가 사랑한다면서 순종하지 않으면 거짓이다. 왜냐하면 순종은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 14:15, 표준새번역) - P245
순종으로 주께 반응하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보게 된다. 이러한 우리의 작은 순종은 더 큰 순종을 낳게 된다. 결국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 P246
"언제까지 겉으로만 빙빙 돌래?" "언제까지 아직은 아니라고 하면서 뒤로 미룰래?" "언제까지 ‘나는 못해요‘ 하면서 머뭇거릴래?"
만약에 이중 한 가지 질문이 당신에게 해당된다면, 하나님께 대한 반응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미치도록 나를 바꿔보고 싶다면, 신앙의 높이뛰기 선수가 되고 싶다면, 거짐없이 돌파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이제 하나님의 선행하심에 제대로 반응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반응이지 우리의 능력이 아니다. 하나님의 신호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주고 싶어 안달 나신 분이다. - P246
지금 하나님께 반응하라.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당신은 이제 환란의 골짜기에서도 소생할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의 소유자가 될 것이다. 성령을 통하여 흩어져 있는 에너지를 하나로 모으는 레이저 광선과 같은 집중력의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좌절(breakdown)을 넘어 돌파(breakthrough)의 사람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몸 안의 모든 세포가 경험할 것이다. 당신은 그분을 더욱 알아갈 것이며 더욱 당당하게 세상과 차별화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더 후회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내미시는 손을 잡으라.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길, 상상만 해도 흥분되지 않는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 P247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시며 시시때때로 사인을 보내신다. 말씀을 통하여, 사람과 환경을 통하여, 생각을 통하여.…. 반응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라고 말하고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통로를 통하여 먼저 말씀하실때 우리는 세 가지 반응을 한다. 다음 페이지 도표의 ‘Yes!‘, ‘Why me?‘, ‘No!‘라는 긍정적 회색적,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이다.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도 계속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반응해나가신다. 그분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변화될 때까지 기다리시며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신다. - P250
이 책을 정리하면서 내 신앙을 돌아보게 되었다. 하나님께 반응함으로 나는 그분을 더 알고 싶고, 더 듣고 싶고, 더 만지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과 손잡고 서로 긍정의 반응을 주고 받으며 걸어가는 행복과 감격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성령님께, 아버지 하나님께 반응하기를 기도한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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